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12/30 19:46:44
Name Mighty Friend
File #1 연말패잔병.jpg (66.8 KB), Download : 52
File #2 12728871_1199218693439574_5247403014680609250_n.jpg (56.6 KB), Download : 12
Subject [일반] 2016년이 다 갔네요.




제목을 뭐라고 달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올해는 참 다사다난한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아마 다시 없을 큰 사건들로 기억되겠지만, 저에게 있던 개인적인 제일 큰 사건은 14년간 제 곁을 지켜주었고 가족이 되어주었던 고양이가 폐암으로 죽은 일이었습니다.
14년하고도 4개월을 같이 살았는데 물론 중간에 제가 외국에 나가 있기도 하고 떨어져 지내기도 했지만 제 인생에서 제일 오래 같이 살았던 반려동물이어서 충격이 매우 컸습니다. 1년 전에 기침을 시작해서 동물병원을 갔는데 처음 간 곳에선 복막염 의심을 해서 치료를 해줬고, 결국 두 번째 갔던 동물병원에선 심장병으로 진단을 내렸죠. 심장병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서 결국 강남의 큰 병원에 갔고 그곳에서 종합검진하고 나서 CT 찍어 폐암을 발견했습니다. 1년 전 엑스레이에서 이미 폐에 종양이 보이더라고요. 허탈했지만, 너무 시간을 많이 끌었고 이미 수술하기 늦을 정도로 전이가 되어서 결국 의사의 권유대로 보내줘야 했습니다.
샴 믹스라고 하지만 실제로 엄마가 샴 믹스, 아빠는 버만이어서 발끝만 하얀 털이 나 있는데 앞발의 왼쪽은 가운데 손가락만 하얀 털이었습니다.  어릴 때 네 자매 중 제일 못생겨서 어떻게 고양이가 이렇게 못생길 수 있는지 보는 친구들마다 웃곤 했죠. 처음 데리고 왔을 때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이 어디서 원숭이 주워 왔냐고도 했고 중년 아저씨 얼굴을 닮았다고, 심지어 당시 대권주자의 이름을 붙여서 xx 씨라고도 불렸더랬죠.
벌레를 기가 막히게 잘 잡고 다른 고양이들하고 싸울 때 정말 딱딱 소리가 나도록 잽싼 펀치를 날리던 전사기도 했어요. 고양이들의 여왕님이었지만 아프고 어린 고양이는 잘 돌봐주기도 했죠.
14년 동안 녀석에게 사랑만 받았는데 전 얘를 놓고 여기저기 저 좋을 대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동생들 괴롭힌다고 혼내기도 하고 만져 달라고 울면 모른 척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도 늙어서 어디 잘 돌아다니지도 않는 집순이가 되었고 이제 만져줄 시간도 많은데 이제 녀석은 없네요.
가기 전에 너무 말라서 엉덩이뼈가 만져질 정도였어요. 가고 난 뒤에 동거인과 얘기할 때마다 토실토실하고 건강하던 때의 고양이 가슴털 만지고 싶다고 자주 얘기하곤 했죠. 부들부들하던 가슴털을 특히 좋아했거든요. 안아주면 싫으면서도 꾹 참고 동거인이 컴퓨터 책상 키보드 앞에 올려놔주면 좋아서 골골거리고 집에 오면 마중나와 주던 얘가 없으니까 집이 텅 빈 거 같아요.

오늘 페이스북의 4년 전 오늘이라고 하면서 이 친구 사진이 떴더라고요. 친구들이랑 망년회하면서 노는데 싱크대에 등 지지고 있길래 누가 이케아의 미니어쳐 보드카 갖다놓고 사진을 찍었더랬죠. 다시 이때의 고양이가 만지고 싶어서 저절로 손이 모니터로 가더라고요. 개신교 신자지만 동물들이 가는 천국이 있어서 이 친구랑 다시 만나고 싶어요.

아직 유골함의 재도 뿌리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보내지도 못했는데 벌써 2016년이 다 갔네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낭만없는 마법사
16/12/30 19:54
수정 아이콘
반려동물도 가족이나 다름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아픔 이겨내시고 고양이가 좋은 곳에서 주인님을 먼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절름발이이리
16/12/30 19:58
수정 아이콘
행복했을겁니다.
앙겔루스 노부스
16/12/30 20:26
수정 아이콘
제가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 저는 이런 충격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요... 명복을 빕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3819 [일반] 원말명초 이야기 (19) 천조(天助), 천조 [9] 신불해6863 17/09/17 6863 44
73463 [일반] [뉴스 모음] 신동아의 청년 인질극 외 [22] The xian9141 17/08/27 9141 26
73425 [일반] 원말명초 이야기 (6) 주원장이라는 사람 [23] 신불해9979 17/08/24 9979 57
73408 [일반] 천재의 잘못된 유산 - 갈레노스 의학서 (Galenos) [26] 토니토니쵸파8393 17/08/23 8393 10
73293 [일반] [뉴스 모음] 박인숙 의원의 베네주엘라 드립 외 [42] The xian11976 17/08/13 11976 41
73024 [일반] 대구시, 최저임금 인상에 ‘상여금·수당 기본급 전환’ 대책으로 제시 [116] Crucial11552 17/07/25 11552 1
72636 [일반] [뉴스 모음] 청문회장에서는 잡담 금지 외 [48] The xian10569 17/07/01 10569 12
72076 [일반] (이미지,시즌7스포) 타이밍 많이 늦은 워킹데드 이야기 (주로 니건) [23] OrBef9498 17/05/27 9498 0
71781 [일반] [의학] 소아마비 정복사 (하) - 백신전쟁, 소크 vs. 세이빈 [11] 토니토니쵸파8024 17/05/13 8024 20
71761 [일반] [의학] 소아마비 정복사 (상) - 전염병의 유행 [7] 토니토니쵸파6191 17/05/12 6191 23
71646 [일반] 서초패왕 항우에 대해 고금의 시인들이 내린 평가 [14] 신불해11204 17/05/03 11204 2
70845 [일반] 어제자 그것이 알고 싶다 보니 너무 가슴이 답답하네요 [32] LightBringer13440 17/02/26 13440 25
70515 [일반] [삼국지] 공적에 따른 승진ㆍ봉작ㆍ세습에 관한 기록 [1] 靑龍4867 17/02/11 4867 3
69735 [일반] 스물아홉 마지막 날, 남극으로 떠난 이야기(스압/데이터) [103] 살려야한다11945 16/12/31 11945 79
69718 [일반] 2016년이 다 갔네요. [3] Mighty Friend4119 16/12/30 4119 3
69601 [일반] 러일전쟁 - 쓰시마 해전 [22] 눈시H7570 16/12/23 7570 9
68081 [일반] 네안데르탈인을 복제할 수 있다면? [38] 눈시H8495 16/10/21 8495 4
68006 [일반] 아르마딜로와 한센병 [11] 모모스20139435 16/10/17 9435 9
67909 [일반] 러일전쟁 - 개전 [12] 눈시6073 16/10/10 6073 8
67784 [일반] "HIV 감염 어린이 10%, 에이즈 발병 안 해" [17] 군디츠마라6624 16/10/01 6624 0
67411 [일반] 안녕하세요 가입인사 드립니다 [33] 보들보들해요4189 16/09/04 4189 11
67258 [일반] <삼국지> 폭풍간지 태사자! [28] 靑龍7235 16/08/26 7235 2
67025 [일반] 어째서 남자가 여자를 지배했는가 [53] 유유히8542 16/08/16 8542 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