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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6/23 23:44:49
Name 뜨거운눈물
Subject [일반] 초대교회는 어떻게 성장했는가?(부제: 복음과 율법의 차이)
지난번 팀켈러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PGR21에 그분의 소식에 대한 글을 접하고 또 이전에도 한국교회에 대한 여러 글을 접하며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아는 만큼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물론 디테일하게 쓰긴 어렵지만 그래도 아는 만큼 쓰고 또 의견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그냥 편안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에 종교지도자들과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로마의 정치인들은 이전에 종교운동처럼 쉽게 와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죽음이 후에 그의 부활을 직접 목경한 12사도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또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아시아 지역과 유럽지역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과 여러 무명의 전도자들을 통해서 로마 제국 곳곳에 복음이 전해지게 됩니다.

사실 로마의 정치인들은 이 예수쟁이들을 유대교에 한 종파로 보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사도행전 17:6 표현에 따르면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라는 표현처럼 복음이 전해지던 곳에는 극적인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극적인 일들은 기적적인 일들을 말하기도하지만 더 큰 기적은 바로 사람이 변화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로마의 황제는 이전에 없었던 교회에 대해 핍박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기독교 즉 교회는 제대로 음지화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로마사회에 대놓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교회에 입교하는 회원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현대 사회처럼 대놓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또 교회의 문턱을 높였다면 당연하게 기독교인은 줄어야하는게 맞지만 기독교는 그 핍박의 시간동안 오히려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고 오히려 자신을 핍박했던 로마를 기독교화 시켰습니다.

왜 초대교회는 그 핍박속에도 성장 할 수 있었을까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을 곁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하기 바빴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환자를 조건없이 돌봤습니다. 물론 이 전염병에 함께 희생된 성도들도 많았지만 이 전염병을 이겨낸 사람들과 성도들은 이 고난의 시간을 지나며 더 단단한 성도가 되어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전염병의 사례는 초대교회에 대한 작은 예일뿐입니다. 베드로사도는 베드로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즉 초대교회 성도들은 먼저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대놓고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질문받는 삶을 살아갔고, 성도들은 그 질문을 받았을 때에 온유와 두려움으로 그때서야 선명한 복음을 드러냈습니다.

여기서 그렇다면 부제인 복음과 율법에 차이에 대해서 말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는 전도는 먼저 복음을 말로 전하고 짦은 시간내에 교회 예배당에 앉게하는 것을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전도를 하지 않았고(할 수 없었고) 그들은 복음을 통해서 변화된 자신의 가치관, 소망, 예배의 대상에 대해서 그들의 내면이 바뀌고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성도들 곁에 살았던 믿지 않는자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만약 초대교회 성도 곁에 살던 사람들이 아 교회는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고 헌금도 내야하는 그러한 곳(율법주의)가 가득한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교회에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이러한 율법에 대해서 환영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를 다니는 한 성도의 삶을 보니 그들의 외형은 바뀐게 없지만 그들의 마음이 무엇인가 달라졌고 그에 따라 그들의 삶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꼈다면 그 사람은 교회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또 그 사람에게 "당신이 믿는 것은 무엇이요"라고 질문 할 수 있었을 것 입니다.

그렇기에 공개적으로 전도 할 수 없었고, 쉽게 교회 회원을 받지 않았던 그 마이너한 교회가 잔멸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율법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복음을 따라 살아가고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제가 아는바에 대해서 좀 글을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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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23/06/24 01:2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율법 : 지켜야 하는것. 구원을 위한 나의 어떠한 행위.
복음 : 올바로 믿는것. 구원은 나의 어떠함이 아닌 오직 은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은 당시 센세이셔널한 가르침이었죠.

