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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1 00:11
유게에서 잠깐 봤는데, 고독사 관련 다큐영상이나 짤도 꽤 올라오기도 하고, 거기서 크게 벗어나나 싶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뭐 반발이 심했던 이유도 나름대로 납득은 가긴 합니다만은. 유머게시판이 유머만 올리는 곳은 아니지만(뭐 이것도 유머만 올리는게 FM이라고 착각하는분들이 종종 있지만) 사람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건 좀 예민해질수 있겠죠.
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살이란 실제가 아닌 컨텐츠에서 표현하는걸로 접하게 되니까 막연히 생각하는 이미지랑 다른 부분이 있겠죠. 저도 자살자의 마지막을 서커스 바라보듯이 보는게 아니라, 평소 자살에 대해 막연히 생각하던 이미지와 좀 다른부분을 느꼈고 한번쯤 보는게 나빠보이지는 않아서 자게에 다시 올려주신거도 반갑네요.
21/03/21 00:30
저는 완전히 합리적인 주체가 있다면 삶에 아예 태어나지 않는 쪽을 택할거라 생각합니다. 삶은 어쨌든 근본적으론 비극이에요. 계속 살아가려면 그걸 망각하게하는 환상/착각들이 필수. 속는걸 알면서도 빠져들어야만 하는게 삶의 근본조건.
21/03/21 00:41
자살 징후가 없어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고 정말로 심각한 사안이 아님에도 자살하는 사람도 있죠. 그런데 그건 ‘남’ 기준이구요.
내가 다른 사람 볼 때 그 사람 마음을 읽지 못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똑같죠. 자살을 이해한다느니 자살은 하면 안 된다느니 자살이라는 답안지를 뇌 안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봤자 아무런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나오는 것처럼 저는 자살도 자신 스스로의 답안을 낸 것이라 생각하구요.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저장된 웹사이트가서 글쓴 분이 쓴 것처럼 자살 관련 글 읽기도 하는데 사실 대중적으로 공감이 안 되어지는 주제라 민감하죠.
21/03/21 01:00
본문 내용이 너무 사실과 달라서 지적합니다. 일단 자살하는 사람 중에 유서를 쓰는 사람보다 안 쓰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니까 유서 내용은 자살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죠. 대부분 자살에는 자살에 선행하는 자살 징후가 있습니다. 그 징후라는 것이 복잡하고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자살하고 싶다”, “살기 싫다” 등등 자살에 대한 암시를 하는 말을 하거나 우울해하는 등 알아차리기 비교적 쉬운 것들입니다. 나도 알아차리고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21/03/21 12:30
굳이 적지는 않았지만 본문을 쓸때 스스로 전제하고 있던 생각은 "대다수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살하고싶다던가 살기싫다, 우울하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산다" 라는 내용입니다. 제가 피지알 나이평균에 비하면 아주 어린편이라 주변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말이 험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는 자살 징후 목록을 보면서 "이게 자살 징후라면 나포함 내 주변에 자살위험자가 아닌사람이 없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본문이 의도한 바는 자살 위험자랑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 명확한 경계를 두어 자살 위험자가 아닌것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함부로 가벼운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름대로의 자기딴의 심각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조언을 해주고 관심을 보여주자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자살에 선행하는 징후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너무 흔해지다보니 선행징후를 보여주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사람은 자살할거야 or 그렇지 않을거야" 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심해졌는데, 그냥 선행하는 징후를 보여주는 모든 이들을 잠재적인 자살 가능자로 봐야한다는 생각에 있었습니다. (제 주변미터에만 의하면 대부분이 선행징후를 가지고 있으므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 자살 가능자이기에 애초에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이야기가 나온거구요.) 유서에 관해서는 말씀하신 바가 맞습니다. 저도 유서내용만을 보고 모든걸 일반화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논설문보다는 수필적인 성격을 더 띈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잘 아시는 분같아서 하나만 여쭙니다. 관련된 내용에 흥미가 생겨서 자살에 관한 검증된 사실들을 더 찾아보고 싶은데 어떤 소스로 검색해야하는건가요? 통계적 팩트만 찾는게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네요. ㅠ
21/03/21 01:08
합리적이고 사유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해도
가벼운 마실 느낌으로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수라 굳이 모두가 아는, 언젠가 죽게 될거라는 명제 자체에 대해 그닥 되짚고 싶어하지 않을것 같습니다 일단 저도 호기심에 이끌려 클릭하긴 했지만 유서 내용 자체는 읽게되질 않네요
21/03/21 01:40
형사정책연구원에서 일하시는 박형민 박사의 박사논문이고, 이를 수정 보완한 것이 "자살, 차악의 선택 - 자살의 성찰성과 소통 지향성"이란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단행본이 나왔을 때, 여러 신문들에서 인터뷰하셨던 기사들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자살, 차악의 선택 - 자살의 성찰성과 소통 지향성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042144 인터뷰 기사 - 자살은 ‘소통’을 위한 마지막 몸짓? http://www.hani.co.kr/arti/PRINT/421902.html / 2010-05-21 "지은이는 자살을 실패한 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나 정신질환자의 우발적 행위로 보는 통념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언론도 자살을 선정적으로 다루고 있고, 학계조차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에 근거하기보다는 철학적이고 사변적으로 논의하면서 자살을 선험적 사회문제로, 자연스럽지 않은 비정상으로, 그저 예방하고 관리하고 처리해야 할 것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소통적 자살 개념에 따르면, 자살은 단순한 삶의 포기가 아니라 삶의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성찰적으로 구성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요 전략이요 기획일 수 있다. 자살자들은 자살을 결코 선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현실의 고달픈 삶이 최악이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 몸짓으로 자살을 선택할 뿐이다. 말하자면 ‘차악의 선택’이다."
