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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1/09 09:43:57
Name 王天君
Subject [일반] 대한민국에서 가장 쿨한 남자를 만나다

이제는 공식 브금이 되어버린 Careless Whisper입니다. 가능하면 틀고 보시기를....

남성의 섹시함은 여성의 섹시함보다 정의를 내리기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 (안타깝게도) 어느 정도 보기 좋고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신체적 조건이 거의 필수적으로 결부되는 반면, 남성의 경우 자상함, 능력, 언변, 자신감 등 추상적인 부분들이 평가 요소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남자가 남자의 섹시함을 따지는 경우는 더 복잡해집니다. 같은 남자끼리 매력이니 뭐니 따지는 게 이상할 뿐더러-동성이라도 미를 인정하고 감상하는 데 익숙한 여성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고 할까요 - 거기에는 잠재적 경쟁자 혹은 자신을 능가하는 자에게 관대해지기 어렵다는 공정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그런고로 어지간한 유명인이나 방송인은 죄다 섹시한 척 하는 놈들 아니면 지가 섹시한 줄 아는 놈들로 보입니다. 음, 저건 나도 인정. 하고 눈 감아줄만한 사람이 흔치 않지요.

그렇지만 그런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이 죄스러워지는 분이 딱 한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성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건 아닙니다. 이 분의 경우 그가 풍기는 그 아우라는 인정하냐 마느냐 하는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같은 남자마저에게도 강력하게 어필하는, 혹은 성별을 뛰어넘어 보는 이를 동요시키는 무언가가 있죠.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면 남자가 느끼는 것은 딱 두가지 감정입니다. 동경 혹은 패배감으로 압축되지요. (대부분은 요 두가지가 섞이지만요)

저번 주 금요일 저희 학교에 무려 이 분께서 특강을 오셨습니다. 저희 학교 축제에 어떤 여자 연예인이 섭외되어도 콧방귀도 안뀌었던 저지만, 괜시리 설레더군요. 대한민국 언론의 자존심, 언론을 공부하는 모든 이의 살아있는 우상, 서태지와 일기토를 벌일 수 있는 절대동안, 인텔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 이대팔 가르마의 모범교재, 신에게 미소를 헌납하고 쿨함을 갈취한 남자….. 이번 주는 나름 바쁜 한 주였지만 금요일 공개 강연 시간이야말로 저한테는 이 한 주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허구헌날 영화 보러 갈 때도 지각을 해대는 제가 무려 삼십분을 일찍 갔으니 뭐 말 다했죠. 빠르지도 않았지만 늦지도 않았다며 안심하고 들어갔는데 이미 다 매진된 로얄석을 보며 저같은 피라미는 감히 명함도 못내밀 숭배자들이 꽤나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마침내 그 분이 강연장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무대 위에 오를 때는 열광적인 박수 소리가 이어지더군요. 이런 환호에 어떻게 저렇게 미소 하나를 흘리지 않을까 하고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강연의 내용이나 그 곳에서 찍은 사진은 올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듭해서 비공개를 당부하셨기 때문이죠. 학교의 명예에 먹칠을 할 순 없으니 제가 이미지로 상상만 해왔던 그 분의 멋짐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만 말씀을 좀 드리자면요.

일단 제가 가장 뚜렷하게 느꼈던 부분은 손석희씨가 대단히 단호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어떤 내용을 말 하든 그에 대해 확실히 이해를 하고 있고, 자신의 언행에 일관된 규칙이 있으며 그 규칙을 어기는 것은 어떤 것이든 양보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보였습니다. 보통 ‘…. 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어미는 현실을 타개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 부족을 측정할 수 없는 헌신이나 보장할 수 없는 미래로 에둘러 말할 때 쓰곤 합니다만, 손석희씨의 경우는 정 반대로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하고 있는 어떤 오해나 불신은 절대 아니라는 확언을 조금 더 완곡하게 표현할 때 쓰시더군요. 이것은 이렇다, 저것은 아니다, 하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주셨습니다. 심지어 껄끄러울 수 있는 질문에 대해 답을 아낄 때에도 구체적으로 이런 말은 못하지만 그 속사정을 이렇다는 걸 충분히 알겠구나 하고 의중이 묻어나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학생들과의 질의 응답시간에 이런 부분이 드러났는데,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그 소스가 어떤 부분인지 되짚어주며 섬뜩하리만큼 날카롭게 짚어주기도 하셨구요. 아마 그가 잘 웃지 않는 부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는 웃는 순간의 흐트러짐이 편하지 않은 걸 겁니다. 자질구레한 미소로 환심을 사고 호감을 거래하는 대신,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진실만을, 진실되게 다루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얼굴에 그렇게 나타나는게 아닐까 합니다.

두번째로 느낀 것은, 손석희씨는 자신만의 미학을 삶에서 관철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짧게 말하면 폼생폼사가 되겠고 좀 있어보이게 쓰면 신념과 지조라고 할 수 있겠죠. 이전까지는 손석희씨에게 방송, 혹은 뉴스밖에 모르는 외곬수의 인상을 받았는데, 실제로 접해보니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더군요. 그 무엇이건 자신의 취향이 존재하고, 또 그 취향에 소홀하지 않으며 지금 하고 있는 일 역시도 야망이나 열정보다는 그 취향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난 이런 게 좋다, 난 이런 게 싫다 이런 부분을 음식이나 영화에 한정짓지 않고 자기 삶 전체에, 그리고 그걸 세상 바깥에까지 적용시키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과 명성과 무관하게 자신의 가치관을 오랫동안 지켜오면 그것이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지표이며 하나의 명예가 되는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이런 것이 물질적 성공보다 우리들이 더 오래토록 쫓아야 할 목표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손석희씨 역시도 하루하루를 싸워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뭔가 척척, 딱딱 하고 쳐내며 잘라낼 것 같지만 그런 선택을 위해서는 그 역시도 많은 사람과 함께 고민하고 자신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에서 동질감 같은 걸 얻었어요. 이 분 역시도 자신이 하는 일 그리고 살아가는 게 절대 쉽지 않으며, 그 부분에서 오는 피로와 염증과도 매일 씨름하는 건 우리와 똑같다는 걸 말이죠. 손석희씨의 특별함은 그가 타고난 것보다는 그가 놓지 않고자 애를 쓰는 시간에서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무언가를 품고 살아오며 이를 가슴에 붙들고 사는 사람에게는 그 투쟁의 과정이 하나의 목적이 되고 결과가 된다는 걸 느꼈어요.

그는 아주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찬란함을 뽐내는 사람들, 또 늙지 않음을 증명하려 애쓰는 사람들은 많지만, 연륜의 깊이와 인생의 무게를 주름살 이외의 다른 것으로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지요. 그의 강연은 막연한 동경을 구체적인 존경의 확신으로 바꿔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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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love
14/11/09 09:46
수정 아이콘
비공개라니 슬프네요 ㅠ
王天君
14/11/09 09:50
수정 아이콘
그렇게까지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그냥 괜한 기삿거리를 던져주고 싶지 않으셨던 모양이에요
마이스타일
14/11/09 12:58
수정 아이콘
우리 나라에서 몇 안되는 중년의 지적인 섹시함을 보여주는 분들 중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승식
14/11/09 19:38
수정 아이콘
뇌가 섹시한 남자라고 할때는 이런 분을 두고 하는 말이죠.
허지웅이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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