율법 : 헌신과 노력의 요구
복음 : 율법의 요구를 폐함과 동시에 율법의 완성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아래 나서, 율법을 지킴. 그래서 복음이 주어지게 되죠.
뜨거운눈물
23/06/24 07:54
수정 아이콘
잘 알고계시네요
복음은 성도의 마음을 변화시켜(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율법을 지키고 싶게 만들죠)
23/06/24 10:07
수정 아이콘
(아래에 인용할 글에서 실천 vs 교리가 본문글에서의 복음 vs 율법과 바로 매칭되는 건 아니긴 하겠지만)
카렌 암스트롱 식으로 말하자면, 그가 역사적으로 파악해본 본래의 '종교'라는 건
신이라는 관념이나 신화 같은 게 상징일 뿐이라는 걸 이해했고, 우리가 무지하다는 걸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후대로 내려오며, 특히 근대에 들어 종교가 이성의 중시나 과학적 사고 같은 것들에 오염되어
신이나 절대진리라는 개념, 교리 같은 것들을 절대시하며 우상숭배를 하는 무언가로 변질 된 것이라고 합니다.

가령 예수는 당시의 유대교라는 폭력에 맞서, 인간의 폭력성에 저항하는 방식의 한 원형을 보인 사람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비슷하게 싯다르타는 당시의 브라만교라는 폭력에 대해 고민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자면 예수를 전쟁신 야훼로, 싯다르타를 신으로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건 그들의 사상을 정반대로, 그들을 가장 모욕적인 방식으로 이용해먹는 것일 테고,
김대중이나 전태일 같은 사람이야말로 예수와 같은 삶, '한 알의 밀알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은' 삶을 산 셈이겠지요.

그런 식의 종교와 독재의 공통점은 "진리 혹은 정답은 이미 주어져있고 모든 사람은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이고
과학적 사고방식과 민주주의의 공통점은 절대진리나 정답 같은 걸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과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인간이 무지하다는 점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카렌 암스트롱이 파악한 본래의 종교와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서로가 공존하기 위해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 등의 최소한의 공리/전제를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자유에 맞기는 사회계약입니다.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게 절대진리라는 게 아니라, 공존을 위해 일단 그렇다고 치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자면 절대진리가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그 자체가 폭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www.ggbn.co.kr/news/articleView_Dana.html?idxno=36819

제가 신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을 무렵, 무척 반가운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위대한 신학자들은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신의 관념이 결코 그 실체에 다다를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종교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는 사실 신비한 무언가를 들여다보기 위한 상징일 뿐입니다. 좋은 신학은 우리가 무지를 인식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공연을 보러 가면 가끔 합주가 막 끝나고 청중의 박수소리가 나오기 직전에 한 박자 정도의 고요함이 콘서트홀에 감돕니다. 아주 강력하고 충만한 순간입니다. 훌륭한 신학은 우리를 바로 이런 순간 속에 살 수 있도록 도와야합니다.

12세기 이슬람 수피 Sufi 철학자가 한 말이 있습니다. 수피교도들은 다른 종교를 아주 존중하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내가 가진 신앙을 지나치게 추앙한 나머지 다른 신앙체계를 못 믿게 되면 안 된다. 그러면 중요한 것을 잃을 것이다. 세상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은 어떤 한 가지 신념으로 한정될 수 없다. 〈코란〉에 보면 ‘어느 쪽을 바라보든, 알라의 존재가 있다.’ 라는 말이 있다. 누구든 자기가 아는 것을 추앙한다. 자신의 신은 본인이 만들어 낸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의 신앙을 추앙하는 것은 스스로를 추앙하는 일인데, 제대로 된 신도는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다른 전통을 싫어하는 것은 무지에 기인한 것이다.”

