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참으로 흥미로운 제왕이지요.
가장 정치적인, 가장 열정적인, 그리고 가장 문학적인 군주.
지난 해 가을, 노론 벽파의 영수, 좌의정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御札 , 297통)에 관한 글을 읽으며
그간 알아온 이미지ㅡ 개혁을 추진한 선비풍 성군으로서 온화하고 세심한 ㅡ 와 사뭇 다른,
그 깜짝 놀랄 면모에 어깨 통증도 잊을 만큼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상상속에서 알현하기를, 거듭하였지요.
我 : (예를 올리고) 경상도 땅에 사는 이아무개입니다. 당의를 준비하지 못했사옵니다.
정조: 부인은 의복을 괘념치 말라.
我 : 황공하옵니다.
정조: 고개를 들라.
我 : (납작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한다)
정조: 혹... 10년 전쯤, 세종대왕님께 첫소리 리을과 끝소리 리을에 대해 불만을 말하려고 온 그 여인인가?
我 :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들며) 네에에??.......아, 아니옵니다.
정조: 아님 말구.... 근데.. 그대도 좀 따지게 생겼구만. 그래....과인을 보고자한 연유는 무언가?
我 : ........ 전하의 어찰첩에 관한 글을 읽고, 몇 가지 여쭙고 싶고...또....또...(약간의 식은땀)
정조: 또....무어냐.
我 : 뵈옵고 싶었습니다. ( 더 납작 엎드린다)
정조: 허허~ 수년전에도 부인들이 다녀갔노라. 그 뭐라더냐...드라마 보고 찾아 왔다더군.
허나, 과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서둘러 돌아가던데..그 연유를 짐작하겠느냐? 알면 말하라.
我 : .......... 아마도...전하의 용안이... 기대했던 바와 달라서라....짐작되옵니다.(속으로 - 이서진과 너무 다르잖아. 크크)
정조: 으음........그대는 솔직하구먼..
그건 그렇고... 부인인 그대가 과인의 간찰을 읽었다니.... 놀랍구나. 어찌 된 연유냐?
我 : (화들짝) 전하께오서는 여직 모르고 계셨사옵니까 ?
전하께서,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15일까지 약 4년간, 심환지에게 보내신
어찰 297통이 2009년 2월 9일 만천하에 공개되었습니다.
세상이 떠들썩했구요, 역사학계는 충격 많이 받았...
정조 :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대체-----
없애라고 없애라고 수시로 어명을 내린 그 비밀편지가....(부들부들~~)
어찌 전해졌단 말이더냐 ?? 심환지-----이 후레좌아식이이이------ (이를 간다)
我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심환지는 어찰을 받은 즉시, 받은 날짜와 시간을 꼼꼼하게 적어 특별히 잘 정리,보관하여
후손에게 극비로 보존할 것을 당부했다 하옵니다.
정조 : 그러면 후손가에서는 지금까지 비밀리에 소장했다가, 어떤 연유로 공개했다더냐.
我 : 그 경위가 다소 복잡하옵니다. 차라리 모르시는 편이....
정조: ( 정면으로 쏘아보며) 말하라 !!!
我 : (속으로 - 나 원.....나라고 다 아냐? ) 소인이 아는 만큼 말씀 올리겠나이다. 어찰첩을 공개한 소장자는, 후손가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 자는 30여년 이전에 심씨가로부터 한 두 단계를 거쳐 『어찰첩』을 구입했다 하옵니다.
소장자의 말에 의하면, 후손가에서 이 귀중한 유물이 흘러나온 동기는 채무관계 때문....
정조 : (또 다시 용상을 박차고 일어나며) 뭐시라 ????? 이---이--- 심가 좌식이----
찢든지, 세초하라고 그토록 신신당부했건만도..... 결국 돈에 팔려가게 만들었더냐!!! (털썩 주저앉으며) ..........계속 말하라.
我 : 그 과정에서 한 첩(33통)이 분리되어 2000년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추정되옵고,
한 두 통의 편지가 첩으로부터 떨어져 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하옵니다.
