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닌자하면 어떤게 떠오르시나요? 저는 나루토의 사륜안, 닌자 거북이, 세키로 같은게 떠오르네요. 거기다 조금 더 보태면 소울칼리버 시리즈의 섹시한 여닌자 타키, 아랑전설 킹오파의 시라누이 마이, 데드오어얼라이브 시리즈의 카스미, 아야네, 그리고 이건 좀 매니악하지만 대마인 아사기 같은 쿠노이치들이 떠오르는군요. 여캐만 더 많이 떠올려서 죄송합니다 크크크크.
쿠노이치의 대명사 시라누이 마이
닌자 거북이 주제가
여하튼 닌자는 전세계적으로 일본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입니다. 전에 유머게시판에서 웹소설을 이보다 더 재밋게 전개할 수 없는 방법인가 뜬금없이 닌자를 등장시켜서 사람들을 죽인다는 유머글을 본 기억이 나는데요. 진짜 허무맹랑한 소리지만 이게 또 은근 그럴싸해보인다는게 재밌는 점이겠네요. 의외로 쌈마이 B급 감성으로 닌자 소재를 차용해서 인기를 얻는 서브컬쳐 창작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닌자 슬레이어나, 최근에 연재되는 닌자 VS 야쿠자 같은 작품이 그것들이죠.
닌자는 사무라이와 함께 일본 서브컬쳐 창작물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특히 이 신비한 동양의 전사라는 컨셉이 서양인들에게도 크게 먹혔는 지 닌자라면 아주 환장하는 너드들이 많죠. 위에 언급한 닌자 거북이나, 닌자고 같은 것들도 있고 우리 엄복동 형님도 워쇼스키 자매가 감독했던 닌자어쌔신이란 영화를 찍었을 정도니까요.
본론부터 말하자면 닌자가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가 된 이유는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수 많은 창작자들의 열정과 노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리장성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국내 서브컬쳐 팬덤은 한국적인 문화가 녹아든 게임, 만화, 애니가 없다며 한탄하고 일본의 자국 문화를 잘 융화시킨 다양한 창작물들을 부러워합니다. 허나 일본과 꼭 비교를 들 필요가 없는 것이 우리나라도 킹덤 같이 웰메이드 퓨전사극도 있고 k-pop이나 한류 드라마 같은 것들이 일본이나 다른 외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죠. 서브컬쳐란 분야에 몰린 열정과 능력이 있는 창작자들의 수와 기간이 차이났을 뿐 우리나라 문화 컨텐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닌자 소재 서브컬쳐 창작물의 발전사를 얘기하기 전에 닌자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넘어가고 싶은데요. 오늘날에 어둠에서 암약하는 다크한 암살자란 컨셉은 순전히 창작물의 영향입니다. 닌자는 말 그대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국가의 첩보를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존재인 스파이라고 할 수 있죠.
춘추전국시대 전략가인 손무는 그의 저서 손자병법 용간편에서 간자, 즉 첩보원의 중요성을 설파했습니다. 첩보원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요인 암살이나 파괴공작 같은 사보타주도 했겟으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정탐과 선동입니다. 패러독스사의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를 해보신 분이라면 참사회 첩보관이 하는 일이 닌자의 임무와 비슷하다 얘기하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네요. 눈에 띄는 검은 쫄쫄이 복장에 닌자검과 수리검으로 무장해서 인술 같은 마법을 부리며 미쳐 날뛰는 전사가 아니라, 농부나 떠돌이 승려 같이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복장으로 적진에 잠입해서 염탐하여 정보를 얻고, 유언비어를 뿌려 선동을 하는게 닌자의 주된 임무였죠. 미남미녀들이 주를 이루는 현대의 닌자 이미지보단 저나 여러분들 같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외모가 닌자에 제격인 외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딜가나 튀는 못이 정을 맞게 마련이지요.
닌자는 일본의 첩보원을 가리키는 단어이며 다른 표현으론 시노비라고도합니다. 남자 닌자를 타치카라(タヂカラ), 여자 닌자를 쿠노이치(くノ一)라고 하는데 타치카라는 사내 남(男)을 타(田, 밭) + 치카라(力, 힘)로 파자해서 만든 단어이고, 쿠노이치는 계집 녀(女)를 쿠(く)+노(ノ)+이치(一)로 파자해서 만든 단어입니다. 타치카라는 거의 사장된 표현이고 시노비와 쿠노이치는 여성 닌자를 가르키는 명칭으로 사용됩니다.
