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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9/03 23:32:39
Name 이치죠 호타루
Subject [일반] [데이터 약주의] 바르바로사 작전 (10) - 중부 집단군 (2)
연재가 약간 지연되고 있는데...

8월 한 달 동안 제가 바르바로사 작전을 연재하면서 총 10개의 글을 썼습니다. 잡담, 이전 글 요약, 차회예고, 그림 싹 지우고 글자 수를 세 보니까 공백 제외하고 69969자! 공백 포함하면 89135자! A4 용지 83장 분량! WOOHOOHOOHOO!!!!!!

이쯤되니 아예 이걸 엮어서 출판물로 내면 좋겠다 싶어서 - 물론 개인출판으로 소장하려고 그럽니다 - 용지 맞추고 수정 들어가고 있는데, 첫 부분부터 내용을 보완하고 오류를 수정하고 출처를 밝히고 배열을 다시 하고 표현을 순화하고 등등 각종 편집 작업에 돌입하다 보니 원 글의 두 배 길이 가량의 단락이 탄생한 바, 아예 처음부터 갈아엎고 다시 쓰는 수준의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 이거 연재 끝나고 내용 보완하면 - 북부 집단군에 대한 내용은 좀 부실했으니 말입니다 -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200페이지 가량의 책이 나올 판이더군요. 그거는 그거대로 하고, 연재는 이어갈 예정입니다. 어차피 같은 주제로 글을 두 번 쓰는 격이라 큰 뼈대는 같아도 살집에 붙는 이야기는 조금씩 다를 테고 말이죠. 대신 연재가 조금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겠네요.



이전 글 보기
https://ppt21.com/?b=8&n=66761 1941년까지의 소련 - 독소전쟁 초기 이들이 대패한 이유
https://ppt21.com/?b=8&n=66854 바르바로사 작전 (1) - 작전 수립 과정
https://ppt21.com/?b=8&n=66906 바르바로사 작전 (2) - 북부 집단군 (1)
https://ppt21.com/?b=8&n=66951 바르바로사 작전 (3) - 북부 집단군 (2)
https://ppt21.com/?b=8&n=67059 바르바로사 작전 (4) - 남부 집단군 (1)
https://ppt21.com/?b=8&n=67123 바르바로사 작전 (5) - 남부 집단군 (2) [데이터 주의]
https://ppt21.com/?b=8&n=67191 바르바로사 작전 (6) - 남부 집단군 (3)
https://ppt21.com/?b=8&n=67214 바르바로사 작전 (7) - 남부 집단군 (4) [데이터 약주의]
https://ppt21.com/?b=8&n=67285 바르바로사 작전 (8) - 남부 집단군 (5) [데이터 주의]
https://ppt21.com/?b=8&n=67334 바르바로사 작전 (9) - 중부 집단군 (1) [데이터 약주의]



"적을 저지할 방법이 없다."
- 드미트리 파블로프, 서부 전선군 총사령관



Previously on Barbarossa...

작전이 개시되기 전의 양군의 편제를 살펴보면, 서부 전선군의 병력은 남서 전선군이나 남부 전선군의 병력보다는 확실히 적었고, 특히 전차의 수가 남서 전선군의 절반 가량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독일군의 중부 집단군의 병력은 남부 집단군의 2.5배가 넘는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고, 제2기갑집단군과 제3기갑집단군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주먹을 운용하는, 명실공히 독일군의 주력이었습니다. 가뜩이나 독일군의 부 공격부대(남부 집단군)와 소련군의 주력부대가 격돌해서 소련군이 한참 밀려나는 판이었는데, 그 반대인 독일군의 주력부대와 소련군의 부 방어부대간의 전투는 그냥 불 보듯 뻔한 결과였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밀려드는 독일군을 막지 못하고, 제때 후퇴하지도 못한 소련군은 비아위스토크-민스크에서 무려 40만이 넘는 병력을 잃는 대참패를 맛보았으며, 이는 그 때까지 벌어진 포위섬멸전 중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포위섬멸전이었습니다(키예프 섬멸전은 민스크 이후의 일입니다).

아, 그리고... 브레스트 요새에서 소련군이 오래도록 버티면서 용감히 항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만(이걸 기려서 전후에 영웅 요새 칭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대국적인 그림에서는 바다에 물 한 방울인 격이라, 일단 넘어갑니다. 차후에 생각이 바뀌어서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판단이 들면 그 때 쓰도록 하죠.



