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MIT 미디어랩에 재직했던 C.A. Hidalgo는 하버드 박사후 연구원 시절, 그의 어드바이저인 R. Hausmann과 함께 각국의 산업 경쟁력과 국부와의 관계를 통계물리적인 관점에서 논한 기념비적인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출판했다 (2021년 12월 21일 현재 2,718회 인용. 참고로 해당 논문의 영향력은 주류 사회학계에서는 제한적이라고 합니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ECI가 높을수록 각 나라의 산업 경쟁력은 그만큼 높아진다. 이는 상식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ECI가 낮다는 것은 재화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거나, 재화가 심각한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재화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다면 시장의 요동에 의해 그 나라 경제가 크게 출렁인다. 재화가 심각한 경쟁에 노출되었다면 언제든 후발 주자들에 의해 따라 잡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예를 들어 원가 경쟁 등)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따라서 ECI가 높을수록 이러한 위험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며, 위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옵션도 그만큼 더 넓어지므로 위기 대처 능력도 좋아진다.
그림 1. 각국의 ECI 랭킹 변화 양상 (출처: https://oec.world/en/profile/country/twn) 그림 1을 보자. 이는 Hidalgo 교수가 만든 ECI를 바탕으로 측정된 각국의 ECI 랭킹 변화도이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IMF 시절, 한국의 ECI 순위는 20위권 밖이었다 (ECI 점수는 0.7). 그렇지만 2010년에는 10위로 도약했고, 2019년에는 5위까지 도약했다 (ECI 점수는 1.9).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공헌한 산업은 전자공학, 산업용 기계, 반도체, 석유화학공업, 제철공업, 그리고 최근에는 제약산업 등으로서, 지난 20년간 한국을 먹여 살린 주요 산업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자동차공업 자체의 ECI는 높은 편이나 최근 5년간 ECI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어 향후 공헌도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1998년의 20위권 밖이라는 낮은 랭킹에서 불과 20년 만에 5위를 기록할 정도로 한국의 ECI가 급성장한 배경은 품목의 다변화와 더불어, 앞서 언급한 산업들의 경쟁력 상승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2000년 이후, 전자공업과 반도체, 석유화학공업의 경쟁력 향상은 한국의 ECI 랭킹 상승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분야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제조업 대국 일본은 30년 넘게 ECI 랭킹 전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1998년 기준 ECI 점수는 1.82, 그리고 2019년 기준 ECI 점수는 2.2를 기록하면서 점수 역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30년 이야기가 자주 회자되지만, 제조 입국으로서 일본의 경쟁력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여전히 살아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지표와 랭킹만 놓고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의 ECI 향상에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은 특히나 자동차, 산업용 기계, 광학장치, 의료장비, 제약산업, 그리고 전자공업 등이다. 다만 지난 5년 간 전자공업의 기여도는 꾸준히 낮아지고 있으며, 특히 컴퓨터와 반도체의 경우 ECI의 성장률 둔화를 넘어, 감소폭이 매년 커지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반도체 산업 몰락과도 일맥상통하는 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림 2. 2019년 기준, 한국의 수출 산업 비중 (출처: https://atlas.cid.harvard.edu/) 한국과 일본의 산업 구조가 유사하기에, ECI 구조 역시 많이 비슷할 것 같지만 사실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그림 2처럼 한국의 수출 산업 분포도를 나타낸 자료를 살펴보면, 집적회로, 자동차, 석유화학, 운송, ICT 등의 순으로 비율 랭킹이 보인다. 그림 3. 2019년 기준, 일본의 수출 산업 비중 (출처: https://atlas.cid.harvard.edu/) 그림 3에서 보듯, 이러한 구성 비율은 일본의 것과 다소 달라 보인다. 일본은 자동차, ICT, 관광업, 집적회로 등이 랭킹을 구성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기계류에서 강세를 보이는 특성은 여전하나, 과거에 큰 영향을 미쳤던 전자공학이나 반도체 관련 구성비는 점점 줄고 있다. Hidalgo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각국의 산업 경쟁력 중 수출 경쟁력은 수출품의 net ECI가 높을수록 더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net ECI는 국내용, 수입 기여도를 제외한, 순수 수출되는 양만 따졌을 경우다. 그림 4. 2019년 기준, 한국의 수출 산업 net ECI 분포 (출처: https://atlas.cid.harvard.edu/) 그림 5. 2019년 기준, 일본의 수출 산업 net ECI 분포 (출처: https://atlas.cid.harvard.edu/) 그림 4처럼 한국의 경우, 수출 성장세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은 여전히 전자공업, 반도체, 자동차 (완성차와 부품 모두), 통신, 배터리, 일부 석유화학 제품 등이다. 첨부한 그림 5는 일본의 경우인데, 일본 역시 자동차와 기계류 쪽에서 꾸준한 수출 성장세가 예상된다. 