특히 기독교 신도들은 ‘믿음’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인을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단어는 상당한 의미 변화를 겪었습니다. 원래 영어에서 ‘bileven’(‘믿다’는 의미인 believe의 고어체)의 의미는 ‘사랑하다’였습니다. 독일어 ‘리베 liebe’ 및 라틴어 ‘리비도 libido’와 관련된 단어입니다. 영국 국왕 제임스 1세(1566~1625)의 지시 하에 〈신약성서〉를 번역하면서 원전에서 그리스어 ‘피스티스Pistis, Πίστις’를 ‘bileven’으로 번역한 것이 이 단어가 종교적 믿음과 관련지어진 시초입니다. 그런데 피스티스는 ‘믿다’인 ‘bileven’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그리스도는 ‘믿음’을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교리를 받아들이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헌신과 충심’을 원했던 것입니다. ‘bileven’은 17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교리를 받아들임’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교리는 실천을 위해 존재합니다. 종교는 관념적인 것이 아닙니다. 4세기경 성육신 成肉身 (신적 존재가 인간의 육체에 들어와 머무는 것)으로 개념화된 교리에 대해 성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비우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고통 받는 인류의 종이 되셨다. 성육신은 단순히 성경 속에 있는 교리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받아야한다. 다른 사람이 나 자신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모두가 하나 되어 살아가야한다. 그러지 못하면, 결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깨우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도 황금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란〉에 체계적 신학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아무도 어떤 쪽이 옳은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자기도착적 추론은 논쟁과 파벌만 낳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코란〉에서 ‘신앙심 Faith’이란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고, 고통 받는 이를 돕는 일을 의미합니다. 유대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저에게 랍비 히렐 이야기를 해 주신 분께 제가 “네, 좋은 이야기입니다만, 그럼 개종하겠다는 비非신도는 이제 뭘 믿어야 하지요?”라고 질문을 했더니, 그 분께서 “질문 내용을 보아하니 암스트롱 선생은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셨나봅니다. 랍비 히렐 이야기는 실천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 입니다.”라고 답하시더군요.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실천입니다. 이것은 수영을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수영하는 방법에 대해서 책을 읽는다고 수영하는 법을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종교 역시 이런 종류의 앎인 것입니다.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교를 너무 관념화해서 그 가르침을 실천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실천 없이는 결코 아무것도 깨우칠 수 없습니다. 무작정 현장에 뛰어들어 실천해야합니다. 자비가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세계 여러 종교의 전통들은 지금 우리 사회처럼 폭력이 극성을 부릴 때 생겨났습니다. 당시 현자들은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 삶이 아예 불가능함을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이나 해탈에 가까워지지 못하는 이유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아집, 자기중심적 성향 , 개인적 · 문화적 · 종교적 · 국가적 배타주의를 모두 떨쳐낼 때, 우리는 비로소 종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3/06/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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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저랑 이분의 의견은 많이 다르지만 안타깝게도 이 글보다는 p21님의 댓글이 더 기독교의 진실에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예수가 비판한 율법은 '구약'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구약이 사악하고 신약이 진리인 것이 전혀 아닙니다. 복음은 구약에도 신약에도 존재하며, 당연히 복음도 얼마든지 율법적이게 될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 세속주의자도 얼마든지 율법주의자가 될 수 있겠죠. 예수가 비판한 바리새인은 유대교 구교 신교 가릴 것 없이 구태의연한 종교인과 종교지도자는 물론 자기는 환경을 파괴하는 버릇을 단 하나도 고치지 않고 해외여행 가고 에어콘을 틀면서 남을 정죄하는 환경주의자, 법대로 해 법대로 하면서 정작 자기에게 들이대는 법은 기술적으로 슬그머니 덮어버리는 판검사, 카톨릭이나 개신교의 조직적 비리에는 갓침을 날리면서 정작 자기가 속한 생명공학 업계가 지속적인 테라노스 등의 거짓부렁과 엡스타인 등의 성상납 로비로 무너져가는 모습은 그냥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거나 눈 감아 버리는 (하긴 뭐 과학연구는 박사학위 이후 손 놓았으니까요) 도킨스 같은 사람까지 포함될 것입니다. 복음도 과학도 무신론도 모두 '율법'이 될 수 있는 거지요.