고대부터 군대를 운용하는 곳이라면 첩보원이 존재했는데 일본의 닌자는 조금 특수한 케이스입니다. 현대의 국정원, CIA, 모사드 같은 방첩조직을 따로 둔 것도 아닌데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첩보에 특화된 능력을 키운 집단이 발생된 것이죠. 이런 닌자 집단들은 전국시대에 실존하였는데 이가슈, 코가슈, 후마슈 등이 대표적인 닌자 단체로 서양의 용병처럼 다이묘들과 계약을 맺고 집단 내에서 키워낸 닌자들을 제공했습니다.
현대 창작물에서 닌자의 기원이 된 소스가 바로 이들 닌자 단체였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호실장 역할을 맡았던 핫토리 한조입니다. 한조 외에도 수 많은 실존했던 닌자들이 알게 모르게 창작물에서 재가공되어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래에 설명할 건데 열거하는 닌자 이름들을 보다보면 이게 여기서 나왓던 것이었어? 하는 게 제법 있을거에요.
인술이나 암살기술 같은건 현대에서 창작된 것들이고 실제 닌자들이 수련해야 할 필수 덕목들은 상대 진영에 숨어들어 정보를 얻기 위한 사교성과 연기력, 어떤 돌발상황이 벌어져도 침착하게 대처할 대담성과 인내력이었죠. 과연 닌자의 이름에 참을 인자가 들어간게 우연은 아닌가 봅니다. 여담이지만 나루토에 등장하는 지라이야도 닌자는 참고 견뎌내는 자이다라고 대사를 한 적이 있었죠. 그런 엄청난 정신력을 길러내기 위해서 밀교나 구자인법 같은 자기암시성 최면술을 익혓다고도 합니다. 좀 옛날 만화지만 공작왕에서 주인공 공작이 사용하는 임 병 투 자 개 진 열 재 전(臨兵鬪者皆陣列在前) 이 아홉가지 글자가 옛 닌자들이 정신력을 수양하기 위해 수련했던 구자인법이죠.
구자인법. 원형은 위진남북조 시대 도가 서적 포박자에 나온 주술로 육갑비축으로 불리었으나 일본에 전해져서 밀교와 융합되어 구자인법으로 변형된다. 닌자들이 인술을 쓸 때 맺는 수인이 바로 구자인법에서 파생된 것이다.
제가 닌자들은 첩자이니 육체 훈련보다 정신력을 더 수련햇을 것이다 주장했긴 하지만 무술도 수련했을 겁니다. 007의 제임스 본드가 온갖 무기와 출중한 체술로 무장한 인간 흉기이듯이 닌자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자기 몸을 지키리면 무력도 필요했죠. 수리검이나, 사슬낫, 마키비시라고 불리는 바닥에 뿌리는 못 같은 것들을 다루는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인술 만은 구라에요 크크크. 불을 뿜는 화둔이나, 바람을 일으키는 풍둔, 째려보면 공간을 빨아들이는 사륜안 같은 것들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었고 오직 창작물에서만 나오는 허구입니다.
간단하게 얘기할 게 점점 길어지는데 그래도 유명했던 닌자들은 얘기해 봐야겠습니다. 이들을 알아야 닌자가 어떻게 각색되어 창작물로 표현되었는가 알 수 있으니까요.
핫토리 한조(服部半蔵)
닌자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죠. 핫토리 한조는 이가 닌자를 다스리는 이가죠닌삼가(伊賀上忍三家) 핫토리(服部), 모모치(百地), 후지바야시(藤林), 중 핫토리가의 수장들이 대대로 사용하는 세습명입니다. 초대 한조가 마츠다이라 가문(도쿠가와 가문의 이전 성)에 귀순한 이후 역대 한조와 핫토리 가문에 속한 이가 닌자들이 도쿠가와 가문을 위해 일했죠. 그중 귀신 한조라고 불리며 용맹을 떨친 무사가 있었는데 그가 2대 한조 핫토리 마사나리(服部正成)입니다. 이에야스가 혼노지의 변에 휩쓸려 위험에 쳐했을 때 무사히 미카와 영지까지 호위하여 피신시킨 공으로 크게 신임을 얻었죠. 이 핫토리 마사나리는 닌자라기 보단 사무라이였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이가 닌자의 통솔권을 받은 기록이 있어서 닌자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졌습니다. 창작물에도 변형되어 자주 등장하는데 킬빌의 일본도 장인 핫토리 한조,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핫토리 한조, 나루토의 도롱뇽의 한조, 오버워치의 시마다 한조등이 창작물에 나오는 한조들이죠.
