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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6/01 19:49:43
Name I.O.S_Daydream
Subject 전술, 작전술 그리고 전략과 RTS 게임의 상관관계
재방으로 ABC마트 MSL 32강에서 송병구선수와 이성은선수가 라만차에서 붙었던 경기를 보여주더군요.

그 경기를 보고 떠오르는 점이 있어서 글을 씁니다.

글을 구성하는 가장 큰 축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실시간 전략(Real-Strategy) 게임에서 각 용어가 어떻게 적용되는가 정도로 정리해야겠네요.

기본적으로 이 글의 방향은 한 게임 내에서 이 각각의 용어들이 어떻게 적용되는가에 대해 논합니다.

생각을 더 늘려 보면 팀과 팀 사이의 엔트리 싸움에서도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글은 전반적으로 스타크래프트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이는 사실 모든 실시간 전략 게임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경어를 쓰지 않는 것이 글의 분위기상 어울릴 것 같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2007년의 윤용태를 기억하는가

벌써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많은 선수가 '뜨고' 또 많은 선수가 '졌다'. 2007년, 2년 전만 해도 스타판의 마지막 중흥기라고 불리던 그 시절 역시 많은 선수가 명멸했었다. 그 중의 한 선수가 윤용태였다. 압도적인 전투기량을 자랑해서 결국 스타판의 팬들로부터 "뇌룡"이란 별명을 선사받았던 그. 필자가 이 글에서 그를 언급하는 이유는, 적어도 2007년은, 그의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너무나 선명할 정도로 극명하게 드러난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전 팬들이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택견드라군을 보여주고, 미친 듯한 스톰의 활용으로 당시 네임밸류가 거의 없던 윤용태가 지금도 거물급이라고 할 수 있는 염보성을 잡아내면서 그는 뜨는 별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팬들이 지적했던 사항이 하나 있었으니, 그는 이상할 정도로 전투력은 좋았지만 또 이상할 정도로 경기를 승리로 가져가지 못했다. 그의 2007년 성적은 76전 44승 32패로 승률 57.9%. 분명히 좋은 성적이지만, 뭔가 2%, 아니 5% 아쉬운 성적이다. 심지어는 당시에 기본기가 가장 떨어진다고 평가받았던 전 프로게이머 박성훈에게 운영 능력에서 지고 들어갔을 정도였다. 곰TV MSL S2 32강 F조 2경기가 그 증거.

물론 지금의 그는 겁나게 성장했다. 상대전적 0대 3으로 몰리며 천적이라고까지 불리던 이재호를 상대로 7연승에 성공했고, 2010년 성적은 93전 55승 38패로 승률 59.1%. 꾸준히 50%대 후반의 성적을 4년 동안 유지하고 있었다. 더 이상 그는 전투바보가 아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어쩌면 그의 아픈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글에서 설명할 세 가지 개념에 대한 내용 중 두 가지를 손쉽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필자가 밀리터리에 관련된 책을 4년만 더 빨리 접했더라면 이 글은 어쩌면 시기적절한 글이 되었으리라.



전술과 작전술, 그리고 전략

언뜻 보면 어려운 문제 같지만, 답은 간단하다. 전략이 훨씬 더 큰 개념이라고 말하면 정답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조금 더 확실한 차이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전술에는 "Tactic"을, 전략에는 "Strategy"를 쓴다. 굳이 이렇게 단어를 구분하는 이유는 앞서도 말했듯이 전략의 하위 단계, 그것도 상당히 멀리 떨어진 하위 단계로 전술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전술은 뭐라고 해야 할까. 작전술은 전술의 상위 개념이자 전략의 하위 개념이다. 단순히 전술이 모여서 작전술이 되고 작전술이 모여서 전략이 된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는 데 유의하자. 영어로 작전술이라는 개념을 번역해 보면 "Operational Art"라고 한다.

전술은 군단급 이하의 중간급/하급 부대에서 벌어지는 제병협동 또는 합동작전 수준의 부대지휘를 의미한다.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이런 장면이 한 번쯤은 떠오를 것이다. "너는 여기에 지뢰를 매설하고, 너는 숲에서 적을 저격한다. 나머지 세 명은 저쪽의 잠입 루트를 따라서 적의 본진을 기습한다. 그 시간에 너는 반대쪽으로 돌아가서 적의 본진을 정찰한다." 이런 정도의 장면이 떠오른다면 그것이 바로 전술적인 움직임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다.