예수가 비판한 것은 특정한 도그마, 내용이 아니라 태도라고 봐야 합니다. 율법이 아닌 복음을 '율법적으로' '현실과 괴리된 잘 다듬어진 말로' 전달하면 그게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절대 진리란 없다'라는 말이 '절대 진리'가 되버리는 순간, 그 조차도 또 하나의 도그마가 되어 버리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서 무너지는게 지금의 상황으로 보이네요.
23/06/2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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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님의 의견에 상당히 긍정하면서 덧붙이면 참고로 말씀하신 내용은 이미 '인간은 머리로 뭐라 주장하든 마음으로는 절대 진리를 바란다.' 라는 80년대의 철학서적에서 많이 훼손된 논리입니다. 뭐라 하든 인간은 절대 진리를 갈구한다는 '사실'이지요. 자세한 것은 '덕의 상실' 보시면 됩니다. 철학이 싫으시다면 심리학자 티모시 윌슨의 '리다이렉트' 보시면 됩니다. 절대 진리와 삶의 의미가 없으면 인간은 불행해진다는 과학적 통계를 묶어놓은 책입니다.
23/06/24 13:55
수정 아이콘
(수정됨) - 'f=ma'나 '야훼나 둘리 같은 건 없다'를 절대진리라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라 그에게 있어 일종의 신앙이 되는 거고,
말씀하신대로 절대진리가 없다는 걸 절대진리로 여기면 그것 자체도 도그마가 된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저는 그래서 특히나 과학에 대해 얘기할 때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 과학의 전제들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이 강조를 했으면 합니다.
과학적 사실이라는 건 '절대진리'가 아니라 '세계는 존재한다' '인간은 세계를 관찰할 수 있다'는 등의 몇 가지 공리/전제를 바탕으로 한 공리계에서 얻어진 잠정적인 결론일 뿐이라는 점을 포함해서요.
'과학도 종교의 하나일 뿐'이라든가 '도킨스 같은 무신론자도 일종의 종교인'이라는 오해 내지 억지가 좀 줄어들기 위해서라도...


- "뭐라 하든 인간은 절대 진리를 갈구한다는 '사실'이지요"
=> 심리학 생물학 뇌과학 등에서 나오는 얘기가,
인간의 뇌는 착시, 착청, 나아가서는 착각과 망상을 쉼없이 만들어내는 기계이며
그건 뇌가 고장나서가 아니라 그게 바로 뇌의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 같습니다.
한편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오늘날의 인류가 된 것은 '허구를 만들어서 함께 믿는 능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류가 지금의 인류인 것은 그런 허구 혹은 망상 때문인 것이고,
그것이 없다면 인류는 더이상 지금의 인류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건 'f=ma' 같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과학자가 그런 과학적인 연구를 하고 싶어지고, 그 과학자에게 국가나 회사의 예산을 지원하고 싶어지는 등의 동기를 포함해서
사람이 무언가를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진리, 삶의 의미, 애국심, 민족애, 가문의 영광, 출세, 칭찬, 행복 등등의 허구/망상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두 명의 남녀를 묶을 때에도 사람들은 천생연분이니 영원한 사랑 같은 허구/망상을 동원하죠.

어쩌면 말씀하시는대로 '절대진리'나 '삶의 의미' 같은 걸 제거하거나
다른 허구/망상으로 대체할 때 문제가 절대로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불로 요리한 음식을 소화하도록 진화해온 현 인류에게 생식만 하게 한다면 문제가 생기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식만이 인류가 가야 할 유일하고 올바른 길이며 절대로 변해서는 안되는 가치라고 믿을 필요까지는 없을 거고,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탐구하는 것 또한 인류의 본능 중 하나일 겁니다.
유발 하라리의 표현대로 '허구의 시스템 속에서 노예로 살 것인가, 허구의 효용을 활용하며 살 것인가'를 선택해볼 여지는 있는 거죠.
23/06/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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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아니요 절대적인 진리가 무엇인지는 상관없습니다. 논리로 열심히 진리란 없다는 걸 설명하려 하시는데 저는 그 말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절대적 진실이 있기를 간구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게 없다 하는 순간 무너져 버리고요. 여기까지는 데이터가 증명한 심리학의 결론입니다. 그걸 허구 혹은 망상이라고 여기면서도 '하지만 허구 아닌 척 해. 그거가 맞아'라고 우기는 것이 지금 세속주의자들이 강권하는 방식의 타협이고요. 그래야 니체처럼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과학의 결론이니 말입니다. 결국 적당히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자는 건데 사실 썩 잘 돠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진리라고 믿는 무언가가 있고, 그걸 나눌 공동체가 있어야 행복하다' 까지는 과학이 이미 밝혀낸 '팩트'이기 때문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심리학 데이터와 싸우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 극우가 다시 컴백하는 거라고 판단 중입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기보다 행복한걸 인간은 더 바라는 법이니까요. 본인이 합리적 과학적 세속주의자이자 무신론자라 하시는 현 대한민국 대통령처럼 종교적인 분도 없지요. 그리고 그 덕분에 행복하시고, 통이 될 정도의 결집력도 얻었고요. 진정 순결한 무신론자이자 이성주의자인 유시민과 유승민과는 다르게 미신과 무속과 타협한 윤통은 나름 매력적이고 대중에게 설득력도 있죠. 세속주의가 현실과 들어맞기 어렵다는 아주 좋은 예입니다. 그야말로 한국을 대표하기에 적합하신 분이죠. 역시나 합리적 무신론자라 말하며 자신의 종교를 인민에게 강권하는 일본과 중국의 리더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https://www.nytimes.com/2017/12/25/opinion/faith-christmas-religion.html
23/06/24 21:37
수정 아이콘
제 글 역시 사람들이 진리라는 게 있기를 바란다는 마찬가지 얘기를 한 건데...;;

