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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01/22 16:36:06 |
Name |
Pika48 |
File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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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egloos.zum.com/rbaht/v/335110 |
Subject |
[유머] 레드제플린이 누구에요? |
1980년대 대중음악계의 가장 걸출한 뮤지션 하나를 꼽는다면 레드 제플린을
꼽을수 있다. 쇼맨쉽이 뛰어났던 그는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모자를 쓰고
피아노를 치는가 하면, 기타를 다리 사이에 끼고 불을 지르기도 하고,
핀으로 연결된 가죽옷을 입고 나오기도 하였고, 음악적으로는 트롯음악을
완성한 것으로 평론가들은 인정한다.
레드제플린의 출생은 그의 죽음처럼 아직도 미스테리에 쌓여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는 재니스 조플린의 아들로서 재니스 조플린이 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에 있을시 지미 헨드릭스와의 염문설을 뿌리면서
임신을 하여 낳은 것으로 주장한다.
1963년 독일의 힌덴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어렷을때부터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존 폴 존스에게 정규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음악
신동들을 위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삼촌 지미페이지가 기타를 치는
모습에 반해 기타를 치기로 결심하여 친구들과 하이스쿨 밴드를 결성한다.
그의 이름은 한 여인이 헬륨을 콘돔 안에 가득 넣고 풍선으로 사용하다가
폭발하여 사망한 사건에서 따온것으로, 이 이름을 사용한 것은 1972년 그가
Whisky-A-Go-Go에서 공연 할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레드 제플린은 하루 12시간 넘게 연주를 하는
고된 밴드생활을 했으며, 심지어는 지쳐서 무대위에 누워서 반쯤 졸면서
연주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생활비를 위해서 트럭을
운전하기도 하였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가스를 배달하기도 하였고,
카페에서 서빙을 하기도 했고 약 3년이 넘는 기간동안 무려 80개의 직종을
전전하면서 가수에의 꿈을 키웠다.
그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것은 걸출한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눈에
띄면서이다. 양어머니의 생일선물로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려 하던 레드
제플린은 정식으로 앨범을 발표하여 보라는 조지 마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973년 발매한 데뷔앨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빌보드 앨범챠트 1위에 16주동안이나 머물러 있었다.
이 앨범에서 싱글로 커트 된 곡은 "헤이 조"였으며, 그해 로버트 플랜트의
"홀 라타 러브"를 제치고 싱글 챠트 1위도 석권하였다. 여세를 몰아
2집 "드릴러"를 내놓으며 제임스 브라운에게서 영향을 받은 춤을
유행시키며 전미 투어를 시작하였다. 이때 전미 투어에 동행했던 8세의
아동 연기자 "조디 포스터"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소문이 퍼져 비난의
여론이 드세게 올라, 1975년 발표한 3집 "1999"는 부진을 면치 못하였지만
다행히 "when the doves cry"가 소폭의 히트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이
슬럼프를 이기지 못하고 그는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으며 후에 발표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에서는 마약 LSD의 두문자가 암시되어있으며,
cocaine이란 곡은 마약의 사용을 노골적으로 노래하였다. 그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도 활동했던 니코와 함께 마약에 취해 몇달동안 자신의
저택(원래 신비주의자 알리스터 크라울리의 집이었던 것을
구입하였다.)에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세간에서는 레드 제플린이 거의 폐인이 되었다고 수근거리다 거의 잊어갈
무렵 그의 야심찬 재기작이 나왔다 461 Ocean Boulvard가 그것으로 마약을
끊고 음악에 전념할수 있도록 친구가 빌려준 별장에서 앨범 제목을
따왔으며 이 앨범에서는 "No Woman No Cry"와 "Owner of Lonely Heart"가
싱글로 히트를 기록했다. 새로운 래게 리듬과 서서히 기운이 세어지고 있던
디스코 리듬을 차용한 이 두곡은 그 후 래게와 디스코 곡의 대표작으로
꼽히게 된다. 3집을 내고 전세계 투어를 감행하였으며 공연에 포함된
국가에는 한국이 포함되어 이대 강당에서 4월 11일 공연을 한다. 이때 일부
몰지각한 여성 관중들이 속옷을 내던지는 해프닝이 벌어졌고, 한 관객은
그가 노래를 부르는 대형 크레인에 올라가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으나, 3명의 여고생들이 인파에 밀려 압사를 당하는
불행으로 한국 공연을 끝마치게 된다.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투어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이번에는 밴드 멤버중 일부가 너무 오랜
연주 여행에 지친 나머지 탈퇴를 선언해, 기타리스트 반 헤일런이 탈퇴를
해 자신의 밴드 밴 헤일런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하고, 그 후임으로 잉위
맘스틴을 영입하나 후에 또 탈퇴하여 스티브 바이가 그 공백을 메꾸었으나
솔로를 선언하여 버렸다. 결국 기타리스트 자리는 듀언 올맨으로
귀착되었으며, 탈퇴한 베이시스트 쟈코 패스토리우스에는 시드 비셔스로
대체되었고, 드럼에는 제프 포카로를 영입하였다.
