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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2/02 21:01:45
Name 이시코기
Subject [일반] .
** The end of Caine's diary (2014) **

도시 위에 떠 있는 창백한 달은 끝내 보름이 되지 못했다. 달이 결국 칠흑같은 강물 위로 산산이 부서져 내린다. 날카로운 달의 조각들을 집어삼킨 강물은 그 아가리를 숨긴 채, 조신하게 흘러 가는 척한다. 남은 파편들은 그녀의 잔잔한 표면에 박혀 반짝인다. 강은 그렇게 매혹적으로 치장하고서 도시의 모든 괴로운 이들을 유혹한다. 나는 안다. 그들이 그녀의 품에 안기는 순간에 그 연약한 몸뚱이들은 갈갈이 찢어발겨질 것을.
나 역시 그걸 알면서도 그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새벽인데도 교량에는 차가 꽤 많이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난간 위의 남자는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강물이 고요해보였다.  
      

4월 16일 오늘, 나는 내 일기의 마지막장을 쓰려고 한다.
일기를 다 썼을 때는 비로소 꿈에서 깨어나겠지. 내 인생은 확실히 악몽이다.
나는 저주받은 인생을 산것이 아니라 하룻밤의 불쾌한 꿈을 꾼 것이라고 여기고 싶다.
물론 당신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내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당신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의 4월 16일. 애나졸리시 제 4구역의 빈민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홉달을 채 못채우고 나온 미숙아.
바로 나다.

나는 어릴적 부터 꽤나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내가 태어난 날은 비가 엄청나게 많이 오는 날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빗속에서 나를 낳자마자, 오래된 밤색 목도리로 감싸서 작은 바구니에 담아 근처에 있던 성당 문 앞에 놓았다. 아버지가 누군지 찾지못한 어머니는 나를 키울수 없다고 생각했다.
담배를 피러 밖에 잠깐 나온 친절한 수녀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얼어죽었을것이다.
내 생애에 있어 얼마 되지 않는 행운들중 첫번째 행운이었다.
그러나 인생사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 다음주 성당이 있던 지역에 비가 너무 많이 온 나머지 성당 건물의 절반이 넘게 침수되어서 나는 또 다시 근처의 공립 고아원에 맡겨졌다. 안타깝게도 새옹지마라는 말은 내 인생에 없었다. 고아원의 원장이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을 거의 다 빼돌렸기 때문에 나와 다른아이들은 항상 굶주려야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항상 더러웠다. 다행히도 내가 4살이 되었을때 어떤 자비로운 중산층 부부가 나를 입양했다. 마이클과 스티브, 그 불쌍한 부부는 나를 입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지금의 나에겐 무장 강도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어린시절에는 트라우마로 남을만큼 끔찍했다. 트라우마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뒤의 나는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 그 강도놈을 응징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복수의 대상이 될 강도놈이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줄넘기를 하며 체력을 길러서 훗날을 기약하던 나에게 경찰 아저씨가 말해준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증오와 복수심 대신 무력감과 좌절감이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무력감과 좌절감. 그 이후에는 학창시절인데,  학창시절의 이야기는 쓰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학교에 다니는 하루하루가 절망적이었기 때문이다.  '절망적'만큼 매일 따돌림 당하는 찌질이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없다. 그러니 물론 여자친구 같은건 있었을 턱이 없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에 처음으로 잘 될 뻔한 여자애가 있긴 있었다. 걔는 곧 나에게 유일하게 하나 있는 친구와 사귀었다. 나는 그녀를 비난하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만날 때 마다 그 애에게 점심을 얻어먹던 처지였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 거울로 본 내 자신이 가장 불행했다.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상을 욕했고, 나를 만든 신을 욕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욕했다.
집세도 벌기 힘든데 등록금을 낼 수 있을리가 없으니 대학 진학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나는 세상일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에는 너무 사는게 비참했다. 내 모든 생활은 '더 싼것'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나는 너무 가난했다.
인생을 비뚤어진 채 걷고있던 중 어느 날 식당에서 한 웨이트리스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식사값을 내지않고 도망쳤을때 자신의 월급으로 대신 돈을 내줬고, 내가 그 식당에서 일을 할수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마리아를 만났다. 그녀는 밝고 명랑했으며, 눈이 무척 아름다워보였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선했다. 나를 가엽게 여긴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나의 수평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세상을 다시 똑바로 걸을 수 있도록.
나는 그녀 덕분에 조금씩 사회성을 되찾아 갈 수 있었다. 잃어버린 삶을 되찾도록 도와주었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을 모두 다해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는 내 진심을 알아주었고 곧 여자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녀가 내게 과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흐른뒤에야 겨우 프로포즈를 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무슨 생각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그녀는 내 프로포즈를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는 내 가난에 개의치 않았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정말 오랜만에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물론 결혼반지는 가지고 오던 중에 잃어버렸다.
그녀와 나는 가진게 변변찮았으므로 성실히 일해야만 했다.
아이가 생길때를 대비해서 우리는 둘이 합쳐 거의 주당 200시간정도 일했다.
그녀가 정말 아이를 가졌을때는 일을 쉬게했다. 대신 내가 더 일했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자고 나머지는 일했다. 닥치는대로 일했다. 문에  마트 캐셔, 주차장 관리원, 피자 배달부, 건물 청소부, 빵집 점원, 세탁소 점원, 주방 보조, 배관공 보조 등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파트타임은 거의 다 해봤다. 직장에서 실수해서 짤리거나 부당하게 해고당해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쓰레기통에서 주운 신문에는 파트타임을 구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정직원이 되지는 못했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아이를 낳았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몸이 고되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나는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 때 나는 정말 행복했다. 딸을 안아 들때면 내 삶에 꽃이 피는듯했다.
  
