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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10/01 04:16:44
Name lunatic
Subject [일반] [영화이야기] 이미 지나간 여름을 붙잡으며, 납량특집 #3
  <거울 속으로>, 익숙함

이미 몇 년 전 영화가 되어버린 <거울 속으로>는 개봉 당시에는 상당한 관심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단 유지태라는 스타가 주연을 맡았고, '거울'이라는 소재가 원체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는데다가, 그 전까지는 기술적인 문제로 잘 다루어지지 않는 소재였었죠. 실컷 설레발은 쳤으나 정작 개봉된 영화는 역시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뭔가 참 아쉬웠었는데요, 내용조차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군요. 거울과 얽혀 있는 원한에 의한 복수극 정도로 기억되네요. 다만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있었습니다. 화장실 거울 속에서 자신을 굽어다내려보던 여자는 꽤나 섬득했고, 가장 화려한 공간이랄 수 있는 백화점을 불꺼진 을씨년스러운 공간으로 보여준 데서 익숙함 속에 숨어있는 공포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시에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인 거울에서부터 공포가 출발한다는 점 역시 멋진 선택이었습니다. 개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르놀피니의 결혼식' 등의 그림들을 놓고 거울 속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 가설을 늘어놓는 시퀀스, 그리고 수십 개의 거울이 벽에 걸린 거울방 장면이네요. 영화는 많이 아쉬웠지만, 그 두 장면만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
아무튼 영화는 인상적인 앞부분에도 불구하고 밑도 끝도 없는 평범한 결말을 향해 달려갑니다. '익숙한' 공포영화의 전형을 보여주죠.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을 소재로 삼아 생활 속의 공포를 보여주려던 야심찬 시도는 결국에는 이야기의 '익숙함'으로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미러>, 실패한 한국영화의 헐리웃 리메이크

헐리웃이 정말로 소재 고갈에 시달리고 있다지만, <거울 속으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영화였죠. 아마도 이전까지는 주변적인 용도로만 사용되던 거울이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 것 같습니다. 어쨌든간에 매력적인 소재긴 하니까요. 다만, 헐리웃 판본은 한국판과는 좀 많이 다릅니다. 주인공이 실수로 동료를 쏴버린 경찰이고, 불명예 퇴직 후에 백화점 경비로 일하게 된다는 전체적인 이야기는 동일하나, <미러>에서는 백화점이 화재로 소실된 이후 보험 소송 관계로 복구되지 않고 있다고 설정되 있고, 그 난리통에도 거울만큼은 수정같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임자는 거울의 저주(?)에 걸려 죽어버렸구요. <미러>에서는 또 주인공의 가족 관계에 집중하는데요, 아무래도 원작에서 보여졌던 내러티브의 허술함이나 유지태가 보여주던 허무주의적인 느낌을 상쇄시키기 위해서 보수적인 가족의 가치 쪽에 무게를 둔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거울 속 존재에 대한 비밀도 원작과는 판이하게 다른데요, <거울 속으로>에서 원한 정도로 설명되던 부분이, <미러>에서는 초자연적인 존재로 그려지면서 일종의 엑소시즘 비슷한 느낌마저 듭니다.
지금까지 말한 부분 외에 원작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바로 '스타일'입니다. <거울 속으로>는 고전적인 한국 공포 영화 스타일, 즉 원한과 복수를 주축으로 돌아가며 결국에는 '귀신 이야기'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반해, <미러>의 경우에는 알 수 없는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와중에 본격적으로 '슬래셔' 장르로 전환해버립니다. 그러다가 결말은 오컬트 스타일로 끝나죠. 이런 스타일을 이야기하려면 역시나 감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렉상드르 아야, 유럽에서 건너온 유망주

올해 초에 저는 2003년작<엑스텐션>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마이너 장르라고 할 수 있는 공포영화 중에서도 비주류인(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슬래셔 장르에다가 유럽 영화긴 하지만, 아실만한 분은 다 아시겠죠. 이 영화에 대한 평가야 다양하겠지만, 저는 2000년 이후 나온 슬래셔 무비 중에 단연 최고라고 평하겠습니다. 친구와 함께 친구의 시골 집으로 놀러간 여주인공이 정체불명의 트럭운전수 살인마에게 쫓긴다는 내용인데요. 이 운전수는 다짜고짜 집으로 쳐들어와서 식구들을 몰살시키는 묻지마 살인행각을 벌입니다. 주인공과 친구도 이 살인마에게 쫓기며 길고긴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요... 결국에 마지막에 가서는 파국을 맞게 되죠. 내용은 간단하지만 그 과정은 긴장감이 넘칩니다. 보는 사람이 숨죽이고 몰입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달까요. 쫓고 쫓기는 스릴 속에 끔찍한 사지절단이 적절히 녹아든 연출에 넋놓고 보다보면 이 살인마가 누구인지, 왜 그러는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위도 굉장히 높은 편이라, 저도 나름 잔혹한 장면들에 대해서는 면역이 되어있다고 생각하던 편이었지만 마지막 전기톱 장면만큼은 눈쌀이 절로 찌푸려지더군요;;
뭐, 결말 부분은 요즘에야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듯이 끝나지만, 결말부의 반전이나 연출이 전체적인 영화의 톤을 깎아내린다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아무튼, 이 유럽 출신 루키는 그 이후로 <힐스 해브 아이스>(언덕이 보고 있다) 와 같은 영화를 만들었고, 다시 헐리웃에서 <미러>를 만들게 된 거죠.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엑스텐션>이라는 무척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가 큰 역할을 했던 겁니다.


