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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6/02 00:43:13
Name 브랜드뉴
Subject [일반] 광화문 다녀왔습니다.

서울에 살면서도 매일 야근이라는 핑계에 좀처럼 갈 생각을 못하던 광화문,,

이번 주말에는 작정을 하고 시간을 비워뒀습니다. 미리 관련 홈페이지 들려서 일정들을 체크해 보고
가방에 초 10여개와 물병 두통을 들고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오후 4시쯤 도착했는데 이미 시청앞 광장에는 2천여명(눈대중)의 시민들이 잔디에 앉아서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눈에 특히 많이 띄는것은 가족단위로 나오신 분들입니다. 제 생각보다도 훨씬 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어머지가 준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게 보였습니다. 한켠에 설치된 천막에는 '이 음료와 초들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후원받은 것 입니다.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세요' 라는 문구가 적여있고, 적지않은수의 여성분들이 음료를 만들고
관련 물품들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한잔 얻어마셔볼까 했지만 숱기가 없어서 가방에 든 물통을 꺼냈습니다.

잠시 후 광화문에서 전날 연행된 200여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진행중이니 참석하실분들은 그쪽으로 가 보라는
방송을 들었습니다. 아직 초를 태우기는 너무 이른시각이고, 할 일도 없으니 거기나 가보자 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광화문 쪽으로 옮겼습니다.

세종로를 가득 매운 전경버스들.. 1차선에 때로는 2차선까지 가지런하게 정렬된 채 늘어서 있었습니다. 가끔 두세명씩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가는 전의경들이 시민들 곁을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눈을 흘깁니다. 2열로 마주본채 버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들.. 하이바와 방패를 바닥에 깐 채 4열로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시위를 하는지 자세히 듣지못한 스스로의 우둔함을 원망하며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이 아마도 그곳이겠지 라는 생각에 전의경이 더 많이 보이고, 버스들이 더 많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서울에 산지 27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사실 서울 도심부는 길을 잘 모릅니다. 잠실쪽에서만 살다 보니, 그 주변에서만
모든 편의를 해결하던 버릇 때문이죠. 정처없이 걷다보니 경복궁을 끼고 올라가는 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습니다.
세기도 힘들어 보일만큼 많은수의 버스와 전의경들이 있더군요. 일부는 길을 좁히고 검문 비슷한것도 하고 있었습니다.
'아 여기다!' 속으로 생각한 후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주변에 속속들이 보이는 겔러리들과, 공방들.. 그리고 연인들 Orz
여기는 그 유명한 삼청동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청와대로 가는 길목이다보니 골목 하나하나까지, 심지어는 개구멍처럼 보이는
조그마한 통로까지 경비병력을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주고 대로는 버스로 사람한명 못지나가게 막아 놓은 상태였구요.

예쁜 카페들이 많은곳인지 참한 처자들도 많이 보이고 연인들도 많더군요. 속쓰림을 참으며 다시 왔던길을 되돌아 갔습니다.

한시간 반을 걸었군요.

피곤하고 배가 고파옵니다. 주변에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머핀을 먹었습니다. 날이 슬슬 어두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청계광장에 앉아서 DMB로 방송을 보고있자니, 어디서 웅성거리는 소리, 구호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뒤를 보니 몇몇 대학들의 깃발과 태극기를 앞세우고 세종로 이순신 동상 쪽으로 가두 행진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지체없이 시청앞 광장에서 받았던 간단한 피켓등을 챙기고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깃발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관악, 고대, 서울여대, 동덕여대, 광운대, 카톨릭대, 중앙대, 성신여대 등등이 보입니다. 그리고 한켠에
작게 써있는 모교의 깃발을 발견하고는 기쁜마음에 살짝 끼어듭니다. 99년도에는 시위가 사라지는 시절이었습니다.
가끔있던 등록금 투쟁 외에는, 메이데이에나 총학이 간간히 참가하는 정도.. 다시 우리네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게 될 줄은
정말 저도 몰랐습니다. 1학년때부터 "선배 우리과 취업률 몇%죠? 성적 잘받는 방법은 뭔가요?" 이런걸 묻던 새내기들인데..
지금은 아마도 더 하겠죠.