그러나 그 꽃은 피기도 전에 시들었다. 잎과 줄기는 모두 흩어져서 재가 되었다.
우리 집의 낡은 가스관이 폭발해서 화재를 일으켰고 아내와 딸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죽었다.
퇴근길에 데이지를 사고있던 나는 구급대원의 전화를 받고 흰 국화 두 송이를 더 샀다.
그들은 재가 되었다. 한 움큼의 재가 되어 나를 떠났다. 내 옆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의지가 한 움큼 마저도 없었다.                
나는 세상을 원망했고, 신을 원망했고, 낡은 집을 샀던 나를 원망했다.
나는 어지러웠다. 온 몸의 피는 이미 빠져 나가버린 뒤였다.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새벽이었다. 나는 미스틱 강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새벽인데도 교량에 차가 꽤 많이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난간 위의 남자는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강물이 고요해보였다.        

흘러가는 강물 앞에 서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었는데,
정말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이었다. 경찰은 처음에 노후된 가스관이 폭발했다고 생각했지만, 조사 결과 가스관은  폭발할만큼 노후되진 않았으며 누가 건드린 흔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고의적인 방화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부근에 사는 방화 전과자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다고 했다. '케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쇄 방화범.
나는 그 순간 내 인생의 모든 증오를 그 방화범에게 돌렸다.
나는 기필코 그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가진 유일한 희망을 앗아간 살인마.    
결심하자마자 그 방화범이 이미 자살했다고 경찰이 다시 알려왔다.
나는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나는 집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까지 고통스러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술이나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하루종일 아내와 딸의 모습을 기억하려했다. 절대 잊어서는 안될 얼굴이기 때문에. 그리고 절대 잊어서는 안될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소파에 앉아 방화에 대한 기사가 실린 신문를 펼쳤다.
연쇄방화범 케인. 나는 이 자를 잊을 수 없다.
케인. 잠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하지만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 오래전에 들은 이름이었다.
어쨌든 그 뒤로 나는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 사실 당시에 다른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았다.
내 생활은 점점 피폐해져갔고, 쓸수있는 휴가를 모두 써버린 회사에서는 해고 당했다.
가정을 위해 어렵사리 구한 좋은 일자리 였는데 어쩔 방도가 없었다. 나는 뒤늦게 어떻게든 해보려했지만 직원은 케인씨가 나를 만나기 원치않는다고 했다. 케인 사장님.
아, 케인. 케인은 사장의 이름이었다. 케인 스트로버 였던가.
물론 이 놈의 케인이 방화같은걸 저지르진 않았겠지.
나는 사장을 만나기 위해 회사로 직접 찾아가야했다. 몇달 만에 집을 나서자 공포가 엄습해와도 어쩔수 없었다.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겨우 회사에 갔는데
나는 경비에게 엄청나게 구타 당하며 쫒겨났다.
나는 반항 할 힘이 더이상 남아있지않았다. 나는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신은 나를 미워한다.
케인. 케인이 나를 죽이려한다.
잠깐. 케인? 내 오래된 기억의 저편에서 섬광처럼 무언가 떠올랐다.
케인은 우리 양부모님을 죽인 강도의 이름이었다.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아무튼 케인 비슷한 이름이었던것 같다. 케인, 카인. 케일? 캐리 였던가.
나는 로버리힐즈 부부 강도사건의 관할이었던 경찰서를 찾으려했는데, 더 나은 방법이 생각났다. 우리 집의 오래 된 서랍 속에는 아직 내가 간직하고 있는 빛이 바랜 명함이 있다.
양부모님이 돌아가셨을때 사건을 담당하던 형사 아저씨가 준 명함.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되었을 형사 아저씨. 나는 그런 사람들이 쉽게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전화를 거니 이제는 늙어버린 전직 형사가 받는다. 나는 간단히 내 소개를 하고,  전화를 걸게 된 경위를 말한다. 노인의 대답. 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하고는 끊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상하게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오래 전 부부를 죽이고 자살한 강도의 이름.
케인. 스트로버라는 성씨를 가진 케인.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을, 정말 말도 안되는 사실을 들었다. 내 아내와 딸을 죽인 방화범이 그 강도의 아들이라는 사실. 사실 나는 무언가 납득이 갔다. 왜 납득했는지는 도대체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을것 같았다. 아버지 케인. A. 스트로버의 성과 이름을 물려받은 아들 케인. A. 스트로버. 그 아들은 아버지의 범죄 역시 물려받았다.
내 가족은 전부 케인. A. 스트로버에게 몰살당했다.
그냥 기막힌 우연이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우연이 아닐 수 있을까?

