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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 17:15
좋은 일 하셨네요. 사적인 목적으로 사병을 동원하고 행사까지 따오는 모습이 찜찜하기도 하고, 나름 감동적인 사연이라 냉정한 잣대를 들이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어느 시점으로 보든 BK_Zju 님은 보람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20/09/01 17:17
어차피 어느 부대는 해야하는거고 본인 사적일까지 겹쳐서 하는거라 행사를 따는거 자체는 뭐라 평가하기는 미묘한거같고...통역으로 사병동원이야 뭐 문제소지는 있다면 있겠죠...뭐 나름 보상이라도 제공되면 모르겠지만요 크크
20/09/01 17:34
행사를 따는것는 조국에 충성을 다한 일이고
통역을 사병동원한것은 사적인 일이지만.. 저랑 대대장님 관계가 평소에도 매우 좋았고, 덕분에 최고의 음식들을 먹었고 이때 당시 뭔가 부대에 큰 훈련이 있었는데 그게 째고 가는거라서 저는 매우 만족했습니다. 통역을 못해 쪽팔린게 문제였죠 크크
20/09/01 17:19
대대장이 100%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10년 전만 해도 저런일이 비일비재했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밑의 부하들이 고생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이루었고, 작성자님도 처음에는 차출됬지만 영화 같은 스토리의 주축이 되어 최선을 다한 모습이 참 멋지네요 군대의 부조리가 나은 몇 안되는 멋진 장면이라고 봅니다 (댓글을 적고 있는데 참 말이 꼬입니다 크크크)
20/09/01 17:25
저 현역시절 대대장님은 사모님 6년인가 쫓아다녀서 결혼 했다던데 진짜 한마디 말대꾸도 못하고 살더군요.
터프한 성격에 털털하고 장난기 많은 큰형님같은 분이라 다들 본인이 없을때 두목이라고 부를 정도로 뭔가 시원시원하달까 사내답달까 그런 분이었는데 상상도 못한 실체였죠.(...)
20/09/01 17:32
보다 못한 대대장님네 따님이 사모님한테 "아빠한테만 너무하는거 아니냐?"라고 한소리 한적도 있다는 작전장교님 썰이...
아드님은 아무 말 없이 대대장님 좋아하시는 간식을 선물하더라는군요.(...)
20/09/01 17:34
어째 대대장님들은 비슷하네요 원래 유명한 얘기인 행보관님, 주임원사님 같은 분들도 그렇고(...)
전역 후 소대장님(ROTC 중위 전역) 만났는데 대대장님 얘기하다 보스 같은 사람이라고 한 게 생각나서 댓글 써 봅니다.
20/09/01 17:39
근데 확실히 다른부대 대대장님들하고는 좀 달랐어요.
이게 뭐랄까...병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 않고 같이 놀라 그런다 그래야 되나... 저희가 봐도 '사람 참 별나네...'싶을 정도로 뭔가 권위랑은 담 쌓고 지내던 사람이었단 말이죠...(...) 특히 중대장님이 상병장들만 데리고(주로 병장들만 데리고) 나가서 작업하고 '이거 비밀이다...'라면서 막걸리랑 도토리묵 사와서 한잔씩 하다 딱 걸린적 있었는데 굉장히 빡치신 목소리로 "야 2중이 임마! 나는!? 이런 치사한놈을 봤나..." 하실때 뭐라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 들더군요.(...)
20/09/01 17:56
첫 댓글과 저희 대대장님은 매우 비슷한데 이것까지는 다르네요 흐흐 별나긴 하시고 저 상황 정말 묘한 기분이셨을 듯 크
짬 먹고 중대장님이나 부사관님들에 이끌려 밖으로 일보러 가면 재미있고 좋았죠. 주임원사님이 분대장들만 데리고 부대원들 동향 보고받고 점검하실 겸 중국집 간 것도 생각나네요 참 추억입니다 하하
20/09/01 20:21
저희도 미군이랑 합동훈련하는데
통역병들이 자기 부하가 아니니 중대장이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통역을 찾았는데 미국에 유학갔다온애를 찾아서 전방소대에서 불러왔습니다 문제는 그게 1년도 안되는 7-8개월이였고 그 친구는 중학교 1학년때 갔다온건데 그 이후로는 쓸 일이 없어서 다 까먹었다는것... 부대에 있는 서울대 출신 병사들보다도 영어가 안됐지만 중대장은 그래도 외국물 먹은놈은 다를거라며 데려갔고 중대장 운전병에 따르면 그렇게 끌려간 병사는 당연히 어버버버버버 거렸고 결국 욕만 디립다 먹고 약속된 휴가도 없고 바로 그날 저녁 다시 전방으로 복귀ㅜㅜ
20/09/01 20:48
진짜 안타깝네요 '안습'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절감될 줄이야... 대책 없이 마구잡이로 데려간 중대장니뮤의 잘못
차출된 병사의 겹겹이 망신살(외국인에게까지;), 곤란함, 마음고생 몸고생은 어떻게 할 건지 -_-
20/09/01 22:02
해외입양 글 보니 생각났는데 최근에 알게된게 1985년에 출생아수가 60만여명인데 거의 9000명을 해외입양보냈더군요. 그리고 미국의 한국계 미국인 10명중에 1명이 피입양인이라고...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애를 수출해서 경제발전하는 그런 막장 나라가 불과 30년정도 전의 대한민국 모습이었다는게 뭐 그때 당시를 안살아봐서 모릅니다만 좀 구역질이 나더라구요.
20/09/01 23:44
다행히 외국에 입양간 가족분들이 잘 살고 계셨네요. 초반부보고 욕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는 아름다운 갑질이 아닌가 싶네요.
20/09/02 00:57
포닥시절 병원에서 통역 봉사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중년의 환자분인데 뇌에 악성종양이 큰게 있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포기하고 결국 맨하탄에 있는 암전문 병원으로 오셨는데, 의사들이 한국에서 환자분이 가지고 오신 Brain CT 사진들을 보고 어떻게 수술을 해야할지 환자앞에서 상의를 하고 그 결과를 통역해야 하는데...결론은 수술은 10시간이 넘는 힘든 수술일 것이고 종양의 위치가 접근이 어려운 곳이어서 수술후에도 회복을 보장하지 못하겠다(즉 수술 권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 길어야 6개월 정도 (시한부) 남았다를 통역해서 말해야 하는데...많이 힘들었습니다.
학교에 있을때는 입양된 한인을 본적이 없었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된 2명의 입양아 친구들이 있습니다. 다들 여자들인데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 하나도 없고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더군요, 근데 친해진 다음에 가족에 대해 얘기해보면 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집에 가보지 않는다라고 해서 좀 놀랐습니다. 뭐 가족나름이겠죠. 전 회사의 보스도 카자스탄 이랑 중국에서 입양된 아이들을 키우고 있고 (카자스탄에서 온 아이는 장애가 있고, 중국에서 온 아이는 길거리에 버려져 있었다고), 동네에서 저희 막내랑 국민학교를 함께다녔던 친구네 여동생이 한국에서 입양해온 아이였습니다. 보스톤 옆에 뉴튼이란 동네에 뉴잉글랜드에서 제일 큰 한글학교(한국학교)가 있는데 그곳에는 한인 입양아를 둔 부모들이 아이와 한국말로 소통하고 싶어서 토요일에 와서 수업듣는 미국 사람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한편으로 고맙기도하고 또 한편으론 아직도 한국은 아이들을 거둬들이지 못하고 70년대처럼 외국으로 입양을 보내야 하는것에대해 맘이 답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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