21/03/21 06:48
링크속 유서들을 읽었는데 말씀하신 합리적이라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고 오히려 폭풍처럼 몰아치는 슬픔, 분노, 원망, 체념들이 글속에 진하게 묻어나는데요? 굉장히 감정적인 글들이 태반인데 어디를 보고 합리적이라고 느끼신건지 궁금합니다.
21/03/21 12:13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써서 결국 합리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게된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아무래도 제가 생각하는 합리적임이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음" 인 것 같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1/03/21 13:01
제 개인적인 기준에서 합리적이란, 무엇을 실행이나 선택함에 있어서 얻는 이득이 그렇지 않을 시의 기회비용이나 손해에 비해 클 때를 말합니다. 그 관점에서 유서들을 읽다보니 ? 이란 생각이 들었고요.
아무튼 써주신 글은 잘읽었고 잠시나마 죽음에 대해 생각할만한 기회가되었던것 같습니다. 저의 10대 시절도 오랜만에 떠올리게 되었고요. 감사합니다.
21/03/21 13:48
사실 그냥 말씀하신 정의가 맞고 제가 적확한 단어를 못찾은겁니다 크크.. 이공계라 국어에 약하다는 변명을 해보며..
고민을 해봤는데 제가 의도한 내용에 더 근접하려면 "인간적이다"가 좀 더 적확했을 것 같습니다. 제 글이 생각의 화두가 되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21/03/21 07:37
철저하게 당사자에게 주관적으로 합리적인 것이겠지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그런데 자살을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만들 순 없어요.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고 자살은 '감정적'인 것이죠.
21/03/21 10:57
통계의 함정도 있을것 같은게 유서를 쓰는 사람들은 이유를 정리해서 썼을것 같고요.
모든 자살이 유서가 있는것은 아니니까 이런분들의 심정은 포함이 되지 않을것 같아요.
21/03/21 13:02
합리적이라기 보다는 설득력있다 라던지, 보편적이다... 정도가 맞으려나요?
일반적으로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스스로가 그렇게 행동해야 하죠. 예를들어서 청빈한 생활을 주장하는 사람이 부정축재를 하고 주지육림에 빠져 산다면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유서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죽지 않는다면 설득력이 없는거겠죠. 실제 자살한 사람들의 유서는 자살로 그 설득력을 획득하게 되는거고요.
21/03/21 17:09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서, 본인 일과 관련이 없다면 너무 깊게 고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갈 사람은 굳이 그런 것에 대한 고찰 없이 그냥 살아갈테죠. 내가 천하의 쌍놈이라 한 인간을 자살로 몰고간게 아니라면, 그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 합니다. 자살자는 8-90프로가 주변에 단 한사람에게라도 전조를 보인다고 하지만, 정작 주변에서 그것을 알아챌 확률은 20프로에 불과하다더군요. 결국 내가 그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이상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무의미 합니다. 하지만 주변인의 자살은 생전 가까운 정도 만큼의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그때는 자살이라는 것의 무거움을 느낄겁니다. 굳이 느껴본 적이 없다면, 본인 삶을 축복하시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지 마시길 추천드립니다. 얼마전 지인을 그렇게 보내고, 꽤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죠.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그와 가깝게 지냈어야 합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 저는 더 고통받았겠죠. 그는 안타깝지만, 저는 덕분에 트라우마가 덜했을지 모르겠어요. 이기적이지만 그는 떠났고, 주변사람들은 남았습니다. 저도 제 삶을 살아가려면 빨리 잊고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21/03/21 21:48
사실 삶이라는 것이 허무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면 삶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죠.
삶의 허무함이야 성경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을 정도니까요. 이런 삶을 가치있게 느껴지게 하는 방법은 '주관적인 가치 부여'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관적인 가치 부여'라는 것은 삶에서 느껴지는 기쁨이 더 클 때 성립하는 것인데 삶에서의 고통이 더 크면 삶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그저 고문을 견뎌내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죠. 이럴 때는 당연히 자살이 더 나은 선택이 되죠. 그렇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으로 자신과 주변을 모두 힘들게 할 때에 환자 본인의 선택으로 소위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이러한 이해에 근거한 것이고요. 질병 이외에도 이러한 상황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분의 자살에 대한 계획은 제가 볼 때 시야의 확장으로 해결될 여지는 있어 보입니다. 시야가 확장되면 주관적인 가치를 부여할 무언가(사랑, 예술, 신념, 종교 등)를 찾아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만일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무얼 해도 가치를 부여할 대상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면 자살을 막긴 힘들 겁니다. 그저 소소하고 사소한 재미(게임, 돈 버는/쓰는 재미, 여행, 취미 등)에 순간순간 빠져들 수라도 있어야 삶을 이어갈 수 있죠. 아니면 단순하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거나, 자신은 끝없이 고통을 받거나 한없는 허무함에 시달리더라도 그것을 넘어설 정도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나 의무감이라도 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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