                                                                                                                                         **  < 1부 끝 > **


그 뒤 나는 월세를 내지 못하는 집을 나와서 밖에서 지냈다. 우리는 밖에서 사는 사람들을 노숙자라고 부른다. 그렇다. 나는 노숙자가 되었다. 밖에서 지내긴 하지만 돈이 조금 있었으므로 거지는 아니었다. 거지는 아니었는데, 거지처럼 보여서 체포당했다. 배가 불룩 나온 경관이 내가 구걸하는걸 봤다고 하며 체포했다. 나는 구걸하지 않았다고 외쳤으나 듣는사람은 없었다. 경관의 명찰에 적힌 이름은 케인이었다. 정확하게 케인. A. 스트로버. 이건 절대 기막힌 우연이 아니다. 면회를 온 친구에게 (오래전에 돈을 빌렸었다. 안타깝게도 나를 보러온것이 아니다. ) 사정해서 10년 전 내 여자를 뺏은 놈의 옛날이름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그 자식은 어릴적에 개명했었다. 몇일 뒤 받은 편지에 적힌 이름은 케인. A. 스트로버. 역시나. 이건 무슨 신의 장난인가. 케인. A. 스트로버. 스트로버. A. 케인. 왜 케인. A. 스트로버들이 나를 못 죽여서 안달이지. 나는 그들에게 잘못한게 없는데. 억울했다. 왜! 내가 케인에게 어쨌다고!
나는 또 다시 세상을 저주했다. 신을 저주했고, 이세상의 케인들을 저주했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도 케인. A. 스트로버는 나를 막을 것이다.
나는 혐의가 풀려서 출소한 뒤에 온갖 성명학과 운명론과 다른 잡다한 이론들을 공부했다.
그 중 어느 것도 내 인생과 케인을 설명해주지 못했다.
내 인생을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으로 밝힐 수는 없었다.
이정도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내가 겪어온 불행들과 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들을 A4용지 32장에 빼곡하게 낱낱히 적어서 유명 방송국에 갔다.
사람들 앞에서 내 인생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정 받고 싶었고, 깨달음을 주고 싶었다. 나같은 인생은 또 없을테니 자신들의 삶에 고마운줄 알라고. 이정도면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신이 인간을 버린 경우는 또 없을 거라고. 나는 부랑자 쉼터를 나설때만 하더라도 약간의 기대감 역시 가지고 있었다. 혹시 이 기막힌 우연들이 다 나를 스타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솔직히 케인. A. 스트로버와 얽힌 이 기구한 사내의 운명은 시청자들을 관심을 사로잡기에
모자라진 않는다. 나는 TV에 출연하고, 돈을 벌고, 사람들을 만날것이다.
하지만 그 일말의 희망은 방송국에 들어서는 순간 무참히 깨졌다. 경비원 두 명이 허름한 내 꼴을 보고 구걸꾼인가 싶어 내쫓은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저항할수록 더 맞기만 할 뿐 이었다. 오른쪽 어깨와 허벅지가 멍들었다. 나는 집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잠을 청하면서도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이른 아침 나는 방송국으로 전화를 했다. 사연 신청을 전화로도 할수있다는 걸 몰랐다. 나는 고객센터의 응대원에게 경비원이 나를 때렸다고 따졌다. 그리고 뉴스제보센터에 연결해달라고 했다. 사연접수를 담당하는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여자 직원이 무언가 말해보라고 했을때, 약간 울음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3시간이 지나서 내가 콧물과 눈물 범벅이 된 코를 닦으며 입을 닫았을때, 직원은 말이 없었다.(나는 멍청하게도 그녀가 감동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심드렁한 말투로 내게 잘 알아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사연이었고, 충분히 감명깊었다고 말했다. (분명 심드렁한 말투였다) 그런데, 세상에 케인. A. 스트로버는 흔한 이름이라고 했고, 그녀 역시 이름이 케인. A. 스트로버라고 했다. 나는 여자이름이 어떻게 케인이냐고 되물었지만, 그렇다고 하니 뭐라 말할 도리가 없었다. 내 뇌는 더 이상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중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물론 그녀는 나중에 다시 연락을 하지는 않을것이다.  