작전술은 간단히 말해서 대규모 군사적 기동 및 전투이다. 야전군급, 특별한 경우에는 사단급까지 작전술의 지휘구도가 적용될 수 있다. 어렵게 설명했는데, 사단장이 여단장 몇 명을 모아놓고 "자네 부대는 이쪽에서 적을 요격하게. 그렇게 시간을 버는 틈에 자네 부대는 공수강하로 낙하해서 적의 병참기지를 탈취하고, 자네 부대는 이쪽을 돌파해서 적을 양쪽으로 찢어놓도록." 이런 식으로 명령을 내린다면 그것이 바로 작전술적 움직임이다.

전략은 국가 전체의 과업에 해당한다. 한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구성된다. 국지전 단위에서 벌어지는 설명이 아닌 이상 "독일은 전략적으로 영국에 비해 우위에 있었다"라고 하지, "독일은 전술적으로 영국에 비해 우위에 있었다"라고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전략은 국가 단위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처음에 언급했던 윤용태를 놓고 보면 이렇게 된다. 그는 전술적으로는 항상 다른 선수보다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전략적인 면에서는 다른 선수에 비해 떨어졌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2007년 당시의 이야기지만.



왜 스타판은 여전히 발전하는가

최대한 간단하게 말하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초 단위로, 심지어 0.1초 단위로 빌드가 딱딱 떨어져야 하고, 모두들 최적화를 외친다. 뮤탈리스크를 뭉치고 드랍쉽에서 병력을 산개해서 떨어뜨리고 다수의 벌쳐가 순식간에 마인을 매설하는, 그런 무시무시할 정도로 정확, 무비한 프로게이머의 세계에서 다들 스타판은 이제 갈 때까지 갔다고 말했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고 모두들 생각했다. 2006년에도, 2007년에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이 생각에 한 가지 의문을 던져주게 되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한 국가가 있었다. 이 국가는 가상적국보다 더, 아니 훨씬 좋은 전차를 개발해냈고, 더 좋은 무기를 가지고 훈련을 했고, 더 좋은 비행기를 띄워서 날렸다. 실제로 가상적국의 전차에서 발사하는 포탄을 많게는 수십 발까지 튕겨낼 수 있었고, 방공포병을 동원해야 간신히 전차를 박살낼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좋았다. 게다가 생산량 면에서도 가상적국의 전차 수를 압도하고 있었다. 누구나 실제로 전쟁이 터져도 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국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패배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때 당시 전쟁의 핵심은 화력전에서 다시 기동전으로 대세가 넘어가고 있었다. 당시의 화력으로는 대규모 부대의 기동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의 프랑스군은 그렇게나 많은 전차와 전투기, 폭격기를 두고도 이를 제대로 운용할 교리도, 작전도, 의지도 없었다. 반면 독일군의 경우, 이 한 방에 모든 것을 건다는 올인 모드로 전쟁에 임했다. 예비대고 뭐고 남은 것 하나 없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모조리 동원해 버렸다. 덕분에 독일군은 절대적 열세를 특정 시점과 공간에서의 상대적 우세로 전환시켜버렸다. 물론 그럼에도 독일 공군은 단 한번도 연합군에 비교해서 수적인 우위를 차지할 만한 능력도, 기회도 없었지만. (칼 하인츠 프리저, <전격전의 전설>, Chp.2, p.101에서 발췌)

다소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것 같으니 다시 중심을 잡아 보면, 이런 식으로 현대전의 교리는 항상 변화한다. 어느 순간 기동전을 극으로 추종하다가도 10년, 아니 5년만 지나면 교리의 중심은 다시 화력전으로 치우치고는 하는 것이 현대의 교리이다. 누가 소련이 망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누가 핵무기 감축이 이루어지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참고로 이야기해 두면 1970년대 근방의 미군 및 서방측의 교리는 극단적인 기동전에 중심을 두고 있었는데, 이유가 참 가관이다. 어차피 핵 터지면 다 죽을 거, 장갑 따위가 무슨 소용?(...) 그리고 이 결과물이 바로 많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지금까지도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고 있는 레오파르트 I(Leopard I Main Battle Tank). 아, 지금은? 저 교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착오적인 교리가 되어서 이 전차를 개량할 때마다 증가장갑을 둘러대야 했다.

