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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3/10 05:24:09
Name 王天君
Subject [일반] <문라이트>, 다른 영화들
보이후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아수라

의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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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영화들이 스텝프린팅과 20세기 멜랑꼴리의 잔상으로만 남아있는지라 안타깝게도 <문라이트>를 그와 연결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 원래 영화를 다른 영화와 연결지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조되는 영화들이 각자의 고유한 점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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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문라이트>가 흑인 버젼 <보이후드>라고 한다. (인종을 중심으로 한 이 표현이 정치적으로 공정한지는 잠시 제쳐두자) 유년기부터 청년기를 통으로 꿰뚫는 연대기적 흐름에서 두 영화는 얼핏 닮아보인다. 그리고 그것 뿐이다. 이를 제외하면 이 두 영화는 완전히 다른 영화다.

<보이후드>는 삶과 영화를 등치시키려는 실험이다. 이 영화가 인생을 조명하는 방식은 우리가 인생을 기억하는 방식 그대로다. 그 어떤 인간도 삶 전체를 기억하지 못한다. 유년기, 소년기, 사춘기, 청년기, 이 시간의 뭉텅이들은 영화 속에서 정확하게 잘려서 조각으로 존재한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파편화되어있다. 이것은 영화가 거대한 서사를 데드타임을 제외한 중요한 순간들 하나하나를 컷으로 구성하는 방식과 일치한다. 어렸을 때 급히 이사가던 기억, 머리를 빡빡 밀었던 기억, 아버지와 호수에 놀러가 스타워즈 이야기를 하던 순간들이 어딘가에 가라앉은 인생 전체를 대표하고 상징한다. <보이후드>는 매우 영화적이지만 동시에 영화를 벗어나 삶을 시도한다. 기승전결이 없이 그저 흘러만 가는 영화 속에서 우리는 시시콜콜한 일들을 인생으로 엮는다. 주인공이 사진을 배우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보이후드>는 활동사진으로 순간순간을 박제한다. 이 영화의 목적은 분절에 있다. 시간 외에는 그 어떤 의미도 없이 늘어놓는 조각들이 과연 인생으로 읽힐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주인공들은 이야기한다. The moment seizes us. 그 순간순간이 목표와 욕망에서 벗어나 흐름을 구성한다.

<문라이트>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영화다. 순간의 기억은 그 자체로 남아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샤이론이 일생 내내 묻는 질문에 대한 답과 연결되는 순간들이다. 이 영화의 단절은 이미 정해져있는 의미를 추구하는 의도적 수단이다. 샤이론에게 있을 수많은 순간들을 대표하는 딱 세 막이 영화를 채운다. Little이었을 때, Chiron이었을 때, Black이었을때. 이 세개의 막은 각각 한 인간의 호칭으로 그 막 전체를 감싸는 다른 시간들을 압축한다. <보이후드>처럼 그 땐 그렇기도 했지, 가 아니다. <문라이트>에서 샤이론이 겪는 행복과 불행은 흑인사회 속 게이라는 특정성 때문에 일어난다. 그 누구나 겪을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평생 나눌 수 없는 체험들이다. 그 특별한 인간을 중심으로 영화는 통일을 꾀한다. 몰랐고, 알게 되었고, 모른 척 하던 것을 분명히 하나로 뭉치고 싶다. <문라이트>는 나눠져있던 것들이 마침내 바닷가 앞의 푸른 소년으로 합쳐진다. 리틀일 때도, 샤이론일 때도, 블랙일 때도 파란 인간의 진실을 찾아 헤맨다. 이 영화에는 분명한 도착지가 있고 멀지만 돌고 돌아 결국은 거기에 닿고자 한다. 이 세개의 순간은 그 소년을 향해가는 인과의 통과지점들이다.

<보이후드>는 나뉘어져있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보는데는 아무 무리가 없다. 거기에는 정해진 배우들이 현실의 나이를 그대로 옮겨가며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배우가 변하지 않으면서 나뉘어져 있던 순간들은 그대로 옮겨진다. 그 때와 지금, 꼬마 시절과 사춘기 시절은 한 인간의 얼굴에 다 들어가있다. 수염이 덥수룩해지고 턱이 날렵해지지만 그는 여전히 영화 시작 때 봤던 그 사람이다. 시간이 축적되면서 자라난 인간은 그 때마다 다르고, 크게 변한 건 없다.

