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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8/23 23:13:55
Name SEIJI
Subject [유머] [펌] 에도가와 란포 - 인간의자

우리가 접해보기 힘든 일본추리  소설인 '인간의자'는 에도가와 란포에 의
해 저작되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1894-1965)는 일본 추리소설의 시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히라이 타로인데,  그의 필명은 에드거 엘런 포에서 따온  것
입니다.  와세다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이전동화'로 첫  추리소설을 발
표한 그는 '심리실험' 'D언덕의 살인'  '천장 위의 산책자' '빨간 방' 등, 지
금 읽어도 흥미진진한 작품들과 '고도의 마인' '거미 사나이' 등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작품과 강렬한 스릴과 서스펜스로 독자들을 열광시켰다.
  1950년대  부터는 추리서설  연구에  뛰어난 식견을  보였는데  '환영성
(1951)' 은 제 5회 탐정작가  클럽상을 수상했다.  '속 환영성'에는 '종류별
트릭모음집' 이 수록되어 있다.

이상이 작가소개입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으세요.....

                                               -- 키드 --



                       ***** 인간 의자 *****

      - 제 1편 -

      요시코는 외무성에 다니는  남편을 10시 조금 지나 출근시키고,  그
     때부터 완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
     께 쓰고 있는 서재로 가서 K지(誌)의  여름 특집호에 게재할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유려한 필치를 자랑하는 다재다능한
     여류작가였다.   요시코의 남편도  이름높은 외교관이었지만 그녀의
     작가적 명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매일  그녀의 작품을 칭송하는  독자 편지가  쇄도했다.  
     실제로 이날 아침만 해도  그녀는 책상에 앉자마자 우편배달부가 아
     침에 가져온 여러  통의 편지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예외없이  그
     편지들은 모두 똑같은  내용이었으나, 여성다운 섬세한 마음의  소유
     자인 그녀는 재미가 있건 없건 자신에게 부쳐져 온 편지들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짧고 간단한 편지들부터 먼저 집어들고서는 재빨리 그 내용을 훑어
     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원고지 뭉치처럼 보이는 편지봉투를  집어들
     었다.  원고를 부쳤다는 사전 통지를 받은 적은 없었지만, 그녀의 조
     언을 구하는 아마추어 작가가  원고뭉치를 보내오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대부분 그같은 원고는 장황하고,  주제가 없는데다 하품
     나오는 것들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편지봉투를 손에 집어들고  여러
     장의 원고뭉치를 꺼냈다.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그것은 정성들여 묶은 원고뭉치였다.   그러
     나 어찌도니 셈인지 제목도 없고 필자 이름도 씌어있지 않았다.  원
     고는 느닷없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요시코 부인........"
      잠시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어쨌거나 편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그 다음의 두세 줄을 읽어본 뒤, 서서히 그 이
     상하고도 기괴한 얘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호기심은  점점
     더 강해져 주체할 수 없게 되었고, 알지 못하는 마력에 이끌려 그녀
     는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요시코 부인.  전혀 낯선 사람이 이같이 무례한 편지를 보낸 점, 이
     해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부인, 제가 이제 써나갈 얘기는 당신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부인 앞에 제 얘
     기를 고백하고 제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낱낱이 털어놓기로 결심
     했습니다.  
      여러 달 동안 저는 문명의 광명으로부터 저 자신을 숨겨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악마처럼 숨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묘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 더이상  그 비밀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습
     니다.  저는 고백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써온 얘기는 부인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불러일으켰을 것
     입니다.  그러나  죽 참고 제 얘기를 끝까지 읽어주시기를  간청합니
     다.  그렇게 해주셔야만 저의 기묘한 심리상태와 왜 제가 꼭 당신에
     게만 이같은 고백을 하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
     입니다.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사실은  보통사람으로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기괴한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난감합니다.   솔직
     히 말씀드려 그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기에는 필설(筆舌)로는 부족할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사건이 발생한 경과를 연대순으로 설명해  나
