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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0/31 23:59:36
Name Tigris
Subject [일반] 유랑담 약록 #13 / 120614木 _ 히라이즈미의 빈 터















 눈뜨니 새소리가 들렸다. 텐트를 열고 나가자 샛노란 햇살조각이 나무그늘 사이에 내려앉아 있었다. 공기가 상쾌했다. 호숫가라면 으레 풍겨오는 고인 물의 냄새도 없었다. 세면장을 향해 걸으며 어제 보았던, 출렁이던 타자와 호의 물결을 떠올렸다. 밑도 끝도 없이 '부풀어오르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런 게 음기라는 것일까. 걸음을 돌려 화장실에 먼저 들렀다.

 텐트를 접어 의자로 만들었다. 느긋하게 걸터앉아 하나 남겨놓은 삼각김밥을 씹었다. 밥맛이 달았다. 잠을 잘 잤더니 몸에서 기력이 느껴졌다. 오늘은 멀리까지 갈 듯했다.








 짐을 정리해 주차장으로 왔다. (이곳은 오토캠프장이 아니어서 캠프장소와 주차공간이 별개다.) 이륜차에 텐트를 싣고 그 위에 짐을 하나씩 쌓았다. 주차장의 반대쪽 구석에는 승합차의 문을 활짝 열어둔 채 캠핑도구를 펼쳐 아침식사를 하는 중년 부부가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쪽에서 먼저 싱글벙글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밝게 인사를 했다. 여행 다니는 사람들끼리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는 것은 뭔가 가상의 이야기, 이를테면 포켓몬스터의 세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가나 여행에 관한 보편적 인식의 차이인 듯도 싶었다.

 옆 자리에는 어제의 노란 BMW가 주차되어 있었다. 짐 적재를 마친 후 손을 씻고 돌아왔더니 BMW의 오너 여성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지도책을 넘겨보던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니이가타 넘버군요. 어디로 가십니까?

 - 일단은 모리오카로 가요.

 - 그렇군요. 지도를 갖고 계셔서 물어보는 건데, 혹시 여기서 모리오카 사이에 있는 것이 오우 산맥(奥羽山脈) 맞습니까?

 - 잠시만요. 한 번 볼게요.


 그녀는 탱크백에 넣던 지도책을 다시 펼쳐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오우 산맥은 일본 열도를 통틀어 가장 큰 산맥으로서, 혼슈의 아오모리 현에서 토치기 현(栃木県)까지 500km 가량 이어져 있다. 산들의 해발은 천 내지 이천 미터에 준하며 가장 높은 곳은 이와테 현(岩手県)의 이와테 산(해발 2,038 미터)이다. 이 산맥을 기준으로 동서의 기후가 각각 다른 바다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네 태백산맥과 비슷한 셈이다.


 - 맞네요. 오우 산맥의 일부에요.

 - 그렇군요. 그럼 그곳을 넘어가면 이와테 현이겠군요.

 - 그럴 거예요.


 우리는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으며, 홋카이도에서부터 남하하는 중이라 했다. 그녀는 자신도 예전에는 250cc를 탔으며, 이번이 BMW의 750cc로 바꾼 후 첫 장거리 여행이라고 했다.


 - 어떤가요? 역시 좋죠?

 - 확실히 편해요. 적응이 좀 필요했지만, 익숙해지니 장거리를 달려도 덜 지쳐서 좋아요.


 고배기량일수록 장거리 이동이 편해지는 것은 사륜차와 마찬가지이고, 운전하는데 체력을 덜 쓴다면 아무래도 여행에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만약 이번 여행을 무사히 끝내서 더욱 머나먼 곳으로 이륜차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그때는 BMW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십만 킬로미터 단위의 여정을 상상해보았더니 BMW라는 세 글자는 사치품보다 생존필수품에 가까운 뉘앙스로 느껴졌다.

