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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1/05 11:04:29
Name 선비욜롱
Subject [일반] 『1차대전 프랑스군史』 제17계획은 알자스-로렌 공세를 포함하지 않았다.

"1913년 프랑스에서 채택된 대 독일 전쟁 계획.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독일과 전쟁이 난다 → 알자스-로렌으로 닥돌!  그리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없다!

1905년 시작하여 독일이 지속적으로 수정·보완한 슐리펜 계획이 구체적인 전쟁 수행 방침을 담고 있는 것에 반하여, 실지 회복이라는 애국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나무위키』 「제17계획」 항목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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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초반에 시행된 프랑스군의 전쟁계획으로 알려진 제17계획의 명성은 빈말로조차 좋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프랑스군이 1914년에 수많은 인명과 영토를 잃은 원흉으로 꼽힌 데다가 1차대전의 프랑스군 특유의 공세정신으로 알려진 "Attaque à outrance" (한국의 경우에는 "엘랑 비탈 교리"로 유명합니다)의 "화신"으로 받아들여져서 수십 년간 뭇매를 맞기 일수였습니다.

제17계획의 라이벌로 꼽힐만한 슐리펜 계획의 경우에는 작성자인 알프레트 폰 슐리펜이 아닌 심약한 헬무트 폰 몰트케(小)에 의해 시행된 데다가 1차 마른 전투의 패배로 인해 좌절했다고 한들 파리의 관문까지 두들겨본 성과를 보인 바였습니다. 그 외에도 원래 좌우 비율이 1:7이었던 것을 1:3으로 몰트케가 바꾸었다는 설 덕분에 슐리펜 계획은 "만약에 몰트케(小)가 뚝심 있게 슐리펜의 1:7 비율을 유지했다면?" 같은 질문마저 성행하는 호사를 누립니다.1


프랑스군의 참모총장 조제프 조프르
상당히 복잡한 인물로 국경 전투의 오욕과 마른 전투의 영광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프랑스의 초기공세인 로렌 공세와 아르덴 공세는 숫적 우위에 불구하고 독일의 절륜한 전술에 박살 났고 숱한 인명피해만 낳은 채로 독일의 허를 찌르기는커녕 독일군의 주력공세를 경시해 1차 마른 전투로 전세를 반전하기 전까지는 영토를 대거 내어주었습니다. 전술적으로도 경직된 공세 일변의 교리로 인해 독일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는데 전략적 레벨에서조차 공세주의와 더불어 애국심을 고양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알자스-로렌을 노리고자 했다며 제17계획을 해석한 학자들은 1914년 시점의 프랑스의 군인과 장군들의 무책임함을 매우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풍조는 여전히 남아 홀저 헤위그(Holger Herwig)의『The First World War: Germany and Austria-Hungary』, 폴 케네디(Paul Kennedy)의『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존 키건(John Keegan)의『1차대전사』를 참고할 경우에는 제17계획을 알자스-로렌에 무작정 돌격하고자 하는 계획 수준으로 묘사합니다.2

하지만 제17계획은 그간의 비판과 조롱에 불구하고 알자스-로렌 진공을 기본골격으로 세운 작전계획으로 볼 여지가 사실상 없습니다.


1919년 5월에 열린 프랑스 국민 의회는 왜 전초에 프랑스의 공업력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브리에 분지(Briey basin)을 방치했는지를 질문하기 위해 조프르와 카스텔노를 비롯한 전초의 고위 사령관들을 소환했습니다. 이 의회에서 프랑스군의 초기 군사전략에 대한 상당히 중요한 발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공통으로 제17계획을 작전계획으로 보는 시각을 부인하는 바입니다. 예를 들자면 제17계획의 주요 저자로 꼽히는 에두아르 드 카스텔노(Édouard de Castelnau)는 대놓고 제17계획을 배치계획으로 정의한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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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전 참모는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치계획을 언급했습니다."

"I do not blelieve the French general staff ever had an operations plan. We spoke of a concentration plan."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French Strategy in 1914: Joffre's Own」 pg. 429 by. Robert Dough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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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프르는 아예 국민 의회 앞에서 배치계획(concentration plan)과 작전계획(operations plan)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그 둘을 구분했습니다. 제17계획의 경우에는 국경 지역에 병력을 배치함으로 차후 전투에 준비시키는 결과를 낳는 배치계획의 성격을 지녔다고 평하며 로레인과 아르덴을 향한 공세를 비롯한 군사전략은 적군에 대한 여러 첩보를 입수한 이후에 결정한 사항이라 설명했습니다.3 즉, 제17계획의 중요한 관여자인 두 명 모두 제17계획을 작전계획이 아닌 배치계획으로 명확히 정의한 셈입니다.

