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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4/02/21 10:45:31 |
Name |
주홍불빛 |
Subject |
[유머] [유머] 국민교육헌장 |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중략)
도덕은 주요과목이어서 월말고사에도 포함되었지만, 학생들이 가장 쉽다고 생각하던 과목이었다. 그때는 도덕이 현재와 같은 철학내용이 별로 들어 있지 않아서 외울 것이 적은 데다가, 문제를 읽고 대체로 좋은 말이 포함된 답지를 고르면 맞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교과서도 읽어보고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살펴보는 등 시험공부를 한 다음 자신만만하게 도덕시험에 응했다. 목표는 100점이었다. 그런데 시험지를 받아들고 첫 번째 문제를 보는 순간 경악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1.국민교육헌장은 몇 자인가?" 당시 시험문제는 대부분이 흔히 '객관식'이라고 부르는 4지선다형이었으며, 국, 영, 수 과목에서는 가끔 단답형이 출제되는 경우가 있었다. 도덕시험은 으레 4지선다형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25개 문제 중에서 24개 문제는 4지선다형이었지만, 1번 문제인 이 문제가 단답형이었던 것이다.
비극은 당시 내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던 날에 함께 발표된 박정희 대통령의 담화문에도 나오는 국민교육헌장의 글자 수는 알지 못했다. 이 문제를 보고 잠시 당황했던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국민교육헌장의 글자 수를 세기 시작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라고 입으로 웅얼거리면서 손가락으로 글자 수를 꼽았다. 10개 손가락을 한 번씩 모두 꼽으면 문제지에 한 획을 표시하고, 다시 글자 수를 세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국민교육헌장의 전체 글자 수를 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꾸 중간에 헛갈려서 혼란이 왔다. 정상적으로 시험을 친다면 먼저 나머지 24개 문제를 먼저 풀고, 이 문제를 제일 뒤로 돌려야 했다. 그러나 글자 수를 세는 데 몇 차례 실패를 한 나는 슬슬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다음 문제를 푸나 봐라." 결심을 하고 시험지에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써내려갔다. 입으로 외우면서 글자 수를 셀 때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문제지 여백에 쓴 나는 열 자식 끊어서 표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답안을 썼다. '392'. 답안을 쓰자마자 시험이 끝나는 종이 쳤다. 뒷사람이 걷는 사이에 얼른 서너 문제 답을 더 썼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결국 대부분의 문제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도덕시험 답안지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확인한 바는 없지만, 당연히 이 과목 시험에서 전교 꼴찌를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 푼 1번 문제까지 결국 틀리고 말았다. 국민교육헌장은 392자가 아니라 393자였던 것이다. 어디서 한 자를 빼먹은 모양이었다.
김한종,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中
열심히 세었더니 그걸 또 틀리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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