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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25 10:23:35
Name 우주전쟁
Subject [일반] 잃어버린 화산을 찾아서 (수정됨)
1451년에 편찬된 [고려사]와 그로부터 5개월 뒤인 1452년에 발간된 [고려사절요]에는 제주도의 화산분화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두 역사서에 나와 있는 내용은 동일한데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고려) 목종 5년 6월, 산에 네 군데의 구멍이 열려(山開四孔) 붉은 물이 솟아나오더니 5일이 지나서야 그쳤는데(赤水湧出五日而止) 그 물은 모두 와석이 되었다(基水皆成瓦石)

2. 목종 10년, 상서로운 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났는데(瑞山湧出海中), 탐라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나올 때 구름과 안개로 깜깜해지고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진동이 있었고, 7일 밤낮으로 계속되었다(羅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冥地動如雷凡七晝夜)]



[고려사][고려사절요] 이후에 발간된 다른 많은 고문헌에서도 제주도의 화산분화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저 1번과 2번의 내용에다 저자들의 개인 의견을 덧붙이던가 아니면 화산활동이 벌어진 지명을 추가한다던가 하는 정도의 변주만 있을 뿐 기본적으로 위에 언급한 두 내용이 핵심이라고 보면 됩니다. 1번과 2번 내용이 다 나오는 고문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1번 내용만 나와 있거나 2번 내용만 나와 있는 고문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고려 목종의 경우 재위기간이 12년인데(997~1009) 목종 16년(1013)에 화산분출이 있었다는 고문헌들도 있습니다. 목종 16년이라는 기록은 아마 [고려사][고려사절요]의 기록을 옮기다가 발생한 오류라고 보입니다.

그런데 고려 목종 5년이면 서기로는 1002년이고 목종 10년이면 서기 1007년입니다. [고려사][고려사절요]에 나오는 기록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에 제주도에서 상당한 규모의 화산활동이 적어도 2번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화산(들)은 현재 제주도의 어디일까요?

그런데 1번 기록과 관련해서는 화산의 규모를 짐작해볼만한 기록이 특별히 없는데 반해서 2번 화산활동에 대한 내용에서는 화산의 규모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도 있습니다. ["산의 높이가 백여장(山高可百餘丈; 1장은 약 3.58미터)이고 둘레가 사십여리(周圍可四十餘里; 1리는 약 393미터)"]라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2번 화산의 경우 높이는 약 300미터, 둘레는 약 16킬로미터가 되는 것이지요.

조선시대부터 이 기록들에 해당되는 화산지형과 관련하여 몇몇 후보들이 거론이 되어 왔는데 바다에서 솟아났다는 내용 때문에 후보지들은 주로 섬들이었습니다. 비양도, 가파도, 마라도, 차귀도, 우도, 성산일출봉 등등. 하지만 위에 언급된 어떠한 섬도 2번에 언급된 화산의 규모와 비슷하게라도 일치하는 섬은 없습니다. 딱 잘라서 제주도의 부속 섬들 가운데 높이가 300미터 둘레가 16킬로미터가 되는 섬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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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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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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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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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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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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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

그것뿐이 아닙니다. 규모에 대한 기록이야 과장이 섞여 들어갈 수 있다고 칩시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학적으로 측정된 해당 섬들의 생성연대가 고문헌의 기록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된 어떠한 곳도 지질학적으로 약 1000년 정도로 생성연대가 측정되는 곳은 없습니다. 한 때 한림읍에 소재한 비양도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언급된 화산이라는 얘기가 많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실제로 비양도에는 비양도 탄생 천년 기념비까지 세워지기도 했지만 비양도가 10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섬이라고 믿는 학자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비양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2만7천 년 전에서 3만 년 사이에 생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 생성연대가 측정된 제주도 화산지형 가운데 가장 역사가 짧은 것은 한라산 백록담에서 동쪽으로 약 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돌오름이라고 합니다. 돌오름의 생성연대는 약 2600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현재까지는 생성연대가 알려진 제주도의 화산지형들 가운데 그 생성연대가 1000년 정도인 지형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거짓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추정할 수 없는 어떤 알려지지 않은 맥락이 있는 걸까요? 바다에서 산이 솟아나오고 7일 밤낮동안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면 보통 규모의 화산 활동은 아니었을 텐데 과연 저 고문서들에 기록된 화산(들)은 대체 제주도의 어디에 있는 걸까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내용과 관련해서 최근의 연구 흐름은 저 기록이 실제 1002년과 1007년에 발생한 일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시 탐라국이 고려에 실질적으로 복속되기 시작하면서 탐라국에 전해져 내려오는 화산에 대한 이야기가 고려 조정에 전해진 것을 기록한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화산활동은 1002년이나 1007년보다 훨씬 이전에 벌어진 사건이며 저 두 개의 기록도 별개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화산 활동을 기록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즉, 1002년에 처음 해당 정보가 전해지고 왕이 관리를 제주도로 파견하여 그것에 대해 조사를 해보라고 한 것이 1007년이라는 것입니다(실제 관리를 파견해서 조사를 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지형으로 제주도 대정 지역에 있는 송악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송악산 역시 비교적 생성연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화산지형으로서 송악산의 생성연대는 약 3천8백 년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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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또 다른 흐름은 실제로 1002년과 1007년에 화산활동이 있었으며 그 후보지로 역시 현재 대정 지역의 형제섬을 꼽고 있습니다. 왜 특히 대정지역이 고려되고 있는가 하면 [고려사][고려사절요]에는 탐라국의 어느 지역에서 화산활동이 있었던 지는 따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데 위의 내용을 전하고 있는 후대의 고문서들 가운데 [동국여지승람]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와 관련해서 '금속대정현(今屬大靜縣)'표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즉, "(화산의 위치가) 지금의 대정현에 속해있다"라는 것인데 그 당시의 대정현이 바로 지금의 대정지역입니다. 그리고 이 이론을 주장하는 측에서 제시하고 있는 후보지가 제주도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형제섬인 것이지요. 아직까지 형제섬에 대한 생성연대는 과학적으로 측정된 바가 없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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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섬

과연 송악산이나 형제섬 가운데 한 곳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제주도의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지형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화산지형이 있는 것일까요? 조상님들이 기록과 함께 그림을 남기거나 지도에 위치표시라도 해 놨으면 추적이 좀 더 용이했을 텐데 그런 점에서 모호한 1차 사료의 기록이 아쉽기만 합니다. 하다못해 이미지 파일이라도 좀 남겨놓으시지...거 용량 얼마나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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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5 10:52
수정 아이콘
이미지 남겨 놓으셨어도... 아마 디지털풍화작용때문에 찾기는 쉽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20/07/25 12:39
수정 아이콘
한국의 사료가, 관심없는 분야는 정말로 대충대충 기록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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