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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11/08 00:29:41
Name BaekGomToss
Subject [일반] 대충 훑어보는 1970년까지의 북한의 역사.
대충 살펴보는 북한의 역사.



우선 북한의 역사는 그다지 배우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실체적으로 접근한다면, 저기 국정원 직원들과 설렁탕 한 그릇 말아먹으며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그렇다고 남한에서 일반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이건 뭐 근본도 없는 독재국가입니다 -_-...

저도 뭐 역사 관련해서는 별로 아는바가 없습니다만, 그럭저럭 열심히 정리해본결과....... 나름 기초적인 부분이 보이더군요.



일단 뭐 1945년으로 흘러가자면, 남한은 미 군정이, 북한은 소련군이 점령하는 시대가 돌입합니다. 광복 직후 남과 북에 모두 '인민위원회'라는 자치적인 회의기구가 들어서는데, 어느정도 따지자면 지방자치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소련과 미국 모두 둘 다 반대하다가, 소련은 돌연 찬성입장을 나타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우선적으로 김일성이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리고 인민위원회 자체가 공산당에 그닥 반대하는 성향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새력을 이용하면 38선 이남도 쉽게 공산화가 가능할꺼라는 판단이였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각각 독립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비슷하게 흐릅니다.

1948년 각 각 정부수립이 끝나고, 뭔가 하기도 전에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물론 북한의 남침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북한은 남한의 전투 능력과 미국이 남한에 대한 태도등을 봤을때에는, 말 그대로 '1주일' 정도면은 함락 가능할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미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국지전은 계속 일어나는 판에, 전면적 침공해서 1~2주안에 점령한다고 한다면 국제사회에서도 그렇게 크게 문제가 나지 않을꺼란 판단이지요. 뭐 멀리 볼거없이 최근에 그루지아가 취한 태도랑 비슷합니다. 물론 둘 다 상상과는 다른 현실의 공포를 맛 보게 되죠. -_-....


여하튼 전쟁은 53년에 끝나지만, 사실상 51년 이후로는 휴전선 인근에서만 전쟁이 치뤄지기 때문에, 인력 활용도 어느정도 여유가 생깁니다. 물론 미국의 엄청난 폭격능력으로 인해서 사실상 온 국토가 전쟁 상태였다는건 암울했지만 말이죠.

54년부터 56년까지는 '전후복구 3개년' 계획으로 계속적으로 국민들을 토닥거립니다. 이미 모든게 파괴된 마당이기에 국민적으로 크게 불만 없이 전후 복구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마칩니다. 계속 땅굴파면서 살 수 없고, 하라는 데로 하면 집도 준다는데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또한 소련이나 중국의 지원도 전폭적이였던 마당에, 꽤나 성공적인 복구를 이룩합니다.

1956년 정치적으로나 북한의 역사적으로 큰 문제가 일어나는데, 이때 스탈린이 죽으면서 소련에서는 스탈린 격하운동이 일어나고, 이를 보고서는 비슷한 독재자의 이미지인 김일성 격하 움직임이 소련파와 중공파에게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북한 공산당 내부에는 총 4개의 파벌이 있는데, 김일성 수하의 만주파와 일제시대부터 북한지역에서 공산당 활동을 한 갑산파, 그리고 중국의 지원을 받은 중공파와 소련 출신의 소련파가 있었습니다. 한국전 이전에는 남로당까지 있었지만 남로당은 아주 제대로 소멸했죠.

그런데 소련파와 중공파가 56년 8월에 김일성을 대 놓고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를 미리 파악한 김일성의 계획에 의해서 실패하게 되고, 소련파와 중공파의 지도부들을 구금합니다. 물론 그 다음날, 이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유유히 중국으로 빠져나갑니다. -_-.....

북한을 지원하다가 이러한 사태에 경악한 소련과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점차 줄입니다. 이때부터 북한이 슬슬 주체사상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남의 지원 받으며 눈치받으며 사니 그냥 당당하게 혼자 살자'. 라는 외교 노선으로 말이죠. 물론 사실 남의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자존심 안 상하려고 내놓은 구호겠지만 여하튼 그렇습니다.