     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저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추남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려 둡니
     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인이
     저의 마지막 소원을 받아들여 저를 만나게  될 때 너무나 추악한 제
     얼굴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 얼굴은 너무나  오
     랬동안 비위생적인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더욱  추악하게 되었습니
     다.  그러나  제 얼굴이 아무리 추악하다고 해도 마음속에는  순수한
     정열이 불타고 있음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비천한 장인(匠人)입니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더라면 집안
     의 돈을 가지고 못생긴 얼굴 때문에  받았던 영혼의 고통을 줄일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더라면 짐승같이 생긴
     제 용모를 잊어버리고 음악이나  시가에서 위안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재능도  아예 없었고, 재수라고는 전혀 없
     는 인간이었기에 저는  비천한 작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렇게 해서 저는 각종 의자를 만들어내는 특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분야에서 저는  꽤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아무리 까다로운 주문이라고 하더라도  척척 해낼 수 있다는 명성까
     지 얻게 되었으니까요.  이 때문에 목재가구업계에서는 특별한  대접
     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급의자의 제작만 전문으로 주문을
     받았습니다.  고급의자는 독특한  조각장식, 새로운 디자인의 등받이
     와 팔걸이, 탄력이  훌륭한 쿠션과 좌석등을 만들어 넣어야 하기  때
     문에 오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숙련된 가구장이가 만들어야 하는 것
     입니다.  그러니 신출내기 목공 정도로는 손도 대볼 수 없는 복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땀에 대한 보답은  돈보다는 창조의 즐거움 그 자체에
     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건방지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
     다만, 그같은 즐거움은 진정한 예술가가 대작을 창조하고 나서  느낄
     때의 스릴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의자가 다 만들어질 때마다 그  의자에 앉아 촉감을 느껴보는 것이
     저의 습관이었습니다.   저의 작업이  비록 비천하여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제가 만든 의자에 앉아보는 순간에는 형언하기  어려
     울 정도의  감동을 느꼈습니다.  또  상상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하여,
     이 의자의 주인이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습
     니다.  분명 지체 높은 분들일 테지.  왕궁 같은 저택에 살 테고,  그
     저택의 벽에는 값지고 귀중한 명화가 걸려 있을 테지.  천장에는 휘
     황찬란한 수정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을테고, 바닥에는 아주 비싼  양
     탄자가 깔려 있을 테지.
      이렇게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어떤 의자의  경
     우, 저는  그 의자가 마호가니 테이블  앞에 놓여지리라 상상했는데,
     그러자 달콤한 향기를 방안 가득히 뿜어내고 있는 각종 꽃들이 꽂혀
     져 있는 꽃병의  환상도 함께 생겨났습니다.  이같이 이상한  환상에
     사로잡혀 저 자신도  그같은 실내장식의 한 부분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저 자신이 사회의 저명한 인사가 된 듯한 상산을 하며 끝없
     는 즐거움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어리석은 생각들이 끊이지  않고 저의 마음속에서 일어났습
     니다.  부인, 저 자신이 만든 고급의자에 편안히 앉아 꿈에도 못잊는
     아가씨의 손을 잡는 상상을 할 때의  저 자신의 기묘한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저의 이 아름다운 꿈은, 언제나 늘 그렇습
     니다만, 이웃의 무식한 아주머니들의 시끄러운 잡담소리와 그 집  아
     이들의 신경질적인 빽빽거림, 울음소리 등으로 깨어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또다시 비참한 현실이  내 눈앞에서 보기싫은 꼴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 저는 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보잘것없는
     벌레같은 존재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내 사랑, 천사 같은 여인도 또
     한 안개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저의 어리석음을  저주
     합니다.  바보 같은 놈,  길거리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들조차도
     너를 쳐다보지 않는데, 언감생심 천사 같은 여인이라구!
      새로운 의자를 하나 완성할 때마다 저는 끝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혔
     습니다.  그리고 여러 달의 시간이 지나자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비
     참한 느낌은 나의 목을 죄기 시작했습니다.