다행히 편지와 겉봉투를 나란히 이어붙여, 원형은 훼손없이 살려 놓았다 하옵니다.
정조 : 그러하면, 과인이 심가 좌식에게 보낸 간찰로 현재 전해지는 것이, 어찰첩 297통과 박물관 소장 33통 뿐이라더냐.
我 : 더 있사옵니다. (속으로 - 에효 ~ 내가 지금 일러바치러 왔냐고오오 ~)
1797년 2월 23일에 보낸 두루마리 어찰 여섯 통과 심씨가에서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한 유물 가운데에도
같은 형식의 어찰이 10통쯤 있사옵고, 또 심씨가 친척들이 8통쯤 보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개인 소장자들이 낱개로....
정조 : 그만 하라... 되었다.. 어쩌다 그리.... 뿔뿔이 흩어졌단 말이냐...
我 : (슬그머니 조금 다가가며) 심환지에게 보내신 어찰이 그게 전부가 아니죠? 그쵸?
(무릎걸음으로 더 다가가며) 그보다 훠얼씬 더 많이 보내셨죠? 맞쬬?
정조 : (눈쌀을 찌푸리며) 그러다 침 튀겠다. 물론이다. 채제공 다음으로 많이 보냈느니라.
我 : 명재상 채제공에게 더 많이 보내셨다는데, 현재 확인된 바로는 수십통에 불과하옵니다.
그러니까 채제공은 어명을 쫓아 거의 없앴다고 볼 수 있사옵니다.
그런데 심환지는 왜?? 전하께서 집요하리만치 지속적으로 없애라 지시했는데도,
의도적으로 묵살하며, 저리도 온전히 비밀문건을 소중히 보관했을까요?
정조 : 흐흠..... 심환지는 노회하다.. 정치적 보험을 드는 의미로 보관하지 않았겠느냐.
我 : 아...눼에...그니까...< 전하의 정치적 입장이 자기네 노론 벽파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동지적 관계다..
내가 행한 정치적 행위는 정당하다... 이 어찰이 그 명확한 증거물이다.> 라며,
부침이 격심한 정계에서 불리한 상황이 오면 써먹을려고 확보했다는 뜻이로군요.
정조 : 늘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당연히 없앨 것으로 믿고 정제하지 않고 마구 써갈겼는데....세상에 전해지다니.....쩌업.
我 : 전하 !!!!!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가 다시 들며)
얼마나 기적적이고 가치있는 사료인지 모릅니다!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일반 애호가들까지도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릅니다!!
갠적으루.... 소인은 이 어찰을 일부나마 접하고, 전하가 더 좋아졌습니다.
전하께옵서, 정치적으로 대립각에 서 있는 심환지와 이리도 많은 비밀편지를 주고 받으신 까닭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합니다만, 그 질문은 뒤로 미루고요, 만년엔 거의 장님에 가까울 정도로 눈이 좋지 않으셨다는데,
어찌 이 많은 편지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쓰실 수 있으셨습니까. 편지쓰기가 취미셨쎄요?
정조 : 편지쓰기가 취미냐고?
我 : 용서하소서. 감히 가벼이 여쭙고 말았사옵니다.
정조 : (지그시 바라보며) ....진심이냐. 앞으로 더 건방진 질문을 던질 것이라 짐작되는데..?
我 : (움찔) ......그래도 전하께서는 답해 주시리라 믿사옵니다.
정조 : 껄껄껄.... ..과인의 간찰을 읽고도 파악하지 못했느냐. 나는 다혈질이고 조급하며 흥분도 잘하고 화도 잘 내느니라.
我 : 짐작하긴 했사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인정 많고 따뜻하시며 배려와 익살이 넘치시는 으뜸어른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정조 : (고개를 돌려 씨익 웃는다) .... 쉽게 물러가지 않겠군.
我 : 세손 시절부터 편지쓰기를 즐기셨다 ...읽었습니다.