 그녀가 사진을 찍어도 좋겠냐고 하기에 그러시라 하고, 이어서 나도 그녀의 사진을 찍었다.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인사를 서로 나눈 후, 그녀가 먼저 캠프장을 떠났다.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으려 했지만 3G 전파가 잡히지 않았다. 나는 빌려 본 지도의 기억을 되짚으며 캠프장을 떠났다. 어제 들린 주유소와 편의점을 지나 이쪽이려나 싶은 쪽으로 무작정 5분쯤 달렸더니 모리오카 방면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였다. 조금 더 지나자 신호대기하고 있는 대여섯 대의 차량 중에서 아까의 노란 BMW가 보였다. 나는 BMW의 대각선 뒤에 섰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앞뒤로 서서 46번 국도, 오우산맥을 넘어가는 언덕길을 주행했다. 가드레일에 녹이 슬고 차선 또한 닳아서 군데군데 끊어진 낡은 도로였지만 쓰레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고 포장이 패인 곳도 없었다. 한국의 산길에 비하면 그리 가파르진 않았지만 계속되는 오르막길에서 고배기량 페이스에 맞춰 달리니 갈수록 차가 버거워하는 게 느껴졌다. 그나마 단기통 특유의 민첩성 덕분에 스로틀을 쥐어짜면 어떻게든 뒤따를 수는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속도를 조금 늦춰주는 거 같기도 했다.

 산 중턱에서 날씨가 급변했다. 안개가 끼어서 먼 곳이 보이지 않았고 하늘도 어두워졌다. 타자와 호 근처는 딱 기분 좋을 정도만 시원했는데, 볕이 사라지자 바람 맞는 몸에 오한이 들었다. 허리를 가르는 도로가 놓여도 산은 산이구나, 싶었다.









 삽십 분 정도를 달리자 500미터 앞에 미치노에키(道の駅, 국도의 휴게소)가 있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앞서가던 BMW가 방향표시등으로 진입한다는 신호를 했다. 나도 뒤따랐다. 건물 중앙현관 옆에 이륜차 주차선이 따로 그어져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헬멧을 벗고 서로 마주보며 가볍게 웃었다.


 - 여기는 아키타 현인가요, 이와테 현인가요?

 - 이와테 현이에요. 아까 표지판이 있었어요.

 - 그렇군요. 따라오는데 급급해서 표지판도 못봤나봅니다.


 그녀는 뭔가 마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좋다, 내가 사겠다'고 말하며 자판기로 향했다. 그녀는 사양했지만 나는 기어코 자판기에 동전을 밀어넣었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사이다를 골랐고, 나는 따뜻한 것이 마시고 싶어 밀크 코코아를 골랐다.









 - 사실 저는 일본의 지리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오우 산맥은 어린 시절에 들어봤어요.

 - 그래요? 저는 잘 몰랐는데….

 - 실은 일본의 만화 덕분에 알고 있었던 겁니다. 혹시 '명견 실버'라고 들어보셨는지?

 - 아뇨, 잘 모르겠어요.

 - 강아지들이 막 필살기 같은 걸 써가며 불곰을 때려잡고 산의 평화를 되찾는 만화입니다. 80년대에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죠. 일본에서의 제목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명견 실버'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왔죠.

 - 아…. 어쩐지 들어본 것도 같은데.

 - 은색 털빛의 아키타 견이 주인공인데, 세퍼드나 토사견, 도베르만, 콜리 등 수많은 개들을 통솔해서 사람을 해친 불곰과 싸웁니다. 그 개들의 본거지이자 고향이 오우산맥이고, 그래서 주인공 일당을 '오우의 영웅들'이라고들 하거든요.

 - 어? 뭔가 알 거 같아요. 저도 어릴 때 본 거 같은데…. 이야, 신기한 이야기네요. 한국에서도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다니.

 - 사실 8, 90년대 한국의 어린이들은 흔히들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특촬물 같은 걸 보며 자랐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준 것도 많았구요. 그래서 딱히 오타쿠가 아니더라도 어린시절의 추억으로서 다들 일본 만화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징가, 울트라맨,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건 한국인들도 대부분 알고 있어요. 저는 그런 문화적인 공통분모가 양국 젊은이들 간의 우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들이 보아, 동방신기, 카라, 대장금을 통해 한국을 친숙하게 느끼는 것과 비슷하죠. 특히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가치관 면에서 공감대를 만들기도 하니까요.

 그녀는 내 일방적인 이야기를 비교적 호의적으로 들어주었다. 조금 말이 많나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평생동안 다시 볼 일 없는 여행자끼리 말 좀 길게하면 어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는 일상이 아닌 것이다.






