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남 합천군 동남쪽에 위치한 적중면(赤中面)-초계면 근방에는 '적중-초계 분지'라는 펀치볼 형태의 분지가 있다 (첨부 그림 1 참조). 이 분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거의 완벽한 형태의 정방형 분지이며, 사면이 야트막한 미타산 (668m), 대암산 (591m), 무월봉 (622m), 국사봉 (688m)와 봉서산, 천왕산, 옥두봉, 대장산, 단봉산, 오서산 등 대부분, 600m 전후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서 8 km, 남북 5 km 정도의 크기의 면적을 갖는 이 분지의 형성에 대해 다양한 이론이 있었다. 2001년에는 지질 조자 자료와 아리랑 1호가 촬영한 위성사진을 근거로, 부산대와 경북대 교수들이 탐사 후 분석한 자료가 나왔는데, 그 자료에 의하면 이 분지는 운석충돌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이 나왔다. 실제로 이 분지에서 퇴적암만 발견될 뿐 화산암의 흔적도 없고 따라서 화산분출로 형성된 칼데라로 보기는 어려웠다. 반면, 암밀도 조사와 중력 분포도 데이터에서는 분지 중심의 암석층이 외부 충격으로 부숴진 파쇄대임이 드러났는데, 이는 이 지역이 운석 충돌로 만들어진 분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연구진은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경희대-경북대 지리학과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적중-초계 분지는 운석충돌 보다는 지반 운동에 의한 지질구조선이나 단층선을 따라 기반암이 풍화되면서 생긴 지형으로 추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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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Article.do?cn=JAKO201610661372328&dbt=NART
연구진은 이 분지의 남쪽 분수계의 해발고도가 북쪽 분수계에 비해 눈에 띄게 높다는 점을 들어, 이 분지 형성에 마그마 관입 같은 화산활동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주장하였다. 특히 연구진은 이 분지의 기본 형태가 지질구조선의 분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적어도 지질구조선의 분포만 놓고 보면, 운석충돌에 의한 형성과는 많이 다른 패턴이 보이기 때문에, 운석충돌 가능성은 배제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늘 학술지 Gondwana에 보고된 논문 (한국-중국-호주 연구진들이 저자로 참여)에 따르면, 이 분지는 운석충돌에 의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다시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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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1342937X20303105?fbclid=IwAR3WTAdD15n4T1RBm-e0qvYaphkFEW8ZsLw6gztJRegirrczBLZDabBCiDY
이 분지의 형성 메커니즘을 보다 근본적으로 탐색하기 위해, 연구진은 분지 내 곳곳을 찾아, 지하 130 m 깊이까지 지층을 굴착하여 토양 및 암석 샘플을 채취하였고, 채취한 샘플 (cone)중 석영의 결정립 (grain) 내부의 planar deformation feature (PDF) 특성을 관찰하였다. 이를 토대로 PDF 분포 특성이 운석충돌 같은 이벤트에서만 관찰되는 패턴에 해당하는 것임을 확인하였고, 이는 적중-초계 분지가 운석충돌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쪽의 가설을 다시금 지지하는 증거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2016년 경희대-경북대 연구진의 가설인 화산활동, 그리고 그 이후의 퇴적 지층 형성 증거물은 운석충돌 후 생긴 각력함 (breccia)과 이후 형성된 호수 퇴적층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반박하였다. 특히 탄소 방사성 동위원소 추적을 통해, 연구진은 운석 충돌이 비교적 최근 시기인 플라이스토세 (Pleistocene) 후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연구는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다. 우리나라에 운석충돌 지형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아는데, 만약 정말 합천의 적중-초계 분지가 운석충돌 크레이터 지형이라고 판명된다면, 한반도에는 비교적 최근에 아주 어마무시한 아포칼립스급, 적어도 한 나라를 충분히 멸망시킬 수준의 이벤트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플라이스토세를 보통 285만년-1만년 전 정도의 시기로 보는데, 이 중에서도 후기라면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경계쯤 되지 않을까 싶다. 문헌에 따르면 크레이터 크기와 운석의 크기는 당연히 비례 관계에 있는데, 적중-초계 분지를 대충 원으로 본다면 지름이 7 km 정도로 볼 수 있고, 7 km 지름을 갖는 크레이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충돌체 밀도 8 g/cm^3, 지표면 밀도 3 g/cm^3, 충돌속도 15 km/s 충돌각도 90deg를 가정했을 때, 운석의 크기가 무려 2-300 m 남짓 되어야 한다. 미국 아리조나주의 유명한 운석공 (crater)인 베린거 (Barringer) 운석공의 경우, 지름이 대략 1.2 km인데, 이 정도 크레이터를 만들기 위해 지름 30 m 짜리 운석이 충돌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만약 적중-초계면 분지가 운석충돌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 지역에는 배린거 운석보다 무려 7-8배 가까이 큰, 그러니까 무게는 무려 300-1,000배 이상 되는 거대한 운석이 충돌했다는 이야기다.