나는 끊어진 수화기를 든채로 한 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사고하기를 정지한 채 누워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어떤 남자가 나왔다. 그는 다소 병약해 보이는 외모의 중년 남성이었는데, 나에게 자신을 신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흰 옷과 긴 머리털을 가지고 있지않은 예수는 신뢰도가 떨어져 보인다고 충고했다. 그는 자신이 예수가 아니라고 했다. 스스로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신은 또 처음이었다. 그는 자신이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나를 정의하고, 자신이 나를 움직이게 하며, 자신이 나를 '쓰고 있다'고 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싶어했다.
나는 그의 말을 차분히 듣기로 했다. 그는 나처럼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왔으며, 그 불행을 이제는 종식시키기 위해 자살을 하고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번번히 실패했다고 했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죽일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자살은 하고싶지만 고통스럽게 죽는것은 역시 두렵다고했다. 그러고는 말을 멈추더니 흐느껴 울었다. 아직까지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사실 나 역시 비슷하다. 나도 이토록 불행하게 살아왔는데 내가 자살하지 않은것은 순전히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처럼 나도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었다.  
  그는 한 참을 울먹거리다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자신을 죽여달라고했다.
그는 자기가 케인. A. 스트로버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나를 창조했으며, 나는 현실이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서만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나의 과거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정말 태어날 때부터  불행했는가? 나는 대답없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태어난 순간부터 3살,4살까지의 사건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없어.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정통으로 맞은듯 했다.
나는 혼란스러웠고, 어지러웠다. 동시에 분노 같은게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그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는데, 왜 나는 분노하는걸까. 나는 점점 내 정체성을 그에게 박탈당하고 있다는것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그게 느껴졌다. 나 자신을 잃는 기분이 들었다.
내 정신은 붕괴되어 가고있었다. 나는 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 하고싶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혼란에 빠진 나에게 그가 말했다. 어서 자신을 죽이라고. 자신이 내 인생을 망가뜨렸으며, 자신이 나를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으니 자신을 죽이라고했다. 나는 내앞의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 남자는 케인이다. 케인. A. 스트로버. 내 부모님, 내 아내, 내 딸을 죽인채 살아가고있는 남자. 케인, 내 삶을 무너뜨린 남자. 내가 죽여야할 남자. 오, 케인.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목에 가져다댔다. 나는 알 수없는 힘에 이끌리고 있었다.
나는 이 남자가 진짜 케인이 맞는지, 아니면 헛소리를 하고있는 지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는 내 분노를 드러낼 대상이 필요할 뿐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내 팔뚝이 터질만큼 강하게 그의 목을 졸랐다. 그는 켁켁거리며 버둥거렸다. 살려달라는 신호인가? 하지만 그는 자신을 죽여달라고했다. 그는 나를 죽였고, 자신을 죽일것이다. 나는 아랑곳 하지않고 더 강하게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의 얼굴은 미친듯이 새빨개졌으며, 눈은 당장이라도 터질듯이 튀어나왔다. 그의 입에서는 끔찍한 바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는 마침내