                         ***** 제 1편 끝 *****

                                                      - 키드 -


         - 제 2편 -

      어느날 저는 요코하마  소재의 어느 외국인 호텔에 납품할,  지금까
     지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대형 가죽안락의자의 제작을 주문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의자는  해외에서 수입할 예정이었으나 저의
     의자만드는 기술을 잘  알고 있던 그 호텔  지배인의 주선으로 제가
     그 주문을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름난 장인이라는 저의 명성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저는
     이 새로운 일에  전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서서히 저는 그일에  빠져
     들어 때로는 침식을 거를  때도 있었습니다.  그 일은 저의 생활 전
     부가 되었고, 제가 사용한 목재 하나하나에는 저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그 의자가  완성되자 저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커다란
     만족감을 맛보았습니다.  저는 그 의자야말로 전에 제가 만든 그 어
     떤 의자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에도  그렇게
     했던 것처럼 저는 작업장 한구석의 양지바른 곳에다 그 의자를 끌어
     다 놓고 앉아  보았습니다.  얼마나 안락하던지요!  얼마나 멋지던지
     요!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너무 부드럽지도 않게 스프링은 아주 적
     당한 쿠션을 제공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죽의  부드러운
     촉감이란!  그 의자는 앉아있는 사람에게 안락한 기분을 줄 뿐만 아
     니라 그 사람을  포옹하고 애무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등받이
     의 굽어진 각도도 알맞았고, 팔걸이 부분도 부드럽게 부풀어올라  좋
     은 촉감을  주었스며, 그밖의 부품들도  저마다 멋진 균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안락'이라는 말의 뜻을 그 의자처럼  잘 얘기해
     주는 물건은 아무데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앉아손으로 팔걸이 부분을 부
     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정말로 만족스럽고 기뻐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
     습니다.
      또다시 저의 상상력이 발동되어 제 마음속에다 기묘한 환상을 일으
     켜놓았습니다.   제가 상상하는 광경이  그때 너무나 생생히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에 저는  잠시 동안 제가 미쳐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같은 심리상태에 빠져들면서 순간 기괴한  아이
     디어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부명 그것은 악마의  속삭임이었스
     빈다.  그생각은 너무나 기괴한  것이었지만,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힘으로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물론 그같은 생각은 그 의자를  저 자신이 차지하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이 그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자를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는 그 다음 방법으로 의자가 가는 곳이면 어디
     든 따라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끈덕지게 이같은 상
     상을 해나가다 보니 제 마음은 거의 전율과 같은 유혹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부인.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기
     괴한 계획을 실천해내고야 말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재빨리 저는 그 안락의자를 분해하여  저의 그 기괴한 목적에 알맞
     게끔 그 의자를  재조립했습니다.  그 의자는 대형 안락으자였기  때
     문에 좌석받침대의 커버가  마루에까지 닿게 덮여 있었고,  등받이와
     팔걸이는 모두 규격이 큰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점을 이용하여 그 대형의자의 내부에다 충분한 공간을 만들
     어 성인남자가 발각될  염려없이 숨을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물
     론 이 일은  간단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의자에는 자질구레한  목재
     가 많이 쓰였고, 또  내부에는 스프링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놀라운 기술을 발휘하여 그 의자를 목적에 맞게 재조립
     했습니다.  우선  무릎은 죄석받침대 바로 밑에  놓일 수 있게 하고
     상체와  머리부분은 등받이의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의자 내부의 빈 공간에 이와같이 앉아  있으면 전혀 들킬 염려가 없
     었습니다.
      이같은 재조립의 일을 해내는 것이 저에게는 별로 큰 힘이 드는 것
     은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그 의자에다  몇 가지 부속장치를 더 만들
