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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6/22 18:08:58
Name 王天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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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스포] 시선 사이 보고 왔습니다.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지수, 현서, 민영은 떡볶이에 환장해 죽고 못사는 고등학생들이다. 특히나 학교 앞 민영이 삼촌의 분식집에서 먹는 떡볶이는 몇 안되는 인생의 낙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성적 관리를 이유로 여러 지침을 내린다. 그 중에는 "등하교 외에는 교문출입이 불가, 분식집 이용 금지"라는 조항이 있다. 지수는 분노한다. 떡볶이에 대한 금단현상이 날이 갈 수록 심해지고 지수는 이제 헛꿈까지 꾼다.

영화는 떡볶이에 대한 지수의 투쟁을 우스꽝스럽게 그린다. 좀비라고 자신을 칭하는 선생을 좀비처럼 물어제끼는 지수의 꿈이나, 교문을 뛰어넘는 지수의 상상은 유쾌한 판타지의 영역이다. 그러나 판타지로 끝나고 마는 영화에는 여전히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의 질문이 남는다. 왜 떡볶이를 먹어서는 안되는가? 지수는 과연 떡볶이를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여전히 이상하다. 떡볶이를 먹는 것과 성적은 무슨 관련이 있으며, 학생들의 모든 자유를 통제하는 것이 과연 집중력 향상을 위한 올바른 수단이라 할 수 있을까. 떡볶이도 먹을 수 없다면, 다른 자유는 과연 지켜진다고 장담할 수 있는지, 학생인권이 대입이라는 명분에 희생당하는 현실을 꼬집는 영화 속 교사들의 무심한 태도가 맵기만 하다.

<과대망상자(들)>

우민은 엄청나게 예민한 사람이다. 출근할 때마다 그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카메라가 있을지도 모르는 곳을 피해 골목골목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잘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여자친구와도 헤어져버렸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낯선 사람들이 다 안다면서 찾아온다. 그의 강박을 이해해주는 동지들고 함께 우민은 세상의 거대한 음모를 듣게 된다.

<시선 사이> 옴니버스 안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감독과 배우의 면모가 제일 화려한 만큼 부실한 내용이 더 와닿고 만다.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견뎌야 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나쁘지 않다. 감시가 판을 치는 세계에서 한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를 묻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쥐죽은 듯이 살면서 기다려라, 라고 대답한다. 비정상적으로 예민한 인간으로 문제점을 들추고 동류의 인간들을 떼로 모아놓은 다음 시작으로 돌아가는 대답으로 결국 무기력을 이야기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척을 하고 있자 - 라는 결말의 쓴 맛은 블랙 코메디의 의도를 잘 살려냈다.

문제는 대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다. 영화는 웃기 애매한 유머들을 던지는데 그저 괴랄할 뿐이다. 희극적 과장에 따르는 웃음과, 그 방식이 담는 실질적 텍스트에서의 쓴 맛이 같이 느껴져야 하는데 영화는 웃기는 데 실패한다. 그러니 웃기려고 하는 영화 속 모든 노력이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진다. GAP이나 WANGTA 등의 조직명은 심하게 유치해서 이를 믿는 캐릭터들의 진지함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최소한의 그럴싸함도 없으니 영화가 초반에 유지하던 현실적 톤과 괴리를 일으킨다. 더욱이나 심각하려 애쓰는 음악과 강박을 진지하게 담는 김동완의 연기톤과도 부딪힌다. 오광록을 제외하면 영화가 추구하는 얼빵한 톤이 제대로 살리는 배우가 없다. 애초에 이는 연기 문제라기보다는 말같지도 않은 이야기에 필요 이상의 진지함을 부여하려는 신연식 감독의 책임이 더 크다.

여자들이 외국어로 이야기하는 씬은 특히나 오글거린다. 외국어라는 형식이 담고 있는 무게와 대화 내용의 가벼움을 충돌시키려는 의도였겠지만 외국어를 한다고 해서 영화 바깥의 관객이 그걸 대단하거나 뭔가 전문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어차피 관객은 자막을 통해 텍스트를 이해하니 외국어 따위야 뭘 말하건 아무런 유흿거리가 되지 못한다. 차라리 류승완 감독이 <다찌마와 리> 극장판에서 그랬던 것처럼 형식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쌈마이를 추구했다면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과대망상자(들)>은 유치한 아이디어에 자꾸 불완전한 형식을 완전한 것처럼 덧붙여 공허한 웃음을 자아내려 하니 그게 계속 실패한다. 웃으라는 의도만 적나라해서 민망할 뿐이다.

