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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3 13:11
설득력이 있네요. 이릉대전으로 인해 유비 직속 군사력과 인재풀은 거의 괴멸 수준의 타격을 입었고,
후방에 남은 건 대부분 전쟁을 반대한 제갈량과 그 휘하 인물들이었으니 죽음을 앞두고 문과 무에서 실력을 보여준 이엄을 급하게 승진시켜서 견제를 시키려고 했을 수 있겠네요.
20/05/13 19:42
대패였고 많은 장수들이 죽었다고 해서 유비의 신임을 얻는 인재풀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게 아니죠. 원정군 인원 풀 자체도 좋지 못해서 선봉을 풍습 정도에 밖에 맡길수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유비의 원정을 반대했다고 제갈량 휘하로 가는건 더 말이안되구요 (가장 큰 반례가 조운이 되겠죠. 한중을 지키는 위연, 강주에서 후방 대기한 조운이 유비 직속이 아닐수가 없죠.). 이릉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진 사람 중에서만 봐도 살아남은 사람이 꽤 됩니다. 애당초 정말 미래를 홀라당 태워먹었으면 제갈공명이 신이라도 국가를 보존하는게 불가능합니다. 외부의 침입이 없어도 인재가 없어서 나라가 굴러갈수가 없는데 어떻게 국가를 유지합니까.
20/05/13 22:37
괴멸적이다 아니다로 싸우는 건 말장난이 될 가능성이 높고, 전체적으로는 아주 큰 타격을 입었지만 국가가 휘청거릴지언정 무너질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정도로 봅니다. 이후 황원의 반란은 오래지 않아 진압했지만 옹개의 반란은 거의 3년 동안이나 그냥 놓아둬야 했는데, 그건 국력이 그만큼 쇠퇴했다는 뜻 아닐까요. 수도인 성도 인근의 변란은 진압했지만 남중까지 군사력을 투사할 정도는 못 된 거죠.
20/05/13 23:07
글곰님이 말씀하신 부분에 어느정도 동의합니다만, 황원의 반란과 옹개의 반란은 규모와 위치적 문제가 크게 차이가 났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정확한 기록을 보지 못해 확신할 수 없습니다만 황원이 성도를 포위하냐 마냐 한것을 보면 남중보다는 위쪽으로 여겨지고, 단순히 유선의 친위군 만으로도 격파가 된 것을 보면 규모가 작은 반란이 아니었을까 여겨집니다. 반면 옹개는 지방 호족에 남중으로 가는길이 멀어 상중에 크게 군사를 일으키는것이 쉽지 않으니 적당히 막는 선에서 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0/05/13 13:49
저는 이엄이 높은 지위를 받은 건 제갈량 견제라기 보단
그냥 이엄의 충성을 믿지 못했다 라고 봅니다. 이엄에게 직위와 권력을 안 주면 다른 데로 넘어갈 사람+ 그래도 능력은 있음. 그래서 품고 가려고 직위를 높게 준 거 같아요. 애초에 유비 사후 촉에서 제갈량을 견제한다? 그런 건 불가능하니까요.
20/05/13 13:56
신임할 수 있는 인재는 후방에 놔두는 유비 성향으로 볼 때 이엄을 영안까지 불러들였다는 것은 이엄을 제갈량보다 낮게 평가한 게 아닐까 합니다.
유비는 관우한테 전장군과 가절월을 수여할때도 굳이 촉으로 부르지는 않았으니까요.
20/05/13 14:02
이엄을 중시했던건 유비가 본인의 죽음을 직감하고 본인이 죽은 이후에도 유장 밑에 있던, 항복한 세력을 붙들어두려는 의도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항복한 세력을 중시해주지 않고 단순히 제갈량만이 중시됐다면, 안그래도 콩가루집안인 촉한이 사분오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나마 유장 아래 있던 인재들 중에서 중히쓸만한 포텐셜이 있다고 본게 이엄이라고 생각합니다.
20/05/13 14:21
유비 입장에서는 제갈량에게 모든걸 맡기는건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갈량이 갑자기 젊은 나이에 요절할 수도 있으니까요. (ex. 손견, 손책, 곽가 등) 능력있는 인재를 올려서 혹시 모를 리스크를 분산시켰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0/05/13 15:16
연의 읽으면서 이엄이 중요할 때 제갈량 통수치고 같이 망하는 장면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올해는 등산가 안 까시나요? ㅠ
20/05/20 08:55
이엄은 오히려 엄청난 기회주의자(최소한 명예/입신양명 에 대한 욕구가 엄청난)였기에 유장에게로 가고 다시 유비에게 투항한게 아닌가 합니다. 형주에서 실세의 쬬에게 가지않고 익주로 간건 그걸로밖에 해석이 안되네요.
영안으로 부른건 익주파 인사의 대표로서 부른거고, 2인자 자리에 앉히면서 익주파들을 대우해주면서 동시에 제위와 승상은 넘보지말라 선을 그은거라고 봐야겠죠.
21/02/10 12:29
견제 목적이다 라고 보기에는 제갈량의 지위와 그의 능력치가 말해주듯이.. 사실상의 견제가
제대로 될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믿지 못하면 맞기지를 말아야 되는것이 맞는것이고.. 맞겼으면 믿어야 됩니다. 유비세력은 두개의 축 그러니까. 창립멤버 세력하고. 구유장세력이 있는데... 구 유장세력도 포용하면서.. 제갈량의 변고시를 대비하여 리스크 관리를 하려 하지 않았나 이쪽이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합니다. 이엄의 능력치 검증이야. 문무에서 뛰어남이 반복적으로 확인되었으니 말이죠.... 그리고 이엄이 유비팬인가 ? 또는 기회주의자 인가 ? 에 대해서는 통상적으로 능력치가 뛰어난 인물들은 자신의 주군을 자신 스스로가 정하고자 하는 특징이 있는데... 자신의 주군의 그릇이 작다고 생각되면.. 옮기는거 같습니다. (그것을 볼수 있는 눈이 있다는거죠.. 스스로 뛰어나다보니) * 물론 그분들 맘에 들어야 가능한일이겟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노프라블럼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중국은 역사적으로 그릇이 작은 주인아래에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해당 주군은 얘가 반란하면 어떻하지? 하는 불안초초에 떨게 되고 결과적으로 좋은 결말이 안나왔던 전례가 있긴했습니다. (이런건 한국도 대표적으로 이순신사례가 있죠.. ) * 한고조 유방도 나름 뛰어난 인물인데.. 통일이후 한신의 능력에 대하여 불안해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마저도 이럴지인데.. 그보다 아래급에 해당하는 분들의 불안감은 더욱 크겠죠.. 그러니까 뛰어난 인재를 쓰려면. 그만큼 주군 자신도 뛰어난 인물이어야 감당 가능하다.. 이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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