모스크바행 고속도로

읽기 전에 한 가지 알아두시면 좋은 것은, 어디에서 어디로 통하는 철도망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아두시면 진로 파악에 좀 도움이 됩니다. 제가 중증 철도 동호인인지라 약팔이하는 것 같아서 다소 헛웃음이 나옵니다만, 대량의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데 있어서 내륙에서는 철도가 도로보다 우위입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지금이야 트럭 있고 APC(Armoured Personal Carrier) 있고 IFV(Infantry Fighting Vehicle) 있고 뭐 있고 기타등등 있고 물자는 풍요롭고(아, 근데 석유는... 어험;) 한 시대이니만큼 철도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빛이 바랜 건 사실입니다만, 당시에는 트럭이 모자라서 후방의 병력이 전방으로 동원되지 못하는 경우도 속출하던 시대였으니 한 방에 잔뜩 병력을 옮길 수 있는 철도 쪽이 아무래도 유리한 면이 있었죠.

민스크에서 중부 집단군의 최종 목표인 모스크바까지 가는 길목에 위치한 것이 스몰렌스크입니다. 아예 개전 당시부터 차근차근 적어보자면, 브레스트 - 바라노비치(Baranovichi) - 민스크 - 오르샤(Orsha) - 스몰렌스크 - 뱌지마(Vyazma) - 모스크바 순이죠. 모스크바에 이르기까지 전투가 벌어진 순서를 보면 브레스트 - 민스크 - 스몰렌스크 - 뱌지마 - 모스크바 순으로 벌어지는데, 이게 괜한 우연이 아닌 겁니다. 나중에 가면 레닌그라드의 외곽 철도, 스탈린그라드에서의 굼락, 쿠르스크에서의 포니리와 프로호로프카 등이 격전지로 떠오르는 것도 다 이런 이유입니다. 자연적인 장애물이 적거나 없는 곳이라면 이런 곳에서 주로 전투가 벌어지게 마련이었다는 것이죠.

뭐 여하간... 그런 "모스크바행 고속도로"의 첫 관문인 민스크에서, 부대가 격파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도상에서 지워지고 전선의 구멍이 뻥 뚫린 상황이었으니 소련의 경악은 쉬이 예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파블로프가 처형됐죠. 죄목도 볼 만했던 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죄"였습니다. 하긴 국가의 명운이 걸린 판이었으니 그 정도 죄목이 붙는 것도 당연한 일이기는 했습니다마는...

그리고 이렇게 전선의 구멍이 뻥 뚫린 상황을 독일군은 놓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적이 몸을 추스릴 여유를 주기 전에 계속되는 공격으로 이득을 점하려고 했고, 따라서 민스크에서 적을 정리하자마자 바로 스몰렌스크로 향한 공격을 개시한 겁니다. 민스크에서 스몰렌스크까지의 거리는 330 km. 이 거리는 전쟁 초기부터 민스크까지 독일군이 달려온 거리(340 km)와 비슷했고, 또 스몰렌스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르는 거리(400 km)와 비슷했습니다. 이런 만큼 스몰렌스크를 최대한 빨리 점령하면 모스크바가 코 앞에 다가올 것처럼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한편 파블로프를 총살대로 보낸 소련은 서부 전선군을 재편할 구원투수로 세묜 티모셴코를 올립니다. 그러나... 애초에 지적한 바대로 공군의 지원도 뭣도 없는데다가 주력군은 죄다 남서 전선군으로 몰려가버린 상황인데 티모셴코라고 뾰족한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를 인지한 스타브카(Stavka)에서는 티모셴코에게 4개의 야전군, 즉 제19, 20, 21, 22군을 쥐어 주기는 했습니다.

사실 이는 독일군으로서도 약간 당혹스러운 이야기긴 했습니다. 왜냐면 독일군은 최전선의 전방 배치되어 있는 소련군을 박살내면 적의 동원 능력은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 제19~22군은 전방의 패잔병을 긁어모아 재편성한 부대가 아닌, 아예 후방의 예비 군대였다는 겁니다. 분명히 최전선의 소련군을 깔끔하게 섬멸했는데 그만큼의 소련군이 배치되어 있다? 이것은 독일군의 수뇌부를 적잖이 당황시키고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일단 밀어붙이기가 시작된 이상,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스몰렌스크

본격적으로 스몰렌스크 공격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7월 3일의 전황도입니다.