 나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미치노에키를 가볍게 한 바퀴 둘러보았다. 미치노에키 시즈쿠이시 아넷코(道の駅雫石あねっこ)는 식당이나 지역물산관은 물론 온천까지 갖춘 곳이었다. 이런 곳의 온천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길을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차로 돌아와 다시 구글 네비게이터 앱을 켰다. 단번에 3G 전파가 잡혔다. 모리오카로 검색한 결과 중 아는 곳이 없어서 일단 모리오카 성(盛岡城)을 목적지로 잡았다. 도시명과 같은 이름의 성이라면 아마 도심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차를 몰아 미치노에키를 나섰다. 나서는 길에 어째선지 그녀가 머뭇거렸다. 순간, 내가 계속 따라오며 수작이라도 걸 거 같아 불편해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녀를 앞질러 달려갔다. 사이드미러로 따라오는 BMW가 비쳤다. 어쩌면 단지 저배기량을 배려하는 의미였던 걸지도 모른다. 달리던 도중 나는 잠깐 3G 전파를 잡아보려 갓길에 차를 대었고, 그녀는 그대로 달려갔다. 좋은 여행이 되길 바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지만 그녀가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도시와 도시 사이의 넓은 하늘은 어느 주유소를 기점으로 갑작스럽게 끝났다. 이윽고 오전 10시 30분 경에 모리오카 성에 도착했다. 성은 도심 한가운데에 있었다. 주차할 곳을 찾다가 관리사무소 건물 옆에 소형 트럭이 세워져있기에 그 부근에 차를 댔다.










 성을 걸었다. 모리오카 성은 일본의 여느 성과 마찬가지로 이미 공원화되어 '이와테 공원'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었다. 잘 다듬어진 잔디와 화강암 성벽이 눈에 띄었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 성은 1598년부터 1615년에 걸쳐 지어졌으며, 본디 고즈카타(不來方)였던 지명 또한 성의 완성과 함께 '번영하는 언덕'이라는 뜻의 모리오카(盛岡)로 바꾼 것이라 한다. 1871년의 폐번치현에 따라 폐성되었다가, 1890년 이 땅의 옛 번주였던 난부(南部) 가문에서 성을 매입하고, 1906년에는 이와테 현이 난부 가문으로부터 대여받아 성을 공원화하고, 1934년 난부 가문이 성을 모리오카 시에 기증하기에 이르기까지의 근대사는, 국가(일본) 안의 국가(난부 번국)라든지 성주라든지 번주라든지 하는 식의 개념이 낯선 한국인 유랑자에게 흥미롭게 읽혔다.














멍청이, 헛소리, 노망 등을 보케라고 하는데, 이 식물의 이름도 '보케'인 모양이다.
스마트폰의 일한사전을 찾아봤더니 아마도 산당화라는 식물인 듯 했다.









 성의 서쪽으로는 복잡한 도심이 보였다. 높은 건물들마다 빽빽하게 박혀 있는 창문이 갑갑해보였다. 성벽을 따라 조금 걸어서 북쪽 방향으로 가보니 너른 마당이 보였고, 그 너머로 전파탑 같은 것도 보였다. 이쪽은 조금 덜 복잡한 느낌이었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성의 동남쪽으로 가보았더니 성을 둘러싼 개천과 그 너머의 주택가, 그리고 초등학교가 보였다. 딱히 사람들이 보이는 건 아니었는데도 어쩐지 도시 풍경 사이사이에서 사람 사는 곳다운 온기가 느껴지는 한편, 무언가가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듯한 인상 또한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성을 한 바퀴 돌아 차로 돌아왔다. 다음 목적지를 고를 차례였다. 도심답게 3G 전파는 단숨에 잡혔다. 나는 스마트폰 검색창에 키보드를 띄운 채 잠시 생각을 했다.

 모리오카라면 역시 완코 소바, 모리오카 냉면, 자자멘(じゃじゃ麺)의 3대 면요리다. 완코 소바의 경우 종원업이 서서 끊임없이 면을 리필해주는 식의, 말하자면 먹는 방식이 특이한 메밀면이다. 모리오카 냉면은 1950년대에 함흥 출신의 한 재일교포가 모리오카에서 냉면집을 연 것이 시초라 하는데, 한국과 달리 전분과 밀로만 만든 하얀 면을 쓰는 게 특징이다. 자자면은 한국의 자장면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작장면에서 유래한 음식으로서, 우동에 가까운 굵은 면에 춘장소스를 사용한다.