56년 11월 제 3차 당대회 (북한에서 전당대회란 거의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입니다. 역사상으로 5번의 전당대회밖에 없었죠.)가 끝나고, 북한의 지도부는 각 지역의 공장과 인민농장으로 내려가서 직접 진두지휘를 합니다. 당시 노동자들도 일제 시대와 한국전을 모두 겪은 상태였기 때문에 의욕이 넘칠수 밖에 없었고, 거기다가 성공적인 전후복구사업으로 북한 지도부에 협조적인 상태였습니다. 문제는, '그냥 이대로 살고 싶은' 중간 지도부 (뭐 공장장..과 같은..) 들이였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직접 내려가서 생산성 향상을 진두 지휘한 결과...

57년에 국가적으로 목표로 잡은 생산량의 거의 2배 이상의 생산량을 거둡니다 -_-......

문제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생산량에 오히려 북한 정부는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정치체계는 사회주의이고 사회주의 체제의 경제는 계획경제입니다. 계획과 약간의 차이면 몰라도 대략 난감한 차이가 나게 되면, 다음의 계획은 수립이 어렵게 됩니다.

또한 사람이야 뭐 굴리면 되겠지만, 공장에 사람만 있는게 아니고 기계들도 있고, 전력도 있고 이렇게 되는데, 이렇게 오버스팩하게 되면 기계들이나 기타 자원들은 점점 소모됩니다. 즉, 잘 돌아갈듯 하면서도 결국 문제가 생기게 되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내세운 운동이...'천리마'운동입니다. 기계가 힘들어 하면, 사람이 때우면 되지 않느냐. 세벽별 보고 출근하고 저녁 별 보고 퇴근하라...뭐 이렇게 슬슬 잘못되게 나갑니다 -_-..

이렇게 '너무나 열심히' 달린 덕택에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있었던 제 1차 5개년 계획은 4년만에 조기 달성하게 됩니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이 거의 끊긴 시점에서 이러한 달성은 북한 정부에게 '우린 할 수 있다' 라고 자부심을 가지게 합니다. 이에 힘을 얻고 북한정부는 제 2차 7개년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거기다가 1960년대 초반부터 '중-소 국경분쟁'이 일어나게 되면서 중국이랑 소련이 북한을 자기편으로 만드려고 이것저것 도움을 주게 됩니다. 초반에는 엄청 희망적이였죠.

하지만 조기 달성한 1차 계획과는 다르게 2차 계획은 1961년부터 1970년에 가서야 마무리 되는데 이와같은 이유는 몇몇 요인이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베트남전쟁에 발발로 인한 정세 불안, 푸에블로호 사태, 그리고 미국 정찰기 격추 상태가 있었고 군부의 무리한 충성인지 김정일이 전면에 나선건지 아직 정확하게 확인은 안된 각종 간첩 침투 사태등으로 국방력 강화에 나서면서 그만큼 경제 투자에 돌아갈 돈이 줄어들게 됩니다.

또한 아까 말했던 소련파와 중공파의 씨가 말랐던 56년 종파사태에 이후 잠잠하던 갑산파가 일을 내려고 하는데 이게 박금철 사건입니다. 물론 이미 막후에서 후계자 노릇을 하던 김정일이 이를 알아채고선 막아냈고, 갑산파가 하필 과학기술쪽 인맥에 많았기 때문에 80년대가 되기 전까지 과학 기술에 대한 지원이 엄청 줄어듭니다. 뭐 스스로 무덤을 판거죠. 여하튼 마지막 남은 세력까지 정리하며 김일성은 1970년 제 4차 당대회에서 자신의 독제체제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됩니다.