정조 : 어린 시절엔, 주로 외조부인 홍봉한을 비롯하여 친족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여성 친족에겐 언문 편지를 자주 보냈고. 궐내를 떠나면 어마마마께 매일 안부편지를 드렸다.
我 : 편지쓰기가 즐거운 일과셨나 보옵니다.
정조 : 즐거운? 보위에 오르기 전엔 그랬지... 글 쓰기가 무엇보다 좋았다.
我 : 보위에 오르신 후엔, 어찰이 다른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정조 : 그렇다!!! 군왕은 친밀하지 않으면 신하를 잃는다.
그리고 남들보다 현명한 신하를 사사로이 대하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 못한다.
그 사사로운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 편지이고,
또 그것이 주요 대신들과 비공식적으로 정국현안을 논의하는 하나의 경로였느니라.
我 : 그니까.... 어찰은, 막후에서 정국을 조율하는 정치적 기능을 가졌었군요.
정조 : 비중 높은 신하와 사적으로 은밀히 대화를 나누면서 공식적인 절차와 병행시키는 게지.
그렇게 함으로써 정보를 신속하게 얻고 나아가 국정을 장악할 수 있었다.
我 : 더불어 신하의 충성도도 높이구 말입니다.
정조 : 그렇다. 유능한 신하를 내 편으로 바짝 끌어들이고, 통제하고, 내 사람으로 활용하는 데에 비밀편지만한 방법이 없었다.
또 하나, 궁궐 밖 세상의 정보와 여론을 꿰뚫는 데에도 매우 유용했다.
我 : 그렇다 하셔도 소인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요.
심환지는 전하의 국정 운영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벽파의 우두머리가 아닙니까.
정조 : 그러니까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위협해야 했다.
我 : 소인이 어찰첩의 일부분만을 감히 읽었습니다만,
어떤 편지는 서로 은애隱愛하는 사이처럼 보이는 내용도 있었사온데....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사옵니다.
결국...막강한 권력을 가진 전하께오서도 신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들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셨군요.
비밀편지라는 정서적 도구를 이용해 말입니다.
정조 : (찌ㅡ릿) ......그대는 지금 -- 답을 좌뇌에 저장해 놓고 우뇌로 묻는 것이냐? 고~이~얀.
我 : (황급히 납작 엎드린다) .
정조 : (잠시 쏘아보며) ...알 수 없구나...... 여인네와 사사로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내 마음을 말이다.
我 : (계속 엎드린 채로)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려 송구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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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상상 속의 인터뷰는 끝이 났습니다.
어찰을 접하기 전엔 정조대왕도, 세종대왕과 마찬가지로 옛사람의 완벽함....그 완벽함에 대한 믿음으로
현재를 위로하고 현재를 의미로 채우는, 현재의 과거적 충만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조는, 그 누구도 그 깊이와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놀라운 천재였습니다.
그 놀라움을 어찌 내 얕은 문장으로 담아내겠습니까.
古文 13경에 대한 박학함은 상대를 찾아 보기 힘들었고
(好學군주로 이름 높은 세종대왕도 집현전 학사들보다 나은 분야는 음운音韻학 정도였다.)
형刑정과 재정같은 행정실무에도 어떤 신하보다 밝았으며 심지어 武學과 醫學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삼십대 똑똑한 신하들을 모아 매일 혹독하게 가르쳤는데,
그 수재들도 숙제를 못해 오거나 시험 답안을 못 써서 정조에게 쪼인트 까이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정조는 이런 과격하고 맹렬한 방법으로 노론 벽파 일색의 조정에 임금의 권위를 각인시켰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노련한 현실 정치가로서의 탁월함입니다.
막후에서 비밀편지를 통해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형성시킴은 물론, 자기 의도대로 상소를 올리거나 중지하도록 은밀히 조정했습니다.
시파와 벽파의 갈등을 환히 꿰뚫고서 말입니다.
노론 벽파도 어디 한 가닥입니까. 서로 다른 세 파벌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제 정조의 따뜻하고 애틋한 간찰 몇 편을 맛보고자 합니다.