"진리라고 믿는 무언가가 있고, 그걸 나눌 공동체가 있어야 행복하다" 라는 말씀을 보니
마침 지금 뇌과학에 관한 김주환교수의 '내면소통'이라는 책에서 읽고 있는 부분과 연결되는 바가 있는 것 같아 퍼옵니다.


환각이 없는 것을 보거나 듣는 것이라면, 망상은 헛것을 믿는 것이다. 부적절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굳은 신념을 지닌 상태가 곧 망상이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신념인 경우가 많다. 망상을 지닌 환자는 아무리 이성적인 논증이나 명백한 반박 증거를 들이대도 절대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이러한 망상은 거짓 정보나 잘못된 정보, 지어낸 이야기, 도그마, 착각, 환상 등에서 비롯된 잘못된 믿음과는 다르다.
조현병 환자가 아닌 일반인도 환각뿐만 아니라 망상도 경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황당한 ‘믿음’을 지녔다고 해서 곧 조현병 환자는 아니다. 예컨대 자신이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가 돌아왔다거나,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이들도 있다. 수면과 각성 사이의 전이에 문제가 생겨서 이러한 환상적인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가설도 있으나, 어쨌든 이들은 ‘환자’가 아니다. 이러한 황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얼핏 보기에 조현병의 양성증상을 보이는 환자들과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
첫째는 이러한 믿음이 이들을 불행하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경험’에 대해 자부심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던 사실을 주변에 자랑스럽게 얘기하며 즐거워하거나,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믿음이 사회생활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지지하고 응원함으로써 더 활발한 인간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보통 조현병 환자의 경우는 망상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사회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 인간관계의 단절이나 심각한 갈등은 망상 환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첫 번째 특징은 두 번째 특징의 결과에 불과하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이 있기에 자신의 경험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즐거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특징은 두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
양성증상을 보이는 환자들과 단순한 망상을 지닌 일반인의 결정적인 차이점은(즉 정신질환 환자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망상이라는 증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망상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느냐에 있다. 감정적으로 별로 괴롭지 않고 인간관계도 별문제 없이 유지하며, 더 나아가 비슷한 망상을 지닌 사람들끼리 동호회를 만든다든지 해서 사회적 지지까지 받는다면 아무리 이상한 망상을 가졌다 해도 적어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아니다. 즉 주변 사람들의 수용 여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타인들의 내부상태가 만들어내는 평균적인 스토리텔링에서 현저하게 벗어난 스토리텔링이 곧 망상이다. 그런데 어떤 스토리텔링이 망상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기준은 그 스토리텔링의 ‘허황됨’이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 가능성’이다. 즉 나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게 된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있으면, 즉 소통 가능성이 있으면 망상조차도 신기하고 귀한 경험이 되어 자랑스러워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인간의 감각기관은 우주의 비밀이나 실체를 아는 데에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얻는 지각정보는 대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실체와는 거리가 먼데, 그 이유는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냥을 하든 농사를 짓든 지구에서 살아가려면 해가 뜨고 진다고 지각하는 것이 지구가 자전한다고 지각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다만 효율성을 위해 진화해온 지각과 추론의 과정에서 예측오류를 최소화하는 메커니즘에 이상이 생긴 경우에 비정상적인 지각(환각)이나 비정상적인 신념(망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역사상 존재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온갖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신념은 망상과 다른가? 다르지 않다. 인간에게 망상과 환각을 객관적으로 구분할 기준이나 방법이 있는가? 전혀 없다. 우주적 진리의 기준에서 보자면 인간의 뇌는 다만 살아남기 위해서 망상과 환각을 생산해내는 정교한 시스템에 불과하다. 망상과 환각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면 그 다수는 정상인 취급을 받게 되는 것뿐이다.