대충 여기까지가 1970년 이전에 나름 주절거려본 겁니다 -0-...사실 뭐 실제적인 자료도 거의 없다시피하고......그냥 저도 대학 수업들 들어가면서 이것저것 끼워맞추다 시피 한것들입니다. 저보다 북한학에 대해서 조금 전문적인 분들이 계셔서 좀 보충할 부분 있으면 해주셨다면 좋겠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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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08 00:45
수정 아이콘
저도 북한에 관한 수업을 듣는데요 수업에서 들은 새로운 사실들 알려드릴께요
1. 김정일은 엄청난 수재이며 노력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정일은 그냥 국방위원장된 걸로 아시는데 그게 아닙니다. 똑똑하며 엄청난 노력파라서 경쟁을 뚫고 김일성의 후계자가 됬다고 하네요
2. 베트남 전쟁시 북한은 베트남에게 공군을 지원해서 미국과 전투를 벌였다. 한국전쟁시에 미군의 공군에 심하게 털려서 공군을 키워서 베트남전쟁때 바견해줬다네요. 그 외에도 미군역사상의 2~3번의 큰 치욕을 북한이 선물해주었습니다.
3. 맥아더장군은 우리나라포함 중국(확실하지는 않네요)에 핵을 떨구려 했었다. 트루먼 대통령에게 건의했으나 실패했구요 또한 맥아더의 고집으로 한국전쟁이 좀 더 오래 끌린 점도 있습니다.
08/11/08 01:15
수정 아이콘
저는 맥아더장군이 주요 군수기지나 주요 이동경로(다리등) 폭격을 요청했는데 거절당해서 중공침입이 용이해졌고 장기화 됐다고 들은바가 있습니다.
BaekGomToss
08/11/08 01:20
수정 아이콘
1. 김정일은 엄청난 수재이며 노력파가 맞습니다. 사실 60년대 초반부터 거의 후계자 역할을 하기 했는데..그때가 20대 였죠 -_-..

2. 베트남전쟁때 북한에서 전투기 조종사들을 파견했습니다. 전투기는 물론 북베트남 소속이였구요. 미군측에서는 최소한 5대 이상의 전투기가 북한군 조종사에 의해 격추된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3. 핵폭탄과 같은 각종 다양한 핵무기 투하를 주장했습니다. 물론.. -0-.. 거절되었구요. 미군의 폭격기 부대는 북한의 산업지대와 도시지역에 융단폭격을 제외하고는 별로 할일이 없었습니다. 51년 이후에는요 ;;
BaekGomToss
08/11/08 01:24
수정 아이콘
그리고 미국에서 국제적으로 유일하게 '사과'한건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입니다. -_-.. 물론 납북된 승무원들이 돌아온 이후 부인하긴 했지만, 여하튼 푸에블로호 사건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침략에 대해 사과한 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 -0-....

그 이후 미국의 굴욕은 EC-121 정찰기 격추사건이 있었죠. 그 전까진 북한이 전투기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할꺼라고 상상조차 못했는데...평양에 있던 MiG-21을 분해해서 원산까지 가져온 다음에 조립하고...그냥 논에서(-_-...) 이륙시켜서 미군의 전투기가 오기도 전에 격추시키고 돌아가는 사건... -0-... U-2 격추사건이후 최대 굴욕으로 남은 사건이였습니다...
루미너스
08/11/08 02:30
수정 아이콘
김정일이 엄청난 노력파인 것은, 후계자로 내정된 60년대 후반, 70 년대 초부터 수업받아 90 년대 중반에 정권을 잡았다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요. 무려 30 년간-_-;;; 수업을 받은 셈이니, 엄청 나겠지요? 그리고 맥아더 장군은,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영웅이 아닙니다. 철저한 메카시즘으로 무장된 미국의 극우인사였고, 한때 대통령 후보이기도 했지요. 인민, 군인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폭격도 그의 작품이고, 위 말씀처럼 핵을 쓸 것도 건의하였으나 기각. 뭐 어쨌든... 개인적으로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장군상이 그리 탐탁치 많은 않더구만요. 흘흘.
nicewing
08/11/08 10:57
수정 아이콘
원래 중국공산당군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만주에도 폭격을 해야 했죠.

