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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0/12 16: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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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잡담]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9월에 처음으로 운동한 날이 50%가 되었다.

빡세게 헬스장 다니면서 하는 운동도 아니고

스쿼트와 푸쉬업, 런지만 깨작깨작하는, 그야말로 하루 20분이면 끝날 맨몸운동을 말이다.

3월부터 시작한 운동한 날은 3월 100%에서 93%, 80%, 73%로 점점 줄어들어가더니 9월에 드디어 저점을 찍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내 인생에서 가장 꾸준히 뭔가 해본거다.

영어 공부하려고 뽑아놓은 뉴스, 연설, 스크립트 등은 책장 어딘가에 처박혀있고

수학 공부를 위해 샀던 교재들은 먼지만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부모님은 항상 내게 '넌 끈기가 너무 없어'라고 얘기하시곤 했다.

물론 어른들이 노력 얘기하는건 일종의 패시브라고 생각하지만

난 정도가 심하긴 했다.

같은 친구들과 비교해도 끈기가 부족했고 주의력이 산만했다.

게으르고 체력도 부족해 졸기도 잘 졸았다.

넌 키도 작고 얼굴도 평범하고 돈도 없으면서 뭘 믿고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사냐는 얘길

먼 과거 여자친구에게 듣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예의없는 말이었지만 또 팩트만 보면 사실이라 그때도 허허 웃어넘겼다.

진짜로 그렇다.

20대 중반에 같이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나처럼 정말 아무것도 준비 안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모습때문인지 다른 사람들이 '넌 그래도 좀 노력하면 뭐라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지만

오히려 그런 얘길 들을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커진다.

난 거만했다.

문제는 거만한데 운도 좋았다.

그래도 서울에서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학교에 운좋게 수시로 들어왔고

어렸을 때 책 좀 읽어놔서 남들보다 텍스트에 대한 이해도 빨랐다.

그래서 난 내가 어떻게든 잘 되겠거니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정말 아무것도 안했다. 고등학교 땐 시키는대로 하고 웬만하면 전부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나처럼 해도 도태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군대를 포함해 몇 년을 대충대충 보내고 나니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과 나의 격차는 어마어마해졌다.

이제서야 그걸 자각하고 나니 의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문제는 의지와 능력의 갭이 커질수록 삐걱댄다.

이제는 스스로 벌을 받고 있는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남들이 정말 힘들게 공부해서 온 대학을 상대적으로 편하게 오고(수시 자체를 비하하는게 아니다. 내가 예외일 뿐)

어릴 때 조금 해놨던 독서빨에 대한 과신,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에 대한 벌.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하면 할수록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은 점점 박살나고

스스로에 대해 화가 난다.

열심히 하는 자세, 새로운 것을 익히는 능력,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

난 왜 이런걸 전혀 습득하지 '않'았는가.

지나간 시간은 매몰비용이고 현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면 안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어떻게든 다시 해보고, 달라져보려고 발버둥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여전히 작심삼일, 완벽히 준비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준비병에 빠져있다.

오늘도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멍하니 바깥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헛되이 보내는건 단순히 그 시간만을 버리는게 아니다.

미래에 이 시간을 반드시 후회할 것이기에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미래의 시간마저 빌려다 쓰는 것이라고.

그래, 날 모자란 놈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니라 나 자신이다.

이제 그만하고 나가서 공부해야지.

유게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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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게에 좋은 일이 참 많은데 제 이야기는 썩 즐겁지 않아서(우울해서)

찬물을 끼얹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쓴 글이라 편의상 반말로 썼습니다.

제 현재상황이고, 질게에서도 많은 조언을 구했었는데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오히려 공부하고 책을 읽을수록 정말 결정적 시기가 지나서

지금 하는건 정말 요만한 도움만 되고 끝인건가 싶기도 합니다.

유전이나 재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얘기도 예전엔 크게 거부감을 느꼈는데,

요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기도 하구요.