지도 남동쪽에 나와 있는 건 중부 전선군(Central Front, Центральный фронт)인데... 기실 이 중부 전선군이 조직된 것은 7월 24일의 일입니다. 참조하시고... 하여간 지도의 붉은 바탕의 별은 스몰렌스크로 가는 길목상에 위치한 오르샤(Orsha)입니다. 스몰렌스크는 벨라루스와 러시아 국경을 넘어가야 나오죠. 독일군 제16군은 폴로츠크(Polotsk, Полоцк)를 거쳐서 스몰렌스크 북쪽의 벨리키예 루키(Velikiye Luki, Великие Луки)로 진군하고자 했고, 제3기갑집단군과 제2기갑집단군은 스몰렌스크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스몰렌스크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북쪽의 비텝스크(Vitebsk, Витебск)에서 남동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오는 길, 오르샤에서 정동쪽으로 진격하는 길이 그것입니다. 제3기갑집단군이 비텝스크로 이동하고, 제2기갑집단군은 오르샤를 그대로 돌파해 버릴 심산이었죠. 그리고 뜬금없이 후방에서 지원 부대로 달려온 소련군 제20군 소속의 제5기계화군단과 제7기계화군단이 북쪽의 비텝스크 방면에서 공격을 걸어옵니다.



군사용어로 파쇄공격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특정 지점을 향한 적의 공격이 예상될 때, 적이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공격을 감행하여 적의 조직력이나 통솔을 흔들어 적의 준비를 늦추는, 일종의 공격적인 방어가 그것입니다. 음, 이게 좀 사람들마다 이야기가 엇갈리는 것으로 압니다. 뭐가 엇갈리냐면, 공격을 걸어온 제5기계화군단과 제7기계화군단이 스탈린이 원한 전면적인 반격이었느냐 아니면 단순히 적의 진군을 늦추기 위한 것이었느냐 하는 건데...

제가 보기에는 제5기계화군단과 제7기계화군단이 시도한 것이 바로 이런 파쇄공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헌데 이 파쇄공격은, 잘 먹히면 효과적으로 적의 진군을 늦추거나 아예 진군 자체를 못 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만에 하나 무리해서 꼴아박아버렸다가는 그대로 알아서 방어선을 뚫어 달라고 내주며 자멸하는 격이나 다름없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대전차화망에 제대로 걸려들면서 공격은 아예 무위로 돌아가버렸고, 결과적으로 제5기계화군단과 제7기계화군단의 병력만 잔뜩 날려먹는 결과를 초래했죠.



3일 후의 전황도. 보시다시피 변한 게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공격이 개시됩니다. 남쪽의 구데리안이 소련군 제13군을 박살내고, 북쪽의 호트가 파쇄공격을 받아치면서 서서히 스몰렌스크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죠. 지도 남쪽을 보시면 일부 부대가 포위섬멸당할 운명에 처한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저 지역이 모길료프(Mogilev, Могилёв, 現 벨라루스의 마힐료우)입니다. 이 지역은 스몰렌스크와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지는 않습니다만(열차로 스몰렌스크로 가려면 오르샤를 거쳐가던가 스몰렌스크 동남쪽의 로슬라블(Roslavl, Ро́славль)로 우회해야 합니다), 스몰렌스크 방향으로 공격해 들어갈 독일군의 배후를 지키기 위해 지켜야 할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포위 섬멸에 들어간 것이죠.

돌파가 계속되면서 구데리안의 제2기갑집단군도 남쪽 측면의 일부가 위협받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걸 노리고 남쪽에서 일부 병력이 북쪽으로의 공격을 감행합니다. 이 공격은 제21군에 의해서 수행되었습니다. 비텝스크에서는 제19군과 제20군이 계속해서 반격을 시도했습니다만, 반격은 손해만 컸을 뿐 별반 소득이 없었습니다.

이 반격에 동원된 것이, 프스코프 방면의 북서 전선군의 일부와 코로스텐 방면의 남서 전선군의 일부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 전선에서 중부 집단군을 막기 위해 기획된 긴밀한 연계 작전이었습니다만, 워낙 이게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누구도 이게 소련군이 연계 활동을 통해서 반격을 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군요.