애초에 조프르는 1914년 8월 8일, 전쟁이 터진 지 몇 주 이후에나 일반명령 제1호(Instruction générale no. 1)을 선포함으로 구체적인 군사전략을 밝힌 바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정치인들은 물론 휘하 지휘관들과 참모에게까지 함구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를 보아도 한동안 정설로 여겨졌듯이 제17계획이 공세를 포함한 작전계획으로 볼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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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의 집결은 8월 18일에 완성되었다. 모든 병사를 옮기기 위해서 4,278개의 열차가 사용되었으며 오직 20개 즈음만이 늦게 도착했다. 평균적으로 56개의 열차가 14개의 지정된 철도 위를 달렸다. 이는 엄청난 조직적 위업이었다."  

"The French Army concentration was complete by 18 August. It had taken 4,278 trains to move everyone, and only 20 or so of them arrived late. Fourteen dedicated railway lines carried an average of 56 trains per day. This was a tremendous organisational feat."
-『The French and the First World War』 pg. 35 by. Elizabeth Greenhal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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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전초에 백만에 육박하는 규모의 육군을 순식간에 양성해서 짧은 기간 내에 계획대로 국경 지역으로 배치하는데 성공한 만큼 제17계획은 대성공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군이 나폴레옹 전쟁의 명성에 불구하고 프로이센군에게 패배했던 이유 중 하나가 후진 동원체계였음을 고려하면 프랑스군은 수십 년의 노력 끝에 동원체계를 독일군과 같은 수준으로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양성한 대군 덕분에 프랑스군이 국경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처맞으면서 1차 마른 전투로 대표되는 반격으로 잇는데 성공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불전쟁의 패배로 인한 열폭으로 인해 공세지상주의가 퍼졌다는 알 수 없는 설과 달리 보불전쟁의 뼈아픈 교훈을 받아들이려 충분히 노력했다고 보는게 더욱 설득력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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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1914년 8월의 프랑스의 전략은 알자스-로렌을 향한 닥돌이 아니었으며 공세지상주의의 '구현' 또한 아니였다. 1914년의 프랑스군의 전략은 오로지 조프르의 것이었다."

"Thus, French strategy in August 1914 was neither a blind-charge into Alsace-Lorraine nor an 'incarnation' of the offensive à outrance. French strategy in 1914 was Joffre's own."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French Strategy in 1914: Joffre's Own」 pg. 429 by. Robert Dough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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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끝까지 군사전략에 대해 함구하고 전략적 구상과 결정을 사실상 혼자서 했다는 점은 초전의 패전을 상당 부분 조프르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기도 합니다. 뜻밖에도 정치인들은 군사업무를 조프르에게 위임한 채로 군사전략에 대해서는 전쟁이 터진 다음에야 물어봤습니다. 조프르 또한 뛰어난 정치력을 겸비한 인물로 능수능란하게 정치인들과 친근하게 지내며 최대한 군부의 자치권을 강화했습니다. 이 글에서 자주 인용하는 로버트 다우티의 경우에는 당시 조프르를 나폴레옹 이후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닌 군인이었다고 평했습니다.4 군사전략에 대해 엄청난 권한을 가진 데다가 정치인들 같은 아마추어의 간섭 또한 없었던만큼 초전의 패전은 조프르의 오판에 비롯된 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프르가 어떤 전략적 구상을 했기에 독일군의 목표였던 벨기에와 북부 프랑스의 평지를 경시하고 험준하기로 유명한 아르덴괴 알자스-로레인 지역에 주력을 파견 보냈는지는 다른 글에서 다룰만한 거대한 담론으로 기회가 된다면 『1차대전 프랑스군史』의 다음 토픽이 될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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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War in History』「Absolute Numbers: The Schlieffen Plan as a Critique of German Strategy in 1914」by. Terence Holmes pg. 193-194 홈즈의 경우에는 1차대전 사학계에 파란을 불러일으킨 테렌스 주버와의 슐리펜 계획 논쟁에서 몰트케(小)는 도리어 슐리펜 계획의 비율을 바꾸지 않았으며 슐리펜의 본래 의도 자체가 1:7이 아닌 1:3 비율을 노렸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슐리펜 계획의 경우에는 21세기에 들어서 기존의 인식이 수없이 뒤바뀌는 일대의 해석변화와 논쟁을 겪었습니다.  

