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구에서 외동으로 태어났다
2년전 외할머니 장례식 후 엄마집에 며칠있으면서 들은바로, 형 동생이 있었는데 둘다 일찍죽었다고했다
약간은 충격이었다. 28년만에 처음안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엄마한테는 반말을하고 아빠한테는 존댓말을한다
언제부터, 왜그런건진 모르겠다
엄마한테 좀더 편하고, 아빠하고는 말을 많이는 하지않는다
초등학생도 되기전에, 엄마아빠랑 공원인지 경기장인지 놀러간적이 있다. 거기서 돌아다니다보니 공 따위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엄마는 나한테 야구공을 집어주고 "이거 한개사까?" 라고해서 내심 좋아했지만 그땐 내가 좋다싫다 표현을 잘 못했던것 같다
그러자 아빠가 "뭔 야구공이고 아들은 축구공사야지" 하며 축구공을 줬다
나무라는게 아닌 약간 면박주듯이, 당신이 뭘알아? 같은 느낌의 말투였다
엄마는 멋쩍어서 괜히 다른델 쳐다보던 그 장면이 서른이 되고도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초2때, 외할머니가 집에 놀러온적이 있다
서너시쯤 학교를 마치고, 집에와서 외할머니랑 파란색 딱지수십개로 딱지치기를했다. 물딱지,풀딱지 뭐..많았다
외할머니는 내 딱지를 다 따셨다
나는 더하고싶었는데 피아노학원 갈 시간이 되어서 갔다오고 다시 딱지를 치자고하셨다
피아노학원을 갔다오니 엄마는 외할머니가 늦어서 가셨다고 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 엄마랑 마트가는길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예상외의 지출생각에 약간 당황한것 같았다
마트근처 꽃집에 데려갔는데, 내가 원하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닌
손바닥만한 화분에 장식은 없고 풀잎이 풍성한 작은나무를 샀다
내심 실망했지만, 내기억으론 크게 떼쓰진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지금생각하면, 엄마도 내가 원하던건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란것을 알고있었을것 같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자고 일어나니 배게위에 은색선물포장지랑 엄마아빠가 있었다
그 때 나한테 뭐라했는지는 기억이안나지만, 포장지안에는 사자장난감, 로봇트가 있었고
잠에서 깨던나를 웃으면서 바라보던 30대초의 엄마아빠가 기억이난다
초3학년인가, 가을이되서 운동회가 열렸다
달리기도하고 씨름도하고 뭐도하고 뭐도하고..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었다
운동장 옆에 잔디밭에 수백명의 부모님들이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열고 계셨다. 엄마도 그 중 하나였다
아빠는 야간택시기사라 주무셔야해서 못오셨다
다른 부모님들처럼 도시락통엔 김밥, 양념통닭이 있었다. 맛있었다
나는 나름 즐거웠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와서 밥먹고 씻고 엄마랑 이야기하는데 엄마가 물었다
"친구들이 엄마보고 뭐라안하더나?"
나는 무슨말인지 몰라서 "아니?" 라고했다
"엄마 눈보고 뭐라안하더나?"
