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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4 18:51
네 다음에 알아볼 전쟁은 비수대전 입니다.
짤에나오는 위 와 촉땅을 전부 가지고있던 전진과 강남의 동진이 붙은 전쟁이죠. 전진은 전투병만 100만을 동원했죠. 그 결과는? 짜잔!
19/01/04 18:51
중국 땅이 어마어마한 꿀땅이죠. 비슷한 시기 농경이 시작된 다른 문명 발상지들은 다 사막화맛을 보면서 지역기반 자체가 무너졌는데, 황하는 그 인구수를 먹여살리고도 아직도 현역입니다.
19/01/04 19:17
그나마 평야가 한강낀 경기도랑 하남이죠. 그걸 제일 먼저 차지한 백제도 포텐은 있었는데 결국 내부정리가 안 되어서 뒷심이 딸렸죠...
19/01/04 18:52
삼국지좋아하는 친구말로는 맘먹고 통일하려고 했으면 오나라가 위치나 전략적으로 가장 유리했는데 가장 먹고살만해서 내부에서 시큰둥했다는데 진짜인가요??
19/01/04 18:54
전혀요. 조조가 원소를 이긴 시점에서 이겼다! 삼국지 끝! 이라고 하고 소설 막 내려도 이상한거 아닙니다.
내부에서 북진에 시큰둥했다는건 팩트라고 봅니다만
19/01/04 18:59
홍대병
가장 먹고살만한 그건 내부로는 호족들간의 끊임없는 정쟁(이궁의 변)에 방어전쟁은 몰라도 공격전쟁에는 이합집산이었고 외부적으로는 산월로 대표되는 적병들에게 시달렸지요
19/01/04 19:01
먹고 살기 편한 것보다, 먹고 살기 편해지려고 미개발지 개척, 무릉만 같은 이민족이랑 계속 치고박고 싸웠고, 그 와중에 풍토병에 고생하느라 공세로 돌릴 여력이 없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위 촉 처럼 군권이 일원화된 구조도 아니었구요.
19/01/04 19:02
군사력은 호족연합체고 영토는 대부분이 오지라 게임만큼도 안쌥니다.거기에서 그정도라도 권력을 휘두른 손권이 생각보다 영물인 이유죠
19/01/04 19:21
적절하게 냠냠주세'오'에 등용 되셨습니다.
위치고 전략적이고 하나도 안유리했죠. 형주라도 완전지배했으면 모를까 맨날 입구 틀어막혀서 훅가는데 장강없었으면 진즉 털렸죠.
19/01/04 20:04
아니요. 택도 없는 소립니다.
다만, 오나라에서 먹고살만해서 내부에서 시큰둥...은 반은 맞는 말인데, 오나라는 애초에 중앙집권이 제대로 안되어 있고 지방 호족들의 협력을 얻는 형태였거든요. 초기 고려처럼요. 그래놓으니, 그 지방 호족들이 그다지 싸우고 싶지 않아 시큰둥 하니 주전파가 제대로 힘을 못 쓰던건 맞지요. 거기서 그래도 제갈량+노숙+주유 조합이 주전파에게 힘을 실어줘서 적벽대전이 일어났구요.
19/01/04 19:16
한자가 막 생겨나던 시절까지는 중국 본토에 코끼리,코뿔소,용의 모티브가 되는 커다란 파충류(아마 코모도 왕도마뱀이나 악어 비슷하징 않았을까요?)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 거치고 한나라 이후로는 그런 밀림들 없었을 거에요
19/01/04 19:31
저기 오나라가 밀림지역이였죠
강남 지역이 개발이 완료된 시기는 명나라때였죠 삼국시대 오나라때부터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 되기 시작됬죠 반면 황하 지역은 지금과 달리 온화한 온대 지역이였고요
19/01/04 19:42
그전까진 황하도 못건너고 위나라한테 줘터지던신세였죠...초나라도 어떻게보면 수뇌부가 엉망이던 진나라랑 한타싸움 붙어서 이긴걸로 패자가된거구요. 또 그렇게따지면 그 진나라는 사실 전성기시절 본진은 산서성 산맥사이에 분수강변끼고 있는 타 국가대비 넓지도 않은 평지였단것이....
19/01/04 23:29
관중에 파촉까지 먹으면서 6국과 맞먹는 경제력으로 물량전이 가능하게 됐죠. 유방이 항우에게 버텼던 까닭도 파촉 빨이 상당하구요. 그 이전까지는...
19/01/04 19:25
이걸 보면 조조가 너무 서둘렀던 거 같아요. 형주를 얻자마자 바로 오나라로 쳐들어갔으니....