     어 넣었습니다.  외부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치와 의자의
     가죽을 조금 찢어놓아 밖을 내다볼수 있는 작은 틈 등의 부속장치를
     말입니다.  물론  이런 장치들은 모두 감쪽같이 숨겨져 있어서  아무
     도 그것을 눈치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내부에 식품저
     장소를 마련하여 건빵 몇 봉지와 물통  등을 놓아둘 수도 있게 했습
     니다.   대소변 처리용인  대형 비닐봉지도  아울러 넣어두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장비와 시설들을 의자의 내부에다 갖추고 나니,  그
     곳은 꽤 살 만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2-3일 이상
     을 계속해서 묵을 수는 없겠지요.
      그 기괴한 일을 다마치고 나서 저는 상의를 벗고 그 의자의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부인, 그때 제가 느낀 그 기묘한 감정을 상상이나 해
     보실 수 있겠습니까?   정말 저는 한적한 묘혈(墓穴)의 내부에 갇혀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의자 속으로 들어가 칠흑의  어둠
     속에 갇히는 순간,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더이상  존재하
     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곧 그 호텔의 지배인이 그  의자를 인수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왔습
     니다.  그 사람은 큰 손수레를 가지고 왔더군요.  저와 함께 살고 있
     던 조수는 제가 해놓은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조
     수가 그 심부름 온 사람에게 얘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의자가 손수레에 실려질 때 손수레꾼 중의 한 사람이 이렇게 말
     했습니다.
      "어휴! 정말 무거운 의자로군.  1톤은 될 것 같애."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그
     의자 자체는 누가 봐도 대단히 무거운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아무도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곧 저는 손수레가  덜컹거리며 거리를 지나가는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그날 오후 제가 숨어있던 그 안락의자는 그 호텔의 객실 마룻바닥에
     쿵 하며 놓여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것이 객실이 아니고  로비였
     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짐작하셨겠지만, 이같은 미친 짓을 저지른 주된  목
     적은, 주위가 비교적  안전할 때 의자의 내부에서 나와 호텔  주변을
     돌아다니며 도둑질을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의자 속에 사람이  들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빠르게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마음대로  호텔 객실을 뒤져볼 수 있고, 혹  경
     보라도  울리게 되면  비밀 은신처로  돌아와 안전하게  숨었습니다.  
     그러면 바깥의 사람들이 저를 잡으려고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
     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부인은 해변가 바위틈에 사는 바닷게 얘기를 들으셨을 겁니다.   큰
     거미같이 생긴 이 게는  주변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다가 인기척이 들
     리는 즉시 빈  조개껍데기 속으로 냉큼 숨어버립니다.  그리고는  그
     은신처에서 털달린 보기 흉한  앞발을 조금 내어놓고 엉큼하게 주변
     을 살펴봅니다.   저의 경우에는 조개껍데기보다 훨씬 더 좋은  은신
     처, 즉 감쪽같이 숨을 수 있는 의자가 있는 것이지요.
      부인도 아시다시피  저의 계획은 너무나  독창적이고 예측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 계획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의 모험은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지  사흘
     뒤에 저는 이내 상당한 소득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훔친 것이
     긴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훔칠  수 있다는 사실이 자져다주는  스릴과 흥분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제가 있는 곳에서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도둑은 이리로 갔다" 또
     는 "도둑은 저리로 갔다"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때의 그 즐거움이
     란 정말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짜릿한 것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제가 겪은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군요.   그
     대신 저의  얘기를 계속해 나가면서,  엄청나게 큰 즐거움을 주었던
     한가지 사건에 대해 부인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이제부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이 편지의 요점입니다.