지름 2-300 m 짜리 운석이 만약 지금 서울에 충돌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략 이 정도 운석이 초속 15 km/s 속도로 충돌한다면 그 에너지는 무려 TNT 규모 200-500 MT (메가톤)이나 될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히로시마 원자폭탄 위력이 대략 TNT 15 KT (킬로톤) 이었으니, 이 운석의 에너지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대략 2-3만배 정도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 정도 운석이 서울에 충돌한다면 당연히 서울은 그 즉시 지도 상에서 지워질 것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아예 한반도 전체가 불바다가 될 것이다. 서울이 있던 자리 자체가 거대한 크레이터가 될 것이다. 이런 일이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 사이에 한반도 남동부에 벌어졌을 것이라면, 사실상 한반도에 살던 선조들은 물론, 규슈, 시코쿠, 혼슈 서쪽 (일본 관서지역)에 거주하던 인류도 거의 전멸되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이 연구는 생각보다 시사하는 점이 굉장히 크다. 지질학적인 측면은 물론, 지리역사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이 사건은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거대한 지질 사건이기도 하려니와, 한반도 고대 인류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을 사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한반도 고대사에 영향을 미쳤을만큼 충분히 최근에, 그리고 충분히 거대한 사건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과연 운석 충돌 후, 한반도에 살던 인류가 정말 전멸되었을까? 일본에 살던 인류는 어땠을까? 몇 백, 몇 천년이 흐른 후, 다른 지역 (예를 들어 바이칼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무주공산의 한반도로 흘러 들어와 정착했을까? 식생은 어떻게 회복 되었을까? 정말 궁금한 점이 많아진다. 차라리 구석기 시대 초반에 떨어졌다면 회복에 충분한 시간 (~수십 만 년) 이 있었을 것이므로 연속성에 큰 문제가 없었을 것 같은데, 하필 떨어진 시기가 플라이스토세 말기라서 백년 단위로 이 이벤트의 영향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튼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다. 한반도는 비교적 좁고 세로로 긴 지형이라, 운석 크레이터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한반도 역시 운석 충돌의 희생이 되는 것을 피해 갈 수는 없었나 보다. 과연 그 시기, 한반도 인류의 조상들은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 어떻게 환경이 바뀌고 기후가 바뀌고 식생이 바뀌었을까? 많이 궁금해진다.
적중-초계 분지를 만들었으리라 추정되는 운석은 아마도 소행성 혹은 석질 혜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벤트는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충돌체의 크기와 충돌 빈도는 멱함수 관계 (power-law)를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큰 충돌일수록 드물게 일어난다. 대략 300 m 정도 되는 충돌체 이벤트는 1만년-5만년 정도에 한 번 일어난다. 다시 말해, 이 운석이 대략 이르게는 1만년 전쯤에 충돌했다는 뜻이니, 재수 없으면 이제 이 정도 크기의 운석이 충돌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운 좋으면 4만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충돌할 수도 있지만, 이제부터는 언제 이 정도급의 운석이 충돌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 된 것이다. 실제로 20세기초, 1908년 러시아 시베리아 한복판에는 정체 불명의 외계 충돌체가 공중에서 폭발하여 대략 50*50 km^2 정도의 면적을 초토화시켰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지역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식생지역이라 인명피해는 미미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퉁구스카 운석이라고 불리는 천체의 충돌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충돌 에너지로 볼 때, 충돌했던 물체의 크기는 40-50 m 정도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퉁구스카 운석이 100년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우리 세대에 언제든지 이 정도 이상 규모의 충돌 이벤트를 만날 확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 사실은 지구 근접 천체 (NEO) 중, 지구와 충돌 위험이 가장 높은 군에 속하는 소행성 아포피스 (apophis)가 오버랩되게 만드는 사실이기도 하다. 소행성 아포피스는 2004년 6월에 처음 관측된 천체인데, 지름은 340 m 정도로 추정되며, 2029년 4월 13일 정도에는 지구와 무려 31,600 km까지 접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첨부 그림 2 참조). 실제로 충돌 확률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1/45,000까지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7%로 알려진 수치는 과장된 수치라고 한다..). 이 정도 확률이면 굉장히 희박한 확률로 보이지만, 사실 천문학적 스케일에서는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확률이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38만 5천 km니까, 지구-달 사이보다 무려 10배나 더 가까이 접근하는 셈이다. 심지어는 정지위성 궤도보다도 안쪽이다. 이렇게 지구에 극단적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비교적 가벼운 (?) 천제가, 원인 불명의 불확실성은 존재하고 어떤 중간 이벤트가 관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궤도에 오차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은 있다. 문제는 이 천체가 2029년뿐만 아니라, 2036년, 2068년에도 지구와 초근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적중-초계 분지는 지금은 지리학자들, 지질학자들의 좋은 연구 주제가 되었지만, 당시에 살던 인류에게는 아포칼립스급의 재앙이었을 것이다. 구석기-신석기 시대의 한반도 인류가 겪었던 이 이벤트가 언제든 재현될 수 있지만, 그 시기가 부디 이번 세기, 아니 앞으로 1만년 정도에는 찾아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bifrost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23-06-13 09:06)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