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에서는 앞으로 몇 편에 걸쳐 지난 번 중국 반도체 굴기 시리즈에 이어 일본 반도체 왕국 쇠망사를 다뤄 보려 합니다. 두 나라의 반도체 관련 산업의 역사와 현주소, 그리고 미래를 되짚어 보며, 그 사이에 끼인 형국인 한국의 반도체 산업의 미래, 그리고 다가 올 위기에 대한 대응을 같이 논해 보는 것은 시의적절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도래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도래할 수 밖에 없는 위기에 대한 대응은 역시 역사를 들여다 보면서 대응을 준비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은 가급적 비슷한 길을 겪었던 케이스를 보는 것이 더 좋겠죠. 한국 입장에서는 불행이자 다행인 요소로서 선행 주자 일본이 먼저 겪은 반도체 산업의 쇠망기가 있습니다. 이미 현업의 전문가들, 전략가들은 일본의 반도체 산업 쇠망사를 많이 공부했지만.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 분야로 진출하실 분들도 계실 수 있으므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글을 남깁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나, 틀린 팩트가 있다면 언제든 코멘트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어 대응할 것이며, 필요한 부분은 코멘트에 따라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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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학계 (dynamic system)은 시스템의 output이 특정한 변수에 따라 계속 변하는 시스템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패턴의 형성 메커니즘에 관여하는 물리적 현상의 근저에는 동역학계에 대한 수학적 이해가 자리 잡고 있다. 동역학계는 결국 동적인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며, 이를 위해서는 시스템의 동적 특성에 관여하는 파라미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반해, 정역학계 혹은 정적 시스템 (Static system)은 시간에 따른 시스템의 변화가 거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외부에서 계속 자극이 들어 와도, output은 거의 변화가 없고, 자극은 계속 누적되거나 혹은 다른 메커니즘에 의해 해소되어 시스템은 계속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동적 시스템은 외부의 자극에 영향을 받지만, 그로 인해 시스템의 새로운 특성이 발현되기도 하지만, 정적 시스템은 외부의 자극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시스템 고유의 특징을 벗어나는 특성이 발현되기는 어렵다. 어떤 사회도 동적인 특성이 강한지 혹은 정적인 특성이 강한지에 따라 아마 큰 기준에서 분류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한국과 일본은 수천 년 간, 지근 거리의 이웃 나라로 지내 오면서 그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닮아 갈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 20세기 초반에 아예 한국을 35년 간 침탈하여 철저하게 식민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로 비슷한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은 나라다. 일본이 그렇게 식민지 지배 시절, 조선을 일본과 동화시키려 회유와 폭력을 동원하여 갖은 수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아이덴티티는 없어졌을 지언정, 한국인의 정체성은 쉬 사라지지는 않았고, 한국이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의 모델을 적극적으로 수입하려 했어도, 21세기의 한국과 일본의 산업과 과학의 결은 비슷하면서도 꽤 다른 궤적을 보이고 있다.
이 글에서 다루려는 것은 일본의 반도체 산업 쇠망사다. 그렇지만 그전에 일본의 과학기술 그리고 산업적 경쟁력이 어떻게 확보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든 끝이 있다면 시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와, 미국 다음으로 노벨 과학상 (물리, 화학, 생리의학)을 많이 수상한 나라는 다름 아닌 일본이다 (2000년 이후, 총 18명). 매년 가을, 노벨상 소식이 전해 지면서, 일본 과학자들의 노벨 과학상 수상 기록이 하나씩 늘어 갈 때마다, 우리나라의 모든 미디어는 일제히 한국은 뭐하고 있냐느니, 일본을 배워야 한다느니, 일본의 수상 원천은 어떤 것이라느니, 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그렇지만, 내가 이해하는 일본의 기초 과학 경쟁력의 원천은 다름 아닌, 그들의 '일관성'이다. 중세 시절부터 일본에는 이른바 '일소현명(一所懸命, 잇쇼겐메이)'이라는 철학이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한 장소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을 뜻한다. 예전에는 이 철학이 좁은 의미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 받아 온 영지(領地)를 목숨 걸고 사수한다' 뜻으로 쓰였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한 직업, 한 회사, 한 조직, 한 분야 등에 골몰하여 집중한다는 가치 표방으로 확장되어 활용된다. 