후마 코타로(風魔小太郎)
후마 코타로는 핫토리 한조와 비슷하게 후마 닌자들의 수장이 사용하는 이름입니다. 사료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키가 2미터가 넘는 근육질로 눈꼬리가 올라가고 눈꺼풀이 정반대로 되어 있어서 아래에서 위로 감기고, 입은 대단히 크며, 어금니 네 개가 툭 튀어나오고 머리가 길고, 목소리가 커서 50리 밖에서도 들렸다고 하는데요. 이거 아무리 역사적 가치가 떨어지는 사료라고 해도 뻥이 너무 심하네요. 사람인지 괴물인지 크크크. 후마 코타로는 어째 좀 콩 포지션인데 창작물에선 한조의 라이벌로 종종 등장하곤 하죠. 이름은 멋지구리 한데 은근 창작물 소재로는 소외 받는 인물입니다. 왜그런지 모르겠어요.
모모치 산다유(百地三太夫)
이가죠닌삼가의 한 축인 모모치가의 수령입니다. 한국어로 읽으면 백지 삼태부란 제법 멋드러진 이름인데 일본어로 읽으면 모모치 산다유란 귀여운 이름이라 창작물에서 인지도는 바닥을 기지요. 모모치 산다유가 워낙 창작물에 쓰이질 않으니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대체했습니다 크크크. 의외로 모모치 산다유 이 사람이 닌자 중에선 굵직하게 살다간 양반인데 무려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든 간큰 닌자였죠. 1차 쇼텐 이가닌자의 난에선 노부나가의 아들 노부카츠를 격퇴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으나 2차 이가닌자의 난에선 오다의 대군을 버텨내지 못하고 장렬하게 전사햇다고 합니다. 아무리 독립 무장세력인 닌자 집단이라 해도 정규군을 당해낼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셈이죠. 아래에 서술할 키리가쿠레 사이조, 이시카와 고에몬의 닌자 스승이라고도 전해집니다.
사루토비 사스케(猿飛佐助)
사나다 10용사의 일원으로 10용사 중 가장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실존 인물은 아니고 군담 소설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인데 모티브로 실재했던 걸로 여겨지는 코우즈키 사스케도 역시 소설에 나오는 가상 인물이라고 하네요. 주군 사나다 유키무라가 오사카의 진에서 투혼을 불태우며 대단한 임팩트를 보여줘서 충직한 부하인 사스케도 인기가 많은 편이지요. 그래서인지 닌자 관련 창작물에 한조 못지 않게 자주 등장합니다. 나루토만의 사스케와 3대 호카게 사루토비 히루젠이 사루토비 사스케의 이름을 따온 캐릭터들이죠.
키리가쿠레 사이조(霧隠才蔵)
사루토비 사스케와 함께 사나다 10용사 중에서 유명한 닌자입니다. 다른 사나다 10용사 멤버들이 인지도가 마이너해서 그런지 창작물엔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키리가쿠레 사이조는 제법 등장하는 빈도가 높은 편이죠. 꼭 풀네임이 아니어도 이름에 가쿠레가 들어간 경우가 꽤 있습니다. 숨을 은(隠)이란 한자가 닌자 이름에 잘 어울려서 일까요?