7월 15일에 일부 부대가 스몰렌스크 동쪽에 들어가면서, 제29차량화사단과 제18기갑사단이 스몰렌스크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합니다. 민스크 때와는 상황이 약간 달랐습니다. 계속적인 전투로 전투력이 상당히 소진된 두 기갑집단군은 스몰렌스크를 완벽히 포위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백병전에 돌입한 것이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시가전은... 전차에게 있어서는 지옥입니다. 결국에는 스몰렌스크에서 소련군을 밀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3일간의 격전으로 가용 가능한 전차가 사단 전체에 12대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죠. 어떻게 보면 전투력 소진 - 포위 불가 - 백병전 - 전투력 소진이라는 악순환에 빠져들 조짐이 보인 셈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공격측은 항상 공세종말점에 주의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그 때문에 적절한 정지와 보급이 필수인 것이구요.

전투력이 잔뜩 소진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구데리안은 여기에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스몰렌스크 점령 이후를 보자면 다음 목표는 모스크바와 스몰렌스크 사이에 있는 뱌지마(Vyazma)인데, 단일 방면에서 뱌지마를 공격할 수 있을 리는 없었고, 그래서 스몰렌스크 동쪽 측선을 보고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스몰렌스크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길을 보면 강을 몇 개 건너야 하는데, 스몰렌스크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 병력이 지나갈 수 있는 교두보 노릇을 하는 작은 마을이 바로 옐냐(Yelnya, Е́льня)였습니다. 즉 여기를 확보해야 모스크바로 가는 차후 공세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죠. 문제는, 그러자면 스몰렌스크의 적을 포위 섬멸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데리안과 호트(제3기갑집단군의 사령관)는 옐냐로 나아가길 바랬죠.

이 때의 전황이 대략 이렇습니다.



7월 25일. 예, 아주 난장판이 따로 없습니다.

이 때 제16군에 전속된 것이 바로 앞선 남서 전선군에서 선전했던 로코소프스키였는데, 이 로코소프스키가 이번에도 독일군의 대폭격에도 불구하고 버텨내는 데 성공하면서 외려 지원군이 오면 뚫린 방어선이 메워질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흠... 구데리안의 부대에게 도시를 포위 섬멸하라고 명령이 떨어진 게 이 로코소프스키의 병력이 버티기에 들어간 이후 반격이 개시되기 일 주일 전이었는데(총통 지령 33호), 이걸 생각해 보면 저는 아무래도 이번에도 히틀러의 판단에 손을 들어주고 싶군요. 히틀러 혼자만의 판단은 아니었습니다. 중부 집단군 사령관인 페도르 폰 보크(Fedor von Bock) 역시 적 전력의 물리적 섬멸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뭐... 사실 애초에 둘 다 잡을 수 없는 작전을 기획한 것 자체가 문제였죠. 거 왜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제로아워의 슈퍼무기 아줌마 알렉시스 알렉산더가 중간중간에 플레이어를 도발하는 대사를 날리는데, 그 중에 이런 게 있잖습니까. "If you fail to plan, you plan to fail." = "계획하는 데 실패하게 되면, 실패만을 계획하게 되지."

뭐가 어찌 되었건 독일군은 섬멸전에 들어가기로 작정합니다. 구데리안이 제대로 열 받아서 나중에 기고하기를, 히틀러는 적의 소수 병력을 섬멸하기를 원했고, 약간의 상처로 점진적인 출혈을 거쳐 상대방이 죽기를 바랬다, 뭐 이 정도로 기고했는데... 음... 그을쎄요... 스몰렌스크의 제19군이 분쇄되었고 제16군과 제20군이 맛이 간 상태였다고는 해도, 뒤쪽(스타브카 예비, 스몰렌스크 북쪽)에서 달려오는 병력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스몰렌스크에서 뒤통수 얻어맞을 걸 그대로 각오하고 모스크바로...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니다에 한 표 던집니다. 기실 이건 키예프에서 뒤통수 얻어맞을 위험 제거하는 거랑 거의 똑같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하여간 포위망을 닫기로 한 이상 독일군은 포위 섬멸전에 돌입했고, 북쪽에서 달려온 제29군, 제30군, 제24군의 반격도 형편없는 작전 조율과 빈약한 화력 지원 및 병참의 한계로 실패로 돌아가면서 스몰렌스크에서 또 한 번 소련군은 대량의 병력을 잃고 맙니다. 포위된 제20군이 혈로를 뚫어서 포위망을 돌파할 수는 있었습니다만, 8월에 접어들자 스몰렌스크 전선은 깨끗하게 정리됩니다.