빙빙 돌려서 이야기했는데, 스타판이 발전하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이것이다. 교리가 돌고 돌고 또 돌기 때문이다.



다시 전술과 전략으로 돌아와서

선수들마다 스타일이 있다. 바둑으로 치자면 기풍(棋風)이라고 할 수 있고, 사람으로 치면 성격이라고 볼 수 있는 이 플레이스타일이라는 것은 각 선수들이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앞서 언급했던 박성훈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빌드는 무지하게 잘 짰지만 기본기가 또 무지하게 약했다. 이 점으로 미루어볼 때 그는 한 판의 게임, 즉 전략이라는 면에서 판을 짤 때 절대 길게 보지 않는 타입임을 알 수 있다. 전술적으로는 극도로 약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작전술적, 혹은 전략적으로 커버하려고 한다.

상당히 서술이 두리뭉실하게 되어 버렸는데, 박성훈의 경우와 가장 비슷한 케이스를 들자면 1940년 프랑스 전역의 에리히 회프너의 제4기갑군을 들 수 있다. 1940년 5월 14일, 그는 프랑스군이 엄청나게 파 놓았던 대전차 저지진지를 보병 없이 전차부대만으로 정면 돌격해 버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한 마디로 말해서 미친 짓을 감행했다. 공군이 아무리 지원해 줘도 예상대로 공격은 실패했으며 기갑여단장(우리로 치면 준장)이 얼굴에 부상을 당한 채 겨우 살아 돌아온, 어떻게 보면, 아니 어떻게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당연히 엄청난 실패작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전역에서 승자는 회프너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 애당초 그의 병력은 북부에서 남부로 적이 역습하지 못하도록 적의 병력을 끌어들여서 엉뚱한 방향으로 유인하는 미끼였기 때문이다. 그 귀중한 틈을 타서 독일군은 스당을 넘어 지헬슈니트로 프랑스 전역을 종결시켜버렸다. 이런 식으로 전투에서는 매번 진다지만, 초반에 모든 것을 걸고 작전술 및 전략적 우위를 점해서 경기를 길게 가지 않고 빠르게 끝내버린다. 그게 박성훈이라는 게이머가 승부를 보는 방식이었다. 어려운가? 그게 날빌이다.

이제 전술, 작전술, 전략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이 판에 적용될 수 있는지 감이 올 것이다. 공격적인 전투를 하지 못하지만 방어전에는 능하고 플레이 스타일이 수비적인 선수가 있다면, 이 선수는(그가 의식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전략적인 면을 다른 면보다 우위에 두고 있으며, 전술적인 열세를 작전술적, 또는 전략적인 우세로 커버하려고 한다. 전술적으로 한 발짝, 두 발짝 내 줄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이 경기를 가져가는 것은 전략(이 게임에서는 주로 경제력)이다라는 마인드로 게임을 한다.

이런 선수를 꺾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극도의 전술적 우위로 전략적 열세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비록 게임은 미칠 듯이 길어지겠지만) 더 좋은 전략적 안목으로 전략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방법도 있다. 이를테면 상대방의 전략적인 면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멀티 견제에 최대한 집중한다"라던지, 아예 상대방의 전략이 실행되지 못하게 "자원을 선점한다"라던지.



전략만이 능사는 아니다

자, 이쯤되면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모든 것을 전략을, 아니면 전술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라고 물어보실 수도 있겠다. 그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NO"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도 언급했듯이 순간적인 상황에서의 전술적인 우세가 전략적인 면에서 치명타를 안겨버리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고, 거꾸로 아무리 전술적으로 우세하다고 해도 결국 대전략으로 판을 이겨버리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한 편의 잘 짜여진 계산된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독소전쟁사>와 <전격전의 전설>이라는 책을 권하고 싶지만, 밀리터리에 관심이 없다면 무리. 후자는 재밌기라도 하지만 전자는 미친 듯이 졸립다.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이렇게 된다.

