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잡는 섭태지
-맨 정신의 수학여행
고등학생 시절 나의 별명은 섭태지였다. 필명으로 최우주를 쓰고 있지만, 본명은 섭이다. 그러니까 섭태지라는 별명의 ‘섭’은 뼈대 있는 가문이라 믿었던 집안 어르신이 우리네 자식들에게 ‘섭’자 돌림을 붙인 탓이다. 그 많던 상놈은 어디 가고 양반 족보만 남았더냐. 그래서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딴 게 다 뭔 의미가 있냐?”라고 일갈했던 가수를 좋아했다.
나는 평소 그리 눈에 띄지 않았던 아이로 혼자 엎드려 서태지 음악을 듣곤 했다. 그 10분의 쉬는 시간을 위해 50분의 수업 시간을 버텼다. 열심히 가르치던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유감이겠지만, 학생의 태반이 그랬다. 그러니까 시대유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교육 활동의 하나로서 교사의 인솔 아래 실시하는 여행. 학생들이 평상시에 접하지 못하는 자연 및 문화를 실지로 보고 들으며 지식을 넓히는 목적의 여행. 그게 수학여행이라 던데, 정말?
거기서 뭘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뭘 했는지는 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모아 둥그렇게 앉혔다. 술을 돌렸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안 마셨다. 그러다 잤으면 딱 좋았을 텐데, 선생은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뭔, 노래?’랄 것도 없이, 시계 방향으로 진행시켰다. 그러니까 열외는 없는 것이다. 선생도 불렀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여긴 숙소였고 방이었고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만 있었다. 정적이 가득 찬 방에는 목소리만 있었다.
선생의 추억 만들어 주기 프로젝트를 어떤 친구들은 반겼고, 또 어떤 친구들은 ‘전부다?’했는데, 나는 이런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자, 시작!”이라는 선생의 신호에 ‘제정신인가?’했는데, 나만 맨 정신이었다. 하나, 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다 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이탈자가 나오길 기도하며 도망칠 궁리를 했다.
때는 바야흐로 2000년대 초반 시절, 그야말로 가요계는 대소몰이의 시대였다. 그 소몰이의 충직한 상놈이 남자고등학생이었는데, 우리 반도 별 수 없었다. SG워너비, 바이브, 먼데이키즈, 박효신, 휘성, 브라운아이즈의 백성들이 정적을 소 울음소리로 채워갔는데, 그건 반장도 주번도 부반장도 볼보이도 마찬가지였다.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는 애들의 테스토스테론 성대는 우리 방을 소들로 점점 채웠고, 내 차례가 왔을 때는 목장이 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노래 부르기 보이콧을 하는 애들은 없었고, 다들 목동이 됐다.
나로서는 소 때문에 도망갈 수 없었고, 일어서기도 힘들었으며, 희박한 산소 때문에 호흡도 막혔다. 아마 질식하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그랬다고 생각한다. 탄소배출권도 없는 소들이 방귀를 뀌어댔기 때문에 질러버렸다. 똥을 싼 놈도 있었다. 바야흐로 테스토스테론의 절정기였다.
남성 호르몬으로 가득 찬 환기되지 않는 방에서, 그러니까 부른다. 빌어먹을 ‘필승’을. 군대도 안 간 서태지가 빨간 머리를 하고 계집애 흉내를 내며 가성으로 부르던 그 노래. 나는 칠판에 손톱을 긁어댔고, 알루미늄 배트를 가지고 유리창을 깼으며, 망나니의 칼을 들고 기어이 소의 모가지를 쳤다. 놀란 눈의 소들이 자욱한 먼지를 피우며 입구를 향해 뛰쳐나갔고, 우리 방은 그야말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제정신인가?’하며 선생도 소들도 목동도 나를 봤던 것 같은데, 나는 맨 정신이었다. 정말 술을 마신 기억은 없다.
지렸다던 친구들이 여행을 다녀온 뒤 나를 섭태지라고 불렀다. 21세기에 20세기의 노래를 부른 나는 시대착오적인 소년이 됐다. 20세기 소년에게 21세기는 유감이다. 그런 유감의 시간은 또 오게 되는데, 몇 해 뒤 나에게 억지로 여장을 시킨 군대에서 이는 반복된다. 군인 아저씨가 되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 거야!”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