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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3/24 02:52:05
Name 王天君
Link #1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47946&no=7&weekday=mon
Subject [일반] 다들 울 줄도 몰라

무관심의 영역에 머무르는 누군가가 소녀의 뒷이야기를 한다. 억울하지만 수긍할만 한 이야기다. 딱히 친구도 뭣도 아니니 그런 이야기가 들린 귀가 재수가 없었을 따름이다. 소녀는 화장실로 향한다.

슬픔은 가장 순수한 감정의 결정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짜증, 분노, 원한, 억울함, 증오, 우울, 경멸, 질투, 답답함, 다른 누구 아니면 자기 자신을 향하곤 하는 이 부정적인 감정들의 표피를 걷어내면 거기에는 사실 슬픔뿐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인지 슬픔의 분출은 그 형태가 새어나오든, 흘러넘치든, 터지고 터져서 흥건하게 적시든 이쁜 결을 따라 순간으로 고이 모셔진다. 그윽하게 고여있다 알알이 맺힌 눈물이 똑똑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이내 얼굴 위로 길을 낸다. 그렇게 일그러진 얼굴, 갈라진 목소리와 함께 투명함과 야성이 어거지로 엮이거나, 가면처럼 딱딱하게 고정된 이목구비 사이에서 동과 정의 부조화를 일으키며 격앙된 감정의 찰나를 각인시킨다. 고울 때도, 흉할 때도 있다. 어찌됐건 안구를 통해 흘러나오는 액체는 슬픔이 단아하게 응축된 원액이다. 그 액체의 낙하운동으로 잔잔하게 머물던 감정에 파문이 번진다. 때로는 출렁이고, 파도가 되어 가슴을 때린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이를 받아내는 이도 슬픔으로 충만한 시간을 만끽한다.





맞다. 소녀는 화장실 변기 옆칸에 쪼그려 앉아 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슬픔에 빠진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감정에 현실이 압도당하고 시간축이 지배받는 순간을 혼자 오롯이 받아내기 위함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고상하지는 않다는 소리다. 눈물이 차올라도 일상은 계속 된다. 질질 짜는 꼴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는 학교고 소녀가 운다고 좋은 꼴을 볼 것도 아니니까. 슬픔이란 감정은 별거 아니다. 거기에 혼자 취해있을만큼 이 감정은 낯선 것도 주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는 “운다”는 생리작용의 단순한 발단이다. 이제 소녀는 익숙하게 매뉴얼에 따라, 효과적으로 눈물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거참 속상하군. 보아하니 눈물이 흐르겠네. 그렇다면 눈물자욱이 남지 않도록 각도를 조절하고, 손은 최대한 가만히, 콧물은 자연스레 휴지에 흡수되도록. 끝났다. 소녀가 울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아챌 수나 있을까! 소녀는 눈물의 프로다. 우는 것도, 그걸 감쪽같이 감추는 것도.

슬픔이란 감정은 뒷전으로 미뤄놓고 능숙하게, 기계적으로 눈물에 대처하는 소녀의 건조함은 맹랑하고 조숙하다. 다 큰 어른도 회사 화장실에서 궁상을 떨고 흔적을 감추지 못하는데 비하면 이 얼마나 의연한지. 물론 자기연민을 허락하지 않는 굳센 자존심이 재능으로 작용하기도 했을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론은 성급한 시기에 가깝지 않을까. 요는 경험과 노력이다. 그리고 정신상태다. 중3이라는 어린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녀는 남들처럼 사춘기라는 조건에 비겁하게 기대지 않는다. 외로움이라든가 서러움 같은 건 수도 없이 겪어봤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다거나, 희미한 존재감으로 또래 아이들 속에서 버티는 건 버겁기는 해도 참아낼 수 있는 일이다. 책에도 안나오는 운 티 안내기 같은 건 많이 울어본 끝에 얻어낸 꿀팁이다. 내 소녀를 눈물의 프로라고 하지 않았나. 이는 곧 슬픔의 프로라는 소리다. 누구든 소녀만큼 많이 슬퍼보면 금새 몸에 익히게 된다. 슬플 땐 이렇게. 엉엉엉. 딱딱딱. 척척척.