<문라이트>는 정 반대로 간다. 한명의 인간이지만 세명의 배우를 기용해 인간을 나눈다. 샤이론이라는 인간은 불리는 이름부터 나뉜다. 샤이론이지만 리틀로서, 샤이론으로서, 샤이론이 아닌 블랙으로서 각각 다른 인간이 다른 얼굴로 한 인간을 표현한다. 막이 올라갈 때마다 달라지는 배우들의 간극에서 관객은 당황한다. 리틀이었는데 샤이론이고, 샤이론이었는데 블랙이 되었다. 시간 아닌 어떤 사건들이 한 인간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보이후드>가 그 때 그 애 틀림없지? 라고 묻는다면 <문라이트>는 이게 그 사람이야?라고 묻는다. <보이후드>에서 인간의 증거가 되는 기억들이 <문라이트>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 답을 얻기 위해 오히려 아주 멀리, 아주 많이 변한 모습을 보며 더듬어야 한다. <보이후드>가 고정된 인간에게서 변화의 흔적을 찾는 이야기라면 변하는 인간 속에서 움직일 수 없는 무언가를 찾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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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배우가 한 영화 속에서 한명의 인간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문라이트>는 작년 가을에 개봉했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상기시킨다. 두 작품의 영화적 성취를 나란히 비교하기에는 민망하지만, 같은 시도가 상반된 효과를 가져온 이유를 질문할 수는 있다. 왜 김윤석과 변요한의 수현은 알렉스 히버트, 애쉬튼 샌더스, 트레반테 로데스의 샤이론처럼 하나로 합쳐지지 못했는가. 혹은 왜 <문라이트>의 인간들이 한명이 될 수 있었는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보며 의아했다. 왜 과거와 현재가 두명으로 나뉘져야하는가. 이는 기본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동일인이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는 함의를 지닌다. 분명히 다른 두 인격체를 가져다놓고 한명이라고 우기는 데 속는 사람은 없다. 변요한이 어떻게 김윤석이 될 수 있는가. 변요한은 나이들어도 변요한이다. 그런데 별로 닮지도 않은 두 사람은 과거에서 만나더니 한 명은 반기고 한명은 놀랐다가 이내 믿는다. 성형수술을 했다는 설정이 아니면 절대 현실적으로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다. <은교>의 박해일은 노인 분장을 한다. 이 두 한국영화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상업적 성공을 위한 더블캐스팅 혹은 일인캐스팅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캐스팅은 영화의 의미를 결정짓는다. <매트릭스 리로리드>에서는 오라클 역을 맡은 기존 배우의 사망으로 다른 배우를 기용하고 거기에 의미를 채워넣었다. 겉모습은 달리 보이겠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현실적 이유로 영화를 납땜할 수 밖에 없지만 창작자는 이로 인해 생기는 의미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두명의 수현은 결국 현재, 미래의 수현으로 귀결된다. 영화에서 과거와 미래는 연결되어있고 변요한의 수현이 김윤석의 수현이다. 심지어 영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요한이 김윤석이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과거와 미래의 연결, 결국 한 명의 인간이라는 영화적 의미를 두 명의 인간으로 갈라놓은 제작의 오류 아닌가. 변요한의 과거와 김윤석의 현재, 미래를 두고 그 누가 결국 같은 시간대의 한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심지어 과거의 변요한은 끝에 가면 미래의 김윤석에게 흡수되는데.