당연히, 영지를 떠나면 안 되므로, 영주든, 그 밑의 사무라이든, 더 밑의 농민이든 거의 평생 경계를 벗어나는 일이 없이, 사회는 정주형 사회가 되며, 아버지의 직업을 아들이 물려 받는 것이 미덕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사회 전체적인 동적인 특성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사회가 정주형으로 고착화되고, 학문에서도 이러한 철학이 유지되니, 한 분야를 평생 파고 드는 것이 장려되고, 사회적으로도 이를 지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따라서,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철학이 힘을 발휘하여, 노벨상 같은 기록은 자연스럽게 따라 오게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일소현명' 정신은 개인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가족, 가문, 그리고 학문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대를 이어가는 일관성으로까지 적용된다. 예를 들어, 2002년 고시바 마사토시 (小柴 昌俊, 1926-) 동경대 교수는 우주 뉴트리노 (neutrino)를 실험적으로 관측한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이로부터 13년 후인 2015년에는 그의 제자이자 역시 동경대 교수이기도 한 가지타 다카아키 (梶田 隆章, 1959-) 교수가 뉴트리노가 질량을 가지고 있음 (즉, 중성미자의 맛깔이 시간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하는 중성미자 진동 현상)을 실험적으로 관측하여 증명한 공로로 다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사실, 다카아키 교수의 수상을 가능케 한 업적은, 다름 아닌 일본의 뉴트리노 연구 기반시설 (슈퍼 카미오칸데, Super-Kamiokande)에서 얻어진 데이터 덕분이었는데, 이 시설은 동경대 교수이자 동경대 우주선 (宇宙線) 연구소 소장이었던 도츠카 요지 (戶塚 洋二, 1942-2008) 교수가 일생을 바쳐 구축하려 했던 시설이기도 하다. 도츠카 요지 교수는 카미오칸데에서 있었던 실험시설 폭발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우주선 연구소 소장직에서 물러난 후,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도쓰카 요지 교수 역시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의 제자이기도 했는데, 학문적 공헌도를 고려컨대, 그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면 그 역시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 거의 확실했을 것이다. 일본 최초의 노벨상 역시, 물리학에서 나왔는데, 그 주인공은 중간자 (meson)을 예견했던 유카와 히데키 (湯川 秀樹, 1907-1981) 교수였고, 히데키 교수는 앞서 일본 최초의 물리학자로 불리는 아먀카와 겐지로 (山川 健次郎, 1854-1931)-나가오카 한타로 (長岡 半太郎, 1865-1950)-니시나 요시오 (仁科 芳雄, 1890-1951)로 이어지는 일본의 물리학 사제 학맥을 잇는 주인공이었다. 니시나 요시오 교수의 제자 중, 다른 한 명은 도모나가 신이치로 (朝永 振一郎, 1906-1979) 교수로서, 그 역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다. 비단 물리학뿐만 아니라, 일본의 일관성과 집중력은 다른 기초 과학 분야에서도 발현되는데, 몇 년전에 해외 토픽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일본의 거의 반 세기에 걸친 실험적 산림 조성 연구 사업에 대한 것도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의 일관성은, 과연 치열하게 하나의 문제에 골몰하여 기어코 그것을 해결하고야 마는 기초 과학 연구에서는 특장점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한 편으로는 일본의 산업 경쟁력이 글로벌 수준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단점이 되기도 하였다. 일본의 IT 기술 업계는 자주 '갈라파고스'라고 비하되곤 하는데, 이러한 별명을 만들어낸 계기는 바로 일본의 모바일 사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적인 예로, 일본에서는 피처폰의 사용자 비율이 2014년까지도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보다 높았을 정도인데 (한국은 2011년에 스마트폰이 피처폰을 역전함), 이랬던 이유는, 일본의 소비자층이 굳이 피처폰으로도 무리 없이 생활하던 스타일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 갈 이유를 못 찾은 것에도 기인한다. 일본의 모바일 시장은, 그렇지 않아도 보수적인 일본의 소비자 특성에 더해, 피처폰 중심으로 라이프 스타일이 고착화되다 보니, 여전히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이 다른 IT 선진국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지는 양상이다. 일본의 피처폰은 일명 '가라케 (즉, 갈라파고스 케타이 (ガラケー))'라고도 불리는데, 스마트폰이라면 충분히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기능 대신, 피처폰에서 억지로 돌아가게 만든 휴대전화가 대부분 가라케에 해당한다. 이것이 얼마나 기술적으로 뒤떨어진 것인가 살펴 보자.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상식인 문자메세지 (SMS)는 일본 피처폰에서는 이메일 (폰메일) 형식으로 밖에는 전송할 수 없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SMTP나 IMAP 같은 프로토콜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일부 유럽 국가와 미국의 이동통신 업체에서는 여전히 이메일 표준으로 지금까지 쓰이고 경우가 없지는 않다고 함.). 