2.『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French Strategy in 1914: Joffre's Own」pg. 427 by. Robert Doughty

3.『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French Strategy in 1914: Joffre's Own」pg. 429 by. Robert Doughty

4.『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French Strategy in 1914: Joffre's Own」pg. 429 by. Robert Dough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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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16/01/05 11:35
수정 아이콘
이 글은 밀덕의 유익한 글로 판명되었습니다

는 농담이고 잘 읽었습니다. 제가 (잘못)알고 있던 부분이 바뀌는 느낌이군요.
선비욜롱
16/01/05 11:5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겨울삼각형
16/01/05 11:41
수정 아이콘
요약

유럽짱깨, 서쪽퍼런거 프랑스가 물량 뽑기시작하면 아무도 막을수 없으셈
선비욜롱
16/01/05 11:58
수정 아이콘
이때 프랑스가 인구가 대대적으로 떨어져서 영국 본토보다 인력이 적었던 시절인데 한큐에 100만을 양성하고 그후에도 연합군에서 가장 큰 병력을 유지했죠. 인력소모를 매꾸기 위해 독일이나 영국보다 인력풀을 박박 긁어서 징병했기에 전후에 더욱 피해가 심했죠.
16/01/05 14:09
수정 아이콘
프랑스 인구가 떨어진 이유가 프랑스혁명, 나폴레옹시대때 전쟁이 많아서 인가요?
프랑스가 대대로 강국에 땅도 좋아서 인구가 많을줄 알았는데 1차대전때 영국보다 인구가 적을줄은 몰랐네요.
선비욜롱
16/01/05 14:56
수정 아이콘
정확히는 저도 잘 모르고 상당히 의견이 분분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 설에 의하면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 자작농들이 가난해지면서 재산분할을 막기 위해 출산율을 줄였다는 것인데 이것도 제가 직접 본게 아닌 다른 분의 글에서 얻은거라;;

실제로 영국과 독일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인구증가율이 50-60%에 육박했던 것에 비해 프랑스는 인구증가율이 10% 정도 밖에 안됬죠;;
16/01/05 14:12
수정 아이콘
전국에 떨어져있던 관문들을 차원관문으로 바꾼걸로 이해하면 될려나요
선비욜롱
16/01/05 14:57
수정 아이콘
음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되는군요... 동원체계에 대한 말씀입니까?
16/01/05 14:59
수정 아이콘
지방병력을 빠르게 동원해서 전선으로 보낸걸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선비욜롱
16/01/05 15:25
수정 아이콘
아 1차대전 같은 총력전의 경우에는 다수 국가가 한국과 비슷한 징병제를 체택해서 대부분 청년들이 군복무를 거치고 전쟁이 터질 시에 징발되서 전선으로 집결됩니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병사들을 올바른 지역으로 보낸다던가, 갑자기 늘어난 군수품 소모를 감당한다던가는 죄다 행정적 부담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죄다 감당해서 몇주도 안되서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을 보면 프랑스군의 행정력이 매우 뛰어나다 할 수 있죠.
바람이라
16/01/05 14:34
수정 아이콘
군대는 충분히 준비되었으나 정작 전략이 별로였던 건가요...
선비욜롱
16/01/05 14:58
수정 아이콘
사실 전쟁 준비도 단기전만 생각한지라 상당히 미비한 점이 컸는데 이건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라서 큰 단점이라 하기는 좀 그랬습니다.

다만 전략적으로 조프르는 상당히 뜸들이고 정치인들의 개입없이 결정을 냈음에도 결국 독일에 완패할 뻔했다는 점에서 호평하기 어렵죠;
피아니시모
16/01/06 00:57
수정 아이콘
조프르의 삽질이 나중에 가서 프랑스군 전체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고(..) 그걸 몽땅 다 뒤집어쓴건 아닌가 싶은게 포슈(..)....
16/01/05 15:04
수정 아이콘
추천 드립니다
1차대전도 연구할만한 여지가 많은데 아무래도 2차대전에 밀려서...
1차대전 글 보면 반가운...
선비욜롱
16/01/05 15:26
수정 아이콘
추천 감사드립니다 :)

1차대전은 연구할만한게 태산이고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오 태산이죠. 쓸 소재는 참 많은데 시간이 없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이치죠 호타루
16/01/05 16:10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애초에 밀고 들어가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집결하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말이군요. 계획은 상당히 성공적이었고. 그러나 독일군에게 초반에 말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계획으로 인해 완전히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요약하고 있군요.