8월 7일, 정리된 스몰렌스크 전선.



결과

뭐 어쨌든 독일은 스몰렌스크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했습니다. 소련군 사망자 18만 6천 명, 포로는 30만 명, 부상은 27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병력이 소진되었습니다. 그렇기는 한데... 글을 쭉 읽으셨으면 아셨겠습니다만, 민스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거둔 승리였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소련군을 상대로 독일군은 상당히 지쳤고, 병력도 심하게 소진되면서, 점차적으로 모스크바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는 게 이 스몰렌스크 전투의 진정한 결과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소련군은 졌지만 승리한 셈이고, 독일군은 이겼지만 패배한 셈이죠. 전과가 워낙 커서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대전략적인 관점에서 볼 때 피로스의 승리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구요.



제법 늘어졌군요... 다른 때보다 분량이 좀 적어 보이긴 합니다만, 다음 이야기까지 섞기에는 또 애매해서... 다음 이야기는 옐냐 교두보와 브랸스크-뱌지마 전선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겠군요.



자료출처

《독소전쟁사》, 데이비드 글랜츠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Smolensk_(1941) - 스몰렌스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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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선비
16/09/04 00:30
수정 아이콘
철도가 중요할수밖에 없는게 그때 독일군 물자수송을 담당한게 말이 주력이라고 ... 그래서 독가스나 화학무기 제대로 못썼다고 여기서 어느분이 그랬었네요 독일한테는 더 많이 중요했겠네요
이치죠 호타루
16/09/04 00:33
수정 아이콘
그거 제가 저번 글에서 언급한 겁니다. 크크크크크크 어쨌든 독일군에게 있어서 철도는 중요한 것이었는데, 이놈의 궤간이 서로 차이가 나는 바람에(독일 표준궤 1,435 mm - 러시아 광궤 1,520 mm) 장비나 필요 물품을 제때 공수할 수 없었죠. 뭐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당연히 백 배쯤 나았을 겁니다.
지나가던선비
16/09/04 03:20
수정 아이콘
그게글쓴이라니 번데기앞에서 주르잡았네요 흐흐
이치죠 호타루
16/09/04 03:28
수정 아이콘
뭐 저도 전쟁사를 야매로 배우는 입장이라(...)
드라고나
16/09/04 00:36
수정 아이콘
1944년에 코브라 작전 이후 패튼의 3군이 미친 듯이 진격할 때 미군이 해준 보급 수준으로 독일이 해줄 수 있었다면 구데리안 생각처럼 진격하는 것도 가능했겠죠 라고 구데리안에 대한 놀림 섞인 말을 적습니다.
이치죠 호타루
16/09/04 00:39
수정 아이콘
저는 여기에, 괜찮아 설령 뒤치기 맞아서 포위되어도 공중수송으로 괴링님이 다 해주실 거야라고 하나 추가합니다. 크크
칼라미티
16/09/04 02:04
수정 아이콘
히틀러가 부분부분 재평가(?) 되는게 재밌네요. 요즘 책들엔 저런 내용이 반영되어 있나요?
이치죠 호타루
16/09/04 02:14
수정 아이콘
음... 제가 군사학을 수강한 건 또 아니라서 전문서적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근래의 트렌드는 - 그래도 몇 년은 된 이야기입니다마는 - "펜으로 쓰여진 독일군의 신화"를 벗겨내는 것에 있기는 합니다. 예컨대 <전격전의 전설>이라던지,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라던지, 아니면 <독일군의 신화와 진실>이라던지요.
칼라미티
16/09/04 02:26
수정 아이콘
전격전의 전설 참 재밌게 봤었는데...말씀해주신 다른 책들도 기대되네요. 주말에 도서관이나 한번 들러봐야 겠습니다.
내일은
16/09/04 15:00
수정 아이콘
러시아가 역사에서 겪었던 일도 그렇고 2차대전의 경험으로 봐도 러시아가 모스크바 서쪽으로 유럽과 넓은 완충지대를 원하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유럽에서 들어오는 적들이 추위와 넓은 영토와 싸우는 와중에 종심방어로 공세종말까지 버티다 역습한다는...
이치죠 호타루
16/09/04 15:51
수정 아이콘
그래서 나온 게 철의 장막이었겠죠. 그러고도 모자라서 엄청난 수의 재래식 병기를 보유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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