문제는 일본에서는 본인 인증을 할 때 핸드폰의 폰메일이 필수이므로, 이 프로토콜이 없는 시스템의 핸드폰으로는 인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문제는 일본 내의 이동통신사 간에서 마저 SMS조차도 프로토콜이 통일되지 않은 관계로, 호환이 잘 안되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더욱 괴상한 스마트폰이 나왔는데, 일명 일본 내수용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가라스마 (ガラスマ: ガラケー+スマホ)’가 그것이다. 이는 스마트폰에 일본쪽 피처폰 기능을 억지로 욱여 넣은 형식의 '반 피처-반 스마트폰격'인 핸드폰인데, 일본 소비자들이 얼마나 피처폰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 중에 하나이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같은 초고령화 사회에서, 그나마 피처폰에 익숙하던 고령 소비자층이 핸드폰 라이프 스타일을 쉽게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고령자가 아니더라도, 젊은 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스마트폰 없이도 충분히 피처폰만으로도 생활 영위가 될 정도로, 대부분의 소비자층의 모바일 라이프 스타일이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세는 스마트폰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일본에서의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도 결국 100%로 수렴하게 되겠지만, 일본의 산업 기술력을 고려할 때, 모바일 스타일에서의 보수적인 소비자 경향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일본 산업계가 갈라파고스화되는 경향은 모바일 외에도 곳곳에서 목격된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차 규격은 전장 3.4 m, 배기량 660cc라는, 그야말로 소형차 중에서도 소형차만 해당될 정도로 빡센 규격인데, 덕분에,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일본 경차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반대로, 일본의 경차 역시 외국 시장 진출이 거의 불가능한데, 애초, 도시를 벗어나면 자동차로서의 기능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형태로 규격이 정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내수 시장에서 경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에 육박하다 보니, 그 상위 계층, 예를 들어 소형차나 중소형차 같이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차종에서의 자동차 경쟁력이 오히려 자국 시장에서는 떨어지는 묘한 현상이 생겨난다. 단적인 예로, 미국에서 수십 년 간 스테디 셀러인 도요타의 코롤라나 혼다의 시빅 (둘다 중소형)은 미국 전역에서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차종이지만, 정작 일본 시내에서 찾아 보기 매우 어려울 정도다.
일본의 산업 기술이 갈라파고스화되는 것은 IT나 자동차 외에도, 조선업, 반도체 산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 한국과 대만, 중국의 디스플레이 업체에 대항하여 정부 주도로 2012년 히타치, 도시바, 소니의 디스플레이 부문을 통합해 야심차게 출범시킨 재팬디스플레이 (JDI)는, 매년 실적 부진에 시달리다 못해, 2019년, 자기자본비율이 마이너스로 추락하며 재무 위기에 빠졌다. 2018년 8월 9일 공개된 JDI의 2분기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전년보다 12.5% 줄어든 904억엔 (1조400억원)이고 영업손실은 274억엔, 그리고 순손실은 832억엔 (한화 9,589억원)인데, 시장 전망에 따르면, JDI의 사업 전망은 앞으로 더 악화일로에 놓여 있다.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떨어지는 동시에, 고부가가치 제품이나 부품의 수익 창출 퀄리티도 떨어지고 있고, 그나마 OLED에 투자한 규모 역시 한국이나 중국 업체를 쫒아 가지 못 해, 결국 치킨게임에서도 질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JDI가 망해가는 주 원인은 일본 정부가 민간 기업의 디스플레이 부문만 M&A하여 정부 주도의 공기업 비스무리한 IT 기업을 출범시킨 시대착오적인 조치가 1차적 원인이겠지만, 애초, 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IT 공룡들이 급변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의 변화 방향을 감지하지 못하고, 예전 디스플레이 기술에만 골몰했던 것이 더 근본적인 이유다. 더 이상 기술적으로 발전할 여지가 거의 없는, 즉 성숙할대로 성숙한 기술이었던 LCD 디스플레이에 대한 좌고우면 없는 집중, 그나마 차세대 기술이라고 밀던 PDP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사이, 일본이 원래 원천 물질에 대한 특허를 많이 가지고 있던 OLED에 대한 기술 투자는 상대적으로 뒤쳐질 수 밖에 없었고, 한국과 중국, 특히 한국의 전자업체들은 그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OLED의 대면적화와 양산 기술 개발에 성공하였다. 이미 디스플레이의 판세가 저부가가치의 LCD에서 고부가가치의 OLED로 넘어가는 와중에, 일본 디스플레이 기업들의 한결 같은 LCD 사랑, PDP 사랑은 OLED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주 원인이 되었다.
