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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20 20:42
17/08/21 15:24
링크들 댓글 보면 기적의 교환비를 자랑하네요
본인은 줄타면서 어그로 끌어서 댓글단 사람들은 벌점 크크크킄 엄청나네요 운영진이 뭔가 처리를 좀 해주세요
17/08/20 20:00
아마 백의사관련 묘사를 한 처음 작품이 야인시대입니다. 백의사 관련 보고서가 해제된지 얼마 안되서 인듯해요 방첩 보고서가 2000년대 초반에 공개되었는데 재밌는 일화가 많이 적혀져 있습니다 가령 백범을 쏜 안두희가 백의사 단원이라던지 신익희 김구의 쿠데타 설등 한번 찾아보시면 잼있는 일화가 많습니다.
17/08/20 20:07
그렇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신사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던 신익희가 실은 정반대의 양반이었다거나
그전까지 해방공간의 음모설이 대개 이승만 전지전능설로 마무리지어졌다면 백의사가 끼면서 충격과 공포와 혼돈으로.... 그리고 유진산은 대체 몇살인가 등등.
17/08/20 20:18
백의사 관련 자료가 더 나오다 김구 선생이 백의사의 활동에 확실하게 연관 되었다는 물증이 나오는 순간 현재의 존경받는 독림운동가 김구 선생의 환상이 깨질텐데 그 후폭풍이 어떨지 상상이 안 됩니다....
17/08/20 20:22
세인/// 그렇다면 그냥 끝이죠 강량욱 암살건은 쉴드를 칠수가 없어요 죄없는 사람이 여럿 희생되었는데 아무리 북한 고위측 간부일지라도 정치적으로 연관도 없는 사람들인데 테러리스트랑 다를게 뭐인가요
17/08/20 20:30
다른 곳에서 본 말이긴 한데 솔직히 친일 청산 잘 되었으면 김구 선생은 지금과 같은 평가 못 받을 사람입니다. 김립 피살 및 강량욱 암살 시도로 까일거고 장준하 선생 회고록에도 나오듯이 친일파들이 가장 많이 접근한게 임정 인사라는 점도 있는데다가 강량욱 암살 시도는 1970-80년대에 IRA나 PLO의 테러방식과 거의 같은 방식의 테러라는 점에서 실드 쳐 줄수가 없죠...
17/08/21 08:05
독립 운동시기에 의거는 덴노 암살 및 일본의 고위 인사들이 모인 행사장 공격이라서 민간인 피해가 적기에 정상참작이 가능하지만 백의사의 김일성 강량욱 및 김책 테러는 완벽한 무고한 자들까지 같이 공격하는 현대적인 백색테러가 맞습니다. 목표를 죽이는데는 실패 했지만 강량욱 암살을 위해 폭탄을 던진 곳은 강량욱의 집이었고 그 때문에 강량욱의 가족 및 집에 방문한 목사 및 경비병이 죽었는데요... 요즘 테러의 이미지가 막장이 된 이유중 하나가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기 시작하면서인데 이 건은 민간인 피해를 감수한 테러 공격이죠...
17/08/21 10:33
차라리 모든 테러를 같은 기준으로 비판하는게 더 맞는 것 아닐까요?
테러를 통한 무력투쟁방식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모를까 결과론적으로 민간인 피해의 경중을 따진다는 건 인위적인 잣대라고 생각합니다. 암살이 아닌이상 테러와 민간인 피해는 떼놓고 생각할 수 없죠. 이봉창의 의거가 성공했다면 상당한 민간인 피해를 피할 수 없었을 거고, 윤봉길의 경우도 무고한 희생자가 많았을 거라는 건 보나마나 입니다. 즉, 목적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무력시위에 대한 가치 판단이 필요한 건입니다. 극단적인 비폭력주의자라면 자강론을 주장할 것이고, 폭력을 용인하는 사람이라면 독립군이나 의열단 같은 테러 활동을 지지했겠죠. 저 같은 경우는 일제의 병합이 아무런 명분도 없었고, 그 통치 방식도 악날했으며, 3.1운동 같은 비폭력 운동도 무력탄압을 받았으며, 외교적인 방법도 크게 의미가 었었던지라 다소 극단적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독립운동은 불가능하기에 무력투쟁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의 희생은 피할 수 없어요. 이는 현대의 인권의식을 기준으로 한다면 분명 원리주의에 가깝지만 당시의 가치관을 기준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수준의 가치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17/08/21 10:49
무력투쟁 자체는 불가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봉창 및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실제로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노력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봉창 의사는 메이지 덴노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고 윤봉길 의사는 일본군 행사 단상에 던졌죠. 그에 비해 해방 후에 북에 한 테러는 김일성의 경우야 윤봉길 의사 의거처럼 북한 행사 하는 곳에서 던진거지만 강량욱은 민간인 피해가 갈 것이 확실한 강량욱의 집에 테러 공격을 했죠... 그 점에서 다른 테러 공격들에 비해서 안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김구의 다른 테러는 그나마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이라도 했다면 이 건은 그 노력 마저도 안 한거니까요...