<문라이트>는 세명의 인간이 한명을 연기한다. 심지어 배우들은 그렇게 닮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종국에는 하나의 인간에 도달한다. 결국 영화의 메인포스터처럼 나눠진 인간들을 하나로 합친다. <문라이트>를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인간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눠진 한 인간의 합이다. 세상이 물을 때 솔직해질 수 있을 것인가. 거짓말을 배우지 않은 자신,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자신, 거짓말이 몸에 익은 자신, 리틀, 샤이론, 블랙은 그때마다 자신을알지 못했거나 모른 척 했다. 한 순간 하나의 선택이 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자신의 정반합을 거쳐야 한다. 시간과 장소, 사건에 따라 한 인간은 달라진다. 그는 약하고 부드럽고 사납다. 후안에게 물을 배운 리틀이 있었다. 케빈과의 비밀을 지킨 샤이론이 있었다. 어머니를 용서한 블랙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푸른 빛에 닿는다. 언제나 푸른 빛의 세상에 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시 내뿜는가에 따라 샤이론은 달랐다. 그래서 세 명의 배우는 각각의 푸른색을 그린다. 빨간 점을 찍은 파랑, 빨강이 뒤범벅된 파랑, 빨강이 완전 섞여 시커매진 파랑. 달이 다시 비출 때 어둠 속에서 파랑은 제 색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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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색으로 그리는 방식에서 <문라이트>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닮았다. 둘 다 파랑색을 스치며 자신에 눈을 뜨고 파랑색으로 채워진 세상에서 그리워한다. 한 명은 만나고 한 명은 헤어진다. 한 영화는 뜨겁게 시작하지만 차갑게 끝나고 한 영화는 차갑게 시작하나 따뜻하게 끝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파랑은 끌리는 인간의 표식이다. 파랑은 아델에게 엠마를 뜻한다. 파랑은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타인의 신호다. 그의 파란 머리가 아델의 눈길을 잡아챈다. 부딪힌 시선이 횡단보도 신호가 끝나자 서로 지나치며 멀어진다. 둘은 다시 만나고, 키스하고, 서로의 몸을 쓰다듬는다. 그러나 2부가 시작될 때 엠마의 머리색은 노랗다. 푸른 머리의 엠마는 없다. 아델이 그렇게나 사랑하고 애절했던 인간은 사라졌다. 파랑이 일깨운 정체성은 흔들린다. 아델은 남자와 키스를 했다는 이유로 엠마에게 경멸당한다. 둘은 찢어진다. 아델은 아직 레즈비언으로서의 자신을 확신하지 못한다.

이 영화의 파랑은 흔들린다. 물들기 전에도, 물든 후에도 감정은 현실을 헤맨다. 파란 머리를 스쳐지나간 후에도 아델은 남자친구와 섹스한다. 파란 머리가 노랗게 변하자 아델은 다른 남자와 춤을 추고 미소를 섞는다. 파랑은 그의 정체성을 결정짓지 않는다. 아델이 비틀거리며 엠마의 미술관에서 나오는 마지막 씬, 그를 어떤 남자가 쫓아간다. 파랑은 마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파랑은 엠마라는 인간에게 머무른다. 다른 남자나 여자, 누군가가 파랑의 의미를 아델에게서 벗겨낼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문라이트>의 파랑은 빨강과 싸우면서도 결국 같은 답을 하게 되는 질문이다. 샤이론은 케빈이라는 한 인간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파랑은 한 명의 타인이나 외부에서부터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샤이론 자신의 신호에 가깝다. 샤이론이 리틀일 때, 그는 케빈과 상관없이 faggot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가 후안에게서 물을 배운 것은 자신의 내면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답이다. 달빛 아래 푸른 인간의 전설 역시 후안과 샤이론, 샤이론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그의 내부에 숨어있는 파랑은 2부부터 외부를 향한다. 물의 세계를 배운 인간이 달빛 아래서 눈물을 이야기한다. 내부에서 흘러나온 물은 바깥의 물과 닿으며 그에게 파랑을 일깨운다.

