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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1/04 16:59:47
Name 靑龍
Link #1 http://smh2829.blog.me/220228636164
Subject [일반] 《삼국지》<Faction토론> 형주공방전 당시 관우의 진퇴는 어찌하는 것이 옳았던 것일까?
한중에서 조조와 싸우던 유비를 위해 관우는 양번지역으로 진공한다. 양번지역에 대한 관우의 북진에 대해 관우의 독단적인 판단이다,혹은 유비가 승인했다 라는 주장들이 논쟁거리가 되는데 개인적인 판단으론 유비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과거에 지역에 파견된 인물은 자신의 독단으로 군사를 일으킬 수 없었고 이는 중앙정부에서는 그의 의도를 모르면 반역행위로 간주했기에 함부로 군사적 무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후한 말에 발생된 많은 군벌들의 사사로이 병사를 키웠던 일은 바로 중앙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평시라면 조정의 허가없이 절대 용인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다.
유비는 한중에서 조조에 맞서 힘들게 방어에 성공했지만 쉽지않았던 싸움이었기에 관우가 양동작전으로 나선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위나라의 정국은 경기/위황의 반란, 위풍의 반란, 후음의 반란 등으로 상당히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관우는 (아마도) 2-4만 여명의 병력을 이끌었을거라 생각하는데 이 병력을 이끌고 양번 지역까지 진입한다. 그것에 대해 별다른 기록은 없지만 경내에 순순히 진입을 허용하진 않을 것이기에 아무래도 양양과 번성 지역에 진입하기까지 소소한 전투는 있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관우의 양번 진공은 그야말로 그의 전성기라 봐도 좋을만큼 시작부터 절정까진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번성을 지키는 조인과 방덕을 몰아넣어 번성과 양양성을 포위했고 파견된 우금의 7군을 천재지변의 도움을 받아 수몰시키고 3만여명의 보기병을 포로로 삼기에 이른다. 이때까지 우금은 실패한 적이 없던 가히 위나라 최고 명장중의 1인이었고 조인 또한 위나라 종실중의 명장이었다. 방덕 또한 용맹으로도 널리 알려졌었다. 이런 이들을 상대로 대공을 세우니 형주자사와 남향태수가 투항하고 위나라 내부에서 반란도 일어나 관우에게 호응하여 화하(중원)가 진동했다. 이런 관우의 위세에 노쇠한 조조는 천도까지 고려할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형주 상실 전의 관우의 위세였다. 그런데 이렇게 막강했던 관우가 어찌 그리 쉽게 무너졌던 것일까?

그것은 몇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것 같다.
1. 형주의 반토막만으로 천하를 상대하려했다. 당시 관우가 상대했던 이들은 가히 위나라와 오나라의 최고 에이스였다.
2. 대공을 세웠기에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고 진퇴의 흐름을 몰랐다.
3. 각종 심리전과 정보전, 외교전이 모두 치열하게 드러난 전쟁이었다. 사서를 보면 시간순에 대해 파악하기 힘든데 제대로 살피면 촌각을 다투고 시급을 다투는 순간속에 일어났던 일들이었다.
4. 어찌된 일인지 촉한정부로부터 지원이 없었다. 아무래도 건국을 서두른 유비가 정무와 시스템 구축에 매우 바빴던 것이 하나의 원인이었을 듯 싶고 두번째로는 관우가 보고를 했을 당시는 대공을 세웠을때라 방심했던 것도 있을것 같다. 관우의 몰락은 오나라에 의해 엄청나게 신속히 이뤄진데다 육손이 자귀로 진군하여 교통로를 틀어막았던 것으로 여겨지므로 아무래도 촉한정부에 소식이 들어가지않았을 것이다.
5. 인사관리에 무능했다. 전시에 동료인 미방, 사인과 불화하여 그들이 제대로 협력하지않았고 동맹국인 손권을 무시하여 배신하게끔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또, 상용에 주둔했던 유봉과 맹달과도 사이가 썩 좋진 않았던 것인지 그들도 지원을 하지않았다. 개인적으로 추론해보건데, 아무래도 관우는 드높은 자부심과 더불어 자신이 판단하기에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않은 위인이 나대는것을 싫어했던 것 같다. 사대부와 사이가 좋지않았지만 사졸들 이하 백성들은 그를 경외했던 것을 보면 정책적으로 하층에 속한 민중들에게만 유리했던 정책을 펼쳤던 것은 아닐까.

