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도쿄'은 오쿠다 히데오의 자전적 성격에 가까운 소설입니다.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는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를 그대로 투영한 주인공입니다. 이 책은 히사오가 한국나이로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시티 보이'가 되겠다는 일념아래 고향인 나고야에서 도쿄로 상경했을 때부터, 20대 시절의 10년 간의 이야기를 연도별 주요 사건에 따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고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후반까지, 일본 경제는 버블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당시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상당히 역동적인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 점에서 그 당시의 일본의 사회상 중에서 몇몇 부분이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과 꽤나 비슷한 점들이 있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그러한 점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들을 적어봅니다.
1. '문송합니다'
히사오는 재수생활을 하러 '굳이' 나고야에서 도쿄로 올라와서 홀로 지내게 됩니다. 그에겐 지망하는 대학이나 학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도쿄'에 있는 대학이라고 한다면, 승가대학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히사오의 꿈은 '도쿄'에서 화려한 젊음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히사오는 재수생활을 마치고 도쿄의 어느 대학에 '문학부'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입시과목에서 수학을 빼고 싶었습니다. '문학'이라고 하면 왠지 여학생도 많을 것 같았습니다. 본인의 진학과 관련하여 큰 걱정없이 그렇게 쉽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버블 경제'시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러나 초호황기에 진입하고 있던 당시 일본에서도, '문송'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첫 수업에서 들은 말이 '어차피 문학부 출신은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도 아니고, 뭐, 4년 동안 실컷 놀아라’ 였으니까요. 현재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4년 동안 실컷 놀아라' 이겠지요. 더이상 대학생들에게 선배나 교수님이랍시고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게 되었으니까요.
2. 도쿄 공화국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는 '수도권 집중화', '지방소멸', 더 가혹하게 이야기 하자면 '서울공화국'에 관련된 문제이겠지요. 일본도 이에 못지 않게 도쿄도를 중심으로한 간토 지방 집중현상이 심각한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나고야도 분명 일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나고야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도시에 눈을 떼지 못하는 히사오의 눈을 빌려 도쿄의 풍경을 '화려함'을 넘어서, 얼마나 '다채로운' 도시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고야는 그냥 거쳐가는 에릭 클랩튼, 톰 웨이츠가 방문하여 공연을 하는 도시,
번화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가도 빨래가 널린 모습이 나오는 나고야와는 달리 전철을 타고 한참을 가도 빌딩숲이 끝이 없는 도시,
서프 보드를 올려놓은 폭스바겐이 도로위를 활보하는 도시,
평소엔 관심도 없는 걸그룹 '캔디스'가 콘서트를 열면 5만 명이 모이는 도시,
나를 스쳐간 여고생이 나보다 더 성숙하게 느껴지는 도시,
가끔 회사 인트라넷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꼭 서울에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는 합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여러가지 장점과 단점을 논합니다. 서울의 장점은 누군에게는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의 번잡함은 누군가에게 살아있는 도시의 생생한 기운을 느끼게 해주지만, 누군가에게는 답답함 일수도 있습니다. 서울의 촘촘히 짜여진 대중교통은 누군가에게는 편안함일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시내 자차이동의 불편함에 따른 강제된 노선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서울의 즐비한 직장/문화/편의/의료 시설등은 누군가에겐 근접의 편리성을 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로인해 지나치게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요. 분명 사람마다 가치에 따른 취향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지방 도시가 서울을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점은 바로 '다채로움'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6.25 등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 되는 과정을 거치며 대한민국의 많은 도시들은 자연적이기 보다는 '특수한 목적성'을 가지고 개발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남쪽의 주요 항구 도시들은 주로 제철, 정유, 중공업 근로자 혹은 관련 업종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수원, 동탄 쪽도 인근의 글로벌 전자기업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요. 그러다보니 주거환경이나 주민들의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비슷비슷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서울이란 도시는 그렇지가 않지요. 한 쪽에는 대한민국 최대 권력자와 집권 정치인들이 살고 있지만, 한 쪽에는 최대 쪽방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대 부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서울역 인근에는 반드시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요. 한류 스타가 사는 휘황찬란한 아파트가 있는가 하면, 한류 스타가 되고픈 꿈을 가지고 매일 연습하는 연습생들이 한데 모여 살기도 합니다. 대형마트가 곳곳에 있는가 하면, 조금만 가면 숨은 맛집들의 천국인 오래된 골목 상권이 촘촘히 형성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소규모 제조업 업체들이 모여 있던 곳은 젊은이들이 모여 '힙'한 거리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통의 한옥마을에서 조금만 나오면 모던한 빌딩의 도심지가 나옵니다.
이러한 '다채로움'이 주는 생동감은 상대적으로 지방 도시를 심심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지요. 아마 이러한 점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은 못 떠나겠다'라는 사람들도 공감이 됩니다.
3. 청춘은 아프다
사진은 책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문학부'를 다니면서 졸업 후에는 멋들어진 평론을 쓰는 '음악 평론가'를 꿈꾸는 히사오의 대학생활에 큰 변수가 찾아옵니다. 나고야의 아버지의 회사의 경영 악화로 인하여, 더 이상 학비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지요. 히사오는 대학 중퇴 후 바로 직원 5명 정도가 있는 광고 대행 업체의 카피라이터로 취직 하게 됩니다. 말이 좋아 광고 대행 업체이지 결국은 하청의 하청업체 였지요.
경제적 문제가 있는 히사오에게 '일'은 생계이자 삶의 전부입니다. 벼랑끝이라는 생각에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하청의 하청업체이기 때문에 온갖 '업무 갑질'에 시달리게 됩니다. 한참 어린 막내라 잡무는 모두 히사오의 것임은 물론, 전형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만 일이 몰리는' 환경이 되어, 히사오만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동료들은 천하태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게 구르면서 일을 하다가 대낮에 스키를 타러 가며 여유로운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는 친구와 마주치며 처량한 자신의 신세를 느끼게 됩니다.
회사에 간이 침대가 놓여져 있을 정도로 그렇게 밤 늦게까지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문화가 '미덕'이었던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들은 '다 젊을 때는 고생하는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 웬만하면 최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로 에피소드를 마무리 하는 작가도, 이 에피소드 만큼은 쓸쓸하게 끝을 냅니다. 이 책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을 감안했을 때, 아마 작가도 본인 스스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이지 않았을까요? 그만큼 지금 당장 너무 힘들고, 앞날이 답답한 청춘들에겐 그 어떠한 위로도 큰 힘이 될 수 없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 Link에 있는 개인 브런치에서도 연재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