 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로서는 세 가지 모두를 먹어보고 싶었다. 아침을 삼각김밥 하나로 대충 때운 것도 모리오카에서 여러 음식을 연달아 먹어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어디부터 가볼까 하는 생각의 한편으로 뚜렷한 거리낌이 들었다. 후쿠시마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맛을 즐기는' 기분에서 멀어지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이 정도로 뚜렷하지는 않았는데, 아마 식도락을 본격적으로 즐기려는 마음이 '정말 즐거울까'라는 회의를 부른 듯했다. 그런 내 자신이 우스웠다. 며칠 전 아오모리 쥬산코(十三湖)에서는 재첩 라멘을 맛있게 먹어놓고서 오늘은 왜 이런 불안감을 느끼는 것인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알량한 모순을 자각하는 일이 짜증스러워서,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음 목적지를 검색했다. 그러고보니 이 즈음에 세계문화유산이 있었던 거 같은 기억이 들었다. 찾아보니 과연 남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곳에 '히라이즈미'라는 곳이 있었다. 들어보지 못한 곳이었지만 일단 목적지로 찍었다.








 모리오카 시를 벗어날 즈음, 길 한쪽에 요시노야(덮밥체인)가 있기에 들어가서 부타동(돼지고기덮밥)을 곱배기로 시켜서 화내듯 퍼먹었다. 냉면 생각이 다시 떠올라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라고 모처럼 한국말을 했다. 체력전에 뛰어든 몸은 밥을 마다하지 않았다.












 히라이즈미 역에 도착할 무렵까지도 하늘은 계속 흐렸다. 역 앞 광장은 자그마한 로터리식 도로로 되어 있었고, 역을 중심으로 좌우측에는 식당, 선물가게, 관광안내소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역 정문의 왼쪽으로 돌아가니 주륜장이 있었다. 주차되어 있는 스쿠터들 옆에 차를 댔다.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고 있었더니 트위티(루니툰즈)가 그려진 하늘색 배낭을 맨 여학생 하나가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자신의 자전거를 꺼내갔다. 주륜장 전면에는 '주륜장에서 헤이세이 12년에 16대의 자전거가 도난당했습니다. 자물쇠는 이중으로 거시고, 정리정돈해서 사용해주세요. - 히라이즈미초 방범협회 · 히라이즈미 파출소'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주륜장 옆 그물담 너머로 소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을 설치하고 있는 현장이 보였다. 에너지 부족이 시급한 당면과제임에도 날림으로 해결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을 견지하는 것은 바람직해보였다.








 나는 히라이즈미 지역이 어떤 곳인지는커녕 그 이름조차 몰랐기 때문에, 관광안내소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며 정보를 모았다.

 히라이즈미(平泉)는 현재 이와테 현 남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헤이안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정식 명칭은 '히라이즈미 : 불국토(정토)를 나타낸 건축, 정원 및 고고학적 유적군(平泉 - 仏国土(浄土)を表す建築・庭園及び考古学的遺跡群  / Hiraizumi - Temples, Gardens and Archaeological Sites Representing the Buddhist Pure Land)'이다. 구체적으로는 츄손지(中尊寺), 모쓰지(毛越寺), 칸지자이오인(観自在王院) 터, 무료코인(無量光院) 터, 그리고 주손지와 모쓰지 사이의 킨케이산(金鶏山) 등 5개소가 세계문화유산의 등록ID를 부여받았다. 다이니치뇨라이(大日如來, 대일여래, 한국에서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라고도 한다)를 중심으로 한 당시 교토의 불교문화(밀교)와 달리, 이곳은 아미타뇨라이(阿弥陀如来, 아미타여래, 아미타불)와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말하자면 천태종 계의 유적이며, 특히 츄손지는 지금도 일본 천태종의 도호쿠 지역 대본산(大本山)이다.

 관광안내소 안의 지도를 살펴보니 유적들은 반경 3km 정도의 지역에 제각각 위치하고 있었다. 그나마 역에서 가까운 무료코인 터와 야나기노고쇼 유적터부터 걸어가보고, 이후 차를 몰아 다른 곳도 돌아보기로 했다.