독일군은 소련군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다. 키예프에서 60만을, 민스크에서 40만을 잡으면서 병력 손실 100만 돌파. 모스크바의 최종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스몰렌스크까지 함락되면서 병력 손실 200만 돌파. 모스크바 40km 전방에서 독일군이 주둔해 포를 쏘고 군단장이 망원경으로 모스크바의 첨탑을 구경할 정도까지 밀렸다. 간신히 막아낸 이듬해에는 모스크바를 치는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남부를 쭉쭉 밀어붙이면서 세바스토폴 함락, 하리코프 로스토프 함락, 스탈린그라드까지 밀어붙였다. 전후 독소전에서 발생한 소련의 사망자만 2천만 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독일은 졌다. 350만의 전사자를 내고, 즉 독일군 한 명이 죽을 때 소련 군 여섯 명이 죽었음에도 독일은 졌다. 왜? 간단하게 말해서 소련이란 땅덩어리는 독일이 집어삼킬 수 있는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제력 면, 다시 말해서 전략적인 면에서 독일은 결코 소련을 압도할 수 없었다. 독일의 티거 전차가 1,350대 생산될 동안 소련의 T-34 전차는 7만 대가 생산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전략이 훨씬 중요한 거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은 즉시 두 단락 위의 '왜 스타판은 여전히 발전하는가' 부분을 다시 읽어보시길 권한다. 그렇다. 독일군은 당시 모든 전략적인 면에서 프랑스에게 열세였음에도 프랑스를 결국에는 잡아냈다.

사실 필자가 설명한 전략적인 면은 거의가 경제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략이라는 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정치, 군사, 경제 등 국가적 단위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데, 왜 경제력을 가지고 전략적이다라는 말이 집중되느냐 하면, 간단하게 말하면 1:1로 대결하는 E-Sports에는 군사와 경제 외에 별다른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팀플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두 가지 예를 들겠다. 하나는 ABC마트 MSL 8강 D조 이영호 대 신상문 2경기, 나머지 하나는 2009년 6월 20일에 있었던 경기.

전자의 후반전만 놓고 보았을 때, 결국 승리를 가져간 것은 이영호였다. 왜? 이영호는 신상문을 상대로 자원적 우위에 있었다. 이영호는 양쪽의 각 멀티를 제외하고 남는 12시와 6시 멀티를 둘 다 먹고 있었고(물론 개스까지 펑펑), 신상문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강한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졌다. 이해가 안 간다면 그 장면을 떠올려보시길. 3-1업 레이스가 3-3업 레이스 다수를 잡아내는 경기 마지막 장면 말이다. 설령 신상문이 이 전투에서 이겼다고 해도 이영호를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상문은 한정된 자원으로 싸워야 했고, 이영호에는 축적된 자원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소모전은 이영호에게 득이 된다. 이를 뒤집으려면 일단 압도적으로 이긴 후 12시를 뺏어서 자기가 돌려야 하는 상황이어야 했는데, 압도적으로 이기기는커녕 졌으니.

후자를 놓고 보면... 아, 그 전에 이 경기가 무슨 경기냐 하면 그 경기다. 단장의 능선에서 홍진호가 김택용을 3cm 드랍으로 잡아내 버렸던 바로 그 경기.

초반의 상황은 딱히 누가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초반에 홍진호가 시작을 가난하게 가져갔기 때문에 경기가 길게 진행되면 결과적으로 김택용의 자원의 힘이 홍진호를 압도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홍진호는 그 전에 경기를 끝내버렸다. 고전적인 전략 - 전략이라기보다는 작전술적 움직임이라는 말이 좀더 합당하겠지만 - 인 3cm 드랍으로. 이게 어영부영 막히고 리버를 잡지 못하고 했으면 김택용이 무난하게 홍진호를 잡았겠지만, 리버가 잡히고 본진이 날아가는 그 순간, 전략적 우세는 뒤바뀌어 버렸다. 단 한번의 작전술적 움직임으로.



적용?