형사는 케인. A. 스트로버의 일기장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형사는 알 수없는 위압감에 사로잡혔다. 형사는 이 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인정 할 수 없었다. 그는 옆에 앉은 채로 죽어있는 케인의 시체를 보았다. 그의 오른손은 펜을 움켜쥐고 있었으며, 왼손은 목을 '터질듯이' 움켜쥐고있었다. 그의 목에는 손 모양의 멍이 끔찍한 빛깔의 검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수사관은 마지막까지 글을 쓰다 기도 압박으로 질식사 했다고  했다. 형사는 일기장을 들어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서야 두번째 읽기가 끝이 났다. 두 번의 정독을 마치고도 여전히 형사의 머리는 이해를 거부하고 있었다. 형사는 이 알 수없는 수수께끼의 일기장과 죽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는 오랫동안 생각에 빠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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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박
14/12/02 22:44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외국소설을읽는 듯하네요.
소설은 적의 화장법처럼 이해하면 될까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이시코기
14/12/02 22:56
수정 아이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외국sf소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문체가 이런식으로 흐르네요. 고쳐야할 점 같아요.
내용은 제가 그 책을 안봐서 잘 모르겠네요. 한 번 봐보겠습니다 :D
미니언
14/12/02 23:03
수정 아이콘
저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와 얼핏 닮아있는 분위기가 참 좋네요.
이시코기
14/12/02 23:15
수정 아이콘
재밌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처음으로 이야기를 써본데다 피지알에는 왠만한 필력이 아니면 호응이 약해서..흐흐
향수같은 작품을 얘기하시니 얼핏이라도 엄청난 영광입니다!
반반쓰
14/12/03 01:33
수정 아이콘
와.. 재밌네요
결국 주인공도 우연히 같은 이름을 가졌고 케인들에 대한 증오를 자기 자신에게 푼건가요?
14/12/03 08:32
수정 아이콘
아마 제가 제대로 읽은거라면 모든 케인은 처음부터 화자였던거죠.아마 다중인격 같은 설정인듯; 마지막에 자신의 목을 졸라서 죽인거고.
반반쓰
14/12/03 09:56
수정 아이콘
저도 처음엔 이중인격인가 싶었는데 케인들이 교통사고라던가 자살로 죽었다는건 시체가 있을것이기때문에 이중인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죽었다는것도 화자의 망상이었을까요?
이시코기
14/12/03 10:41
수정 아이콘
글쓴입니다. 자살하고싶으나 자기손으로 목숨을 끊기는 두려웠던 케인은 일기장과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나'라는 화자를 만들어내고, '나'의 인생에 역시 만들어낸 온갖 케인들이 훼방을 놓아 결국 케인을 증오하게된 '나'가 진짜 케인을 죽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그생각역시 케인의 머릿속에서 생긴 생각이기때문에 진짜케인이 자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죠. 동명의 케인들이 죽은것이나, 일기장에서 벌어지는 사건 모두가 망상입니다.

일종의 이중인격정도로 생각하시면 편하고, 혹시 소스코드를 보셨다면 마지막에 주인공의 세계가 다시 펼쳐지는데 여기서 화자도 다시 화자의 세계가 펼쳐지게됩니다.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았던 케인처럼 화자 역시 불행한 삶 끝에 결국 뇌내망상을 할지도 모르죠. 진짜 케인도 현실의 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죠.


글쓴입장에서 직접 글을 설명하는게 이미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는걸 반증하는 셈이지만, 제 미약한 필력을 인정하고 이의나 의견을 받아 다음 수정때 보완하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피지알에 올려보았습니다! 혹시 비평이나 의견이 있으시면, 주저말고 달아주세요!

다음에는 내용이해가 쉽도록 수정하겠습니다~
반반쓰
14/12/03 11:13
수정 아이콘
제 이해력이 문제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크크;
아무튼 이제 이해가 되네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ilo움움
14/12/03 09:29
수정 아이콘
마지막문단 케빈->케인인듯..
이시코기
14/12/03 10:42
수정 아이콘
네 감사합니다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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