이 영화의 파랑은 선명하다. 호칭이 변하고 색이 변하지만 그것은 어릴 때부터 늘 잠재되어있던 것이며 감출 수 없는 것이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파랑이 아델의 마음을 세상에 투영한 결과라면 <문라이트>의 파랑은 자신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를 가리키는 스스로의 표지판이다. 다른 사람이 너를 결정하게 하지마. 스스로 묻고 깨닫고 답한다. 오랜 시간을 지나 파랑은 확고해진다. 영화는 리틀이 샤이론으로 태어났던 바다를 향하고 달빛을 받는 소년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두 영화의 파랑이 나타나는 형태 역시 다르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파랑은 주로 색의 형태다. 그것은 다른 것을 가리고서 공간을 채운다. <문라이트>의 파랑은 빛으로 나타난다. 푸른 빛은 반사되거나 비춘다. 색이 누군가에 칠해지고 지워질 수 있는 것이라면 빛은 자연, 밤이라는 시간이 일으키는 불변의 조화다. 색은 단일하게 드러나는 존재의 형태다. 빛은 광원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받아 자신의 색과 빛을 섞는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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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를 이야기하면서 남성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강한 것, 압도하는 것이 미덕이자 완성으로 여겨지는 세계에서 결국 남성성은 무엇을 놓치고 실패하는가. 그런 점에서 결은 달라도 <아수라>를 겹쳐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영화 모두 남성성을 진리로 삼는 세계에서 약할 수 밖에 없는 남자가 질서에 저항한다. 강해지든가 피를 보든가. 강하지 않은 인간은 결국 피를 본다. 독해졌지만 혼자 운다.

샤이론이 게이로서의 자신을 깨닫기 전부터 게이, faggot은 흑인 사회의 욕이었다. 그러니까 faggot은 약하다는 뜻이며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약하다는 뜨이다. 남자는 늘 지배해야 한다. 지배하기 위해서는 부러뜨리고 부러지지 않아야 한다. Soft와 Hard의 두 세계 사이에서 남자는 울어서도, 안겨서도 안된다. 더욱이 남자가 남자의 살을 만지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남자에게 다른 남자는 서열싸움의 대상일 뿐이다. 오로지 싸움과 경쟁으로 소통하는 사람들끼리 키스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모두가 적이거나 부하인 세상에서 그것은 동등해지고 아껴준다는 뜻이다. 주먹의 끝에 왕이 있다면 반대편에는 게이가 있다. 그것은 남자도 아니다. 약한 놈들은 게이의 불명예를 달아야 마땅하다. 약하고 게이였던 샤이론은 블랙이 되지 않았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한도경은 다정해지고 싶다. 그에게 나쁜 짓은 적성이 아니다. 그는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 그의 폭력, 그의 남자다움은 한몸 보신을 위하는 동시에 세상에서 제일 약하고 불쌍한 아내를 위한다. 남자다움은 그의 본능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배운 자세이며 공존을 위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의 남자다움은 언어가 되지 못한다. 이 세계는 소통하지 않는다. 한 쪽은 말 하고 한 쪽은 무릎을 꿇는다. 남성성이 완성한 짐승의 세계는 그 남성성을 털털 털어내고서야 깨진다. 선모가 차를 몰고 최사장과 보디가드를 으깰 때 박성배는 칭찬한다. 남자답네! 한도경의 얼굴을 담배로 지지고나서 박성배는 "이 형이!! 널 지켜줘!!"라고 약속한다. 남자다움과 브라더후드는 인간을 기만한다. 그 누구도 의리 따위를 찾지 못한다.

남자다움, 강한 남자들끼리의 인정과 라이벌의식, 이 모든 것들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주는 것. 두 영화에는 그냥 생긴대로 죄를 짓고 싶지 않은 인간들이 있다. 남자를 빼면 인간이 남는다. 그들은 늘 인간답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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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들은 비슷한 질문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묻는다. 인간은 세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본연의 인간은, 나누어진 인간은 어떻게 울고 하나가 되는가. 영화가 담고 있는 세계가 충돌할 때 현실이 완성된다. <문라이트>는 다른 영화들 사이에서 어떤 길을 가고 어떤 세계를 만들었는가. 거기에 대한 대답을 현실의 샤이론들이 리틀로서, 블랙으로서 치열하게 찾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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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시아
17/03/10 11:38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faggot은 약하다는 뜻이며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약하다는 뜨이다.] 오타가 있는 것 같군요.

<문라이트> 를 통해 다른 영화와 연결고리를 짓는게 굉장히 재미있네요.
특히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작품에 대한 말씀에 반성하게 되네요. 마냥 재미없다 생각해서 별생각 안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한 인물을 두고 두 명의 배우가 연기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었습니다.
과거의 수현과 미래의 수현이 다르기 때문에 '변요한' '김윤식' 두 배우가 연기한 것의 당위성을 부여한다는 점.

작품을 보면서 취향에 안맞는다고 저쪽 한켠에 방치 해 두곤 했었는데 반성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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