수많은 멤버 교체 끝에 레드제플린은 가장 우수한 연주력을 가진 멤버를
보유하게 되었고, 이름을 레드제플린과 위대한 탄생이라고 하여 5집 Houses
of the Holy를 내놓는다. 나체로 자전거를 타고 성벽을 올라가는 여인들의
사진이 문제가 되어 일부 레코드 점에서는 이 앨범을 전시하기 거부하는
일이 벌어지긴 했으나, 별 문제 없이 이번에도 앨범 챠트 1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한다. 특히 이 앨범에 수록된 단발머리 소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그를 돈방석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하였던가, 키보디스트 "Lewis Jay Ha 루이스 제이하"가
11월 10일에 사망하는 전주곡 이후로 너무도 유명한 참극이 벌어진다.
11월 21일 술집 클럽 앞에서 사소한 시비로 싸움이 붙은 쟈코
패스토리우스는 클럽의 문지기를 죽이게 되고, 이 클럽의 주인이자
문지기의 사촌형이며 시카고 마피아의 대부인 알 카포네가 이 밴드를 모두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며 암살을 꾀한다. 첫번째 공격은 밴드 멤버가
플로리다의 한 농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때 마스크를 쓰고 말을 타고
습격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농약을 마스크에 뿌리는 드러머 제프
포카로의 탁월한 기지로 제압한다. 그 후 밴드 멤버는 투어를 중단하고
칩거를 하였는데, 이때부터 드러머 제프 포카로의 아들에게 드럼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밴드는 한 가족처럼 단결되어 공동체 생활을 하였는데,
여자가 결핍된 이들의 생활은 필연적으로 동성애적 성향을 띠게 된다.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밴드를 습격할 경우 여론이 들끓고 경찰을 자극 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을 한 마피아는 미인계를 사용하기로 하고 키르케란
여인을 접근시켜 잠든 사이 독이 든 주사를 주입하려 하였으나 백댄서 King Sun Jay를 제외한 사람들은 화를 모면한다.
검찰은 이 여인이 독으로 사용된 동물용 맹독을 쉽게 구입할수 있는 수의학과라는 점에 주목하여
기소하나 결국 무죄로 판결이 난다.
이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5년의 긴 세월 끝에 내놓은 역작은 The Wall이었다.
그들이 벽 안에 갇힌 상황을 읊조리듯이 표현한 이 작품은
빌보드 앨범챠트에 장장 3년 이상 100위 안에 올라 있는 대 기록을
세웠는데 이 앨범은 초월 사상과 대체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멤버의
사상을 반영하며 문선명에게서 커다란 영향을 받아 머리를 기르기도 했으며
노래 중간에 그에게서 받은 주문 "Ja Guru Dei Va, Ohm"이 후렴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들의 성공에 시샘이 난 마피아는 더 이상 기다릴수 없다고 생각해 그들의
공동생활 터전을 공격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가던 듀언 올맨은 그들의
장총 두발에 허무하게 삶이 끝났고, 비행기를 타고 도망가던 세컨드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는 비행기가 저공선회를 하다가 버스와 충돌하여
사망하고, 쟈코 패스토리우스는 마피아의 구타 끝에 사망하였다. 당시 술에
취했던 존 보냄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진정제를 먹고 부작용으로
질식사하였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레드 제플린은 마피아의 본거지인 이탈리아로 가서
새로운 국가를 세우겠다고 결심을 하며 탈출을 해 시칠리아 연안의 한
마을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하며 살아갔으며, 이동안 그의
컴백설이 끊이지 않으며 심지어는 사망설까지 나왔으나 그는 침묵을 지켰다.
3년후에 세계적인 재벌 로쓰차일드의 후원으로 레드제플린은 티비에 출연을
하지 않고 공연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새로운 앨범을 냈고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나 그의 독특한 트롯 멜러디를 사랑하던 많은
팬들은 그를 외면했다. 결국 판매 부진으로 앨범 홍보를 위해 대중들 앞에
나온 그는 팬들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몰라보게 살이 쪄 있었던 것이다.
그의 부인 오노 요코와 이별후 그는 대식증과 편집증, 신경 불안에 시달렸다고 한다.
살이 찐 모습으로 대중앞에 다시 나타난 그의 사라져가는
상품성에 눈이 먼 제작자의 꼬임에 빠져 수 많은 비치 무비들을 만들었고
love me tender같은 노래를 불렀다. 골수 팬들의 사랑은 아직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그의 하와이 공연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재기에 그럭저럭 성공하는 듯이 보일 무렵, 한 손에는 호밀밭의 파숫꾼을
들고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골목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마이클 채프먼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레드제플린은 그의 총탄에 힘
없이 쓰러졌고, 마이클 채프먼은 영웅의 타락을 더 볼수 없어서, 그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혼자 간직하고 싶어서 살해했다고 고백했다.
AFKN에서 그의 사망 소식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AFKN방송국에 찾아가서 사실을 확인하였고 나는 통곡을 하였다.
그는 이제 갔지만 무지개 저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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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매니아라면 예전에 한 번 쯤은 본 유머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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