사실 역사에서의 결과만으로 토론한다는건 게임할때 핵쓰고 플레이하는 것과 같다. 일반인들은 다 아는 것도 실천하지않으면서 위인들에게만 지나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불합리하다.
당시 관우는 결과적으로 형주를 상실하고 그 자신도 패해 죽었기에 실패가 부각되는 것이지, 사실 냉정히 보면 형주 반토막의 반토막 그리고 많지않았던 병력으로 전국의 에이스들과 대결하여 쟁쟁한 용명을 떨쳤고 번성과 양양성의 함락도 어찌보면 시간문제였다. 서황은 번성의 위급을 구원해주러 파견되었으나 그가 이끈 병력이 신병이었기에 관우와 다투기 어려웠으므로 진격하지않아 휘하 장수들에게 많은 원성을 들었는데 이를 알게된 조조가 12개영의 병력과 장수를 서황에게 보냈으므로 진격하여 관우와 다투게 된 것이다. 사실 그 당시 서황의 병력을 따지면 관우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관우는 번성과 양양성을 포위하고 있던 상태라 병사도 나눠져 있던 상태였다. 공부 열심히 하거나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수 있다고하는 극히 쉬운 진리조차 열심히 하지않는 일반인이 신에게나 통용될법한 논리로 한치앞도 볼수 없던 상황속의 위인들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참 답이 없다고 여긴다. 소설속에 자주 나오는 그야말로 현실을 제대로 모르면서 공자왈맹자왈하는 더벅머리선비들의 쓸데없는 말들이 참으로 많다.

관우의 실패를 분석하고 파악했으니 그렇다면 중요한 사실을 허구로 고치고 토론을 해보자.
★ 남군과 공안의 수비를 맡은 미방과 사인이 관우 밑에 종군하고 관평과 조루가 남군과 공안을 지킨 것으로 바꿔보자.
★ 맹달이 상용으로부터 원군을 이끌고 출전했다.
★ 위나라와 오나라의 상황은 실제상황과 똑같다.
저런 전제조건하에 당시 번성 함락 직전에 있던 관우는 철군해야되었을까 아니면 계속 몰아붙였어야했을까.
이 점으로 활발한 토론을 해보자. 사실 if논리라 정답은 없다.


(가독성과 편의를 위해 반말로 작성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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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04 17:08
수정 아이콘
사실 위와 오가 동시에 저렇게 훅 들어온다면 비록 물러난다 해도 역사의 상황이 반복됐겠죠.
한정된 형주의 전력으로 위와 오를 동시에 막아야 하는 미션이었으니.
최소한 양쪽 중에 하나 정도는 물려야 그나마 싸움 조건 클리어였을 겁니다. 최소한의 버틸 병력만 남겨두고 전군을 동원해 밀어붙였어야겠죠

조금 머리를 굴린다면 우금과 포로로 잡은 병사들을 돌려주는 대신 화해하는 조건으로 위와 협상을 하는 정도?
관우를 높이 평가하고 또 자신이 물러나면 오는 결국 손해 없는 관우의 주력과 단독으로 맞섰어야 하니 조조라면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무무무무무무
15/01/04 17:13
수정 아이콘
우금의 7군을 괴멸시킨 홍수가 관우의 보급선 역시 절단냈다는 게 가장 주요한 변수라고 봅니다. 부사인은 그렇다쳐도 미방이 오나라에 배신할 정도면
관우의 요구(라고 쓰고 억지라고 읽습니다)가 어떤 수준이었을지 대략 짐작이 가죠. 공명이 북벌에서 그랬듯, 아무리 전황이 유리해도 보급이 끊어지면
말짱 꽝입니다. 아쉬워도 무조건 퇴각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Shandris
15/01/04 18:08
수정 아이콘
애초에 오나라가 전력을 들어 뒤통수를 쳤는데도 남군과 공안을 뺏지 못했다는건 합비 이상으로 상정하기 힘든 전투긴 하지만, 그렇다 치고 생각한다면 관우에게 퇴각의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퇴각의 선택지가 있는 상황 정도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굳이 밀고 올라갈 이유도 없었을테고...
15/01/04 19:21
수정 아이콘
맹달이 구원와서 관우의 퇴각이 가능하도록 해주고 남군과 공안에서 버티다 익주의 병력을 통하여 전투가 마무리 된다.라는게 최상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최상의 성과는 관우를 살리고 형주 영유권을 잃지 않는 것이고 뒤에 이어진 이릉전투가 없다는 면에서 많은 인재와 물자를 세이브 할 수 있다는 나비효과까지... 근데 이게 가능하면 영걸전...
나이트해머
15/01/04 20:13
수정 아이콘
우금을 격파한 시점에서 상용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건 곧 촉에서의 지원이 없다는 이야기니까 빠지는 게 좋죠.
랍상소우총
15/01/04 20:40
수정 아이콘
최근에 삼국지강의 읽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이 많더라구요.