이시카와 고에몬(石川五右衛門)
이시카와 고에몬은 닌자라기 보다 우리나라의 홍길동, 임꺽정 같은 의적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향로를 훔쳤다가 붙잡혀서 솥에 담겨 삶아 죽이는 팽형을 당했는데, 민간 전승으론 아들을 지키기 위해 펄펄 끓는 기름 속에서도 아들을 번쩍 들은 팔을 내리지 않고 사망했다고 합니다. 사진은 루팡3세의 이시카와 고에몬이지만 실제론 원피스에 등장하는 코즈키 오뎅이 이시카와 고에몬의 모습과 흡사하지요. 우키요에에 묘사된 이시카와 고에몬의 외모와 비슷하기도 하고 솥에 삼겨 죽는 최후마저 똑같습니다. 이시키와 고에몬이 현대에 유명해진 계기는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저술한 '올빼미의 성' 때문인데 히데요시를 암살하러 잠입한 두 닌자 들 중 한 명이 붙잡혀서 이시카와 고에몬이라고 죄명을 뒤집어 쓰고 처형당했다는 결말이죠. 올빼미의 성을 원안으로 한 폭렬닌자 고에몬이란 영화에 격투기 선수 최홍만이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하는 일본 영화에 출연했다고 최홍만이 욕먹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최홍만 입장에선 좀 억울하겠네요.
지라이야, 오로치마루, 츠나데
전설의 삼닌자는 따로 설명하기도 애매하니 한 꺼번에 얘기해 보겠습니다. 위 세 닌자들은 만화 나루토로 익숙하실텐데요. 원전은 에도시대 소설인 지라이야 호걸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두꺼비를 뱀이 제압하고 뱀을 민달팽이가 제압하고 다시 민달팽이를 두꺼비가 제압한다는 삼자견제의 설정이 독특한 소설이죠. 나루토에서도 두꺼비, 뱀, 민달팽이가 세 닌자의 소환수로 등장합니다.
지라이야 호걸담도 사실 원본이 따로 있는데 송나라 때 유행했던 의적소설 아래야가 일본에 전해져 변형된 것이라고 하네요. 아래야는 도둑질을 하고 나서 항상 내가 다녀갔다(아래야 我來也)라고 쪽지를 남겼다는게 명칭의 어원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일지매로 각색되어 민간에서 유행했다고 하네요.
전설의 삼닌자는 나루토보다 먼저인 천외마경 시리즈에서부터 현대 창작물에 등장했는데 고전 게임 매니아라면 기억이 나실겁니다. 나루토 작가 키시모토 마사시가 천외마경의 열혈 팬이라 삼닌자를 나루토에 등장시켰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화이죠.
야규 쥬베(柳生十兵衞)
야규 쥬베는 닌자가 아니고 실존했던 유명 검호지만 닌자 소설의 아버지인 야마다 후타로의 인풍첩 시리즈에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하기에 포함시켜 봤습니다. 쥬베는 애꾸눈인 척안의 검사로 유명한데요. 아버지 무네노리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어릴 때 대련을 하다 아버지가 휘두른 목검에 맞아서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야사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척안이 아니라 두눈 다 멀쩡했다네요. 소설가 야마다 후타로가 자신의 페르소나처럼 아끼는 등장인물인데 무려 야규 삼부작에 주인공으로 등장하죠. 그 중 대표작인 마계전생은 영화나 만화로도 만들어져서 아는 분들은 다 아시는 유명한 작품들 입니다.
야규 쥬베는 입신 양명과 천하무쌍의 야심을 불태우는 기존 검호들과 다른 독특한 개성을 지녔는데요. 도적패에게 약탈 당하던 마을을 지나가던 무사가 무찔러 구해내었다 같은 민간전승엔 항상 야규 쥬베의 이름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정의로운 호걸 검객이란 이미지죠. 야사엔 쥬베가 도적 수십 명을 베었네, 악명 높은 악당을 처단했네 같은 이야기가 숱하게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성정도 호탕하고 술을 좋아하여 미야모토 무사시로 대표되는 최강이 되기 위해 수련에 매진하는 구도자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정의롭고 술 즐겨 마시고, 여자들한테도 인기 좋은 인싸남 같은 이미지가 바로 야규 쥬베이죠.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에서 하오마루의 모티브가 미야모토 무사시로 알려졌으나 실제 성격은 야규 쥬베에 가깝습니다. 술만 마시는 것만 봐도 딱 야규 쥬베죠 크크.
닌자 관련 창작물에서 인술도 안쓰고 쫄쫄이도 안입었는데 오로지 검 한 자루만으로 적과 싸우는 닌자가 등장한다면 야규 쥬베가 모티브입니다.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하오마루, 쥬베이인풍첩의 키바가미 쥬베이, 세키로의 세키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야스오가 야규 쥬베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이죠.