17/08/21 18:04
세인 님//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위해 노력했다는 근거가 없죠.
일본군 행사장에 나온 민간인은 무슨 죄고, 천황 행렬 구경나온 사람은 무슨 죄랍니까.. 차라리 테러행위가 보편적으로 나쁘다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더 일관성 있지 않을까요? 제 입장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김구의 과격한 성향자체를 비판하려면 동일한 테러행위에 대해서 같이 비판하면 되는데, 하나는 독립운동이라서 괜찮고, 하나는 정치적 테러라서 나쁘다. 이건 오히려 모순이 된다는거죠. 전 김구의 과격 성향이 일제 강점기에는 유효했으나, 해방 이후의 리더쉽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거구요. 김구의 공과를 말 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 언급하신것까지 생각하면 더 이해하기 힘듭니다. 김구는 IRA와 같은 방식의 테러리스트인데, 윤봉길의 의거는 민간에 피해를 덜주는 테러라서 감안할 수 있다? 이건 좀 아닌거 같습니다.
17/08/20 20:11
김구 흑역사는 파면 팔수록 계속 나오죠. 당대 독립 운동가들 사이에서 이미지 그리 좋은 사람도 아니었죠. 당시에 그리고 해방직후에는 임정은 그저 여러 독립 운동 단체 중 하나라는 말도 많았는데 지금와서 정통론 부정하면 죄인처럼 몰아가는 여론도 특이하달까
17/08/20 20:15
이승만이 한미수호조약 말곤 병맛 터지는 짓들만 골라서 한 독재자라..반대급부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아무래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았었고 사실 독립운동을 한 사람 그리고 어떤 계파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라고 쓰는 저도 사실 자세히 알 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들이 있겠죠 뭐..
17/08/20 20:19
당시로써도 교살의혹이 너무 많았어요 송진우나 장덕수등등 여운형 암살건에도 연루되었죠 여운형을 암살하였던 한지근은 백의사였고 법정에서 김구와 이승만이 나를 도와줬다는 진술도 하였죠 미군정과도 사이가 최악이였고요 이승만 역시 미군정이랑 사이가 상당히 안좋았어요 아마 반탁운동에 선두주자라서 그런듯 해요
17/08/20 20:29
젤 웃긴게 그거에요. 지금와서 민주당은 김구를 자기들 정치 계보의 시초로 삼는데 실제론 한민당이랑 이어지잖아요. 70전 전통 어쩌고 자랑할때도 한민당 언급하고요. 근데 정작 김구는 한민당과 사이가 매우 나빴고 언급하신 송진우 장덕수는 한민당 초대 2대 대표인 사람이죠. 오히려 한민당은 1공화국 초기엔 이승만과 친했고 여당노릇했었는데(자유당은 이때까진 있지도 않았고)
그렇죠 이승만이랑 미군정 특히 하지랑은 사이 안좋았는데 많은 분들이 친한줄 알죠. 당시 미군정이 밀어주려던 민족 지도자는 이승만이 아니라 김규식이었는데...
17/08/20 20:41
여운형도 첨에 하지가 여운형을 친일파로 몰고 트러블이 있었죠. 당시 미군은 기본적으로 국내에 있던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은 다 친일파로 간주했죠
17/08/20 20:40
미스포츈님 말대로 여운형이 미군정과 가장 친했죠. 실제로 암살 당한것도 미 군정에서 여운형에게 중요한 자리 주려고 한다고 해서 만나러 가다 당했죠...
17/08/20 20:24
많은 분들이 김구가 통칭 좌빨을 엄청 싫어하는 극우에 가까운 우파에 이승만이 통수치기 전인 해방 초기까지만 해도 친했고 이승만과 함께 임정 법통론 주장을 했다는 걸 잘 모르죠... 솔직히 지금의 김구 이미지는 이승만한테 통수 맞은 후 의 행보로 인한 이승만 대항마 이미지+백범일지 나온 중도적인 듯한 이미지 및 말년에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해 했던 여러가지 시도(대부분이 삽질이긴 했습니다만)로 인해 만들어진 이미지죠.... 추가로 김구 선생이 가장 존경받게된 계기인 백범일지도 대표적인 변절 친일파로 유명한 춘원 이광수가 윤문했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죠...