누구나 초반 전략이라고 하지 초반 작전술이나 초반 전술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단 단어 자체는 옳은 사용이다. 초반 전략, 즉 극초반 빌드오더라는 것은 어느 순간에 어디에 경제력을 투자해서 어디에서 작전술적 움직임을 시작하도록 유도하느냐와 직결되는 문제이며, 다시 말해서 초반의 특정 상황에서의 경제력을 이용해서 전체적인 판을 가져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순간 순간의 경제력과 테크트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초반 전략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고, 또 그것이 옳은 사용이다.

하지만 이것이 빌드 오더 수준이 아닌 군사적, 즉 부대 단위 유닛으로 이어진다면 더 이상 전략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된다. SCV를 모두 몰고 나오는 전략이라고 하면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 된다는 것. 이를테면 초반의 치즈러쉬로 테란이 저그의 앞마당을 박살내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하면, 초반에 전략을 걸었다라는 말은 일단 맞다. 하지만 부대 단위 유닛의 사용을 전략이라고 할 수는 없다. SCV와 마린이 같이 몰려나오는 것은 전략이 아닌, 적의 앞마당을 깨서 상대방에게 자원 손실을 줌으로써 아군의 경제적 및 군사적 상황을 전략적으로 유리하게 만드려는 작전술적 움직임이 되는 것이다.

이를 이렇게 적용해 볼 수 있다. 분석하고자 하는 선수가 경기 중에 보여주는 대규모 병력 운용의 모습은 작전술적인 움직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작전술적인 움직임으로써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를 파악한 뒤에 그 노리는 바를 원천 봉쇄해 버리는 전략적인 움직임으로써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고, 또 작전술적인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 달려들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행하는, 전술적인 약점을 찌름으로서 작전술적인 움직임을 할 수 없도록 해서 결과적으로 전략적인 이득을 가져가는 방법이 있다. 전자에게는 운영능력이, 후자에게는 컨트롤 능력이 극도로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자신의 안목이 어느 쪽으로 발달되어 있는지를 고려해 보고 움직임을 정한다면, 또 상대방보다 자신이 어떤 점에서 뛰어난지 고려해 보고 움직임을 정한다면 교전에서 손해를 보면서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열세에 몰리는 것이나 상대방의 큰 그림에 자신이 압도당하는 경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은 선수보다는 코치나 감독, 그리고 해설자를 위한 글이 될 수 있다.



마무리

앞서도 말했듯이 교리와 전략은 돌고 돈다. 상대방이 기동성을 노린다면 강력한 화력으로 맞서서 기동성 자체를 꺾어버리거나 설령 기동한다고 해도 전략적 단위의 성과를 얻을 수 없을 정도로 상대방의 병력을 줄여버릴 수 있고, 상대방이 화력을 노린다면 그 느린 움직임을 노려서 빠르게 치고 빠짐으로써 서서히, 또는 한 번의 급습으로 완벽하게 전략적 우위를 달성할 수 있다. 이렇게 돌고 도는 이유는, 기동성과 화력을 둘 다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테란 대 테란전에서 지금처럼 레이스가 엄청나게 활용되리라고 불과 반 년 전에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니, 생각할 수는 있어도 이게 대세가 되리라고 예측할 수 있었을까?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이나 분석 등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해 버릴 수는 있다. 전장의 중심은 화력전에서 다시 기동전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덤으로 다음과 같은 예측도 가능하다. 지금은 기동전으로 승부를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무게추가 다시 빠른 업그레이드나 다수의 강한 병력을 통한 화력전으로 무게의 중심이 옮겨갈 것이라고. 그 방법이 어떤 방법이 될지는 프로게임단의 몫이 될 것이다. 이렇게 예측하는 이유는 역시 간단하다. 전쟁은 돌고 돌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전쟁은 한 편의 잘 짜여진 계산된 프로그램이 아니다. 한 판을 움직이는 선수는 결국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다. 새로운 트렌드를 개발하는 것까지 바랄 수는 없어도, 현재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밀려버리지 않도록 현 판의 핵심적인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은 선수와 코치진의 몫이 될 것이다. 이 글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게 전략, 작전술, 전술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도 경기를 분석할 수 있으며, 또 이를 통해서 선수는 안목을 기르고 코치는 더 좋은 전략이나 작전술적, 혹은 전술적 움직임을 수립하며 해설자는 선수의 머릿속을 좀더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함이다.