                       ***** 제 2편 끝 *****  
                              
                                                        - 키드 -




                             - 제 3편 -

      먼저 제 의자가 호텔의 로비에  놓여진 순간으로 부인의 생각을 되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의자가 로비의 바닥에 놓여지자마자  호텔
     의 여러 종업원들이 번갈아가며 그 의자에 앉아보았습니다.
      호기심이 사라지자 그들은  모두 방에서 나갔고, 곧이어 쥐죽은  듯
     조용한 정적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러나 온갖 위험이 예상되었기  때
     문에 저는   의자 내부에서 밖으로 나올  배짱이 없었습니다.  저는
     밖에서 나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일각이  여
     삼추같이 지루했습니다.  잠시뒤 저는 둔중한 발걸을 소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들었는데,  복도쪽에서 제가 숨어있는 의자쪽으로  걸어오
     는 소리가 틀림없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발걸음 소리가 갑자기 나
     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사람은 두꺼운  양탄자를 밟으며 걸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뒤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소리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지 예측할 겨를도 없이, 유럽인같이 느껴지는  비
     대한 몸집이 내  무릎위로 털썩 내려앉더니 자세를  고치며 두세 번
     몸을 뒤척거렸습니다.   그의 바지와 내 무릎 사이에는 얗밑은  가죽
     하나 밖에 놓여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 사람의 체온을 느
     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넓은 어깨는 제 가슴에 착 달라붙었고 그
     의 두툼한 두팔은 내 팔위에 놓여졌습니다.  시가의 강한 향기가 내
     코로 스며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그  사람이 시가를 피우고 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부인이 제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기괴한  상태를 잠시나마
     상상해 보십시오.  저 자신은 너무나 심한 공포감을 느낀 나머지, 져
     드랑이 사이로 식은땀을 흘리며  석고가 된듯 온몸이 뻣뻣해진 상태
     로 웅크리고 앉아있었습니다.
      그 유럽인을 시작으로 하여 그날  여러 사람들이 내 무릎에 앉았는
     데, 마치 자신의 차례를 끈질기게 기다린 사람들처럼 여러  명이었습
     니다.  그러나 그 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은 그 부드러운 쿠션이 어둠
     의 세계에 갇혀 있는, 혈관 속에 피가 도는 사람의 살이라고 생각하
     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같이 신비한 은신처의 어느 구석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
     던 것일까요?  저는 전혀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는 동물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외부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힘들게 숨을  쉬고, 얘기를 하고, 옷자락으로 살랑거리는  소리
     를 내고, 그리고 부드럽고 둥근 육체를 가진 사람들로만  여겨졌습니
     다.
      서서히 저는 그 의자에 앉는 사람들을 시각보다는 촉각으로 식별하
     게 되었습니다.   비만한 사람들은 대형  해파리같이 느껴졌고, 바싹
     마른 사람들은  해골을 떠받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다른
     식별조건으로는 척추의 굴곡, 견갑골의 넓이, 팔의 길이,  넓적다리의
     굴긱와 엉덩이의 윤곽 등이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상하게  들
     리겠지만, 사실만을 말씀드리는 것이니 그렇게 알아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보이지만,  실은 사람들 사이에는  무수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 특징은 사람들의 신체를 촉감으로  느낌으로
     써 훨씬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문이나 얼굴윤곽도 그렇지만, 신
     체구조는 사람마다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물론 이 이론은  여자
     의 육체에도 적용됩니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두 개의 커다란 범주, 즉 미녀와 추녀로  구분됩
     니다.  그러나  의자 속의 어둡고 좁은 세계에서는 얼굴의  생김새는
     별 의미가 없고 살의 촉감, 목소리, 체취 등이 더 중요한 평가기준이
     됩니다.  부인, 이같이 대담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불쾌하게 생각
     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 얘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제 마음속에 열렬한 사랑을  불
     러일으킨 한 소녀가  있었는데, 맨 처음 제 의자에 앉았던  여자였습
     니다.  목소리로 살펴볼  때, 그녀는 유럽인이었습니다.  그 순간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는  마음속에 행복이 넘쳐흐르는 듯 했
     습니다.  왜냐하면 방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녀는 달콤한 목소리로  노
     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그녀는 제 의자 앞에까지 와서 서있었는데, 느닷없이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다음에 그녀는  그물 안에서 펄떡이는 생선처럼
     자신의 팔을 톡톡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제 무릎 위
     에 앉았습니다.  약 30분 동안 그녀는 노래를 부르면서 박자에 맞춰
     상체와 다리를 흔들어댔습니다.
      그것은 나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얼굴이
     못생겼기 때문에 늘 여성과는 멀리 떨어져 생활해왔었으니까요.   저
     는 그때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한 유럽 소녀와  같은 방에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얇은 가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피부와 저의 피부를 맞대고 말입니다.
      저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녀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자의 내부에서 저는 그녀를  포옹
     했고 그녀의 백설같이 흰 목에다 키스하는 장명을 상상했습니다.
      '의자의 가죽 껍데기를 벗겨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같이 떳떳하지 못하지만 짜릿한 경험을  하고 난 뒤에 저는 도둑
     질을 하겠다는 당초의 목적을 송두리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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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23 23:22
수정 아이콘
보통 작가들은 글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분야에서든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한다는건 참 부럽습니다.
05/08/23 23:38
수정 아이콘
일본 미스터리의 선구자이자 거목인 란포의 장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류와는 거리가 있을 듯한 음울함, 이상심리, 광기 등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거꾸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이 불우한 천재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게 아닌가 합니다. 저 자신 란포의 소설에 감정이입이 더욱 잘 되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습니다.
저달로날보내
05/08/24 09:33
수정 아이콘
이 단편 동서문화사에서 출판한 "음울한짐승" 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사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도서관이나 대여점에서 빌려서라도 읽읍시다.
징크스
05/08/24 09:37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약간 몸속에서 스물거리는 느낌도 있구요...

마지막 줄의 긴긴 겨울밤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이... 히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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