심지어 형주를 다 평정한 것도 아니고 강하엔 유비가 있고 남형주도 공백지나 다름없었고요. 강건너편에 있는 오나라는 급한 거 없으니 남겨두고 형주를 완전히 평정했으면 통일을 못할 수가 없었는데 말이죠.
19/01/04 19:26
지형만 보면 그렇지만 실제론 저 정도 격차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추측컨데 저 지형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전쟁의 여파라고 봅니다. 위가 차지한 땅은 삼국정립 이전까지 계속해서 수탈당한 땅이거든요. 애초에 흉년이 들었는데 위에서는 자꾸 뽑아먹어서 난리가 난 상황이었는데, 그 상황에 전쟁을 20년은 했습니다. 서주대학살이 대표적이지만, 실질적으로 삼국이 정립된 시점에서의 위는 앞으로 유리해질 가능성을 가져간 것이지 그 시점에서 승리가 확정된 상황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촉과 오는 상대적으로 전쟁에서 좀 벗어나 있었거든요. 위는 자원 모을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삼국이 정립됐다고 봅니다.
19/01/04 20:21
조조가 저렇게 땅을 많이 먹었지만 정작 조조가 세운 위나라는 중간에 사마씨한테 먹혀서 황제가 말단장교한테 끔살당하는 수모를 겪은 끝에 초라하게 망하죠. 촉나라가 먼저 망하긴 했지만 그때 위나라는 이미 사마씨의 나라였다는...
19/01/04 20:55
지금이야 관개농업 여파로 생산성이 낮은 땅이긴 한데 저 당시엔 나름 꿀땅이었다던데요. 기병 공급지를 배후에 둔 데다 실크로드에서 들어오는 무역 수입도 꽤 됐겠고, 또 관중사람이 병사로서의 자질이 괜찮았다고 하더군요.
19/01/04 23:24
강수량이 연 800mm 이하인 건조 기후라 당시에도 지금도 벼농사가 아닌 보리 농사, 맥작을 주로 하는 지역이었죠. 황하의 물을 끌어다쓰는 관개 농업이 일찌감치 시작된 지역이었기에 춘추 전국 시대부터 최고의 곡창 지대였습니다. 넓게 잡으면 당 중기까지 중국의 경제 중심이었죠. 중국에서 가장 풍요로운 관중과 파촉을 점유한 진과 한이 두 지역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통일의 위업도 달성할 수 있었고요.
그러나 황하는 수질 내 염류가 매우 높았으므로 수백년 간 관개수로를 끌어다 쓰면서 토양의 염류화도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토지의 지력 쇠퇴로 인한 생산력 하락은 후한 말 시기부터 드러납니다. 토질을 꾸준히 유지 가능한 논과는 달리 밭은 토지를 아예 갈아버려야 했기에 화학 비료도 기계도 없던 고대 농업 기술로는 토질을 유지할 수가 없었죠. 또한 중원의 발상지였기에 중국인들에게 관념적으로 천하의 중심이었고 따라서 온갖 전란의 독무대가 되죠. 이런 끊임 없는 혼란과 계속되는 지력 쇠퇴로 수당 시기에 이르면 과거 춘추 전국 시대나 전한 시기에 한참 못미치는 생산력을 보이는데 이릅니다. 여기에 5호 16국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강남 개발이 수당 시기에 제대로 궤도에 올라 이미 당 대에는 화북과 더불어 중국 경제의 양대 축으로 자리매김하고요. 근소하게 유지되던 화북의 경제적 우위는 755년 당 현종 시기에 안사의 난으로 완전히 몰락하게 되고 중국의 경제 중심은 강남으로 완전히 역전되는데, 이러한 화북의 몰락에서 기인한 조세 체제 개편의 필요성, 안사의 난 이후 활개치는 절도사들을 제압할 군비 수요로 당은 조용조 체제를 폐기하고 재산에 차등에 따라 연 두 번의 조세를 걷는 양세법을 도입하게 되기도 합니다.
19/01/05 06:10
먹으려고 여러번 시도했죠. 그때마다 유목민이 뒤통수치고 한반도 국가들의 저항이 만만찮아서 실패한것 뿐이지
원나라는 사실상 성공까지 갔고요.
19/01/05 12:51
당이 무리해서 신라정규군 싸움질이라면 이미 도가 터버릴대로 터버렸고
당의 노략질에 정말 악과 깡만 남아버린 백제고구려 유민 이 합쳐진 한반도 삼한연합세력과 진짜 끝장보자하고 전쟁했으면 신라와 유민연합군은 분명 박살나고 한반도는 완벽히 삼한도호부로 봉해졌겠지만 당은 나라가 티벳으로 바뀌었겠죠 크크크! 그리고 십년이내로 삼한도호부는 신라를 필두로한 삼한 부흥세력에게 접수됬을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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