 무료코인 터를 향해 주륜장을 지나 걸었다. 지극히 평범한 시골의 주택가가 이어졌다. 기찻길 바로 옆의 집이라니, 며칠 전 노숙할 때 기차 굉음에 기겁했던 일이 생각나 몸서리가 쳐졌다. 철길 건널목을 지나도 여전히 평범한 시골 주택가였다. 음식점, 잡화점, 찻집, 화과자점, 이불집,  전파상, 이발소 등이 보였다. 길을 잘못든 게 아닌가 싶었을 즈음, 갑작스럽게 너른 평지가 펼쳐졌다. 뭔가 커다한 쇼핑센터라도 지을 듯 보일만큼 아무 것도 없었다. 무언가 안내판이 있기에 다가갔다. 안내문의 가장 윗줄에 '특별사적 무료코인 터'라고 되어 있었다.








 일본어, 영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로 된 안내가 붙어 있었다.

 특별사적 무료코인 유적지

 무료코인은 3대 후지와라노 히데히라(藤原秀衡)가 건립하였다. 그 모델은 우지(宇治, 교토의 지명)의 뵤도인 호오도(平等院 鳳凰堂, 평등원 봉황당)이다. 호오도는 "극락을 의심한다면 우지 절을 참배하라"고 아이들에게까지 노래를 부르게 했었다. 무료코인 또한 가상의 극락 정토(淨土)이다. 양쪽 사원 모두 본존은 아미타여래상. 서쪽에 극락이 있고 그 터주가 아미타여래인 것이다. 춘분 · 추분 때쯤 무료코인 앞에 서면 서쪽에 있는 긴케이잔(金鶏山) 바로 위에 해가 진다. 지는 해 안에 아미타여래가 떠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히데히라가 마음에 그린 이 세상의 극락정토였던 것이다.


 어법이 다소 어색했지만(호오도는 인명이 아니라 건축물의 이름이다.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 아니라 노래로 불렸던 것.) 뜻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안내판 너머로 펼쳐진 아무 것도, 펜스도 무엇도 없이 잔디만 덮고 있던 터는 그야말로 '터'였다. 동서로 240미터, 남북으로 260미터에 달했다는 절은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그 빈 터만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달고 누워 있었다.








 그 비어있음은 나에게 약간의 충격과 묘한 인상을 남겼다. 한동안 서서 생각을 했다. 어째선지 Eagles의 『Sad Cafe』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열여섯 마디의 쓸쓸한 전주에서부터, 첫 가사로부터 연상되는 풍경과 과거형의 가사들…. 빈 터를 바라보는, 처량함도 쓸쓸함도 아닌 회백색의 감정에 나는 무슨 이름을 붙여야할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오래 전에 없어진 것을, 오래 전에 없어졌음을 증명해내어, 오래 전에 없어졌다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그곳을 텅 비워두거나, 혹은 모조품을 만들어서 응답 없는 교감을 하는 것. 그 또한 틀림없는 문명의 일면일 것이다.

 빈 터를 서성이는 동안 몇 사람인가의 방문자를 볼 수 있었다. 파란색 나이키 사이드백을 맨 청년은 사진기를 들고 소나무 아래의 '나카지마의 터'라 쓰인 말뚝 곁을 서성였고,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는 홀로 안내판 옆에서 쓸쓸한 표정으로 빈 터를 바라보았다. 내가 다음 목적지인 야나기노고쇼 유적지로 가기 위해 아까 왔던 길로 들어섰을 때, 카키색 점퍼를 맞춰 입은 사이좋은 모녀가 '길을 잘못든 거 아니야' , '아냐, 이쪽 맞을 거야'하는 말을 나누며 걸어왔다. 지역민인 듯한 장년 남성이 한쪽 구석에서 잔디를 깎다가 가끔 우리를 돌아보았다.








 야나기노고쇼(柳之御所) 유적은 히라이즈미 지역에서 발견된 대규모 건물터다. 10톤이 넘는 유물이 발굴되었으나 그 정확한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고 또한 정토사상과의 연관성이 불확실하여 세계문화유산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유적을 향해 북쪽으로 걸어가다보니 야나기노고쇼 자료관이 아무 것도 없을 듯한 도로변에 뜬금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건물 풍으로 어딘가 어설프게 만들어져 있는 자료관은 주변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인상이었다.