엄마는 한쪽눈이 보이지않는다
그 눈은 움직이지않고 시선이 고정되어있는데, 난 그때는 단순히 시력을 잃어서 그런줄 알았다
엄마는 신경쓰였던것같다. 하나밖에 없는아들이 엄마 눈때문에 친구들한테 놀림받을까 생각이 든걸거다
엄마가 그렇게 물었을 때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나이가 조금씩 드니까 그때 기억이 자주났다
5학년 운동회때는 점심을 집에가서 먹기로했다
집이랑 학교는 걸어서 30초거리다
점심시간이되서 집에왔는데, 웬걸 내 방에 처음보는 컴퓨터가 있었다
그때는 흔하지않은 납작한 lcd 모니터에 windowsMe가 깔린 지포스mx200/400 하드128gb짜리 최신식 현주컴퓨터였다
나는 어리둥절했고 엄마아빠는 또 웃으면서 좋아했다 내 첫 컴퓨터였다
아빠는 택시기사 엄마는 섬유공장
맞벌이인데 집안일은 엄마혼자했다
요리,설거지,빨래,청소 다 혼자했다
그 때 난 그게 당연했다. 그렇게 보고 그렇게 컸으니까
그러다 중학생 정도 되니까 왜 집안일은 엄마 혼자만 하나 처음생각이 들었다
세명이서 같이 밥을먹을땐 아빠는 반찬얘기를 했다
국이 싱겁네, 이건 소금을 더넣지, 이건 저렇게하지, 김치가 덜시었네 등등등
가끔이나 자주가 아닌, 식사 때 마다 항상 그랬다
내가아는 아빠가 할줄아는 건, 라면이랑 식은 음식 데우는거밖에 없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빠한테 거리가 생긴게
우리가족은 명절이되면 연휴3일중 첫째날에 할머니집으로간다
가자마자 엄마는 다른친척할머니들이랑 일하고, 아빠는 택시일에 큰집으로 운전까지해서 쓰러지다시피 주무신다
나는 텔레비젼을 보거나, 사촌형이랑 장기를 두곤했다
아빠가 낮잠에 깨면, 늦게 도착한 형제들이랑 이런저런 일도하고 이야기를했다
아빠는 얼굴인상이 좋고, 말도잘하고, 친구든 친척이든 주변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했다
그런데 난 그게 싫었다
평소에는 집안일 다 떠맡기고 하나도 안도와주고 밥먹을땐 항상 음식 간안맞다고 투덜대다가
명절만 되면 나서서 일도하고 웃으면서 이야기도하고 집에서의 모습과 반대되는, 좋은 아빠같이 행동하는게 난 싫었다
다음 날 명절일이 되면, 친척들과 같이 제사를 지내러 세 군데집을 다니고 저녁까지 큰집에 있다가 우리집으로 돌아갔다
한 번은 집에 가는길에 엄마가 외갓집에 가자고 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나도 피곤하고 아도 피곤하고 그냥 집에가자" 라고했다
그러면 엄마는 아무말도 안했다
그래서 큰집은 1년에 설,추석 두번은 꼭 가지만, 외갓집은 2~3년에 한번 갈까말까 했다
그래서인건가, 평소에 엄마는 일하러갔다와서 저녁이 되면 집전화기로 외할머니랑 자주 통화를했다
어쩌다 한 번 외갓집에 가면, 방에 십자가와 액자 세개가 걸려있었다
하나는 옛날에 키우시던 하얀 강아지 사진
하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사진
하나는 내가 아기일때 사진
외할머니는 손자,외손자가 일곱이있는데, 액자에 손주는 나 하나뿐이었다
외할머니네는 달달하게 만든 쥐포반찬이 그렇게 내입맛에 맞았다
아빠는 평소, 엄마가 해놓은 밥을 먹고 저녁일찍 일하러 나가서 저녁은 엄마랑 둘이 먹을때가 많았다
어느날은 부엌에서 둘이 목살을 구워먹었다
상추를 싸서 먹는데 엄마가 "아이고 내좀봐라 고기도 안넣고 싸먹었네~"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참나~" 하면서 별생각없이 먹었다
근데 엄마는 자꾸 또 상추에 고기를 안넣고 밥이랑 버섯,마늘만 싸서 먹었다
그래서 "고기를 왜 안먹노" 하니까 엄마는 됐다는 식으로 말했다
아빠는 삼겹살을 좋아하지만 나랑 엄마는 비계가없는 목살을 아주 좋아한다
그날 엄마가 사온 목살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스무살 2009년 8월 , 군대를 갔다
훈련소는 논산으로 배치받았는데, 엄마아빠가 대구에 입영버스 오는데까지 바래다줬다
엄마는 논산까지 가까? 했는데 내가 됐다고했다
그냥 2년동안 캠핑다녀온다 생각하고, 잘 갔다오께 하면서 덤덤하게 버스를탔다
논산,연무대를거쳐 단양에 5탄약창이라는 곳에 자대배치를 받았다
1월 첫 신병휴가때, 너무 추웠다
휴가신고할때, 집에가면 부모님대신 설거지 꼭 하라는 당직사관님 말씀을 듣고 내려갔다
입대할때 85kg에서 8kg정도 빠진 날보고 엄마가 "이게 누꼬?" 하면서 고무장갑 낀 손으로 안아줬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소불고기, 김치찌개, 잡채 등등 이것저것 많이 해놨었다
아빠는 "내한테는 풀떼기만주더니 아들오니까 나도 호식하네~" 라고하셨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설거지를 먼저 나서서했다
"아이고 우리아들이 웬일이고?" 뒤에서 엄마 칭찬소리가 들렸다
배부르고 등따시게 지낸 4박5일 첫 신병휴가 마지막 날에는, 정말로 복귀하기 싫었다
일병 때 첫 외출,
엄마아빠랑 제천의 한 놀이동산에 갔다. 놀이기구를 타러간건아니고,
그 근처에 있는 양옆으로 나무가 우거진 한적한 풀밭길에 가서 돗자리를 깔았다
그때도 통닭이니 피자니 맛있는걸 바리바리 사오셨다. 선선하고, 구름낀 가을이었다
제일 힘든 일병시기였고 힘든티 안내려고 덤덤한척 얘기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선임들 줄 사제담배 몇갑사고 복귀, 엄마아빠가 가셨다
나중에 전역하고..
