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1/01/02 21:09:26
Name lightstone
Subject 그대여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일정한 슬픔없이 과거를 추억할 수 있을까
그 시절 그 모습 그렇게 만났기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절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누구결혼''길가다가''같은직장'등등의 이유로 다시 볼 날을 기약하지만
이제는 실제로 만나고 싶어도 왠지 힘들고 조금의 결심을 해야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만이 늘어간다

결혼식이 생길 때 으레 왔다갔다 하는 말들 중 하나는
"갈꺼야?"
"어차피 내 결혼식에 안올 것 같은데"
"나중에 안 볼 것 같은데"
"1년에 한 번 연락하는데"
등등의 말들이 자주 오간다.

살다보면, 인생의 궤적이 어떻게 시작부터 끝까지 같이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살다보면 함께한 날들에는 눈물도 웃음도 같이 나누며 둘도 없는 사이였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다른 길을 걸어가야 되는 때가 온다.
그러다 보면 점점 관계는 소원해지고 카톡으로 안부한번 전화한번 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 온다.
일상 그저 먹는 것, 일어나는 것, 회사 가는 것, 빨래 하는 것, 설거지 하는 것, 그저 사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히 우리 삶은 바쁘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절, 그 때의 너와 나는 진심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그때의 너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고 그때의 내가 있어 지금의 너가 있을 것이다.
지금 나의 인연들 중 나의 장례식에 울면서 올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열 손가락은 될까?
하지만 그게 잘못된 것일까?
아마 나의 부고 소식도 못듣는 이가 태반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지금은 가식인걸까?
축의금의 숫자가, 결혼식의 명단이 내 마음을, 그대의 마음을, 그때의 우리 마음을 대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때의 우리가 지금은 다른길을 걷고 있을 뿐, 지금의 나는 그대가 만들었다.

나는 사랑하기로 했다.
그 때의 우리들을. 그 때의 너와 나를.
지금의 우리들도. 지금의 너와 나도.
그대여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그대 굳이 아는척 하지 않아도 좋다.
찬비에 젖어도 새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 한 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잘도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하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뿐

그대여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6-20 00:59)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 게시글로 선정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이라세오날
21/01/02 21:56
수정 아이콘
멋진 글 잘 보고 갑니다
21/01/02 21:59
수정 아이콘
저도 굳이 지음, 죽마지교라는 말이 생긴게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 때 그 시절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족하지 않나, 그리고 그 후로도 깊은 인연이 이어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놀랍고 가치있는 일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그렇게 흘러가야지 또 새로운 사람, 새로운 기회를 만나지 않겠는가. 싶어요
여우별
21/01/02 22:01
수정 아이콘
작가님이신가요? 글이 좋아요~
21/01/02 22:25
수정 아이콘
최근에 결혼해서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 마음가짐을 가다듬는데에 좋은 글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owhatyoucan't
21/01/02 22:58
수정 아이콘
연애시대...
브리니
21/01/02 23:54
수정 아이콘
벗러나지 못하는 것을 치장하고 싶은 과시욕 과거 추억팔이. 그래도 영원히, 어릴, 우리가 뇌 깊숙한 곳에서 강박당하는 이름, 어제.
Betelgeuse
21/01/03 01:04
수정 아이콘
조금 전에 헤어졌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헤어질 때 아쉬움 같은건 없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심란한데 좋은 글 보고 조금의 위안을 받아갑니다:)
포도씨
21/01/03 01:33
수정 아이콘
저도 여러번의 헤어짐을 겪은 끝에 결혼하였는데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아직까지 후회로 남는건 그 사람때문이 아니라 그때의 내 모습이더군요.
최선을 다했다면 아마도 시간이 흐른 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실겁니다. 혼자의 시간에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해보세요. 홀로 행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둘이어도 행복할 수 없으니까요.
The Normal One
21/01/03 01:57
수정 아이콘
나는 사랑하기로 했다.
그 때의 우리들을. 그 때의 너와 나를.
지금의 우리들도. 지금의 너와 나도.
그대여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이 부분이 너무 좋네요.
그대여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21/01/03 10:23
수정 아이콘
그대여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스스로 계속 위로하지만

그대도 나를 사랑하면 좋겠다라는게 그래도 사람 마음인가봐요...
21/01/04 16:54
수정 아이콘
좋아요!
키르아
21/01/04 16:59
수정 아이콘
대인배스러운 내가 되길 바라며 노력하고 살았는데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이제는 이상을 꿈꾸지 않고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 힘드네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고 편안해지기가..
장고끝에악수
21/01/17 07:34
수정 아이콘
너무 잘 읽었습니다
살고싶다고말해
21/04/18 03:04
수정 아이콘
가끔 들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메탈젤리
23/06/21 18:25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265 끌어당김의 법칙인가 뭔가 이해해보기 [19] 7653 20/06/03 7653
3264 공포소설의 제왕 스티븐 킹의 영상화된 작품들(스포, 공포주의) [22] 라쇼7202 21/04/24 7202
3263 달리기 좋아하세요? [67] likepa7135 21/04/19 7135
3262 [13] 사진으로 홍콩 여행하기 [26] 배고픈유학생4969 21/04/14 4969
3261 기원전 슈퍼히어로의 공상과학적인 후일담: 오디세이아 [36] Farce6144 21/04/13 6144
3260 [번역] 현대미술은 미국 CIA의 무기였다.(Modern art was CIA 'Weapon') [24] 위대함과 환상사이7070 21/04/04 7070
3259 조선구마사 논란을 보고 - 조선 초기 명나라 세력의 영향권은 어디까지 정도였나? [28] 신불해8695 21/04/03 8695
3258 [기타] [보드게임] 보드게임을 소개합니다. (약스압) [83] 레몬막걸리7784 21/04/02 7784
3257 200만원으로 완성한 원룸 셀프 인테리어 후기. [108] sensorylab13445 21/03/28 13445
3256 [직장생활] '야근문화'가 문제인 이유 [53] 라울리스타10077 21/03/24 10077
3255 사라진 문명의 중요한 문서와... 초딩 낙서!? [28] Farce5509 21/03/18 5509
3254 취미 활동의 산물과 그 관련 이야기 [31] 아스라이6276 21/03/25 6276
3253 [스위치] 모여봐요 동물의숲, 1년 후기(스샷 많음) [36] 7684 21/03/24 7684
3252 남의 밥그릇을 깨기 전에 필요한 고민의 크기 [32] 눈팅만일년8125 21/03/19 8125
3251 [슬램덩크] 강백호의 점프슛 이야기 [33] 라울리스타6787 21/03/18 6787
3250 변방인들과 토사구팽의 역사 [20] Farce7999 20/06/05 7999
3249 평생 나를 잊어도, 내 얼굴조차 까먹어도 좋다. [10] 아타락시아16708 21/03/18 6708
3248 2021년 3월달 OECD 보고서 [18] 아리쑤리랑10660 21/03/15 10660
3247 중년 아저씨의 베이킹 도전기 [56] 쉬군5911 21/03/08 5911
3246 안녕, 동안 [26] 북고양이5393 21/03/07 5393
3245 [육아] 떡뻥의 시간 [20] Red Key6128 21/03/03 6128
3244 [콘솔] 마계촌을 통해 엿보는, 캡콤이 매니아들을 열광시키는 방법 [56] RapidSilver7852 21/02/24 7852
3243 미운 네 살이 앓고 있는 병들 [70] 비싼치킨9528 20/05/29 952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