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참판은 모처럼의 빠른 퇴궁 후 한강 공원에서 가벼운 조깅을 즐기고 있었다.
답답한 관복을 모처럼 벗고 온 몸으로 느끼는 가을의 서늘한 공기가 상쾌하기 이루없었다.
몇해 전 아들내미가 선물해준 블루투스 발음기(이어폰)로 들려오는 노랫소리도 감미로웠다.
문득 블루투스 발음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이조참판의 이마에 고랑이 생겼다. 온 궁을 달구었던 논란이 생각나버린 탓이다.
아들이 선물해준 신물물을 자랑할 겸,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은근히 발음기를 내보이고 있었는데, 그것을 발견한 예조참판이 한 마디를 던저버린 것이다.
"그런데, 주상께서 전화를 거시면 그 발음기로는 어떻게 받아야하오 그리고...?"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오래 전부터 도입된 덕률풍(텔레폰, 전화)은 당연히 무릎을 꿇어서 양 손으로 받는 것은 기본에, 교서를 받는 것처럼 관목 관모로 정장을 하고 큰 절을 세 번 올린 뒤 무릎을 꿇고 엎드러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무선 전화기가 도입된 이후 한 번의 대논란이 점화되었다. 교서도, 전화도 전부 주상이 직접 써내리거나, 아니면 주상과 전화선으로 직접 연결되어 주상을 직접 알현하는것과 진배 없는데, 이 무선 연결이란 것이 과연 그것에 준하냐는 것이다.
일견 사소해보이나, 주상의 행차에 곧 권력이 따르는 왕권제 통치의 정당성이 간접적인 의사의 행사에 있는지, 아니면 주상의 물리적 존재에 있는지에 대한 복잡한 논쟁이었다.
예조참판 세 명이 갈려버린 이 논쟁은 결국 통치는 곧 주상의 의지에 기반하며, 그 의지가 명확하다면 간접적인 전달도 어명에 준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 신하들은 무선 전화를 받을 때에도 똑같이 큰 절을 올려야 했다.
휴대용 전화기, 소위 휴대전화라는 물건이 생겼을 때는 진통이 적었다. 다만 시대의 변화의 흐름에 따라, 관청이나 자택의 밖에서 어명을 받을 경우 관복을 정장해야한다는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오히려 고약했던 것은, 휴대전화 이전의 삐삐란 기기였는데 삐삐로 보내는 '콜'이나 단문은 주상의 의사의 직접적 전달이 아니기 때문에 삐삐가 울릴 때마다 예를 갖출 필요는 없고, 다만 최대한 빨리 예를 갖추어 그 호출에 응해야 한다 결론났다.
이 예조의 결론에 많은 대신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당시 주상이 삐삐란 장난감에 재미가 들려 시도 때도 없이 신하들에게 호출을 날려대는 통에, 하마터면 신하들은 한양 한 복판에서 한 각에도 세 번씩 삼배를 해야할 뻔 했기 때문이다.
이후에 자유수기(핸즈-프리)가 보급되기 시작됐을 때에는 과연 이 조그마한 물건을 어떻게 들고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벼운 논쟁이 있었다. 예조의 결론은, 자유수기의 수화부는 반드시 오른쪽 귀에 끼워야하며, 주상 전하의 옥음을 들을때는 양 손으로 오른쪽 수화부를 감싸 받치고, 말씀을 올릴 때에는 양 손으로 송화기를 받쳐 올려야 한다, 였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전대 예조참판은 최신 기술에 둔감하고, 자가용도 없어 블루투스 무선 자유수기에는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자가용 운전 중 어명의 수신은 도로교통법상 도로 통행 방해죄의 예외적 정차 가능 사유로 명시되어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예조참판이 이조참판의 블루투스 발음기를 발견하곤, 자세는 물론이고 금단의 질문, 온 대신들이 애써 무시하던 질문을 던져버렀다.
"그리고... 블루투스로 받듣는 어명은, 전화로 받듣는 어명과 같소이까? 잠깐 생각해본 바로는, 보안성을 갖춘 전용 회선을 통한 어명 전화와는 다르게, 이 블루투스는 휴대전화에서 다시 어명을 발음기로 송신하는 구조인데 이러면 그 송신구조에 따라 어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