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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1/12/15 12:28:31
Name 리실
Subject 언니의 결혼 날짜가 잡혔습니다.


언니와 제 나이 터울은 다섯 살입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때 대학을 갔고,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직장인이었죠. 대학을 다닐 때야 둘 다 집에서 지내지 않았었지만 그 외에는 항상 같은 방을 써 왔거든요. 동생 입장에서의 어리광일지도 모르겠지만 언니와는 사이가 꽤 좋았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언니한테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과 다투거나 할 때의 중재자 역할도 언니였고요. 언니는 아들이 없는 저희 집 특성상 장남 역할까지 해 왔었지요.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와 결혼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는 건 알았었더랬습니다. 같은 방을 쓰는 자매라 가끔 불 꺼놓고 이것저것 두런두런 이야기하곤 했거든요. 학생때부터 그렇게 대화가 많은 자매였고요.


그런데 눈 앞으로 훌쩍 다가오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형부 되실 분 댁과 상견례를 하고, 결혼 날짜를 잡고, 예단이 오가고. 신혼 여행 이야기가 나오고, 새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을 보니 "진짜 결혼을 하는구나." 하는 실감이 확 나네요.


아직 제가 많이 어린가 봅니다. 제 중고등학교 동창들은 벌써 결혼을 한 친구들도 많고, 애가 둘인 친구들도 있습니다. 물론 연애중이거나, 솔로인 친구들도 있지요. 조선시대라면 제 자식들이 10대였을거에요. 하지만 아직 공부를 하는 탓일까요. 나이는 먹었지만 아직도 제 스스로가 어린애 같습니다. 언니의 결혼 이야기를 들으면서 왠지 언니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언니의 남자친구를 처음 실물로 본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슬쩍 보여주고 나서 언니가 저한테 묻더라고요. 어때 보였냐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서, "언니한테 잘 해 주는 것 같아서 그건 좋은 거 같아." 라고 대답했었지요. 그런데 진짜 결혼해서 언니가 나가서 산다고 생각하니까, 형부 되실 분이 조금 미워졌어요. 언니를 빼앗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탓일까요. "형부" 소리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 언니랑 이야기할때도 "형부"가 아니라 "형부 되실 분"이라고 불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부모님의 호칭은 "곽 서방"이 되어 있었어요. 우스갯소리처럼 "에이, 아직 식도 안 올렸는데 벌써 서방이야?"라고 했더니, 어차피 곧 될건데 무슨 상관이냐고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어제 밤에, 언니가 예비 형부 차를 타고 저를 독서실에 데리러 와 주었습니다. 몇번 안 본 데다가 좀 뻘쭘해서 아무 말 없이 꾸벅 인사하고 뒷자리에 탄 채로 차창만 멀뚱멀뚱 보고 있었죠. 집 앞 골목에 차가 도착하고, 문을 열고 내리다가 문득 엄마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충동적으로 "조심히 가세요, 형부"라고 말하고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갔지요.


한 십분쯤 후에 들어온 언니가 제 등짝을 철썩 치면서 디게 좋아하더라 하고 깔깔 웃네요.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아, 언니가 결혼을 하는구나.


그래서 아프다고 짜증 한번 부린 다음에, 조카 생기면 진짜 이뻐해 줄게, 하고 말했습니다. 좋아하는 언니를 보니, 고생하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언니가 결혼 하고, 같이 쓰는 이 방에서 언니 짐이 빠져 나가면 방이 휑해지겠죠? 언니 결혼식날에 분명히 울 것 같아요.

* Noam Chomsk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2-1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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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5 12:30
수정 아이콘
중요한건 언니가 결혼한다는 거고 이분은 미혼이라는 점인가요?
써놓고 보니 제가 좋아할 일이 아니군요.
전 저와 아내가 결혼하던날 보였던 장인장모님의 눈물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근데 요증엔 가끔 장인어른이 내가 그때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면서 아내를 놀립니다.
아직도 처가댁에 열심히 다니면서 이것저것 다 참견하면서 살더군요.
결론은 아들 잃어버린 우리 어머니가 더 불쌍하네요. T.T
PoeticWolf
11/12/15 12:37
수정 아이콘
모르긴해도 형부님/언니 굉장히 자주 뵐 수 있을거에요. 그게 '처가집 근처로 데려온 사위'가 요즘 트렌드거든요. 아직 대유행은 아니지만...
동생 마음이 이렇구나, 느낄 수 있어서 좋네요. 제 동생도 이랬을거라고... 음... 예상하기는 힘들군요.
감사히 읽었습니다!
11/12/15 12:39
수정 아이콘
오 이런 소소한 일상 글 좋아요!
루크레티아
11/12/15 12:45
수정 아이콘
형부에게 잘해드리면 용돈이 나옵니다.
11/12/15 12:45
수정 아이콘
결론은 아들 잃어버'릴' 우리 어머니가 더...... 어흑
花非花
11/12/15 12:54
수정 아이콘
저도 내년 1월에 조카가 생깁니다. :)
11/12/15 12:55
수정 아이콘
저도 곽서방인데 제 처는 아쉽게도 여동생이 없으니 저는 형부소리 한번도 못들어봤을 뿐이고, 제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 소소한 일상이 읽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군요.
뱃살토스
11/12/15 12:55
수정 아이콘
이런글 좋아요.
아무도 인정안할수있겠지만, 우리나라는 모계사회(?)가 맞는듯.
모든것은 처가집 위주로...큭큭.. 시집간 제 누나는 매일 우리집에 옵니다.
조카는 우리부모님과 제가 봅니다. 저는 어린이집 원장/원감/담임선생님과 안면트고 오며가며 인사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하우두유두
11/12/15 13:05
수정 아이콘
그러고 보니 이분은 아직..!!!! 이군요 왠지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데스싸이즈
11/12/15 13:07
수정 아이콘
제와이프와 처제이야기 보는것 같네요.
저도 결혼할때는 처제가 안울다가 결혼식 끝나고 집에가서 울었다고 하더군요.
눈시BBver.2
11/12/15 13:17
수정 아이콘
휘유 참 기분이 요상하시겠어요 '-'); 여동생이 남친 데리고 와도 기분 요상한데 결혼이라니...
힘 내시는 겁니다 ㅠ_ㅠ) 곧 익숙해지실 거예요
아나키
11/12/15 13:29
수정 아이콘
요즘엔 아들이 출가외인이라...
결혼시킬 때 '내 딸은 이제 갔구나' 하고있다가 정신차려보니, 딸은 여전히 마루바닥에 앉아있고 왠 아들이 하나 생겨있더라는 장인장모님이
참 많으시죠 -_-
블루드래곤
11/12/15 13:31
수정 아이콘
언니에게는 관심없고, 미혼에 연애하지 않고 계시는 글쓴분에게 더더욱 눈길이 가는
역시 PGR 퀄리티 크크크
왼손잡이
11/12/15 13:33
수정 아이콘
뻘플이지만

