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 선생이 태어난지 250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독일정부에서는 이번 주 목요일 12월 17일을 공식 탄신일로 지정했는데요, 그런데 탄신일이면 탄신일이지 "공식"이라는 단어는 왜 붙여졌을까요?
왜냐하면 12월 17일은 엄밀하게 보자면 베토벤이 세례를 받은 날짜일이고, 정작 베토벤이 태어난 날짜는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1년 전 서부터 독일은 25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를 성대하게 치르려고 기획을 했지만 아쉽게도 코로나때문에 많은 행사가 취소되고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가령 베토벤이 태어나서 20대 초반까지 머물렀던 본 (Bonn) 시에서는 작년 12월 17일부터 1년 간 매일 릴레이 공연을 펼치려고 기획을 했었지만 코로나로 도중에 연주가 중단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운 좋게 열린 공연조차도 무관객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구요.
그렇게 코로나와 같이 지낸 한 해가 지나고 맞게 된 탄신일에 독일 연방 대통령 슈타인마이어의 기념사를 해석해 옯겨봅니다.
베토벤은 위대합니다.
저는 매일 그를 마주칩니다. 말마따나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는데요, 제 집무실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의 위대함은 천장을 뚧을 겁니다, 제 집무실 앞에 있는 베토벤의 키는 보시다시피 99cm에 지나지 않지만요.
금색으로 도금하고 방수와 배달에 용이한 이 동상은 "우리의 루트비히" 행사의 일환으로 제작되었고,
본 시의 뮌스터 광장 앞에 전시되었습니다. 시민들로부터 많은 성원을 받았죠.
그 동상 중 하나가 여기 대통령궁에 서 있죠.
정확히 일 년 전 우리는 여기서 250주년을 기념하는 릴레이 공연을 시작하였습니다만 팬더믹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 우리 문화인들, 연주인들 그리고 그와 관계된 많은 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기획했던 많은 행사가 취소되었거나 연기되었기 때문에 기념사업 또한 연장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영향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문화는 우리에게 식량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탄생일을 기념하는 오늘 공연도 무관중으로 펼쳐지지만,
다행히도 스트림을 통해 독일 전국과 전 세계의 안방에 전달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250주년 기념콘서트: 피아노 협주곡 3번 / 교향곡 5번
베토벤은 위대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알고 있고, 내가 알고 있고, 베토벤과 동시대의 사람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 볼프강 괴테는 카를스바트(카를로비바리)에서 어떤 곡도 그의 곡만큼 훌륭하지 않고,
그가 직접 피아노에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베토벤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당시 비엔나, 베를린 파리와 런던, 어디에서나 베토벤의 음악은 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가입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그의 특출난 재능은 격동의 시대와 함께 지내왔습니다.
그는 제국이 (신성로마제국) 존재했었을 때, 조지아주가 조지 3세의 영토였을 때, 루드비히(루이)가 베르사유를 지배했을 때
태어났습니다.
그 후 인권 사상과 프랑스 혁명의 기치 아래에서 자라났으며, "미합중국이 형성"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과 그 이후의 빈체제와 왕정복고의 난리 통에 청력을 잃으셨고,
시민사회와 공업시대가 태동했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에서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습니다.
첫 기차선로가 개통되고 나서 2년 뒤에 말이죠.
하지만 베토벤은 모순적인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의 가치관에 반기를 들기도 했지만, 귀족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했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활동하셨던 시기에 이미 스타였고, 유럽의 많은 궁정에서 그를 반겼지만,
동시에 불행하고 세상을 등진 채 쓸쓸히 생을 보내셨고, 종국에는 폐인이 되었습니다.
테플리츠에서는 "가슴 속에서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 말로 표현하지 못할 순간들이 있다" 라며
불멸의 연인에게 쓴 서신을 통해 그의 진짜 언어는 음악이었던 것을 깨닳습니다.
괴테는 베토벤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이 사람 이상으로 집중력을 가지고 에너지가 넘치면서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진 예술가는 찾아보지 못했다. "
그 둘은 성격이 달라서 친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시인은 작곡가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이렇게 썼습니다:
"그가 세상에 대해서 저토록 비정상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베토벤은 순수한 감정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도쿄에서 벤쿠버까지, 상파울로에서 싱가폴까지 - 전세계에서 그의 음악은 통합니다.
우리는 (그의 음악을 통해) 슬픔과 분노, 사랑과 흥분, 우정과 기쁨의 감정을 함께 나누고 형제, 자매가 됩니다.
그리고 그 언어를 통해 모두가 소통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10억명의 인구가 베토벤의 멜로디를 압니다.
거실에 피아노가 없이 자랐거나,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어도 베토벤의 이름은 압니다.
가령 5번 교향곡의 첫 서두이거나, 환희의 송가이거나, 월광소나타 만을 접했거나 아니면 핸드폰의 벨소리나 영화음악을 통해 접했어도
베토벤의 음악은 모두가 압니다. 그리고 동시대의 작곡가 중에서 소수만이 그만한 위치에 있습니다.
독일방송공사에서는 올해를 기념해 "베토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타이완-독일계의 피아니스트인 피-흐시엔 첸은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생전에 세계의 헤피앤드는 보지 못했지만 [...] 세계 곳 곳에 수많은 당신의 팬들이 있고
모두가 당신의 음악을 통해 희망, 평화 그리고 평등을 부릅니다. "
네, 그렇습니다. 오늘로부터 250년 전 그는 세례를 받았고, (아마) 몇 일 전에 태어났습니다.
베토벤은 세월이 지나도 우리에게 영향을 줄 것이고 그는 우리에게 인간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그리고 그 모험에 용기를 북돋아 줄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그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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