관우의 자만심과 부하를 다스리는 덕이 부족했던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15/01/04 20:52
수정 아이콘
관우가 살아만 있었다면
형주를 잃었더라도
1차 북벌에서 가정의 촉군 대장이 마속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을테니
(개인적으로는 장비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조운이었을수도 있을테고, 하여튼 마속은 절대 아니었으리라 봅니다)
산을 안 올랐을테고(!!!)
옹, 양의 거의 대부분을 가져왔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거의 똔똔이죠.
로하스
15/01/04 23:12
수정 아이콘
관우가 살아있었으면 제갈량이 그렇게 전권을 쥘수가 없지 않았을까요.
아마 그랬다면 정치쪽은 제갈량 군사쪽은 관우 이렇게 나뉘어졌을듯 합니다.
그럼 제갈량주도로 이루어졌던 북벌도 좀 달라졌을거 같아서
1차북벌이 똑같이 진행됐을지 모르겠네요.
15/01/04 23:39
수정 아이콘
이릉에서의 전력소모가 없었으니 북벌이 빨라졌을테고,
그랬다면 마초가 살아있었을 테니 옹,양은 가볍게 넘어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장안이 포인트였겠죠
yangjyess
15/01/05 00:23
수정 아이콘
싸움을 시작한게 잘못이죠. 형주공방전의 초반을 보고 오 관우 상황 좋았네 하는건 스타 볼때 미니맵 가리고 전황 판단하는거랑 똑같은겁니다.
15/01/05 01:08
수정 아이콘
오랑 관계를 생각지도 않고 전쟁을 한게 잘못이죠
뒤통수를 친 오가 잘못이 크지만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관우가 오와의 관계를 위한 노력도 전혀 않하고 오히려 업신여긴 행동은 잘못입니다
15/01/05 06:23
수정 아이콘
오와의 외교관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후의 전략이든 전술이든 군사적 요소는 부수적인 것이라 봅니다.
위와 오 양측을 동시에 상대하기로 한 이상은 촉이 한중과 파서의 병력을 다 빼온다고 하더라도 형주를 지키는 건 지난한 일이라 보고요. 오의 입장에서는 형주를 차지하지 않는 이상은 이미 위로 갈아탄 노선을 다시 촉으로 돌릴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일으 이후 위오 동맹의 와해도 오가 아니라 위에 의해 이루어졌고요.
촉은 오와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려면 형주, 최소한 강릉선까지는 버렸어야 합니다. 형주와 한중에 의한 병진 북벌이라는 융중대계의 성립을 위해 형주는 필요한 땅이지만 이것이 성립되고 나면 전략적으로는 안정된 보급을 위한 배후지 역할 외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게 형주땅이었으니까요. 관우가 완까지, 유비가 장안과 농서까지 북벌이 끝난 시점에서 형주를 오에게 평화적으로 양도한다는 확약이 있었다고 하면 여몽이 과연 그 정도로 강경한 노선을 취했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한중 탈취 후 유비가 한중왕에 등극할 때 오에도 동등한 왕위에 오르지 않겠느냐는 권유 정도는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고대처럼 명분이 중요한 시기에 혼자 왕 해먹은 것도 오 입장에서는 충분히 비위 상할 일이었을테니까요. '너희는 우리 대화 상대가 아니다.'라는 의미랄까. 그것도 한때는 자신들에게 손벌리던 세력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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