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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2 09:38
일본이 진주만공습으로 세계대전 일으킨것도 배워야죠. 일본 군부의 외교감각은 최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사를 배울만큼의 중요성은 글쎄요. 러일전쟁도 사실 천운이 도왔죠.
일본사보단 세계사를 가르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유럽역사를 보면 굉장히 실리적으로 움직입니다. 왜 유럽이 발전하는지, 왜 독재왕정이 망하는지, 의회정치가 좋은체제인지도 세계사를 배우면 느껴지죠. 반면에 일본은 중세부터 귀족계급 나뉘고 정치하는게 현대까지 이어진게 느껴질정도죠. 일반국민들 낮게 깔보고 죽든말든 정치질하는 나라에서 우리나라가 배워야할 부분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부분입니다.
19/11/13 00:26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긍정적입니다만
과연 그 시대 조선이 뭘 할 수 있었느냐는 정말 회의적입니다. 외국서적의 번역, 외국 문물의 수입, 해외 정보의 입수, 인재의 해외 유학 모두 외화를 벌어올 상품이나 금, 은으로 대변되는 귀금속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조선은 명나라 때부터 시작한 중국의 해금령으로 인해 국제 무역을 통한 상업자본도 크기 힘든 환경이었고 그런 환경에서는 상업자본을 키워봐야 농민의 안정적인 삶을 위협할 것이라 여겨 상업의 성장을 억제했고 이게 결국 멸망의 원인이 되었는데 중국의 해금령이든 지하자원의 부족이든 조선이 뭘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었죠. 일본은 일단 이와미 은광으로 대변되는 세계적 레벨의 풍부한 은 생산량이 있었고 근본적인 국가 운영은 농민은 숨만 붙어있으면 된다고 할 정도로 최소의 생존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조선은 상대적으로 어떻게든 농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했지만 전근대적 문명 / 지식으로는 결국 멜서스 트랩 안에 갇혀있을 뿐이었고 그렇게 안정된 농민은 밥먹고 애낳고 똥싸며 인구만 늘어났을 뿐 근대화에 있어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교훈이라면 교훈입니다. 결국 조선과 일본의 역사를 비교해서 얻는 교훈은 무산계급을 안정화시켜봐야 나중에 어떠한 혁신을 이루는데 도움은 안되고 지배층 / 엘리트에 부와 지식 / 권력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군요. 결국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교훈이 흐르게 됩니다. 현대사회에 과연 배울게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어요.
19/11/13 01:11
(수정됨) 일본의 근대사의 교훈은 소수 엘리트 집중의 성공이고 결국은 Anti-민주주의 체제의 성공일 뿐이라고 보시는 분들도 많은데 그건 지금의 현재 양상이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고 조선이야 망해버렸으니 조선양반들의 시집살이를 우리가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 관대하게 보이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의병장들이 평민이나 천민출신 의병들 상대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잘 알려져 있죠.)
조선이야말로 성리학 양반층 외에는 대안적 엘리트가 존재하지 않는 문명적으로는 극도의 순혈주의 국가였고 일본은 오랜기간 봉건제의 속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심지어 막부와 천황이 형식적으로는 공존하는 상대적으로 대안적 엘리트층의 두께가 더 컸다고 보면 맞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외부의 충격이 다가오자 기존의 기득권층은 붕괴되면서 일본은 천황이라는 상징적 대안을 기반으로 지방의 번들이 반란을 일으켜 기적적으로 대안체제를 형성할 수 있었던 거고요. 대한제국시절 의병장들이 손문이 신해혁명을 일으켰다니 명나라, 중화제국이 부활된다고 김칫국마시다가 공화국이 섰다니까 대실망해서 시름시름 앓다 죽는 걸 보면 마지막 일부 조선 양반들은 의리는 그나마 지켰다지만 세상돌아가는 정신은 여전히 못차리고 있었던 거고요...조선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는 시점이나 되어야 왕정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끊고 공화주의로 나아가자는 슬로건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정치 체제의 대안을 제시하는데까지 일본보다 50년은 늦은 거고요. 이런 대안도 성리학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 신진세대들-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등에서 주도했으니 그만큼 조선의 성리학 순혈주의는 너무나 심각했던 거라고 봅니다. 이미 나라는 망했고요. 지리적으로 보더라도 조선의 큰 문제는 ‘서울양반’말고는 지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거죠. 태종 이방원이 결사적으로 사병혁파하고 철저하게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를 완성했던 결과가 400년이 넘어 정치적 대안의 실종으로 귀결된 셈이고요. 아마 고려때까지의 지방분권적 국가체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조선도 일본 못지 않게 기회가 있었을 겁니다. 누가 악의적으로 의도한 것도 (조선) 누가 선견지명을 가지도 예비한 것도 (일본) 아닌데 결과가 그렇게 된 거죠. 원래 생물진화에서도 homogeneous 한 집단은 환경변화에 극도로 취약할 수 밖에 없고 조선은 땅덩어리도 작고 자원도 한정된 상태에서 사상적으로도 순혈주의에 매몰된 상태였기 때문에 19-20세기의 급격한 외부 selection에 대항할 형질을 상실한 게 실패의 주원인이라고 봅니다. 일본은 그런면에서 기회가 많았죠. 민주주의라는 것이 핵심은 다양한 대안적인 엘리트계층들이 소멸되지 않고 보전될 수 있는 현재까지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정치체제라고 보는데 그런 엘리트 계층 중에서 누군가가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게 저는 테크니컬하게는 민주주의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사회라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선 19세기만보면 일본이 훨씬 조선보다 자유도나 다양성이 높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보는 거고요. 21세기에는? 현재의 대한민국과 일본이 앞으로 어떤 역사적 경로를 만들어갈지는 '다양성'에 있다고 보는데 일본이 크게 앞서간다고 보지는 않는데 한국도 그냥 방심하고 안주할 수준은 못되죠..촛불집회해서 대통령 탄핵을 한다고 최고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라는 겁니다. 같은 편인데도 조금 딴 소리 한다고 일방적으로 마녀사냥하는 사람들이 좌우로 기세등등하게 포진하고 있는 세상에서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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