중국공산당이 들어오는 길이며 보급루트이기도 하며

일본이 만주국을 세우고 도망가면서 남긴 산업 단지들이 많았기 때문에

당시 중국에서는 제일 공업이 발전한 지대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만주를 폭격하면 중국이 입는 피해도 컸겠죠.

미국 군부는 만주 폭격을 주장했지만,

만주를 폭격할 경우 전쟁의 범위가 확대되고, 만주에 인접한 소련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반대해서 무산된 걸로 압니다.

맥아더는 나중에 핵까지 쓰자고 주장하니, 대통령이 감당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자른거죠.
A certain romance
08/11/08 11:02
수정 아이콘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에 관해서 맥아더는 몰랐던것 같습니다.
그냥 위력 큰 폭탄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네요.
밑힌자
08/11/08 11:15
수정 아이콘
A certain romance님// 정말인가요?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혹시 어떤 자료에서 나온 것인지 명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 지역에 방사능이 생겨서 천년만년 못 넘어오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언급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 정도로 악당은 아니었나 보군요.
BaekGomToss
08/11/08 12:10
수정 아이콘
밑힌자님// 방사능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건 핵폭탄 개발 10여년 후인 55년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핵폭탄 폭발 장면을 근처에 모여서 참관하고 (-_-..) 핵폭탄 투하 실험 지역에서 영화도 찍고 (그리고 배우, 스텝 모두 사망..) 그랬었죠. 방사능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었던로 알고 있습니다.
마법사소년
08/11/08 12:43
수정 아이콘
저도 맥아더가 한반도 에 방사능으로 뒤덮힌 휴전선을 설정해서 중공군이 오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고 알고있습니다. 맥아더는 알았을것 같은데요.
밑힌자
08/11/08 16:59
수정 아이콘
BaekGomToss님// 미국에서는 원폭 직후부터 에너지부 관련 부서에서 방사능과 유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원폭상해조사위원회가 47년 설립되었습니다. 어쩌면 예상했던 것보다 파괴력이 확연하게 적었기 때문에 시작한 연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물론 연구 결과는 민간에 공개되지 않았죠. 영화를 찍다가 사망했던 것은 국가에서 그 지역이 핵실험 지역임을 명시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물론 민간인들은 방사능의 폐혜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군 관련자들은 관심만 있었다면 이에 대해 알 수 있었지 않을까 합니다.
밑힌자
08/11/08 17:22
수정 아이콘
아마 맥아더 방사능설은 아마 이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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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05년 7월호 [발굴 비화]트루먼 행정부, 6·25 이튿날부터 원폭 투하 검토
'美 비밀문서로 본 6·25전쟁 원자탄 사용계획 '
(이흥환 미국 KISON 연구원)
: 잠시 나중의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유엔군 총사령관직에서 해임되어 자연인으로 돌아와 있던 맥아더는 1952년 12월17일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나선 아이젠하워에게 자신이 염두에 두었던 한국에서의 핵무기 사용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만주 진입지역에 30~50개의 원자탄을 떨어뜨린다. 우리 뒤로 동해에서 서해에 이르기까지 코발트 방사선 막을 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소 60년 동안 한반도 내에는 북쪽에서 쳐내려올 땅이 사라지므로 소련으로서는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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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자력을 연구하면서 필연적으로 연계될 수 밖에 없는 방사선의 영향력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 더 의아한 일이기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잔류 방사능에 대한 연구이니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위에 언급된 것처럼 코발트를 흘려보낸다느니 하는 말은 좀 아닌 듯 싶습니다. 공식적으로 코발트탄은 만들어진 적이 없고, 시제품이 만들어진 것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원폭을 투하한 그해 9월부터 미일 합동으로 피폭자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문제는 63년에 와서야 지상 핵실험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뭘 하고 있었느냐, 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는데... 어쩌면 일반적인 상식처럼, 잔류방사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정말로 40년 정도밖에 안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저도 원 사료를 찾아본지가 꽤 되어서 제가 맞는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BaekGomToss
08/11/08 17:53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방사능과 방사선에 관련해서는 영향을 미쳤겠지만 잔류 방사능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몰랐다는게 거의 정답에 근접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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