여러모로 배우들의 소모가 심하다. 오광록은 관객들이 능히 예상할 법한 엉뚱한 캐릭터를 또 연기한다. 김동완은 애초에 극 안에서 비중도 별로 없을 뿐더러 웃기지도 않는 쇼 가운데에서 청자의 역할만 하느라 존재감이 거의 없다. 나머지 배우들도 진지와 희극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오버만 한다. 과몰입보다는 능청이 더 필요한 장르의 연기가 아니었을까.

<소주와 아이스크림>

보험영업을 뛰는 세아는 오늘도 지인에게 핀잔만 먹고 우울하게 자리를 뜬다.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세아는 마지못해 언니의 집에 찾아가 안부를 묻는다. 건너편 집의 어떤 아주머니가 마당에 나와 세아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달라고 부탁한다. 거절하려던 세아는 아주머니가 모은 빈병 수거함을 낑낑대며 끌고 간다.

영화는 인물들의 처지를 고정시켜놓고 이를 신파로 소모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살가운 소리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세아는 아주머니 앞에서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는 강자가 된다. 아주머니는 재산이 차압당하고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처지에 몰렸지만 딸마저도 이를 외면한다. 영화는 여기서 아주머니의 비참함을 강조하지 않는다. 소주병을 두고 이야기를 듣는 세아를 등장시켜 아주머니에게 무턱대고 도와달라고만 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영화가 특별해지는 지점은 약자를 향한 동정이 아니라, 그 약자를 돕고 싶어도 돕기 어려운 또 다른 약자의 마음이다. 다리를 다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아주머니를 돕기 위해 세아는 소주병이 그득 실린 카트를 끌고 언덕을 넘어야 한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을 움직인다고 해서 몸과 힘까지 다 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인물들은 자연스레 교차된다. 영화 속 아주머니는 세아의 전화기 너머로만 존재하는 어머니와 겹친다. 이미 죽고 없어진 아주머니는 어쩌면 그 건너편에 살고 있는 세아 언니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아이스크림과 소주를 들고 언니를 찾아간 세아는 도와달라는 아주머니의 신세와 별로 다르지 않다. 다 잊고 혼자 산다는 언니 또한 그 동안 딸을 팽개쳐놨던 아주머니의 과거와 이어진다. 어렵고 힘든 건 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서로에게 쌓인 앙금이 있다. 세아와 언니가 서로 싸우면서 흘리는 눈물은 결국은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연민의 공유다. 홀로 생을 끊어야했던 그 아주머니 역시 누군가의 어머니였다.

어쩌면, 구할 수 있었을까? 아주머니가 죽은 지 일주일이나 되었다는 이야기에 세아는 놀란다. 귀신처럼 아이스크림을 부탁했던 그 아주머니를 통해 세아는 이제는 멀어진 엄마와 언니를 본다. 함께하지 않으면, 소줏병에 담긴 목소리를 들으며 뒤늦게 애틋해지기만 할 것이다. 짜증나고 피곤한지만 그래도 돕지 않아 생기는 후회보다는 돕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나을 것이다. 우리 옆에는 술만 먹고 염치 없이 어렵게 사는 이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 잠을 먼저 챙기며 언니 안부를 못챙기게 하는 집주인보다, 죽은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남긴 티비를 먼저 챙기는 이들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소줏병에 담긴 소리가 전달된다는 설정이 청아하게 그려져있다. 술은 술로 끝나지 않고 술병에 목소리를 담는다는 상상이 따뜻하고 신선하다. 그러면서도 술병을 부는 그 소리가 서글프다. 서영화씨는 나오는 영화마다 늘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나 그 차분한 목소리는 말 할 수 없는 아픔이 섞여들어간 인상은 준다. 늘 반가운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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