17/08/20 20:29
저도 이 얘기를 어설프게 듣긴 했는데 지금 보수꼴통 세력들이 김구를 비토 하는거 보면 웃기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김구도 이승만 못지 않은 극우라고 알고 있는데 이승만을 추앙하기 위해서 김구를 좌익 비스무레하게 만든다라...
본글에 적힌 사건도 결국은 사회주의 세력을 용납 절대로 못하는 김구가 만든 용서 받을 수 없는 사건이라고 보이더군요.
17/08/20 20:46
이승만에 대비해서 띄울거면 차라리 조봉암이 나와야 맞는거 아닐까요? 조봉암 조차도 이승만 밑에서 장관하던 사람이었지만...;;
그리고 소위 진보 진영에서도 시초로 삼을 사람은 조봉암이 되야 맞고요. 김구도 이승만에 가려져서 그렇지 그냥 우파도 아니고 극우에 가깝죠.
17/08/20 20:52
뭐 추가로 이승만 라이벌로 김구 선생이 조봉암 선생을 제낀 건 503 아버지 하고도 연관이 없진 않는 상황이라서... 김구 선생 차남인 김신 장군이 5.16때 박정희 대통령을 도와준 점이 영향을 끼쳤을 확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7/08/20 21:10
그게 컸다고 봐요.
레드 컴플렉스도 김구 측근이자 라인으로 초대 육군참모총장 해먹은 송호성이 625때 북에 투항하고 붙어버리는 엄청난 사고를 치면서 김구 계파 전체가 레드 컴플렉스에 자유로울 수 없게 될 뻔 했었는데 김신이 박정희에 붙으면서
17/08/20 20:25
사실 이승만 김구는 되게 친했죠 김구 죽기 직전 잠깐 빼고는요. 이승만이 임정에서 탄핵당한거 다시 임정에 연결시킨것도 김구고 임정에 돈없으니 돈보내달라고 편지보내서 이승만을 임정 자금줄 중 하나로 만든것도 김구고 김구는 이승만을 사적으로 형으로 불렀던 사람이니...
이승만도 임정은 껄끄러워 했는데 김구만큼은 환대 했죠. 해방직후 이승만은 임정 다른 사람은 빼고 김구만 입국시킬 수 없을까 고민했었는데...
17/08/20 20:16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임정 법통론의 가장 큰 수혜자가 김구 선생이라고 생각해서 임정 법통론 혹은 존경받는 중도적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신화가 깨지지 않는 한 김립 선생은 인정받이 못할 것 같아서 씁슬하긴 합니다.
17/08/20 20:39
저번 건국절 논란글에서 여운형과 같은 국내에서 활동하던 중도 및 좌익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임정 법통론에 부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정 설립시에 참여했다는 것 만으로 임정의 법통이 더 확고해 진다는 사람도 있었죠...;;
17/08/20 20:40
몽양은 건준 활동시기가 가장 주목 받던 시기이고 유명하다보니 아예 임정에 참여한 사람인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그리고 애초에 몽양은 임정에서 활약하긴 했지만 임정의 창립 자체를 그닥 환영하는 입장이 아니었으니 임정 정통론 싫어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17/08/20 20:12
이래서 성인을 위한 [잔혹한 위인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크크.
위인이라 칭송 받는 사람들의 과오(過誤)가 꽤 많다는건 어떤 위인에게도 해당되더군요. 이순신이라 하더라도... 그 과오가 공을 덮을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오까지 까놓고 얘기해주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7/08/20 20:16
뭐 사실 세종대왕도 흑역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닌지라..
아 댓글 읽고나니깐 박정희의 과에 대해서 말하면 분노와 증오 그리고 좌파 빨갱이를 토해내는 게 갑자기 확 이해가 가네요..(..);;
17/08/20 21:13
사기 진작이란 의미보다 군율을 엄하게 하여 군심과 민심을 한군데로 묶게 하는 역활로 보는것이 맞습니다
http://blog.daum.net/whatayun/6994650 오점이 아니고 잘한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당시 다른 조선군처럼 전투도 제대로 못치루고 흩어졌을것입니디ㅏ
17/08/20 20:25
제가 단어 선택을 잘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위인으로서 과오는 아니겠네요. 제가 얘기하려고 했던건 이순신의 사생활에서의 문제였거든요. 여자 문제에서는 이순신 역시 첩, 관기 등등 그 시절 남자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랐다고 들었거든요. 그게 우리가 이순신을 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영향을 크게 미치지는 못하지만요.
