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음악들이 들려오기 시작하다
어느날부터였을까....
알게 모르게 여성들의 미니홈피 배경음악이 샤방샤방 뿅뿅거리는 묘한 음악들로 바뀌었던 것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리듬에 온갖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치장된, 하지만 세련된 기교를 내세운 그것들은
기존에는 접할 수 없었던, 힙합도 아니고 발라드도 아니고 뉴에이지도 아닌 말 그대로 '묘한 음악'이었다.
'대체 이 음악들은 무엇이길래 이렇게 뭇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이 음악에 대해 알고있으면 나도 뭇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가?'
헛된 기대로 시작된 탐구 끝에 나는 그것들이 '시부야계'라고 불리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어째서 '시부야계'인가?
지역 이름이 붙은 장르들은 보통 해당 장르의 음악가들이 많이 활동했던 지역의 이름을 따르게 된다.
LA 메탈이 그렇고, 그 후에 찾아온 시애틀 얼터너티브도 그랬다.
하지만 시부야계는 조금 다른 경우다.
일본의 버블경제 절정기였던 80년대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신세대들은 신주쿠 시부야 등지에서
즐겁게 문화생활을 즐기다가 결국엔 몹시 화가 나버렸다. 가사만 다르지 맨날 듣는 노래가 거기서 거기라서.
급기야 그들은 기존의 규격화된 메인스트림(아이돌, 펑크락 등)에 식상함을 느끼고 색다른 세계를 개척하게 된다.
그들은 '무엇보다 새롭고 정형화되어있지 않은 음악'을 원하였기에 온갖 장르들을 접목하려는 시도를 하였고
덕분에 라운지, 라틴, 스웨디시팝, 프렌치팝, 재즈, 디스코 등이 혼합된 기이한 음악들이 탄생되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특히나 클럽문화가 발달한 시부야 지역에서 큰 호응을 얻게되어
후에는 통칭 '시부야계(시부야케이)'라고 불리우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시부야계는 시부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된 음악이기 때문에 시부야계라고 불리운다고 보면 된다.
비슷한 개념을 찾으면 '미사리 통기타' 정도일까...
Flipper's Guitar 와 Pizzicato Five
플립퍼스 기타와 피치카토 파이브는 초창기 시부야계의 모든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치카토 파이브는 비주류 음악들(보사노바, 스웨디시 팝 등의 제 3세계 사운드)을 차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1986년 발매된 데뷔앨범 "Pizzicato Five in Action"을 결과물로 내놓는다.
그리고 89년에는 플립퍼스 기타가 같은 방법론의,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간 시도인 "Three Cheers For Outside"를 발표한다.
이러한 사운드 콜라주 방법이 지금의 시부야계 음악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음반들은 어찌보면 시부야계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두 그룹이 시부야계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Pizzicato Five
코니시 야스하루와 노미야 마키의 피치카토 파이브.
그들의 음악은 대중적이면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음악이었다.
어찌보면 가장 댄디하면서도 가장 촌티나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옷입는 것도 참으로 대단히 복고적이었는데 너무나도 복고적이라 오히려 촌티가 나지않을 정도였다.
새로운 음악에 굶주렸던 대중들에게 그들의 음악은 단비와도 같았고 성공은 당연한 것이었다.
일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들은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하게 된다.
앨범 이후 미국에서만 다섯 장의 음반을 발표하는데 이 또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나오미 캠벨 등이 출연한 영화 Unzipped의 사운드 트랙에도 참여하는 등 미국에서도 확고한 기반을 다진다.
이처럼 수 많은 성공을 뒤로하고 피치카토 파이브는 2001년 해체한다.
해체하기 전 마지막으로 98년부터 2001년까지 그들의 히트곡을 집대성한 총 17트랙의 베스트 음반을 발매하고
같은 날,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호화 게스트를 초청한 논스탑 이벤트를 벌이며 정말이지 화려한 끝을 맺는다.
피치카토 파이브의 해체 이후 노미야 마키는 Towa Tei 와 함께 솔로활동을 이어갔으며
최근에는 음악보다는 패션브랜드 런칭이라던지 연기쪽에 집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리고 코니시 야스하루는 '레디메이드'라는 레이블을 설립하여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을 발굴하는 등
그룹 해체 이후에도 시부야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Flipper's Guitar.
그리고 누가 뭐래도 시부야계의 神인 플립퍼스 기타.
플립퍼스 기타라는 이름은 일본 음악 역사상 최고의 천재 집단이라는 수식어로 기록되고 있다.
이들은 아직까지도 시부야계 그룹들의 롤 모델이 되고있는 전설적인 팀이다.
데뷔 초에는 Friends Again과 같은 샤랄라한 분위기의 롤리 팝을 추구하던 플립퍼스 기타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뿅뿅거리는 정신없는 분위기(어렵게 표현하면 사이키델릭)와 흑인음악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만약 주변에서 어떤 여성이 유식함을 뽐내고싶다는 눈빛을 강렬하게 내뿜으면서
'나는 시부야계를 즐겨 듣는데...플립퍼스 기타의 음악들이 좋더라구요'
라고 말한다면 십중팔구는 초기의 음악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한마디 가볍게 대꾸해주자.
'아...그러세요...? 저도 좋아해요. 전 가벼운 초기음반보다는 조금 사이키델릭하고 거친 후기 음악들이 좋던데...'