변화에 대한 믿음이라는건 결국 허상이고 이젠 틀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허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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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즐이
16/10/12 16:50
수정 아이콘
제 생각엔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시기가 있다고 봅니다.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시기를 겪고 그걸 이겨내는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 자신감,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을 다루는 법"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기가 두 번 정도 있었고, (세 번은 안 당해야...) 두 번째는 정말 좀 위기 혹은 한계였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개개인마다의 상황도 다르고, 경험과 개성도 다르니 이렇다저렇다 말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지만 잘 버텨내고 튀어오르게 되길 바랍니다.
smalltalk
16/10/12 17:01
수정 아이콘
달라질 수 있다고 믿으세요. 인지부조화 상황이 오더라도 그래서 행동이 바뀌게 되면 이득이니까. 믿음을 배신해서 찾아오는 허무함이나 자괴감들을 감당하는 것들이 쉽지 않을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믿음을 잃지 않는게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질겁니다. 해내실거에요.
새강이
16/10/12 17:07
수정 아이콘
제 상황도 글쓴분과 같습니다 어렸을때 책 좀 읽은거로 고등학교까지 버틴것도 같네요 저는 뒤늦은 나이에 대학입학.. 우리 함께 이겨내요 :)
16/10/12 17:10
수정 아이콘
사회초년생주제에 이런말씀 드리는게 되게 송구스럽긴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을 충족시키고자 너무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지 말고 다소 안목을 낮추면 어떻게든 자리를 찾아가는것은 가능한것 같습니다.

저도 10대후반에서 20대 중반을 날로먹기로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지만 다 살아갈 방도가 생기긴 생기더라고요.
전광렬
16/10/12 17:29
수정 아이콘
순수한 의미의 취미 생활도 해보시는 건 어떨까 싶네요.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성취하고 변화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저 즐겁고 가슴이 뛰는 지금 이 순간을 느낄 수 있는 취미를 찾아보시는게....
감사합니다
16/10/12 17:36
수정 아이콘
쉽지만 성취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로 한번 노력해보세요
30일 연속 계획달성 이라던가
쉽지만 별로 필요하지 않았거나 흥미가는 자격증도 상관없고 책한권 같은 거도 괜찮구요
이런 목표를 달성했을때 성취감이 사람을 바꾸는대 도움이 되는거 같습니다.
일상에서 사람이 바뀌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편인대 절박하면 또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나가 최고다!
16/10/12 17:41
수정 아이콘
저랑 비슷하네요~ 전 30대 중반이 코앞인데 이미 포기했어요.. 30대 아직 안되셨음 아직 안늦은거에요~
근데 저랑 비슷한 마인드라면 아마 그래도 나정도면 최악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있을텐데 그게 계속 발목 잡아요. 제로부터 시작하세여
김철(32세,무직)
16/10/12 17:52
수정 아이콘
안녕하세요.
저도 굉장히 재능이 많은편이었습니다. 뭘 해도 중간 이상은 하는...그래서 그다지 노력도 없었고.
그래서 돌아보면 다양하게 많은건 하지만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게 없는 사람으로, 제 닉넴과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름은 김철은 아닙니다..)
30넘어서 한 번 해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세상은 쉽게 기회를 주지 않네요 ㅠ
하고싶은 것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해봅시다!!
써니지
16/10/12 18:45
수정 아이콘
안타깝게도 안 달라집니다. 달라지는 걸 전 본적이 다 한번도 없습니다.
wish buRn
16/10/12 18:45
수정 아이콘
20대에 그런 생각 든 적이 있었는데...
그떄 인터넷에 가끔 글쓰는 걸 관뒀습니다.

답답한거 해소는 되지만,실질적으로 바뀌는 건 없더라구요.
그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푹 쉬는게 더 도움이 됐었습니다.
스핔스핔
16/10/12 18:51
수정 아이콘
제가 가끔 질게에 올린글 보면 아시겟지만, 저랑 너무 똑같네요.. (외모문제도 그렇고)의지와능력의 갭이 클수록 삐걱된다는 얘기가 너무너무 와닿습니다. 진짜 가장 찬란해야할 대학생활을 거의 아무것도 하지않고 보내버린 제자신이 평생 용서가 안될거 같아요.. 뭔가 그럴수박에 없던 이유가 잇엇더라면 자기합리화라도 할텐데 말이죠..
16/10/12 19:32
수정 아이콘
얼마전에 자존감 수업이란 책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고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책읽기를 좋아하시는분이라면 한번 추천해봐요
16/10/12 19:48
수정 아이콘
저도 자주 듣는 이야기... 제가 정말 끈기 있게 하는건 와우뿐이네요..
16/10/13 12:58
수정 아이콘
굶으면 빠릿하게 노력 하는게 돼요
어려서 환경이 별일없고 편했으면 보통 이러지요
살려야한다
16/10/13 13:35
수정 아이콘
노력도 재능이더라구요. 저도 노력 재능은 없어서 포기하고 삽니다. 대신 뽕뽑기 재능을 살려서 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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