17/08/20 20:29
첩이나 관기는 과오라기 보다는 그 당시 고위직 남자의 시대적 당위로 인정해야죠. 당시의 관념은 당연히 지금 시대로 보면 인권 탄압이지만 당시의 시대는 그것이 당연한 시대였고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시대였으니까요. 세종대왕이 민주주의 실행 안하고 비빈들 뒀다고 깔 순 없지 않습니까.
17/08/20 20:43
조선시대에 대감이 첩이 없으면 정실부인에서 휘둘리는 찌질이로 보인다고 생각해서,
정실부인이 직접 첩을 골라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이랑은 시대상이 다르죠.
17/08/20 22:40
그 시대의 윤리적 기준을 토대로 평가하는 게 타당하겠죠. 그리고 연애관계, 성생활 문제에 대해 민감한 사람도 있지만 저처럼 아닌 사람도 있고요. 솔직히 이순신 정도면 노량해전 때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은퇴하고 죽을때까지 방탕한 성생활을 즐겼어도 여전히 사람들이 위대하다 했을 것 같은데.
17/08/21 00:23
어떤 책이나 자료를 봐도 이순신은 과오가 없어요. 인격적인 면에서는요. 그냥 뭐하나 꼬투리 잡는다면 사람이 융통성이 너무 없다고 어거지는 부릴수 있겠네요.
17/08/20 20:22
뭐 솔직히 제심정은 그래서 어쩌라고요 이네요
김구선생의 흑역사에 대해 글쓴분만큼 잘압니다 알아서 제가 김구선생을 존경하지 않냐 하면 정반대인데요 더존경합니다 예전 저김구선생의 흑역사로 허구헌날 넷상에서 김구선생까는 사람이 있었죠 새벽에 글쓰다라는 닉넴을 한 사람인데 제가 그사람글에 이렇게 댓글달았습니다 난 그래도 그모진세월 그고생하며 독립운동하신 김구선생을 존경한다고요 다른글에서 열심히 김구선생 힐난하시는 맘은 알겠는데 그래도 전 존경합니다 그어떤분들 보다
17/08/20 20:34
제가 이 글을 쓴 건 김구 선생의 어두운 면도 봐야 한다는 것과 함께 김립 선생의 억울함을 말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김립 선생의 복권이 빨리 이뤄졌으면 한다고 쓴 거구요. 김구 선생을 존경하는 것은 존중합니다만 그 때문에 억울하게 묻힌 사람을 위해서도 복합적인 평가가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7/08/20 20:28
개인적으로 1910~50년은 전 세계적으로 혼돈의 시기라서 그 때 벌어진 일은 회색빛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을정도예요. 왕들이 몰락하고 기존의 질서들이 파괴되고 신분 재정립이 마구 일어나고 그 상황에서 달리기 경주 하듯이 점령지(예를들면 프랑스, 폴란드...)의 임시정부가 여기저기 생겨나고요. 그러다가 현대의 정부사정으로 지워진 역사도 한 둘이 아니고... 진실을 밝혀야한다는 게 첫째로 가능한 일인가 싶고 둘째로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마치 잔뜩뭉친 실뭉치를 보는 느낌이라서요.
17/08/20 20:35
그래서 딱히 존경이라거나 하는 건 없습니다. (대신 그 시대니까 이해하는 건 있죠.) 오히려 만약 독일이 승전했다면 나치즘은 신생국가의 올바른 표본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을 정도로요. 홀로코스트가 잔혹하긴 했지만 그 후의 영국의 유태인 이주계획같은 거 보면 유럽 사람들 죽일 생각만 안했지 나치들과 유태인에 대한 인식이 큰 차이가 있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본받아서는 안될 야만의 시대였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7/08/21 12:04
맞아요. 당시 유럽 사람들이 유태인을 보는 시선은 큰 차이가 없었는데, 나치에 대한 반발로 인종 차별을 혐오하는 사상? 이 발전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17/08/20 20:38
이게 좀 더 발전적인 논의가 되려면, 김구 뿐만이 아닌 공과가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 접근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단순히 누구누구는 공이 있다. 누구누구는 과가 있다고 나열하는 건 팩트를 가장한 프레임 짜기에 불과합니다. 팩트의 취사 선택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특정 집단의 전형적인 방식에 지나지 않죠. 본문으로 돌아가서 전에도 적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김구가 다소 과격하고 폭력적인 수단을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오히려 그런 그의 과격함이 이봉창이나 윤봉길의 의거 혹은 테러같은 극단적인 무력시위를 시도했던 원동력이었다고 보는 편입니다. 이걸 현재의 기준에서 바라보면 단순한 폭탄테러지만, 시대상을 고려할 때는 무장 투쟁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한게 되는거죠. 그의 과격한 성향은 외부에 공동의 적이 존재하는 일제 시대에는 영웅적인 특성으로 드러날 수 있지만, 내부 투쟁이 빈번한 국내 정치에 있어서 지도자로 활동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이었다고 보는 편이구요. 아무튼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이기에 현대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동일한 잣대로 보는 것이 오히려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17/08/20 20:45
그런 부분에서 몽양 선생이 참 아쉽죠. 투쟁이 끝나고 건국이라는 부분에서 그분의 능력치가 참 좋았는데 시대상황의 비극이 아쉽죠. 그리고 백범의 흑역사에 몽양의 죽음에 관련의혹도 포함이죠.