디스플레이 뿐만 아니라, 일본만의 갈라파고스화된 기술이 꽤 많이 있는데, 예를 들어 소니의 대표적인 삽질로 불리는 메모리스틱 기술, 그리고 LD (Laser disc) 기술을 위시로 (최초 특허권은 미국 MCA가 소유), Shift-JIS 같은 문자입력 체계 등이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기술이다. 물론 간혹 소니와 필립스가 같이 개발한 CD (compact disc)나 샌디스크-도시바, 그리고 파나소닉이 공동으로 개발한 SD 카드 같은 표준화에 성공한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나친 자사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은 다른 첨단 기술 분야,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의 반복된 실책의 배경이 되었다. 산업 기술 뿐만 아니라, 한 때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 문화 산업 역시 갈라파고스화를 면치 못 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90년대-00년대 초반까지 세계적으로 인기 있었던 J-Pop은 이제 K-pop에 그 위치를 내어 주고, 거의 내수 위주로만 돌아가는 문화 산업이 되었으며, 일본의 드라마와 영화 역시, 지극이 일본 위주의 문화로 컨텐츠가 제작되다 보니, 세계화에 있어서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일본의 반도체 왕국 쇠망사의 배경에도 여러 이유 중, 이러한 일본 산업의 글로벌 표준에서의 이탈, 수익성 약화, 기술에 대한 과도한 투자와 오버스펙 고집, 수익을 생각하지 않는 투자와,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기 역부족인 이전 세대 기술에 대한 집착이 짙게 자리잡고 있다.
결국 일본이 자랑하는 '일소현명' 정신으로 대표되는 일관성은 그들의 과학기술, 그리고 산업 경쟁력에 있어 양날의 검이 된 셈인데, 애초 일본이 1억 정도의 인구와 한반도의 두 배 가까운 국토 면적 조건이 아니라 남한 정도의 인구와 면적이었다면, 이 정도로 갈라파고스화가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1억이 넘는 인구와 나름 광대한 국토, 그리고 영해가 있다 보니, 그것이 자국의 과학기술 개발의 든든한 근간이 되어 주기도 했지만, 산업계가 급변하는 21세기, 그리고 사회가 급속도로 노령화된 시점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발목을 잡게 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수십 년 간 실패가 없었던 비즈니스 방식과 기술을 쉽게 바꾸지 못 했던 기업의 문화, 소비자의 경향, 사회의 분위기, 국가적 철학은 한 우물을 파고 드는 과정에서는 큰 힘을 발휘했겠지만, 오히려 너무 한 우물에만 갖혀 있게 만든 요소가 된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일관성은 일본의 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만큼 유행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급변하는 기업 환경과 기술 개발 경향을 금방 캐치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적어도 21세기 초반까지는 fast follower 전략이 잘 먹혀서 갈라파고스화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족한 일관성과 참을성 때문에, 일본 수준의 기초과학 집중이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덕분에 한국인들이 그렇게 바라마지 않는 노벨 과학상은 당분간 나오기 어렵겠지만, 결국 한국 같이 작은 국토 면적과 애매한 인구 규모를 가진 나라가 주변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은 제조 입국, 기술 입국, 수출 입국 밖에는 없으므로, 한국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지금까지는 국가의 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한 것일 수도 있다.
일본의 정주형, 즉, static system에 반해, 동적인 한국 (dynamic Korea)의 시스템과 문화가 갖는 장점이 앞으로 어떻게 우리나라의 발전에 작용할 것인지 두고 봐야겠으나, 결국, 더 이상 fast following 할 상대가 없어지는 시점에서부터는 진짜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다 (이미 도래했다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외적 덩치와 내적 실력이 한국의 적응력과 응용력, 빠른 눈치와 약간의 운에 기댄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국가의 일부 자원은 한국의 일관성과 집중력에 할당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일본의 것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일본의 사례를 발전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 손자 세대의 한국이라는 나라의 경쟁력은, 선진국들, 그 중에서도 10위 이내의 최 선진국들 사이에서의 경쟁력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싸움에서 버틸 수 있을만한 체력과 맷집 기르기에 자원의 투자가 있어야 하고, 이것은 기초 과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그 기수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제 분쟁 국면에서, 한국의 이웃에 일본이라는 example이 있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행운이다. 그 이웃의 악독한 만행 때문에 한국은 역사적으로 큰 고통을 여러 차례 겪었지만, 또한 그 이웃의 선행 시행착오 덕분에 한국은 가장 실질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반면교사와 타산지석 사례를 얻었다. 일본의 집중력은 배우되, 한국의 적응력은 키우고, 일본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되, 한국의 경쟁력은 보존하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일본이 기초 학문을 존중하는 문화를 우리 것으로 만들되, 산업의 갈라파고스화를 자초한 근시안은 경계해야 하며, 일본의 한 우물 파기 노하우를 배우되, 한 우물에 갇혀 정저지와가 되는 우를 피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결국 한국이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촉매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시행착오는 한국의 엔진 연료가 되는 불쏘시개가 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라도 일본에 대한 불가근불가원 태도는 계속 견지해야 한다. 지나치게 멀리하면 익히고 배울 것이 없어지고, 지나치게 가까이 하면, 그들의 시행착오를 답습하게 될 것이다.
*shovel님의 코멘트 덕분에 일부 오류가 있던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shovel님께 감사드립니다. 다른 코멘트들도 주시면 최대한 반영하여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