이것저것 알바하다가 2013년 24살에, 서울에있는 학원가려고 서울올라가서 자취하다가 원룸값이 비싸서
몇달후에 인천 외삼촌집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엄마가 인천에 한번 올라왔다
나는 얼굴한번보려고 온줄 알았는데 그게 다는 아니었다
아주옛날 엄마가 어렸을적에 의안수술을 해준 병원의사가 영등포에 작은병원원장이란다
나는 엄마 눈이 의안이란걸 이때 처음 알았다 그냥 시력잃은 눈으로만 알고있었다
인천에서 영등포역까지 같이 지하철타고 같이가서, 안과도 같이가겠다고 말했는데 엄마는 굳이 혼자다녀온다고 했다
거기서 새 의안을 맞추러가는데, 예전에 거기 눈 기증도 해서 돈걱정은 없다고 하셨다
수술을받고, 저녁에 엄마는 영등포역에서 기차타고 대구로 내려갔다
창문사이로 손흔들면서 인사하고, 가는 기차를 시야에서 없어질때까지 끝까지지켜봤다
2017년 4월,
회사 점심시간, 밥먹기 전에 잠깐 혼자 밖에나와있는데 아빠한테 전화가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난 식당에서 밥먹던 매니저한테 바로전화하고 그길로 버스를 탔다
장례식장 빈소 앞에 외할머니 이름이 보였다. 많이 울었다
아빠랑 외삼촌들 먼저 와계셨고.. 엄마는 구석 방에서 전화를 하고있었다
이모였던것같다.. 이모는 많이 아프셔서 입원중이셨다
충격받지말라고 그냥 외할머니 많이아프시다고만 전화로 거짓말을 한것같다
내 딴에 이게 맞는건가 싶어서 당시에 여기 pgr에도 고민글을 올렸었다 지금은 지웠지만..
댓글내용에 내가 상관할일이 아니라해서 가만히 있었다
문상받을 때 잘 안울던 외삼촌들도 엄마도 장례끝나고 마지막 화장하러가기전 운구할 때 정말 많이 울었다
나도 외할머니랑 딱지치기하던 장면이 너무생각나서 많이 울었다
장례식 다 끝나고 집에내려와서 자기전, 엄마는 옛날이야기들을 이것저것해줬다
내 형동생이야기, 외할머니가 밥차려줄때 자기 밥 밑에만 계란넣어준 이야기,
오빠들이랑 엿바꿔먹으려고 고무신들고 엿장수쫓아다닌이야기, 집에 처음 아빠데려와서 가족한테 소개시킨 이야기,
새벽5시에 스님이 목탁치면서 돌아다니면 "사탄아 물러가라!" 잠꼬대하던 외할머니이야기,
어릴 때 엄마 눈 그렇게 되니까 둘째오빠(내가 인천에 신세진 그 외삼촌)이 자기 눈파다가 동생줄거라고 울고불고 난리쳤던 이야기..
적고보니 이새벽에 뭘 이렇게 쓸데없는 가정사를 길게 적고있나 싶다
그냥 우울한 기분에 생각나는대로 쓴것같다.. 글정리도 안되고
나이는 먹는데 돈도없고 번듯한 직장도없고 이룬것도 가진것도 없어 부모한테 못난놈이 되니까
모르겠다 그냥 요즘 엄마라는 단어가 울컥울컥한다
퇴사한지 1년이 되가는데 지금도 엄마는 내가 어디 다른 회사붙어서 일하는줄 안다
괜히 잡생각이 나서 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