하지만 플립퍼스 기타는 3년이라는 짧고 불타는 세월을 보낸 후 갑작스레 해체되었다.
보통은 음악적 건해 차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여자 때문에....라는 의견이 아주 유력하다.
플립퍼스 기타의 멤버였던 오야마다 케이고는 그룹해체 이후 코넬리우스(Cornelius)라는 이름으로 음악활동을
재개하는 동시에 Trattoria(이탈리아 말로 '작은 식당'이라는 뜻이라고 한다)라는 이름의 레이블을 설립한다.
Trattoria는 피치카토 파이브,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 등의 인재들이 몸 담으며 시부야계의 중심 레이블이 되었다.
한편 코넬리우스의 음악은 기존의 시부야계 스타일에서 탈피하고 플립퍼스 기타의 후기 성향보다 더욱 진보된
싸이키델릭함을 선보이며 얼터너티브 성향을 띠게되는데...용어가 너무 어려우니 쉽게 말하자면 그의 음악들은
몹시 암울하면서 쉴새없이 띵띵뿅뿅거리고 덕분에 정신 사나우며 귀에 익숙해지기 매우 어려운 음악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솔로 데뷔앨범인 "First Question Award" 는 플립퍼스 기타로서의 후광 덕분인지 아니면
앨범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준 사람들 덕분인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오야마다 케이고는 샵을 차리면서 시부야계를 정의하는 또 하나의 개념인 토탈아트의 기반을 만든다.
음반만 파는게 아니라 옷도 같이 팔고 잡화같은 것들도 디자인 해서 팔고 여튼 이것저것 따로따로 파는게 아니라
다 같이 팔아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말이다.
신인 아티스트의 발굴 뿐만 아니라 토탈아트 개념을 접목시킨 아트워크와 상품 개발 등에도 심혈을 기울인
Trattoria는 시부야계 매니아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빠른 속도로 시장을 확대해나갔고
단시간에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레이블로 성장하였으며, 시부야계를 해외로 수출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시부야계는 특히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는데 시부야계의 주된 소스가 스웨디시 팝, 프렌치 팝 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유럽시장에서 '어설픈 합성'취급을 받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로 인정받은 것은
시부야계가 어쩌다가 이것저것 끼워맞춰서 만든 음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물론 '이것저것 끼워맞춘 키치음악에 불과하다'라는 비판도 적지않게 존재한 것 역시 사실이다)
코넬리우스의 실험적 음악이 대중들과 너무 동떨어져서인지
아니면 기존 시부야계가 가지고있던 한계에 부딫힌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오야마다 케이고가 계획한 설립 10주년 이벤트인지
온갖 추측을 뒤로한 채 코넬리우스는 2002년 Trattoria 레이블의 해체를 선언한다.
하지만 코넬리우스 자신은 계속해서 음악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여전히 시부야계의 대부로 남아있다.
한편 또 다른 멤버인 오자와 겐지는 2003년 학교(동경대 영문학과) 졸업을 마치고 복귀앨범을 발표한다.
그의 음악들은 오야마다 게이고의 그것과는 분위기가 매우 달랐지만 마찬가지로 플립퍼스 기타 시절 못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솔로활동 초창기 음악들은 기존 시부야계의 무작위적인 조합에서 벗어나 보다 감성적이며 정통적인 시도였는데
이는 '네오 시부야계'라 불리우는 근래의 시부야계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앨범들도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CF에도 출연하는 등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던 오자와 겐지였지만
오야마다 케이고와 함께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인걸까, 3집부터는 갑자기 실험적인 음악으로 U-turn 하면서
대중들에게서 멀어진다. 재미있는 점은 오야마다 케이고가 발굴한 최고의 인재이며 Trattoria의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는
카지 히데키의 음악은 거꾸로 오자와 겐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서로의 견해 차이로 그룹을 해체한 그들이지만 어쩌면 서로 닮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후.
피치카토 파이브와 플립퍼스 기타 이후 시부야계는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다.
매니아층이 있었다고는 하나 주로 구매력이 약한 10대 중후반과 20대 초반에 국한되어있었고,
지나치게 지루하거나 지나치게 난해한 곡들로 인해 대중들이 외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금 어깨에 힘들 빼고 느긋하게 가자'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기존의 시부야계가 갖고있던 복잡함과 난해함을 버리고 발랄하면서 동화적이고
귀엽고 깜찍하기까지 한 음악을 하는 그들은 '네오 시부야계'로 불리우기 시작한다.
Havard, Nona Reeves, Swining Popsicle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 '네오 시부야계'는
대중음악을 비판하며 생겨난 시부야계가 오히려 대중음악의 한 축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비주류 음악으로서의 시부야계 음악이 아직 살아 숨쉬고있으며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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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데 할일도 없고 해서 짧은 지식으로나마 끄적거려보았는데
아무래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내용이고 하다보니 혹시나 잘못된 점이 있을까....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누군가 지적해주지 않을까....싶어서 용기내어 올려봅니다.
제 블로그에 올린 원본 글에는 음원 스트리밍도 몇개 링크시켜놨는데
아무래도 pgr에 올린 글에는 엄격한 저작권을 적용시켜야 할 것 같아 자제했어요 -_-;;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도 시부야계 음악이 참 듣기 좋네요.
질리질 않는다고 해야되나..... 여러분도 좋아하시길 바라며....
2줄요약
틀린점 있으면 지적해주세요
좋은 음악 같이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