8월 그믐날, 채제공이 실각하여 집에 머물 때 쌀과 함께 보낸 어찰.
상림원 (上林苑. 창덕궁 요금문 밖에 있는 궁원)에서 수확한 쌀 네 말.
경기도 농민이 수확을 못해 곡물값이 금값이라, 황량한 교외에서 지내기가 궁핍하리라.
유독 이 禁苑의 벼는 큰 풍작이니, 이에 몇 말 보낸다.
사소한 것이라 부끄러우나 기념하는 뜻을 생각해주지 않으려는가?채제공은 쏟아지는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합니다.
다음은 1798년 섣달 열흘,
숙직하는 병조판서(서형수)에게 세찬歲饌을 하사할 때 보낸 어찰.
숙직하는 긴긴 밤을 종알종알 떠드는 자들과 맞대고 있을테니 기분 돋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민요에 “ 소녀들이 별을 세며 별 하나 나 하나 ! ” 하던데
이 세찬을 앞에 놓고 경이 한 해를 보낸다면,
나와 함께 하는 것이므로 민요에서 말한 것과 정말 똑 같으리라. 이만 줄인다. 『御札騰抄 』마지막장.
서형수 역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요.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중, 1796년 11월 그믐날의 편지.
부인은 쾌차했는가? 삼뿌리를 보내니 약으로 쓰도록 하라! 1797년 6월 열이레의 어찰.
부채를 보낸다. 이 전복과 조청은 맛이 좋기에 경과 나누어 맛보고자 약간을 편지에 동봉한다.1797년 6월 그믐날의 어찰.
지금 같은 무더위는 5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본다. 요즘은 잘 지내는가?
나는 오늘 간소한 음식을 준비하여 정성껏 경축했다. 인편을 통해 찬합 하나를 나누어주노니 받아서 맛보길 바란다.
1799년 10월 초하루의 어찰.
심환지의 아들(심능종)을 과거시험에 붙이지 못해 아쉬워하며 그를 위로하고자 보낸 편지입니다.
경이 심하게 늙기 전에 자식이 과거에 합격하는 경사를 보도록 조처하려 했으나 그리되지 못했다.
(왜냐? 300등 안에도 못 들었으므로...크크크..)
그리고.... 50세를 바라보는 국왕이 70세가 된 정승, 반대파 영수에게 보낸 어찰. (거의 열사흘 정도 편지 왕래가 없자 보낸 편지)
소식이 갑자기 끊겼는데 경은 그동안 자고 있었는가? 술에 취해 있었는가? 아니면 어디로 갔었기에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는가?
혹시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아 그런 것인가? 나는 소식이 없어 아쉬웠다.
이렇게 사람을 보내 모과를 보내니 아름다운 옥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겠는가? 아아....
아무리 심환지가 정치적으로 막중한 책임을 진 인물이라 하나..
야당 당수며 정적인 그에 대한 배려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둘은 과연 정적이었을까요...??
<나는 바빠서 눈코 뜰 새 없으니 괴롭고 괴로운 일이라.>
<나는 조금 나아졌고 앞으로 더욱 나아질 것이다.
백성이 마음에 걸리고 조정이 염려되어 밤마다 침상을 맴도느라 날마다 늙고 지쳐간다.>
<편지를 받고 위안이 되었다. 사흘 동안 눈을 붙이지 못했는데,
지금까지도 그대로 일하느라 피곤하지만 요행히 몸져눕는 것만은 면했다.>
<나는 일을 보느라 바빠 틈을 잠깐도 내기가 어렵다.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가 午時가 지나서야 비로소 밥을 먹었다. >
정조는 이렇게 새벽까지 공무를 처리하느라 힘겨워하는 처지를,
야당 대표 심환지에게 수시로 비밀편지를 보내 가감 없이 토로하였습니다.
일 중독증이라 여길 정도로 성실했던 제왕.
백성의 일로 심혈이 메말라가는, 그런 어버이같은 군주를... 이제는 모실 수 없는가...물론, 없겠지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