전자공업 쪽도 견인이 될 수 있으나, 볼륨이 작은 상황이라 영향력 자체는 점차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본이 둘 다 수출 성장세를 더 강하게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 중, 집적회로와 자동차 분야는 각각의 ECI 점수가 정확히 같다 (집적회로 1.43, 자동차 1.21). 규모는 일본이 자동차를, 한국이 집적회로 분야를 우세하게 가져가고 있는 양상이고, 양국 모두 조선업, 석유화학 등에서는 공통적으로 수출 경쟁력이 조금씩 상실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로가 강점을 갖는 분야가 다소 차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양상의 전환을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은 해방 후 지난 70년 가까운 세월의 대부분을 일본의 경제를 모델 삼아 경제 발전 설계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경제 발전은 일본이 제조업에서 부흥을 일궈냈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다시피 했을 정도였고, 그래서 일본이 강세를 가졌던 산업 대부분, 예를 들어 자동차, 전자, 반도체, 석유화학, 조선업 등이 한국에서 시도되었다. 정부가 5개년 계획을 지속적으로 실행하면서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적 환경이 조성되었고, 다양한 산업을 거느린 일본의 그룹사 같은 한국형 재벌 기업들이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세기의 격차가 단 70여 년 만에 거의 없는 수준까지 좁혀진 것은 단순히 정부의 따라 하기 계획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전략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사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의 ECI 기준 산업 경쟁력은 IMF 시절까지만 해도 그다지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해방 직후의 한국과 일본에 비하면, 1998년의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굉장히 많이 줄어든 상태인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ECI 경쟁력 랭킹은 20위권 밖에 있었던 데 반해, 일본은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실제로 한국의 ECI 점수는 일본의 ECI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격차를 많이 줄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에 한계가 있었던 이유는 품목의 다양화 전략이 품목의 경쟁력 전략과 꼭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해방 후,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일본의 제조업을 많이 따라 했고, 실제로 많은 산업을 궤도에 올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생산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 품목 종류는 일본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 사실 더 어려웠던 것은 그렇게 생산한 제품의 글로벌 경쟁력이 일본에 비해 함량 미달이었다는 것이었다. 내수용이면 몰라도, 수출용으로서는 수출 단가를 후려치는 옵션 외에는 일본의 것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방법이 별로 없었다. 즉, 따라가기 전략만 취해서는 그 한계가 여실했다는 것은 단 20년 전의 데이터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이러한 전략에 수정이 가해진 것은 90년대 말, IMF 이후, 반강제적으로 모든 기준이 글로벌 기준으로 바뀐 이후부터였다. 내수 경제가 급격히 쪼그라든 상태에서 어떻게든 외화를 벌어야만 하는 입장이었던 한국은 ECI라는 지표를 기준으로 전략을 세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ECI를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수출 경쟁력 제고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90년대 말 본격적인 IT 산업으로의 전환을 맞아 많은 산업의 형태가 바뀌고 정리되면서 업종이 다양해지고, 각 업종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지게 되었다. 반도체를 위시로, 자동차와 기계공업, 조선과 석유화학공업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었고, 그 과정에는 급격히 경제 규모를 팽창시키던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큰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한국이 생산 기지를 중국으로 많이 이전한 것은 중국에게도 초기에는 플러스 요인이 되었는데, 원래 기반이 약하던 제조업 경쟁력이 기술 이전과 합자 회사 설립 등으로 기틀이 갖춰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90년대 중후반부터 이어진 오랜 불황의 시기 동안 이러한 전환이 잘 이뤄지지는 않았다. 특히 IT 산업으로의 전환에 있어 그들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가졌던 전자공업 분야에서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던 전자회사들의 글로벌 시장에서의 참패가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1980년대 한 때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의 70%까지도 기록했던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의 급격한 침체가 문제였다. 여러 번 일본 반도체 산업의 흥망성쇠를 논한 바 있지만, 사실 일본은 몇 번이나 반도체 산업을 다시 글로벌 수준으로 올려놓을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해외 기업에 대한 투자 개방이 늦었고, 표준 선점 과정에서 대처가 느렸으며, 기술력에 대한 과한 맹신으로 원가 경쟁력 상실을 불러일으킨 것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몰락에 삼연타를 날렸다. 