어설프게 '우리들이 민주주의' '독재타도 명박탄핵' 등등을 같이 외치며 행진하다보니 버스로 길을 완전히 막아놓은곳에
도착했습니다. 버스 바로 뒤로는 이순신 장군상이 또렷하게 보였는데, 참 아이러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라를 지키시던 장군은
지금 우리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여기서 부터는 그저 기다리다 귀가 했을 뿐입니다. 8시가 넘어가자 같이온 일행들은 삼삼오오 둘러 앉아서 과자를 먹고
음료수를 마시고 농담을 했습니다. 어느 대학의 풍물패가 와서 사람들의 흥을 돋구고, 무리 뒤편에서는 꽹가리 장구에 맞춰서
돌며 춤을 추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버스에 막혀서 잠시 당황하던 사람들이 정부종합청사로 가는 길가로 들어서서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구요, 우리의 멋진 예비군 아저씨들이 1선에서 시민을 바라보고 서셔서는 가끔 흥분한 시위대를 제지해주시곤
했습니다.

우비차림의 시민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어제 일을 의식한 모양인데.. 사실 집을 나설때 윈드브레이커를 입고갈까 저도
망설였으니까요. 시위가 격해지는 것은 자정이 넘어서 부터라고 들어서, 제가 귀가 할 때 까지는 별다른 상황은 없었습니다.
누가 사다리를 가져와 버스에 걸쳐대고 올라가자, 전의경 5-6명이 무장한채 올라와 철수 시켰고 갑자기 분위기가 사나워 졌습니다.
순간 '아 이러다 군중들이 화나서 유혈사태가 나면 어쩌지?' 라고 생각했지만, 모두들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며 스스로
수습하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진정 자랑스러웠습니다.

중간에 뒤를 돌아가며 주위를 살피니 사람들이 100여명 누구를 돌러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카메라도 많이 보이구요.
호기심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경찰이 사복차림을 하고 시민들 틈에 잠복해 있었다고 하는군요. 어떻게 알았는지 참 신기합니다.
그분 얼굴 앞에서 터지는 무수한 프레쉬, 내일이면 얼굴이 온동네에 돌아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측은했습니다.

내용도 없는 글인데 더 길게 쓰기는 부담스러워서 이쯤에서 마무리 할게요. 디카님이 고장나셔서 폰카로밖에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그마저도 케이블이 없어서 올리지 못하는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주 주말도, 그리고 다음주도 다시 나갈 생각입니다.

될때까지 모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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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플토
08/06/02 00:48
수정 아이콘
무사히 다녀오셨다니 다행입니다.

썩어빠진 놈들아, 이게 너희들이 더러운 입으로 말하는 '배후 세력의 지휘 하에 폭력적으로 자행되는 불법 시위'의 모습이구나.
B쿠루쿠루B
08/06/02 00:51
수정 아이콘
후..전 11시쯤 나왔는데 더있을걸 하는 생각이..

사람들이 밧줄로 전경차 끌고

닭장차 위에서 기자들 사진찍고 조중동은 못올라게하고.

후..현충일날 한번더 가야겠습니다

이게 인터넷으로만 보다가 직접 가보니 많을걸 볼수있더군요;
videodrome
08/06/02 00:52
수정 아이콘
음...평일엔 이천에서 근무하느라 주말밖에 갈 시간이 없네요. 오늘 친구와 같이 구호좀 외치고 왔습니다. 구호는 ' 평화시위, 보장하라 '
참 보기 좋았던 것이 .. 누군가 다쳤나 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 의료진! 의료진! ' 하고 외치더군요. 그러자 뒤에서 의료진이 달려나갔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멋지다! 멋지다!' 소리.. 가슴이 따뜻해 지더이다.. 이순신 장군앞으로 좀더 다가가고 싶었는데 여자친구가 무섭다고 해서 아쉽지만 뒤에서 구호만 외쳤습니다. 평화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담배피는씨
08/06/02 00:55
수정 아이콘
저 귀가 할 때 방송 나오던군요..
기자들도 살수 당하기 싫으면 버스에서.. 내려가라고..
지금 방송보니..
진압하네요..
Zakk Wylde
08/06/02 01:02
수정 아이콘
저도 길게는 아니고 잠시 다녀왔었는데..
주중에 한번 제대로 참여하고 와야겠습니다.
퍼플레인
08/06/02 02:56
수정 아이콘
무사히 다녀오셨군요^^;; 제가 자리를 뜰 때는 기자들이 막 우비를 챙겨입던 상황이었습니다.
어제 밤샘이 피곤하기도 했고 내일 출근을 무시할수없어-_- 나왔지만 토끼몰이 당하고 백골단 떴다는 뉴스에
자리를 지키지 못해서 안타까워집니다.

다들 힘냅시다~ 이럴때일수록 체력전인거 아시죠? 잘 먹고 푹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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