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이 벌써 20주년을 맞이했네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2002년도에 프로게이머 랭킹 정보를 찾아보다가 가입한 PGR이었는데 정말 시간이 빨리 간 것 같습니다.
저에게 PGR은 참 신기한 커뮤니티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다음 카페(소위 '드랍동' 등 개인 팬카페 위주)로 활동하던 스타크래프트 팬이었고, 스타크래프트 관련 자료를 찾다가 랭킹 점수 등 정리가 잘된 자료를 보고 PGR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평균 연령대가 높은(!) 것과 정제된 분위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제게 가장 큰 인상을 주었던 것은 PGR21의 공지사항이었습니다.
[10대들은 스타때문에 쓰는 총시간을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중략)10대의 시간가치는 20대의 10배쯤 되리라 생각합니다.]
로 시작하는, 큰 형님의 따끔한 충고와도 같았던 공지사항이 아직도 뇌리에 깊게 남아있습니다.
우습지만 당시 공부와 진학 등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저에게 큰 울림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 사이트에 되도록 적게 오라는 게임사이트 공지사항이라니, 얼마나 인상적입니까.
[pgr21에는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은 안왔으면 좋겠습니다.법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 안주면서 스타 같이 좋아 할수있는분이면 좋겠습니다.]
라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그 당시 PGR은 인터넷 커뮤니티 같지 않게 따뜻하고 인간적인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다른 일반적인 커뮤니티에 비해 선비같다고 불리는 PGR이지만요.
(저는 이 '선비같은' 분위기가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고 PGR만의 특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음 규제는 풀렸으면 좋겠지만요)
대학교 때 자서전 격의 셀프 문집을 만드는 과제가 있었는데, '내 인생에 영향을 준 글'이라는 주제로 PGR21의 그 공지사항을 스크랩해서 수록했던 기억이 납니다.
게임사이트 공지사항이 인생의 도움말이라니, 교수님도 의아하셨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20년동안 PGR을 눈팅해오고 있습니다.
글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제가 아는 소소한 유머들을 유머게시판에서 공유하기도 했고, 인생의 고민들을 질문 게시판에서 물어보기도 했으며,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의견과 취미생활들을 자유게시판에서 나누기도 했었습니다.
저에게 PGR은 "세상읽기"의 통로였습니다.
다른 커뮤니티를 특별히 하지 않기에,인터넷에서 터지는 이슈들과 유머글들을 가장 먼저 보는 곳이 PGR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루를 마무리 할 때 유게와 스연게를 훑어보며 오늘 세상에 이런일이 있었구나를 알아가고 있죠.
또 게시판의 양질의 좋은 글들을 써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많은 감명 깊은 글들을 PGR에서 읽었습니다. 일일히 다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정도일 것 같습니다.
제가 다 기억하지는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PGR도 지금까지 많은 우여곡절과 분란이 있었다고는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모습의 PGR도 좋고 많은 정보를 얻고, 또 나누고 있습니다.
또 제가 하는 유일한 인터넷 커뮤니티이자 가장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PGR이 문닫는 일 없이 계속 꾸준히 이어졌으면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분인 엄재경 선생님께서 마지막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고 저는 이말을 참 좋아합니다.
"친구란 뭐냐? 같이 노는 사람들이 친구다. 그게 친구가 하는 일이다."
PGRer 친구 여러분들과 같이 놀 수 있어서 즐거웠고, 앞으로도 같이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