그에 더해 일본 정부의 과한 그리고 빈번한 기업 간 구조조정 간섭은 일본 반도체 산업이 실질적으로는 일본 전체 ECI 전략은 물론, 내수 시장 지배력 확보에서마저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한국이 디지털 전환을 앞세워 ICT 산업의 확장과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주력 엔진으로 장착한 것에 반해,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오히려 시장을 내주고 기술 경쟁에서 밀리면서 산업 지배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 일본에게 있어서는 수출 경쟁력 하나를 잃어버린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산업, 가전 산업, 조선업 등, 일본이 한 때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춤으로써 탑 수준의 ECI를 자랑했던 산업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몰락했거나 탑의 자리를 내 준지 오래되었고, 그나마 자동차와 기계류, 화학과 제약 산업, 의료 장비 산업 등으로 버티고는 있으나, 점차 수출 품목이 줄어들고, 남아 있는 분야마저도 조금씩 경쟁력이 잠식당하게 되면 현재 일본이 지키고 있는 ECI 랭킹 1위는 언제든 뺏길 수 있다. 그림 6. 2019년 기준, 대만의 수출 산업 비중 (출처: https://atlas.cid.harvard.edu/) 사실 글로벌 ECI 랭킹만 놓고 보면 일본 다음은 다름 아닌 대만이다. 특히 그림 1에서 보듯, 대만은 한국보다 먼저 글로벌 상위 랭킹에 일찌감치 진입한 나라이며, 역시 한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수출 주도형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기반으로 꾸준히 국부를 쌓고 있다. 그림 6처럼 대만의 수출 품목의 절대다수는 반도체와 전자공업 쪽이다. 언뜻 보면 품목의 다양화 측면에서는 한국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ECI 계산 공식에는 각 품목의 독자적 경쟁력도 같이 고려되는 것을 생각할 때, 대만의 ECI 경쟁력은 이러한 제한된 품목 각각의 개별 경쟁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2019년 기준, 대만의 수출 의존도가 중국에 대해 43%를 기록하고 있고, 특히나 주력으로 삼고 있는 반도체의 경우,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80%에 육박한다. 따라서 과도한 특정 품목, 특정 국가 의존도는 결국 대만 입장에서는 큰 리스크가 될 수밖에 없다. 원론적으로는 품목의 다변화를 통해 이러한 리스크를 해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만에게 있어 중국이라는 큰 시장이 바로 옆에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기회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위험 요인이 된다. 실제로 대만의 1인당 GDP와 PPP는 꽤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대만의 실제 임금 수준이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만의 통화가 그만큼 저평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대만의 주요 제조 대기업들의 상당수가 하청형 대기업이거나 위탁 생산 기업 형태를 가지고 있는 B2B 업체이기 때문이며, 생산 기지를 대만이 아닌 해외, 특히 중국에 두고 있는 배경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만 입장에서는 이러한 리스크 요인을 잘 알고 있을 것인데, 이를 타개할 방법은 두 가지 전략을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일본이나 독일의 방식처럼, 품목의 다변화를 더 추구하는 것보다, 원래 잘하던 것을 더 잘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TSMC가 파운드리 점유율을 더 높이고 이인자들과의 기술격차를 더 벌리는 전략이 이에 해당한다. 이 전략은 실제로 대만 정부가 그간 취해 오던 산업 경쟁력 확보 전략과도 일맥상통하며, 대만의 작은 내수 시장을 생각해 보면 합리적인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품목이 제한된 산업은 지속적인 불안 요인이 된다. 좁은 범위의 품목 수출 대상국의 경기 변동과 커플링 되어 큰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장기적으로는 옳은 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두 번째 전략은 한국처럼 품목의 다변화와 일부 품목의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략은 시대와 운대가 맞아야 하고 (사실 한국도 여러 면에서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계획 주체가 드라이브하는 정책이 글로벌 기조와도 맞아야 하는 조건이 선결되어야 한다. 거대한 전환이 눈앞에 닥친 시기라면 새로운 산업이 탄생할 수 있고 그 산업을 중심으로 품목의 다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환의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메타버스 같은 방향으로 정말 산업의 전환이 일어날 것이라면, 기존의 반도체 산업은 물론, 이에 더 적극 대응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산업, AR/VR 산업, NFT 산업, 대용량 데이터 처리 산업 등의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태계에서 더 많은 창업과 성장이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대만뿐만 아니라 사실 일본, 한국에 대해서도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대만에 있어서는 더더욱 품목 다변화를 통해 ECI 제고할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이 두 번째 옵션을 잘 실행할 것인지 여부는 외부에서 보았을 때는 불분명하다. 사실 이럴 때 단순히 ECI만 논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밸류 체인 관점에서 그림을 확장해서 논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만은 불운하게도 한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공식적인 주권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GVC에 키 플레이어로 참여할 수 있는 경우는 대부분 대만이 압도적으로 잘하는 분야에 국한된다. 