그래도 신이 아니고 사람인지라 수도꼭지 잠그듯이 눈물샘이 조절되진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슬퍼도 소녀는 각도를 잊지 않는다. 좀 귀찮긴 하겠지만, 몇번 더 화장실에서 혼자 처박혀 좀 울다 보면 아주 티도 안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두 번 운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울 일은 끊이지 않을테니. 소녀는 궁금할지도 모른다. 나도 아직 멀었지만, 다들 왜 이렇게 우는 데는 아마츄어인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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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jyess
15/03/24 03:07
수정 아이콘
아이들은 즐겁다... 정말 좋아하는 웹툰이었는데 신작이 나왔군요.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냈었던 터라 감정이입이 되네요. 누군가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다만 불편일 뿐이라고 말했다는데, 제 경험상 가난은 전혀 불편이 아니었습니다 부끄러움이었을 뿐. 점심을 못 먹어도 하나도 배 안고프고 힘들지도 않았어요. 돈이 없어서 점심을 못 먹는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될까 봐, 그것만이 두려웠을 뿐입니다.
초식성육식동물
15/03/24 09:21
수정 아이콘
부끄럽지요.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급식 못먹는 아이도 아니었고, 돈 없어서 준비물을 못 챙겨가는 아이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린마음에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제가 어려서부터 건설현장 다니셨습니다. 90년도 중반 즈음에 우연히 통장에 아버지 급여가 200여만원 가까이 받으셨던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땐 그 돈이 얼마정도의 가치인지도 생각할 수 없었죠.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한 일용직은 아니셨던 걸로 생각되네요.

근데 그땐 뭘 아나요. 그저 철없는 꼬맹이는 아빠가 낡아빠진 청재킷 걸치고 현관을 나서시던 모습에 왜 양복은 안 입으실까.
그래서 집에 돌아오신 아빠를 붙잡고 아빠 회사는 어디야? 라고 물어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XX건설이라고 하셨지요. 취업하고 아버지를 제 명의 건강보험에 추가하면서 보험기록을 봤는데, 제가 걸음마 할때 한 삼년 다니셨었네요.

아무튼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땐가 그랬어요. 아버지가 제가 다니던 학교로 일하러 오신 겁니다. 그때 살던 동네가 신규 아파트 분양이 계속 이뤄지면서 초등학교 교실 수를 계속 확장을 할때라 공사가 끊이지 않았거든요. 그 전날 아버지께 미리 언질을 받긴 했지만, 쉬는시간에 뛰어노는데 XX야~ 하고 저를 부르는 낮익은 목소리가 들리는겁니다. 순간 저는 그냥 모른척 했어요...
나중에 집에서 아버지를 뵈니 노는데 열중하느라 내가 불러도 못듣더라며 웃어주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죠. 피지알에서 써주신 많은 분들 이야기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에요.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던 그 당시 저는 부끄러웠고 쥐구멍에 숨고 싶었습니다. 철이 없어서 그랬다고 변명을 해보지만 지금은 그게 아버지께 너무 죄송하네요. 다른 좋았던 기억들이 지금은 희미하지만 그 때 기억은 너무나 또렷합니다.

yangjyess님 댓글을 읽고 어린시절 기억이 떠올라 한번 적어봅니다.
15/03/24 11:28
수정 아이콘
에구 저희 아버지도 건설업 하시는데.. (노가다랑 별반 차이가 없는 일입니다)

20대때 저는 친구랑 시내 지나가다 만났는데 어찌나 반갑던지요

아버지께서 오히려 부끄러워(?) 하시는데 자랑스럽게 찾아가서 밥값 받았네요..크크

어머니 몰래 담배피는걸 들키셔서 크크..
WeakandPowerless
15/03/24 15:39
수정 아이콘
이런식으로 반전 주시면 곤란하지 말입니다 크크
순대없는순대국
15/03/24 11:22
수정 아이콘
지금 웹툰을 보고 왔는데 가슴아린 내용이네요.
15/03/24 11:40
수정 아이콘
허5파6님 웹툰인거보고 바로 클릭했었지요..
게임은 깨알같이 2000년 초반에 유행하던 온라인 게임을 모티브로 삼은듯 싶고..
아이디들이 x누구사랑x , 시나브로™, 누구쨩_。이런식인거보고 피식피식 했었네요..크크
내성적인 여자아이를 잘 표현한 웹툰인거같아요..
전작인 아이들은 즐겁다.. 처럼 다소 우울한 내용이 주를 이루겠죠...T_T)
모두가 원하는 해피러브러브 하하호호 내용은 안나올듯 싶어도 앞으로의 내용이 기대가 되는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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