17/08/20 20:38
해방 이후 주요 민족 지도자 암살 사건 중에서 배후로 김구가 거론 안된 사건이 드문 수준이죠. 그 예외가 김구 본인 암살 사건;;;
17/08/20 20:44
전 본문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김립은 백범이 우리나라에서 메인스트림이라 주목 받지 못한다기 보다는 그냥 좌익이라 그런 상황이라고 봅니다. 몽양은 김립보다 훨씬 더 무게감 있고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큰 인물이지만 그가 주목 받기 시작한 건 노무현 정부때였죠. 우리나라의 레드 컴플렉스가 공산주의자 독립운동가들의 평가를 가로막는 것이 더 크다고 봅니다.
17/08/20 20:48
김립이 주목을 못 받는 건 좌익이라 그럴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김립이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독립훈장을 받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김구의 백범일지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적어놓은 참고 기사 말미에만 봐도 김립 선생은 백범일지에 적힌 임시 정부 공금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아직도 서훈 상신이 기각되는 상황입니다. 저 건이 없었으면 관심은 몰라도 최소한 대한민국 독립훈장 받고 독립 운동가로 인정은 받았을 겁니다...
17/08/20 21:00
글쎄요. 당장 김립의 억울함이 재조사 되고 만천하에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당장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서훈 목록만 봐도 순수 공산주의자들 찾기가 엄청나게 힘듭니다. 당장 중도파인 몽양에게 건국훈장 수여 할 때의 정신나간 색깔론이 기억나는데요. 김립은 억울함이 벗겨지더라도 북한 망하기 전까지는 힘들다고 봅니다.
17/08/20 21:03
저도 여기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몽양선생의 건국훈장 추서에 빨갱이 훈장준다고 설치던게 아직도 기억나네요.
뭔가 새로운 연구가 이루어져서 김립의 숨겨진 공이 밝혀지더라도 그게 김구의 알려진 과를 덮을 수준이 아닌 이상 지금과 별 차이는 없을 겁니다.
17/08/20 21:07
몽양이 그렇다면 이동휘는 어떤가요? 이동휘는 김립과 함께 상하이파 공산당의 중심 인물에 김구가 이동휘가 김립을 시켜서 공금 횡령 했다고 할 정도로 많이 좌익인데 대한민국 독립훈장 받았습니다. 좌익 독립운동가가 훈장 받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이동휘가 받을 정도면 김립도 억울함이 벗겨지면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7/08/20 21:18
이동휘가 추서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어떻게 보면 [패션 좌파] 였기 때문입니다. 이동휘는 애초에 무장투쟁론자였고 창립 당시의 임정은 돈이 없어서 무장투쟁에 회의적이었죠. 그래서 소련에게 돈 받고 무장투쟁 가능한 공산당 쪽으로 옮긴 것이고요. 본인 스스로도 공산주의 잘 모른다고 술회했다니 정상참작(?)에다가 임정 창립 메인이니 줄 수 있었던 것이겠죠.
그리고 저는 김립이 좀 더 연구되어야 할 사람이라고 봅니다. 당장 누명 벗는다고 네임드급이 되어서 훈장 안겨줄 만큼의 업적이 아직 확실하게 나오진 않은 것 같아요.
17/08/20 20:49
제 인식이 맞는건지 확인받을겸 궁금 한게 있는데 저는 이 당시의 독립운동이 일종의 프리 포 올이라고 보거든요.이들의 활동이 개인단위라고 생각하고 해방 뒤의 정부 구성에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게 제 생각인데 만약 이들이 미-소의 개입이 없었고 서로 공적경쟁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쓰고보니 이거 질문이 좀 이상하네요.
17/08/20 20:54
말씀하신대로 독립운동 자체는 각자도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방 이후가 더 개판이었죠. 미국과 소련의 개입이 없었더라도 당연히 내전 한 번은 터졌을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승리자는 독재를 시작했겠죠. 이것이 바로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을 비롯한 수 많은 독재국가들의 현실이고요.