즉, 어쩔 수 없어서 대만의 영향력 (혹은 중국을 생산기지로 두고 있을 경우에는 중국의 영행력까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이 GVC 상에서 새롭게 출범시킨 산업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취할 노력은 다른 평범한 주권국의 노력에 비해 몇 배로 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대만은 첫 번째 옵션을 더 강화하는 방법을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래서 많은 대만 언론이 마냥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중장기 계획을 정립하는 것은 대만에게 결코 쉬운 상황이 아니다. 한국이나 일본, 대만 모두 최근 출산율의 격감을 겪고 있고, 사회의 노화 속도가 빨라져 경제 성장을 내수에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반드시 수출 경쟁력을 보존, 확장해야 하고, 끊임없이 신산업을 발굴하고 육성시켜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각자 잘하는 분야도 있지만, 많은 분야에서 서로가 경쟁의 상대가 되며, 경쟁이 붙은 시장은 레드오션으로 빨리 진화하게 되므로 서로에 대한 우위 역시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과거의 영광은 오늘의 씁쓸함이 될 수 있고, 과거의 언더독은 내일의 탑독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자국의 산업 경쟁력과 ECI 강화를 위해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 되겠지만, 사실 적절한 경쟁은 각국에게는 ECI의 마지노선을 지키는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산업적 경쟁력만 생각하기에는 각국이 처한 국제 정치적 상황이 쉽지 않다. 특히나 미-중 간의 첨예한 갈등은 세 나라 모두에게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고, 특히나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과 대만에게는 더 무거운 압박이기도 하다. 한국 입장에서 이러한 상황 속에 국가의 산업 경쟁력을 보존하는 방법은 대만, 일본과 오버랩되는 산업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보존하고, 나아가 더 높이는 것에 치중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더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산업의 전환기는 자주는 아니지만 분명한 웨이브를 형성하며 찾아오고, 그 웨이브를 누가 먼저 과감하게 올라타 새로운 분야를 만들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지가 앞으로의 산업 다양성을 확대하고, 경쟁력을 높이느냐로 연결된다. 한국이 IMF 이후, 맞춤 맞게 IT 산업으로의 과감한 전환을 통해 ECI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던 것 같은 과정이 2020년 이후, 다시 재현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과연 어떤 산업에서 일지, 어떤 형태일지,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를 다각도에서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기존 산업과의 영향을 정량화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net ECI를 추정하고 정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다변화를 추구하되, 특정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경우, 그 산업의 출구 전략을 미리 수립하고 있어야 한다. 전략가들이 끊임없이 숫자를 가지고 다변수 함수 게임을 하고 있어야 하고, 정책입안자들은 레거시 산업과 미래 산업의 접점을 만들 것인지, 아예 disruptive 한 방향으로 정책을 준비할 것인지 미리미리 법안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아마도 제일 민감한 영역은 기업들이 될 텐데, 거대한 대기업이 빠른 속도로 변하는 웨이브에 올라타는 것보다, 스타트업들이 변혁에 몸을 맞추는 것이 더 빠를 것이므로, 스타트업들의 플레이그라운드가 더 넓어져야 할 것이다. 2019년의 일본, 대만, 한국 ECI 랭킹은 1, 2, 5위로서 글로벌 탑 티어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세 나라가 2030년, 2040년이 되었을 때, ECI 점수를 중국에게 역전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 그리고 여전히 랭킹 10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이 랭킹 20위권 밖에 있던 것이 불과 20여 년 전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마도 한국이나 대만에 앞서 일본이 먼저 역전당할 수 있고, 한국과 대만도 언제든 역전당할 수 있다. 역전당하는 추세 자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한-두 세대 이후에도 한국은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여전히 글로벌 제조 입국의 지위를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산업 경쟁력 보존과 별개로, 새로운 산업의 초기 진입 전략 수립이 필요하고, 필요하다면 현재의 관련 제도를 모두 뜯어고쳐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규제는 철폐하고 신산업 진입이나 창업을 위한 학력이나 자격 요건 등의 장벽도 철폐해야 할 것이다. 대학은 새로운 산업의 요람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기업과 대학의 협업이 제도화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방의 대규모 산업단지의 트랜스폼 계획이 필요하고, RE100 시대에 대비한 물류와 신재생에너지 마이크로 그리드 결합체의 최적화 계획도 필요하다. 실로 많은 계산과 시뮬레이션이 필요하고, 더 많은 데이터와 논의가 필요하다. 전략가들, 정책입안자들, 계획 설계자들이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