정치나 종교적 신념은 어떠한가?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과학적 진리에 대한 믿음은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신앙과 직결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정치적 신념이든 과학적 신념이든 구분하지 않고 사람들은 자신의 망상이나 환각을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뇌가 수행하는 기본적 임무다. 이러한 신념이 상충할 때 뇌는 상대방을 위협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고 자기 안전을 위해 제거해야 할 ‘미친 사람’이나 ‘악마’로 취급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진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늘 폭력을 불러온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다.
망상은 항상 ‘진리’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확고한 신념을 돌이켜보고 그것의 본질이 모두 망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삶에 등장하는 모든 실체와 진리의 본모습이 사실은 거꾸로 뒤집힌 헛된 꿈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반야심경》이 말하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다.
나아가 뭔가를 ‘진리’라고 확실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자기 자신마저 희생할 준비가 된 사람들은 사실상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준비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라기보다는 폭력이다. 모든 정치 과정에서 폭력을 제거해가는 것이 민주화의 진정한 의미다. 그것을 위해서는 각자 자신이 가진 신념의 본질이 궁극적으로는 망상임을 깨닫고 겸허해져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말미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제자 아드소에게 이런 당부를 남긴다. “진리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을 두려워하라. 그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혹은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기 마련이다. (…) 인류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일인 듯하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한 미친 듯한 집착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 오직 이것만이 진정한 진리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23/06/24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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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신념은 없어야만 한다. 그게 합리적이니까. 하지만 그건 정신건강에 나쁘다고 하니 그냥 있는 척 해라.] 라는 건 그냥 비겁한 타협이고, 뇌는 그런거 안 속는다는 겁니다. 그보다는 진심으로 진리가 없다고 확고하게 외치고 미쳐버린 니체가 더 진실하고 합리적이죠.
23/06/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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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에서나 인용한 글에서나 있는 척 하라고 하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이전 댓글도 그렇고 계속 제 글과는 핀트가 어긋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23/06/25 20:50
수정 아이콘
그게 유발 하라리 주장입니다. '너만의 가짜 (허구)를 만들어라.' 그리고 그게 맞는 척 해라.
23/06/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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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댓글에 썼듯이 하라리는 '허구의 시스템 속에서 노예로 살 것인가, 허구의 효용을 활용하며 살 것인가'라는 식의 말을 하는데,
그 허구의 노예로 살 거냐, 허구가 허구인 걸 아는 상태에서 그걸 이용할 것인가 라는 차이겠지요.
우리는 화폐시스템이나 회사, 시장, 게임아이템 같은 허구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걸 알고 사용합니다.
서로의 합의가 깨지면 아무 의미 없어지는 것이고, 변경될 수 있는 것이라는 걸요.
허구의 노예로 산다는 건 신이나 절대진리라는 등, 그 허구를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그냥 인간이 따라야만 하는 무언가로 여기는 태도일 거구요. (앞에서 제가 그 자체가 폭력일 수도 있을 거라 말씀드린 겁니다)
전자의 태도를 비겁한 타협이라고 여기신다면 화폐를 사용하시는 등의 행위 등, 우리의 온 일상이 비겁한 행동인 거겠죠.
23/06/27 16:19
수정 아이콘
p21 님//

뇌가 허구가 아닌 실체적인 삶의 진실을 원한다는 것이지 무슨 당위덕으로 진리는 있을 수밖에 없다는 개념적인 주장을 하는게 아닙니다. 허수아비 공격을 하시고 계십니다.