좀 웃기는 것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면 정말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죠. 명색이 독립운동가라는 초대 대통령이 친일파 등용 및 오만 개삽질을 해서 독재를 하려다가 명분 딸려서 물러났죠. 이후의 독재자들도 하나 같이 정통성에 큰 하자 하나씩 안고 있어서 국민들의 저항 결집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고요. 현존 독재국가들처럼 독립운동가들이 그대로 독재자로 변모한 것이 아니라서 참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17/08/20 21:32
그 친일파 등용을 주도한것도 이승만보다는 미군정때 경찰하던 조병옥 장택상인데 얘네는 이승만이랑 갈라서고 민주당에 가서 거기서 지도자 노릇을 해먹었죠. 이들도 독립운동가 출신이긴 하죠.
한국의 민주화를 대표한다는 양김은 둘다 장택상 측근이었고...
17/08/20 21:11
동의합니다. 그놈의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공산당의 공자만 나와도 역사에서 삭제하려는 움직임이 최소 몇십년은 있었고, 독립운동가든 누구든 네 다음 빨갱이 한마디면 공이 있든말든 그 공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적이 수십년간 이뤄졌죠. 당장 몽양 선생같은 분도 재조명된게 얼마 안됐고 그마저도 노무현 정부때였고요. 이제야 슬슬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있긴 하지만 수십년간 쌓여온 관성이라는건 결코 쉽게 부술 수 있는게 아니니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근 역사 교육 자료 보면 과거보다는 확실히 나아지고 있긴 하더군요. 물론 북한이 존재하는 한 급속도로 진전되기는 힘든 일이겠지만 말이죠.
17/08/20 20:46
파파괴 김구 선생님이 또...예전에 이런 김구선생님 흑역사에 대해서 처음 알았을때 충격이 생각나네요 크크 사실 거품이 많이 있을뿐 그래도 위대한 독립운동가긴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알게 됐던게 몽양 여운형 선생님이 진짜 존경받을만한 분이었다는거였네요
17/08/20 20:51
많은 분들이 해방이후 625 전쟁전 까지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김구의 재평가+몽양의 위대함이죠 그리고 90% 확률로 이승만은 천하의 xxxx
17/08/20 20:54
그 시절 근현대사를 파다보면 런승만을 안 깔 수가 없죠... 거기에 6.25때 런한거에 3.15 4.19로 이어지는 연타는 그의 평가를 일부를 제외하고는 나락보다 더 밑으로 떨구게 되죠 크크크
17/08/20 20:57
런승만 방송은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갑니다 피난이 어려워서 방송한것도 아니고 대구로 갔다가 대전으로 와서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군국이 북한을 어쩌고 저쩌고~~ 하고 바로 한강 다리 꽝 이유를 알수 없습니다 진짜로 북한군 지연을 위해 서울 시민들을 방패막이로 삼은건지 뭐 축차 투입도 비슷한 맥락이니 인멸 경시의 극치를 달했던 시기인것 같군요
17/08/20 20:54
당시 김구는 대중들에게 크게 인기도 없었어요. 당시 여론조사 보면 김구가 높게 나오지 않죠. 정치적으로 힘이 있거나 세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김구가 이끌던 한국독립당이 선거나 정치판에서 거의 존재 가치가 없엏죠. 당대 유력 지도자들 중에서 김구랑 친했던 사람 없습니다. 그나마 이승만은 말년에 틀어진거고 거의 젤 끝까지 친했던 사람이죠. 요즘 들어서 관심 받는 독립운동가 혹은 민족지도자라고 할만한 사람들(여운형 김규식 김원봉 등등)의 공통점은 다들 김구랑 사이가 안좋았다는 겁니다.
17/08/20 20:58
3공화국의 유력인사로 알려진 김신 장군이 아버지의 기념사업을 잘한거라고 봐야죠.
기념사업이라는게 원래 공을 널리 알리고 과를 가리는 거니까요. 딸래미가 말아먹은 박정희 기념사업회보다는 뭐..
17/08/20 20:56
제가 역알못이라서 그런데.. 이런 흑역사나 행적들을 보면 김구는 꽤 강경한 민족주의자+반공주의자 노선이었던거 같은데
교과서에 나오는 좌우 합작운동은 왜한건가요?
17/08/20 21:16
김구선생은 좌우 합작운동을 한적 없지 않나요??? 여운형 김규식이 주도했던걸로 압니다 김구선생은 미소공동 위원회를 부정적으로 봤던 사람이에요
17/08/20 21:26
말년에 런승만한테 배신 당하고 김일성 만나러 다니고 한 것 이야기 인것 같습니다. 뭐 그때는 이승만한테 밀린 입지 뒤집어 보겠다는 정치적인 수이긴 했죠... 김일성한테 폭탄 던진 사람이 김구 신임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죠...
