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동아리 활동을 하던 작년 가을이었다. 그녀는 조그마한 얼굴에 청순한 외모, 어깨정도 오는 머리길이에 항상 웃는 인상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동아리에 예쁜 사람이 하나 더 생겼구나 싶었다. 하지만 점점 그녀와 가까워질 수록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같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점 때문에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같이 기숙사로 돌아간다던지 혹은 기숙사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 등 그녀와 시간을 보낼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뭔가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고 더불어 항상 웃는 인상은 나에게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그녀의 매력에 퐁당 빠지게 된 나는 어느새 그녀를 짝사랑 하고 있었다.
이후 나는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여러가지 작업 아닌 작업을 시작했다.
첫번째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동아리 내 소모임을 만들었다. 동아리 뒷풀이가 끝나고 심야영화를 본 날이 있었다. 평소 영화 보는 걸 좋아하지만 같이 볼 사람도 없고 기회도 없으니 이참에 심야영화 소모임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왔고 나와 그녀는 곧장 카톡방을 만듦과 동시에 심야영화 소모임을 만들었다. 이 소모임을 통해서 나는 부담없이 그녀와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더 친밀한 관계를 쌓게 되었다.
두번째로는 그녀에 대해 모든걸 파악하기 시작했다. 손자병법이 말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나는 그녀의 대학교 강의 시간표를 외웠다. 이를 통해 그녀가 언제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지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시간이 되면 그녀에게 연락해 같이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이러다보니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나는 그녀에 대해서 모르는게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녀의 사사로운 고민부터 시작해서 시작해서 그녀의 카드비밀번호까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그녀와 대화를 할 때면 항상 이야깃거리는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이 그녀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그녀가 가는 곳을 무작정 따라나서는 것이었다. 그녀가 광화문으로 어떤 강연을 들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날 일이 있었지만 쿨하게 제끼고 나는 그녀를 따라 나섰다. 또한 그녀는 요가 학원을 다녔는데 요가 학원을 가는 길에는 토스트 가게가 있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그녀가 요가 학원을 간다고 하면 나는 토스트가 먹고 싶다며 그녀와 함께 가곤 했다.
이런 작업 아닌 작업들 속에서 나는 동아리 내 누구보다도 그녀와 보낸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일부러 소모임 단톡방에서 말하는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카카오톡을 보냈다. 아는 형에게서 뮤지컬 표를 구해서 같이 보러가기도 했다. 항상 동아리 뒷풀이때면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 내 입장에서는 나름의 친구 그 이상에게 보이는 관심표현이었지만 그녀와 나의 사이는 친한 누나동생 그 이상으로 진전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애매한 시간들이 흐르는 가운데 어느새 2학기 기말고사가 다가오는 시점이 되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이도저도 아니게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찰나에 나는 그녀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녀에게 할 말이 있다고 카카오톡을 보냈다. 하지만 그 날 그녀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내가 고백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서로 어색해지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그녀가 먼저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어제 할 말 있다면서 직접 보고 말해야한다면 나오라고 말이다. 나는 그 자리로 나갔다. 그 자리에서 너무 횡설수설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내 마지막 말은 나는 너를 좋아하고 사귀고 싶다였다. 그렇다. 나는 고백을 했다. 그리고 나는 거절당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거절당할 것 같긴 했다. 그녀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는 나이기에 그녀의 거절 이유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내가 군입대를 3개월 앞두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내년에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있기 때문에 연애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는 점 등이 주된 이유였다. 이런 이유들을 제치고 연애를 할 만큼 나는 그녀에게 매력적인 남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거절당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왜 고백을 했냐고 나에게 되묻는다면 그것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하고 싶다. 지금껏 제대로 된 고백을 한 번도 해본적 없는 나로서는 항상 후회의 연속이었다. 그 후회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용기를 내 본 것이다. 물론 누군가를 이렇게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것이 처음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거절을 당하고 그녀와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2학기는 끝이 났고 내 짝사랑도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대에 입대하고 뜨문뜨문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그녀는 내 연락이 달갑지 않은 듯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녀와의 연락을 끊었다.
군대에 입대한지도 어느덧 9개월이 지나가지만 아직도 그녀 생각이 많이 나긴 한다.
그녀에 대한 기억 중 엉뚱하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그녀가 숫자로 그녀의 이름을 썼던 일이다. 뭐 수학을 잘하면 자기 이름을 숫자로 쓸 수 있어야 한다더나? 참 그녀답다라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262라는 숫자로 열심히 이름을 적는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귀여워보였었다.
아직도 가끔씩 수첩에 262라는 숫자로 그녀의 이름을 끄적여보곤 한다.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한번 쯤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다. 지금 나는 그녀 기억 속 어디쯤에 있는지 말이다. 아직도 한번쯤은 내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저 기억 너머로 묻혀버린 것인지. 아직도 그녀는 내 기억 속 곳곳에 있다는걸 알고는 있는지 말이다. 262야. 알고 있니? 나는 아직도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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