 자료관 입구에는 세계문화유산 인정서가 액자에 걸려 있었다. 인정서 상단에는 유네스코 마크와 세계문화유산 위원회의 마크가, 하단에는 2011년 6월 29일이라는 날짜, 그리고 Irina Bokova라는 필기체 서명이 보였다. 이어서 야나기노고쇼 유적을 설명하는 영상상영공간 있었고, 그 다음에는 유적이 발굴된 곳들을 표시한 디오라마와 각 건축물의 복원예상 미니어처가 배치되어 있었다. 아직 건물의 정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인지 미니어처에는 '동쪽 건물', '중앙 건물' 같은 식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곳의 안내판에는 외국어로 된 설명이 거의 없었다. 자국민만을 관객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은, 일본 내에서도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인 거 아닐까 싶었다.








 자료관의 규모가 작아서 금방 둘러볼 수 있었다. 전시된 유물은 주로 그릇이나 항아리, 실패 등의 생활용품이었고, 가끔 빗이었던 것의 부스러기 등에 '중요문화재'라는 안내가 달려 있었다.








 자료관을 나서서 길 건너에 있는 유적지로 걸어갔다. 길가의 들꽃이 좋았다.








 유적의 규모는 상당히 컸다. 곳곳에서 정비와 공원화가 진행중인 듯 보였다. 길 사이의 고랑은 냇물 혹은 해자가 있던 자리고, 그 위에 인위적으로 파인 듯한 자리는 다리가 놓였던 흔적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안내판에 붙은 발굴 당시의 사진을 보니 양쪽에 주혈이 셋씩 뚫려 있었다.








 본 유적은 헤이안 시대 말기(12세기)의 거주지 유적으로서, 역사서에 「히라이즈미관(平泉館)」이라 기재되어 있는 '오슈후지와라씨(奥州藤原氏 ; 헤이안 말기 지금의 일본동북지역을 지배하였던 세력)'의 옛 관청터이다. 수로 및 건물터 등의 유구(遺構)를 비롯하여 쿄토 및 해외와의 교류를 나타내는 각종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일본 북방영역에 전개되었던 정치 · 행정 상의 거점으로서 히라이즈미 지역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다.








헤이안 시대에도 이륜마차를 몰려면 2종 소형 면허가 필요했다는 증거…는 물론 아니다.
안내판에는 그냥 복도형 건물(廊下状の建物)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Toilet.









 저택, 마굿간, 우물 등의 터를 알리는 여남은 개의 안내판 외에는 별다른 복원물이 없었음에도 전체를 둘러보는데 30분 이상이 걸렸다. 도중에 작지 않은 연못도 있었는데, 수위가 겨우 두 뼘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연못 둘레도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정비가 덜 된 인상이었기에, 훗날에 다시 오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몰아 2km 정도를 이동했다. 츄손지(中尊寺) 아래에는 공영주차장이 있었다. 노년의 직원이 손을 저어 주차장 입구 옆 공간으로 유도했다. 이륜차용 차선이 따로 없었지만 두 대의 이륜차가 이미 대어져 있었다. 한 대는 미들급의 투어러였고, 다른 한 대는 약간 개조된 듯한 혼다 FTR이었다. FTR의 시트 뒤에는 플라스틱 박스가 고정되어 있고 그것을 그물망이 덮고 있었다. 일본 이륜차 여행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내가 주차공간 옆의 안내판을 살피는 동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걸어와서 FTR을 타고 갔다. 차를 돌려 나가는 뒷모습에서 군마(群馬) 번호판이 보였다. 나는 언덕을 올라 츄손지로 들어섰다.








 츄손지를 오르내리는 언덕의 이름은 츠키미자카(月見坂, 우리말로 하면 달맞이 언덕)라 했다. 이곳의 삼나무들은 에도 시대에 다테 가에서 심었다고 하니 수령이 족히 300년은 된 셈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츄손지'는 본산인 츄손지(절)를 위시한 17개의 지원(支院)을 모두 포함한 이 산 전체를 이르는 말이다. 본당까지 이르는 동안에도 다섯 곳의 지원이 보였다.






















 본당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이 절의 실질적인 창건자는 오슈 후지와라 씨의 초대 당주이자 히라이즈미의 건립자였던 후지와라노 기요하라(藤原淸衡)다. 헤이안 시대 후기였던 11세기는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였고, 후지와라노 기요하라 역시 전쟁으로 여러 가족을 잃었다. 그는 적이든 아군이든 상관없이 전쟁에서 죽은 자라면 모두 그 혼이 극락정토로 인도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이곳 츄손지를 세웠다. 12세기 말에는 선방(승려가 기거하는 방)이 300개소에 달랬다고 하나 1337년의 화재로 츄손지의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이 본당 역시 1909년에야 재건된 것이라 한다.