17/08/20 21:19
좌우 합작이라는 건 그냥 정치상의 프로파간다죠. 명분은 그럴듯 한데 현실은 '내 위주로 합칠테니 니가 와라' 같은거죠.
요즘말로 하면 누군가가 말하는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연정' 같은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옆나라 국공합작만 보더라도 정작 성사되었다고 해도 제대로 굴러갔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교과서 한 줄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봐야죠.
17/08/20 21:26
김구는 좌우 합작에도 부정적이었습니다. 여운형 안재홍 김규식 등이 좌우합작 지도자들입니다. 김구는 이름만 올린 정도에요. 나아가 김구가 주도한양 알려진 남북협상도 김규식이 주도한거에 김구는 따라간 수준이고요.
17/08/20 21:07
근현대의 유력 정치인을 평가할 땐 시기와 이념도 함께 조명했으면 합니다. 김구는 오랜기간 독립운동으로 평가할만하지만, 해방 후의 활동은 이승만과 궤를 함께하지요. 한반도 분리의 계기가 되는 신탁통치도 어중간한 입장만 고수하다 이승만 패권에 힘을 준꼴이었습니다.
이후 우리가 아는 민족지도자 김구는 남한단독정부 수립 결정 이후 저격당할 때까지의 짧은 기간이었네요.
17/08/20 21:14
임정에서 이승만 부정적 여론 나오면 이승만 변호해주던게 김구였죠. 이건 이해가 가는게 돈 없어서 맨날 고생하던 임정의 몇 안되는 자금줄이 이승만이라 임정 살림 책임 지던 김구로선 이승만 버릴 수 없었죠.
이승만이 임정에 정기적으로 돈보내 주던 사람이란 것도 거의 안알려졌던데 심지어 이승만과 갈라선것도 장덕수 암살사건 터지고 모두가 김구를 의심할때 이승만이 대놓고 실드 처주지 않았다고 김구가 빡쳐서 갈라진건데;; (이승만이 실드 안친건 아니고 좀 쳐주긴 했는데 뭔가 애매한 태도였기에) 이건 이승만이 잘못한거라 하기도 그랬죠. 뭐 이미 결별할 생각 하고 있을때 장덕수 사건이 계기가 된거 뿐일수도 있겠지만요. 어쨋든 저런걸로 빡칠정도로 저때까지 김구와 이승만은 영혼의 베프수준이었죠
17/08/20 21:20
실제로 저 사건 이후에 임정의 국제적인 신용도가 팍 떨어지죠... 본문에 나온 사건도 부정적으로 보면 김구가 좌익측 돈 슈킹하려고 한 거라고 할 수도 있죠... 문제는 이 건이 터지면서 좌익측이 아직 안 받아왔던 140만 루블은 증발했다는 거...;;;
17/08/20 21:36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는 분들도 게시고 지금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된다는 분들도 게신데요
그 시대 인물들 중에서도 김구가 유독 흑역사나 논란거리가 많습니다 하다 못해 위키나 나무에 나온것만 봐도 동시대 다른 네임드 독립운동가나 민족지도자들보다 김구에 대한 논란거리가 훨씬 많습니다 또 지금 기준으로 평가하는게 아니라 당시에도 그런 사건들 때문에 김구에 대해서 논란이나 비판 많았습니다.
17/08/20 22:45
저는 해방 후 김구보다 임정 당시가 더 흑역사란 생각도 합니다. 특유의 배타성으로 인한 분열의 시초를 제공했죠. 그래도 많은 과를 가지고 폄하 할 수 없는 인물이죠.
어릴적 김구선생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때, 초대 대통령이 김구였다면... 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여운형 선생이나 김규식 선생이었다면 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가 대통령이 됐어도 4.19는 일어났을 것 같아요. 주체가 달랐겠지만.
17/08/20 22:45
예전에 어디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얼핏 들었던 얘기네요. 근데 백범일지에서 묘사한 젊은 시절 모습만 봐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생 흑역사 하나 없이 고결하게만 살아온 사람은 흔치 않기에 부정적인 측면도 전부 조명해서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게 맞겠죠. 그리고 솔직히 한국 근현대사는 갑갑해서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종종 알게 된 내용만으로도 생각 이상으로 국사에서 배우는 근현대사는 왜곡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앞으로도 좀 더 중립적인 연구들이 많이 나오고 그게 대중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예전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이유 등으로 묻혔던 독립운동가들도 종종 짧게나마 미디어에 나오기도 하더군요.