저도 여동생 있는 집에 장가가고 싶어요.

왠지 뿌듯할거 같아요 "형부" 우왕!
11/12/15 13:44
수정 아이콘
아들이 출가외인 맞습니다.
우리부모님집을 시댁이라고 부르기 시작한지 좀 됐네요.

언니가 시집을 가시는게 아니라 형부되실분이 장가를 오시는거네요.
제 시카
11/12/15 13:47
수정 아이콘
제 형수님이 딸만 둘인 집입니다. 거기다 신혼집을 서울에 얻었습니다.(직장 때문에... 처가가 서울, 저희 집은 시골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들 뺐겼다고, 저한테 딸만 있는 집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정용현
11/12/15 14:07
수정 아이콘
비슷한 심정을 들어서 알고있어요.
저희 사장님(여성)도 결혼하실때 형부가 그렇게싫었다네요.
결혼한 후에도 한동안은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그렇다가 시간이흘러 형부가 진짜 진국사람이라는걸 아시고는 나중엔 마음을 활짝열었다고 하더라구요.
자매 사이가좋으면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m]
가만히 손을 잡으
11/12/15 14:23
수정 아이콘
조카 생기시면 엄청 이뻐하시겠네요.
이강호
11/12/15 14:31
수정 아이콘
매주 결혼식에 참가하지만.. 하객분들이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으시군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산들바람
11/12/15 18:04
수정 아이콘
매형이 3명 있고, 조카가 4명 있고, 첫째조카가 중학생인; 흔치않은 20대중후반으로서, 기분 이해되네요. 미소짓게 되네요.
일단 용돈 생길 겁니다.. 저도 용돈달라는 말 하는 성격이 아니라, 매형이 와서 좀 용돈 좀 달라 하라고 말까지 들었고요.
조카 엄청 예쁠겁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만큼.. 물론 니 자식 낳으면 지금보다 훨씬 예뻐할꺼라는 말을 매일 듣고 삽니다만..
형제자매가 많은 집이랑 결혼하면 정말로 즐겁습니다. 저도 그런 집안이랑 결혼하고 싶네요..
가족 모두 모였다가 헤어질때 배웅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꽉차면 참 소소하게 기분이 좋더라구요.
제가 결혼해서 애도 있을 때 쯤이면 엘리베이터에 모두 못 탈수도 있겠어요. 덜덜
밥잘먹는남자
11/12/15 19:36
수정 아이콘
마지막 부분에 눈물이 났네요ㅜ
천사들의제국
11/12/15 20:05
수정 아이콘
언니 결혼식에서 대성통곡한 1인입니다만,
제 결혼식은 축제처럼 즐기며 너무 웃어서 친정아버지가 어이없어하실 정도였습니다.
울 일이 아니더군요.
결혼 별거있나요 ^^
언니분 많이 많이 축하해주세요! [m]
11/12/15 21:22
수정 아이콘
처제는 아직도 제게 질투를 합니다.
처가가 걸어서 30분 거리도 안되서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거의 만나는데도 처제는 언니와의 시간이 항상 부족해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친해지면서 같이 잘 어울리니 서운해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
EternalSunshine
11/12/15 21:51
수정 아이콘
제친구 언니가 얼마 전에 결혼을 했는데, 이 친구 며칠을 우울해하며 울더라고요.
며칠 전 그 얘기를 하며 집에 가는데 5남매 중 셋째 딸인 다른 언니가 말하길, 자기도 큰언니 결혼할 때 얼마나 눈물이 나오던지 펑펑 울었다고.
아니, 그런데 그거 왜 우는거예요? 물었더니, 언니를 뺏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답니다. 8년이나 연애해서 형부 될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는데도 그랬다면서요. 더 자세히 물으면 실례가 될 것 같아 넘어갔는데, 이 글을 통해 그 답을 소상히 듣게 되네요.
언니분 결혼 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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