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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2 16:07
저희 외할아버지도 최근에 6.25 유공자이신게 밝혀져서 올해에서나마 현충원으로 이장되셨습니다.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리신 모든 선친들의 명복을 빕니다.
22/04/22 16:10
매년 시제 때 할아버지 산소에 가 보면
깡촌 중에 깡촌이라 멧돼지들 이하 야생동물들이 말 그대로 깽판을 쳐 놨어서 걱정이었는데 이제 현충원 이장으로 한시름 덜게 될 듯 합니다.
22/04/22 16:21
아마도 ptsd 때문에 아무말 안하셨을겁니다
국방티비 유투브채널에서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들 이야기를 잠깐 다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그때 꿈을 꾼다고 하고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고 하더군요 https://youtu.be/J9wy1GxfIqQ 우리가 이것에 대해서 너무나 외면하고 있기에 안타깝게 느낍니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신 분들에게 감사하며 님 할아버지의 명복을 빕니다
22/04/22 16:27
아마도 그러셨겠지요. 안타깝습니다.
좀만 더 오래 사셨으면 손주가 재롱도 더 떨고 여쭤볼 이야기도 많았을 텐데 ㅠㅠ 영상에서의 할아버님이 저보다 어린 시절에 겪으셨던 악몽을 지금도 꾸신다는 말씀에 정말... 가슴이 아프네요.
22/04/22 21:56
지우고 다시 댓글을 씁니다
휴전 후에 병력유지가 필요해서 계속 군복무를 시켰습니다 그 당시면 또 전쟁을 할거라고 누구라도 생각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장기복무가 가능했던 것은 할아버지께서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살아남으셨기 때문입니다 님이 성인이 되어서 물어본다고 해도 말을 꺼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으셨을겁니다 기록과 생전에 짧게나마 말씀하신거만 기억해주셔도 충분합니다 할아버지를 기억해주고 역사를 기억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님의 할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2/04/22 22:19
말씀 하나하나가 참 가슴 아립니다.
말 못할 사연들을 가족한테도 풀지 못하시고 평생 담아두신 분 심정이 감히 상상도 안 되네요. 정성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22/04/22 16:39
저도 말로나마 이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쳐주신 글쓴이의 할아버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떠나서 지내고 계실 곳에서는 늘 편안하셨으면 합니다.
22/04/22 16:53
장인어른께서 처남과 와이프가 어릴때 돌아가셨는데 유공자셨던걸 저희 결혼하고 몇년 후에 알게되어 현충원으로 나중에야 이장하셨어요
영화에서만 봤었는데 바바바방!~ 발포하는 장면을 실제 보니 생각보다 더 멋지더라구요 그리고 유공자뿐 아니라 배우자의 자리도 준비되어 있던점도 인상적이었고... 말씀하신것처럼 모든 유공자분들의 지위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찾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2/04/22 16:56
좋은글을 접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손들을 평화로운 환경에서 자랄수 있도록 고생하신 할아버님의 희생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2/04/22 18:09
현충원으로 이장도 가능합니다
할머니도 이후에 합장도 가능합니다 저희 집안분 중에서도 돌아가신 이후에 참전용사 확인하셔서 할아버지는 이장하시고 할머니는 한참뒤에 돌아가셔서 합장 했습니다
22/04/22 19:29
저희 할아버지도 6.25 참전용사였는데 살아계실때 그와 관련된 질문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네요.
아버지도 직업 군인으로 36년 복무하셨어 국가유공자시니.. 할아버지(국가유공자)-아버지(국가유공자)... 이렇게 집안에 둘이나 국가유공자가 계시네요. 저는 그냥 건강히 현역 전역했고요.
22/04/22 22:21
저희 외할아버지도 참전용사셨는데 서류상 기록이 애매했나 그래서 외삼촌 두분이 어떻게 해결하셨고 지금은 영천 호국원에 계세요
링크는 어머니가 겪으신 감동이 아무 상관도 없는 저에게까지 퍼져오네요
22/04/23 04:08
제 큰아버지(항렬상 그렇고 나이가 좀 있으심)도 유공자셔서 몇년 전 돌아가셨을 때 경기 이천 호국원으로 가셨네요. 저도 호국원이란 데는 처음 가봐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2/04/23 20:49
돌아가신 제 아버지는 6.25 참전하여 피탄되어 의가사 제대를 했습니다. 동료가 업고 뛰지 않았다면 꼼짝 없이 죽을 상황이었다고 하더군요.
엉덩이 허벅지에 큰 흉터가 있었습니다. 일상 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걷는 게 좀 어색하셨죠. 그래서인지 평생 운전을 안하셨습니다. 상이 군인 신청을 안 한 이유가 6.25가 끝난 후 상이군인들의 패악질이 심해서 그들과 동류로 취급되는게 싫다는 이유였습니다. 어쩌면 그 분들도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불쌍한 분들 일텐데. 너무 억울했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는 반대 때문에 신청하지 못한 상이군인 신청을 하여 결국 보훈처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당시 의료 기록이 다 남아 있더군요.
22/04/23 21:31
전쟁에서도, 전쟁 이후에도 고통받은 한 사람을 다룬 슬픈 영화 한 편 본 느낌이네요. 아버님 어머님 갈등이 이런 몇 글자로 어찌 표현되겠습니까마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가시는 날까지 마음 편하지 못하셨겠네요.
오랜 기간 기록이 남아 있고 열람이 가능하다는 것에서 국가의 힘을 체감합니다. 아버님께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22/04/23 22:45
다른 분들도 국가유공자에 해당되는지 꼭 찾아보세요
우리 할아버지도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 이셨는대 장례식때 나라에서 조기.유골함.그리고 관에 태극기를 감싸서 주었는데 나름 할아버지께 존경의 마음이 들더라구요 이 글을 보니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모든 참전용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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