17/08/21 00:17
그게 힘든 이유가 우리나라만 왜곡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가 2차대전 시기의 기록이 분명치가 않거든요. 아예 제3자가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이 시대에 시대상을 냉정하게 볼 수 있었던 나라가 제로인데다 각 세력마다 기록을 너무 다르게 해놔서 진위도 가리기 힘든 것도 문제죠. 그나마 미국같은 경우는 탄압했다는 기록이 남아서 조금은 낫지만 미국 자체도 50~60년대는 메카시즘 광풍이 불어서 엉망진창이었으니...
17/08/20 22:59
혹시 이런 해방전후사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사에 대해 읽기 쉽고 알기 좋게 설명된 책이 있을까요?
단편적인 인터넷에서 읽는 내용도 좋긴 한데 책으로 읽고 싶네요..
17/08/21 01:05
한 역사적 인물이 어떻게 굿맨 배드맨 딱 이분법으로 나눠지겠습니다. 지금은 리승만과 건국절 친일파들 때문에 임정이 정통성이 얻고 있지만 먼 미래에는 또 모르죠. 역사적 평가는 그 시대의 맥락과 함께한다고 봅니다.
17/08/21 05:44
전 과연 김립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쓸 공금을 횡령했는지 안 했는지 궁금합니다.
'임시정부'로 갈 자금이든 아니든 말이죠. 김구가 백범일지에 ["김립은 이 금괴로 북간도 자기 식구들을 위하여 토지를 매입하였고, 이른바 공산주의자라는 한인, 중국인, 인도인에게 얼마씩 지급하였다. 그리고서 자기는 상해에 비밀리에 잠복하여 광동여자를 첩으로 삼아 향락하는 것이었다]라고 적었고 이것이 사실이라면..김립은 '소련이 한인사회당과 그 후신인 상하이파 공산당에 준 자금'을 상하이파 공산단원이 [사적으로] 쓴 것이 되는 것이라, 어차피 횡령으로 보입니다.
17/08/21 07:41
글을 끝까지 읽으신 것 맞나요? 본문에도 적었는데 소련 코민테른 문서에서 자금의 사적인 유용은 헛소문으로 확인되었다고 했는데요? 이 건은 김구의 헛짓이 맞습니다.
17/08/21 07:09
근데 어차피 소련 공산당이 .공산당에게
준 금괴를 빼앗아 독립자금에 쓴거라는거죠? 어차피 소련. 공산당에준 자금 뺏은거고 공산당원과 관련있는. 사람을 처벌한것이라면 잘한일 같은데요?
17/08/21 07:57
독립 후에나 저 위의 혹부리우스 3대 때문에 공산당이 불법이 된 거지 독립운동 당시에는 공산당이 불법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한인사회당 및 상하이파 공산당은 저 사건을 계기로 김구가 쫓아내기 전까지는 임정의 공식 정당중 하나였고 당의 지도자인 이동휘는 국무총리를 맡았고 당장 죽은 김립만 해도 임시정부에서 비서실장을 했는데요. 요즘 식으로 풀면 503 시절에 외국에서 정의당쪽에 자금을 주고 정의당이 알아서 썼는데 새누리당이 외국에서 자금을 정부에게 준 돈을 정의당 주요 인사가 횡령했다고 주장하면서 정의당 주요 인사를 죽인 겁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횡령은 헛소문임이었고 돈은 정의당에 준 것이 확인 된 거죠...
17/08/21 18:42
그렇군요 해방전후 역사는
참으로 복잡하고. 깊게 들어가면 엄청난 일들이 많더라구요 사실 최근 한반도 북미 대결만해도 엄청난 무력 시뮬레이션이 이루어 지는 기분이구요
17/08/21 10:34
웃기는건 극우나 일베 등에서는 아무리봐도 흑역사인 저 사건을 두고 그래도 김구가 빨갱이는 아니었다.
임정에서 빨갱이 척결 잘 했다. 이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17/08/21 11:57
제가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공은 공이고 과는 과이니 분리해서 봐야 한다 라는 시각입니다.
일제시대때 일본이 깔아놓은 철도나 기타 기반시설 때문에 대한민국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라고 이야기하는 뉴라이트를 보는거 같아서요.
17/08/22 12:12
뾰족은 뾰족이고 둥근것은 둥근것을 머 어찌하겠습니까. 저 자는 뾰족한 부분이 있으니 여하 불문 작살을 내야하는 걸까요? 공과 분리를 이유로 과도 공이라 하거나 의도가 불순 했는데 생겨난 공을 공치사 하는게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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