실제적 진실의 개념의 화폐를 뇌가 원하지도 않고요
. 그런 것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연구도 없습니다. 돈과 진리는 다릅니다.

기도와 실체적인 삶의 의미, 그리고 이를 나눌 공동체가 있어야 행복하다는 건 뇌과학이지 당위가 아니고요.

실체적 진실이 없다는 본인이 믿고계신 절대적이고 실체적인 진리의 당위를 위해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뇌과학의 데이터와 맞서 싸우시겠다면 그것도 삶의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싸우지 않고 삶의 의미가 가짜지만 있는 척 하는건 비겁한 거겠지요.
23/06/27 18:03
수정 아이콘
Taima 님//
하라리의 말을 곡해하여 '비겁한 타협'을 말씀하시는 게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거겠지요.
그리고 앞의 댓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저는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공리계를 받아들이는 편이고,
따라서 '진리가 없다는 진리'를 믿거나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위에서 김주환교수는 황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혹시 "천동설을 믿던 시절의 인류가 지동설을 받아들이는 현대인보다, 혹은 현대인 중에서도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이 더 스트레스가 덜하고(더 행복하고) 출산률이 높다"라고 한다면,
혹은 "기독교인보다 이슬람교인의 출산률이 높고 힌두교인의 행복도가 더 높다, 근본주의적일수록 더 그렇다"라고 한다면 여기에서 Taima님은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실까요.
23/06/27 18:36
수정 아이콘
p21 님//

하라리와 같은 무종교인보다 기독교인 이슬람인 힌두교인의 출산율이 높고 행복하며 근본적일수록 그렇다. 라고 바꾸시면 뇌과학이 밝혀낸 사실이 됩니다.

물론 종교뿐 아니라 진심으로 믿는, 인생의 의미를 전달하는 스토리라면 무엇이든 된다는 것이 티모시 윌슨 교수의 결론이고, 이는 지금도 다양한 연구를 통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스파게티교나 제다이교도 진심으로 믿으면 비슷한 효과가 가능할겁니다. 스파게티야 하라리처럼 애초에 진심이 아닌게 핵심이지만요.

그리고 인생에 실체적 진실이 있다고 진심으로 믿어야 행복하다고 했지 그게 정통 기독교여야 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걸 왜 과학이 따져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말입니다. 제 의견을 바꿔서 반박하시는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23/06/29 10:12
수정 아이콘
Taima 님//
넷 감사합니다.
23/06/24 11: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전형적인 루터의 신학이고 개신교 신학인데요. 당대의 우상은 훌륭하게 파괴했지만 지금 유용한 논리는 아니라 보입니다. 복음은 (예수가 말한대로) 세상을 잘 다스리려 열심을 가지고 노력하지 않고, 바울서신을 법률 조항처럼 분석하고 공허하게 외치고 듣는 걸로 끝내면 그게 이 시대의 사두개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리새인은 너무 좋은 말입니다. 진정한 바리새인은 예수쟁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처럼 말이죠.)

지금의 기독교는 예수가 얼마나 많이 '세상 정의'를 말했는지, 톨스토이 같은 이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정작 톨스토이는 부활이나 예수의 신성을 너무 좋을대로 해석하긴 했습니다만, 어떤 부분은 지금의 기독교가 놓친 부분을 가졌다 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기를 기도해야 하고, 보통 그렇게 되는 도구는 야훼를 믿는 인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신이 가져다 줄 지언정 그때까지 피나게 노력하며, 패배하면서도 세상에 정의를 구해야 하는 건 신자들의 몫입니다. 그렇지 않는 자들은 맛이 없어진 소금처럼 짓밟힐 따름이죠. 지금의 주류 기성 교회의 모습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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