한 번 이걸 주제로 글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게임이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고 하는데도 이러한 개념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이 다소 아쉬웠거든요.

물론 수백 수천 게임을 하는 프로게이머와 또 수천 수백 게임을 보는 코치진과 해설진 분들에게는

제가 지금까지 적었던 이런 사항이 눈앞에 훤히 보이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겁니다.

하지만 이 글을 적는 또 다른 이유는,

경기를 볼 때 이런 측면으로도 경기를 볼 수 있겠다 하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고 나서도 글이 뭔가 좀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의 특성상 예를 좀더 좋은 것을 들 수 있었어야 했는데 하는 마음도 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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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우
11/06/01 20:01
수정 아이콘
즐겁게 읽었습니다. 후자를 표하는 말로 '전술적 승리는 전략적 승리에 우선한다'가 생각나네요.
운체풍신
11/06/01 20:07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뜨거운눈물
11/06/01 20:19
수정 아이콘
저에게는 상당히 흥미있는 글이네요

얼마전부터 독일과 프랑스의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전차의 기동성을 이용한 전격전으로 파리를 순식간에 점령했다는게

상당히 흥미있어서 전격전의 전설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못읽다가 이 글을 읽으니 참 좋네요^^
azurespace
11/06/01 20:21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11/06/01 20:23
수정 아이콘
막 분석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거 너무 좋아요. 제 취향입니다.
Demon Hunter
11/06/01 20:28
수정 아이콘
읽다가보니 아이디가 제 예상대로네요.

전쟁 한 판 하고 싶네요.

이걸 통해 자기가 왜 졌는지 분석할 수 있을 듯..
ace_creat
11/06/01 20:51
수정 아이콘
멋진글입니다. 추천이요 ~
11/06/01 21:2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스타크래프트 같은 한정적인 RTS게임에서는 전략-전술 논리를 섣부르게 대입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정략'이 배제된 상태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해볼 만한 점이 실제 역사에서 소위 '트렌드의 변화'는 아무 이유없이 온 적은 없습니다. 기관총의 발달이 참호전을 '강제'했고 전차등의 기갑병력이 기동전을 '강제'했지요. 따라서 더이상 패치가 제공되지 않는 스타크래프트라면, 트렌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변화는 단 하나입니다. 맵 변화. 저는 지금 스타크래프트 1을 즐겨 보지는 않습니다만, 화력전에서 기동전으로의 변화가 있었다면 아마 맵 양상의 변화가 뒤따랐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물론 그 외에 아직 스타크래프트 자체에 남아있는 미지의 요소가 있다고 가정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어렵지 않나 생각됩니다.
Winter_Spring
11/06/01 22:05
수정 아이콘
요즘 양질의 글들이 많이 올라와서 정말 좋네요.
추천 갑니다.
I.O.S_Daydream
11/06/02 04:02
수정 아이콘
일단 추천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김연우님/ 그러고 보니 스당 전역에서 구데리안이 클라이스트의 명령을 어기고 단독행동을 했던 이유가 그거였죠. 구데리안은 전술적으로, 클라이스트는 작전술적으로 옳았지만 아무리 작전술적으로 옳아도 전술적으로 틀리면 실행될 수 없으니까요.
창예님/ 제가 간과하고 있던 점을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대전략에는 정략적인 부분도 반드시 들어가게 되는데, 1:1 RTS의 경우에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어서 바로 적용하기보다는 약간 의미를 축소하거나 한정해서(제 글의 본문에서 전략을 경제력+군사력 정도로 한정한 것처럼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말씀하신 대로 맵이라는 변수를 통해서 트렌드의 변화를 노릴 수 있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그 맵을 이해하고 맵퍼가 의도하는 방향이건, 또는 맵퍼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이건간에 경기나 양상을 진행시키는 것은 결국 선수들의 몫이 되기 때문에, 맵 양상의 변화만으로 트렌드의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lupin188
11/06/02 12:35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입니다....이래서 스타를 계속 볼 수 밖에 없네요...^^
王天君
11/06/02 23:06
수정 아이콘
pgr퀄리티군요. 끝내줍니다. 밀덕과 스덕이 합쳐지니 이런 글이 나오네요.
추천 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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