  <미러>를 위한 변명

많은 분들이 <미러>를 혹평하지만, 저는 재밌게 봤습니다. 일단 미드 <24>의 잭 바우어, 키퍼 서덜랜드가 나오구요^^; (특유의 권총 난사!도 보여줍니다) 전작과는 다른 느낌,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감독 자신만의 슬래셔적 태생을 잊지 않았습니다. 오프닝에서 목을 긋는 장면과 주인공 여동생이 자기 입을 찢는 장면은 정말 상상초월입니다-_-;;  전혀 예상못한 타이밍에 확 질러버리는데, 축구로 치면 반박자 빠른 슈팅이고, 야구로 치면 류현진급 체인지업이랄까요. 특히나 후자의 경우는 이전에 찾아보기 힘든 신선한(?) 발상인데다가 잔인하기까지 해서, 보는 동안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고 있던 기억이 나네요. 아무튼 나름 공포영화 봤다는 분들도 헉소리 날 만한 장면일 겁니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거울에만 한정시켰던 공포를 다른 사물로 확장시킨 점도 눈에 띕니다. 잔잔한 물의 표면, 광이 나는 문의 손잡이와 같이, 사물의 모습을 비추는 모든 대상이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수준으로까지 사태가 확장되면서, 공포는 일상을 잡아먹어버립니다. '반사되어 비치는 자신의 모습'만으로도, 잔잔하고 평온한 일상은 공포스런 풍경으로 변해버리는 거죠.
하지만. 역시나 여기까집니다. 거울 속의 공포는 그 설명과정이 너무 직설적인데다 억지스럽고, '거울방'의 이미지는 원작에 비해 좀 실망스럽습니다. 오컬트, 엑소시즘까지 손을 뻧져보지만, 왠지 전반부와는 너무 섞이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혹평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다만 긴 글 끝에 말씀드리고 싶은 건, <미러>를 <거울 속으로>의 리메이크로 이해하기보다는 아주 새로운 작품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점과, 이 영화가 유럽식 슬래셔와 미국식 오컬트를 결합시킨 혼합장르를 추구했다는 점(비록 그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고 할지라도요)입니다. 프랑스 출신 감독이 헐리웃에서 만들어낸 한국의 이야기. 저는 최소한 나쁘진 않았습니다. 공포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 보시면 좋을 듯하네요. (물론 노약자나 임산부는 알아서 안 보시겠죠?)


쏟아지는 혹평이 왠지 좀 불쌍하게 느껴져 이런 글을 적어봤습니다. 역시 다 쓰고 나니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네요.^^;
읽으신 분들 감사드리고, 다음에는 <영화는 영화다> 혹은 <멋진 하루>에 대해서 한번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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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야무인
08/10/01 10:56
수정 아이콘
미러가 좋은 영화가 아니다라는 점에서 일반대중의 눈에선 네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저같인 공포영화 좋아하는 입장에선 괜찮은 수작급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긴 피뚝뚝 떨어지고 머리깨지면서 팔근육과 뼈가 보이는 영화를 보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죠. 헐리우드식 공포영화란 제생각엔 극을 달려가는 영화라고 봅니다. 천천히 음향과 분위기로 공포를 자아내는 영화보다는 13일의 금요일처럼 피떡이 난무하는 영화를 선호하는 매니아들도 많구요. 실제, 헬레이저와 같은 그로테스크한면은 저도 좋아합니다. 다시넘어와서, 미러보다 먼저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가 되었던 착신아리라는 영화, (One missed call) 내용은 신선했지만 공포매니아들조차 외면해버린 졸작으로 남아버렸죠. 또하나 거울속으로의 식상함 글쎄요. 공포영화는 식상해야 되지 않나요? 선이 결국은 악을 이기는... (웨스 크레이븐은 대부분의 영화를 보면) 저같은 공포매니아야 공포를 중간중간에 즐기면서 끝은 양념정도라고 생각해서, 굳이 스토리를 깊게 보는 편은 아니고, 얼마나 잔인하게 죽일까에 더 초점을 맞추는 편이라서요. 그게 기발하면서 공포를 자아낸다면 전 좋은 공포영화쪽에 둡니다.. 나중에 때로 죽이는 공포영화는 저의 관점에선 졸작급이라서요~~ ^^;
달려라투신아~
08/10/01 16:35
수정 아이콘
'영화는영화다' / '멋진하루' / '미러' 제가 최근에 본 영화들이군요... 근데 영화를 제가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세 영화 모두 재미를 크게 느끼지 못하겠더군요.. 같이 본 사람들은 다들 재밌다고 했는데...

그나마 세 영화중 전도연씨가 나오는 '멋진하루'가 가장 괜찮았던것 같습니다. 느릿 느릿한 영화를 좋아하는지라 ^ ^;
08/10/01 18:10
수정 아이콘
성야무인님// 매니아들한테는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익숙함 은 <거울 속으로>에서 너무 뻔한 원한 이야기로 결말을 지어버린 데 대한 아쉬움을 말한 거였구요, 워낙 소재가 좋고 괜찮은 장면들이 있어서 좀 많이 아쉬웠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성야무인 님은 정말 호러영화광이신 것 같네요:)

달려라투신아~님// 사실 <영화는 영화다>는 굉장히 재밌게 봤구요, <멋진 하루>는 아직 못 봤습니다^^; 다만 제가 이윤기 감독한테 좀 애정이 있어서요~ 아마도 좋은 영화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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