아마쿠사 시로 도키사다(天草四郎時貞)
아마쿠사는 에도시대 초기에 벌어진 크리스쳔 농민 봉기 시마바라 난의 주동자입니다. 다시 살아나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겠다란 살벌한 유언도 그렇고 이후 카구레 키리시탄이라는 밀교 형식으로 변한 기독교의 음습한 분위기가 아마쿠사를 사악한 종교의 수장 같은 이미지로 변모시켯죠. 사실 이런 악의 비밀결사 조직 두령이란 이미지를 덮어 씌운건 야마다 후타로의 원작 마계전생 탓이 큽니다. 소설에선 아마쿠사가 중간 보스 1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선 비중이 대폭 상승해서 주인공 야규 쥬베가 물리쳐야 할 최종 보스로 등장하죠. 얼굴에 희멀건 분칠을 하고 여성인지 남성인지 애매모호한 중성적인 이미지도 영화 마계전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마쿠사도 마계전생에 나온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했지요.
카신 코지(果心居士)
카신 코지는 한국어로 읽으면 과심거사, 에도시대에 실존했다고 여겨지는 환술사입니다. 유명한 전국 무장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케치 미쓰히데, 마츠나가 하사히데 등에게 환술을 보여줬다고 하네요. 그가 보여준 환술은 다음과 같은데 연못 수면에 대나무 잎을 던져서 나뭇잎이 물고기가 되어 헤엄을 치거나, 환술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내의 이빨을 이쑤시개로 치자 치아가 빠지듯이 매달렸도고도 하네요. 마츠나가 하사히데는 숱하게 전장의 아수라장을 헤쳐온 자신을 겁에 질리게 할 수 있는지 내기를 제시하자 몇년 전에 죽은 히사히데 아내의 유령을 출현시켜 공포에 떨게 했다고도 합니다. 히데요시의 부름을 받은 카신 코지는 히데요시가 평생 발설하지 않고 간직해온 비밀을 폭로했다가 히데요시의 분노를 사고 책형에 쳐해지게 되는데, 쥐로 둔갑해서 형장을 빠져나가고 솔개로 변해여 하늘을 날아서 도망쳤다고 하네요. 뭔가 일화를 읽다보니 삼국지의 좌자가 떠오르는 인물이군요. 창작물에선 나루토의 후속작 보루토에서 악역인 카신 코지로 등장합니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실제 역사에 존재했던 인물들이나, 민간 전승에 등장한 닌자들을 모티브로 하여 후대 창작물들이 닌자 캐릭터를 탄생시킵니다. 그런 창작자들 중엔 시바 료타로와 야마다 후타로의 비중이 막대하다고 할 수 있겠죠. 시바 료타로는 올빼미의 성 이후로 다른 굵직한 대하역사소설을 쓰느라 닌자 소설을 자주 다루진 않았는데, 야마다 후타로는 닌자에 살고 닌자에 죽는다는 모토로 닌자 소설을 계속해서 집필합니다. 이게 야마다 후타로가 창시한 장르 인풍첩 시리즈이죠.
야마다 후타로에 대해서 계속 설명하려니 분량이 너무 많네요. 죄송스럽지만 다음편에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내일 중으로 올릴게요.
* bifrost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23-06-13 09:07)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무위키 정보를 전적으로 신뢰 할 수가 없어서 더 찾아 봤는데 일지매의 원전은 명나라 시기 나룡이라는 도둑이 도둑질을 하고나서 매화 한 가지를 남겼다는 기록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이후 청나라시기 환희원가라는 소설에 수록되었다고 하고, 환희원가의 일지매편이 조선에 들어와 유행했다고 합니다. 근데 마냥 아래야와 연관이 없지는 않은 것이 정체를 드러내는 도둑의 시초가 송나라때 나온 아래야라고 하네요. 아래야의 기록이 명나라 나룡으로 넘어가고 청나라로 이어져 조선까지 오게 됐나 봅니다. 일본에 퍼진 계기도 비슷해 보이고요.
일본 문화가 서양인들에게 친숙하게 먹힐만한 요소가 많긴 했죠. 말씀하신대로 이슬람 하사신이나 중세 유럽 기사가 닌자와 사무라이랑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거기다 고흐나 고갱 같은 화가들에게 일본 판화 우키요에가 큰 영감을 안겨다 준 사실을 생각해보면 에도시대 때 부터 발전해온 일본 문화의 저력이 새삼 실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