근데 이렇게 놓고 보니 궁금한 게 생기는데, 그러면 영문 위키피디아의 Plan XVII 항목의 지도에 있는 1, 2, 3, 4, 5, 7군단의 알자스-로렌 진공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그냥 배치시켜놓고 보니 공격할 만해 보인다 하고 계획이 중간에 수정되기라도 한 건지...

2차대전 관련해서, 리델 하트 등이 주창했던 전격전이라는 개념이 일종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다가 칼 하인츠 프리저였나, 이 사람이 저술한 <전격전의 전설>로 인해 싸그리 뒤집어엎어진 일이 벌써 20년이 넘었는데, 그와 비슷한 일을 보고 있는 것 같군요. 이래서 군사학이 참 어렵습니다.
겨울삼각형
16/01/05 16:41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만약 독일과 전쟁이 터지면 서로 반띵해서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알자스 로렌... 으로 독일놈들이 들어 올거기 때문에 대응책으로,

알자스로렌지역에 병력을 배치해놓자.

가 제 17계획의 골자라는거죠.


참고로 알자스로렌지역이 왜이렇게 핫하나면,
당시 산업혁명의 흐름상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탄, 철등 지하자원 때문입니다.

프랑스가 다른건 다가지고있는데, 석탄은 프랑스 전체생산량의 70퍼정도를 알자스로렌지역에 의존했다고 하죠.
독일은 그래도 다른 탄광지역이 있어서 약 30퍼정도..


그러니까 다시 요약을 하면, 전쟁초기 삽질은 프랑스 군부 최상급 지휘관의 오판때문이지 제17계획때문이 아니라는겁니다.
에초에 슐리펜계획처럼 작전계획이 아니라는거...
(슐리펜계획 : 빠르게 파리를 압박 혹은 점령하여 프랑스의 항복을 받고 전군을 러시아로 돌리자. 그 수단으로 중립국인 벨기에를 빠르게 침공하는것도 감행.. 왠지 30년후에 똑같은 일이 벌어질거 같은건 착각입니다)
이치죠 호타루
16/01/05 18:13
수정 아이콘
역시 그렇군요. 그러니까 17계획의 골자는 Operation이 아니라 Strategic Redeployment라는 거네요(본문에도 있습니다만). 제가 궁금했던 것은 대체 누가 알자스-로렌 지방으로, 17계획으로 인해 배치된 병사들에게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그것이 17계획 자체와 얼마나 관련이 있었냐는 겁니다. 후자에 대한 답은 나왔군요(17계획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지역이야 하도 프랑스와 독일이 내 꺼라고 치고박고 싸우던 지방이니... 왜 그 마지막 수업인가... 알퐁스 도데였었나... 하여간 소설에서도 줄창 나오던 이야기라서요.
선비욜롱
16/01/06 13:49
수정 아이콘
영문 위키백과는 어떤 부분에서는 제가 인용한 다우티의 논문「French Strategy in 1914: Joffre's Own」를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제17계획을 여전히 작전계획으로 본다는 점에서 구시대적인 오류를 똑같이 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당 항목내의 지도의 오류는 위키백과의 슐리펜 계획 항목의 지도가 현재 시각으로는 오류범벅이라는 점과 일맥상통합니다. 아마 제17계획을 그린 해당 지도는 아마 실제 역사대로의 프랑스군의 공세를 본래 제17계획으로 오독하고 그려낸 지도로 보입니다.

조금 더 정리하자면
*1군, 2군은 로렌 공세를 펼치고
*3군, 4군은 아르덴 공세를 펼치고
*5군은 북진해서 독일군을 대응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제7군단의 경우에는 8월 7일에 알자스 지역으로 파견 보내서 제대로된 공세를 펼치기 전에 선전할만한 껀수를 잡는 용도였습니다.

제가 나무위키에 예전에 작성한 "국경전투" 항목이 있는데 수차례 업데이트하기 보다는 사실상 내용을 갈아엎고 새로 쓰는 중이라 이전의 오류가 존재하지만 (본문의 제17계획=작전계획설이라던지...) 어느 지역에 프랑스군이 어떤 병력을 집어넣었는지 참고할만한 수준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치죠 호타루
16/01/06 21:07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결국 플랜 17과는 별개의 명령이었군요. 밀고들어간 군단의 수가 꽤나 많은 거 봐서는 그 별개의 명령도 전략적 결과와는 별개로 실행 자체는 꽤나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영문 위키백과도 엎어야 할 수준이라면 그야말로 1차세계대전사의 분석 자체를 완전히 흔들어버릴 엄청난 일이 되겠네요. 덕분에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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