 본당의 좌측에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로 된 안내판이 있었다.



 1909년(메이지 시대)에 재건된 본당은 주손지의 중심 도량이다. 후지와라씨의 기일, 고승의 기일, 선조 공양, 평화 기원 등의 법요가 여기서 근수된다. 또 사경 · 좌선의 수행 도량이기도 하다.

 본존은 아미타여래이며 본존의 양쪽에는 「불멸의 법등」을 호지하고 있다. 이것은 총본산 히에이잔 엔랴쿠지(比叡山延暦寺)에서 분등된 것이다.


 '불멸의 법등'은 일본 천태종의 종조인 사이초(最澄, 767~822)가 점화한 이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불멸이라는 거창한 단어도 충분히 납득될 만하다. 반백년쯤 살다갈 내가 비웃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아미타불이 내려다보는 위패에는 동일본대진재 물고자 영위(東日本大震災物故者靈位)라 쓰여 있었다. 물고는 작고, 사거 등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나는 영성 없는 세속인인지라 무엇에게도 무엇도 빌지 않기에 불상에도 손을 모으지 않았다. 다만,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던 죽음으로 돌연하게 떠밀린 망자들이 저 무량광불을 감싼 어둠처럼 아늑해지기를 침묵으로 바랐다.








 본당의 측면에는 에마 걸이가 있었다. 아버지의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내용, 공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내용, 어머니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내용 등이 눈에 띄었다. 발랄한 만화풍 그림이 그려진 에마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경망한 짓인가 싶었지만, 그림 옆에 쓰인 '동북의 모두가 해피해지기를'이라는 문장을 곱씹어보니, 위로의 대상이나 방법도 사람에 따라 달리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 그림으로 위안을 느끼는 사람이 전혀 없을 거라고, 나는 장담할 수 없었다.







개중에는 낯선 언어로 쓰인 에마도 있었다.









 본당에서 콘지키도로 올라가는 길에도 여러 지원이 있었다.








 후토도(부동당)이라는 건물명답게 내부에는 부동명왕상이 서 있었다. 이곳에도 동일본대지진 피해자를 기리는 위패가 있었다.








 한 지원은 약사여래의 영역인 모양이었는데, 이곳의 약사여래는 안과 전문인 모양인지 여기저기에 눈의 상징이 보였다. 깃발에도 에반게리온의 아담을 연상시키는 눈 그림이, 운세뽑기에도 메(め, 눈目)라는 히라가나가, 각종 부적류를 파는 오두막의 천막에도 目 자를 변형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당 안에는 역시나 가부좌를 튼 약사여래 상이 있었는데, 다른 불상에 비해서 눈에 띄게 후덕해보였고 왼손에 종지 같은 것을 올려두고 있는 점이 독특했다.






















 콘지키도에 들어서면서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학교(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수학여행이라도 온 모양이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어느 매표소 앞이었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콘지키도 건물과 신코조(讃衡蔵)라는 보물관은 유료관람인 모양이었다. 표값은 어른 800엔, 고교생 500엔, 중학생 300엔, 소학생 200엔이었으며, 표 하나로 양쪽을 모두 들어가볼 수 있었다. 신코조는 크게 흥미가 가지 않았지만 콘지키도는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신코조에는 상당량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었지만 별다른 흥미가 동하지 않아서 대충 훑어보고 나왔다. 바로 콘지키도를 보러 갔다. 콘지키도는 아예 외건물을 한 겹 세우는 방식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초로의 방문자들이 무릎에 손을 짚어가며 콘지키도의 계단을 올랐고, 나도 몸가짐에 주의하며 그 뒤를 따랐다.

 외건물 안에서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콘지키도의 모습은 과연 금색당이라는 이름답게 호화로웠다. 언젠가 사진으로 봤던 쿄토 킨카쿠지(금각사)보다도 화려했다. 이제까지 츄손지를 걸으며 느꼈던 오래된 것들의 느슨함과는 확실히 대조되는 인상이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콘지키도 안에는 오슈 후지와라 가 1, 2, 3, 4대의 유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본디 금의 광채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들이 꿈꾼 서방정토는 아마도 이런 이미지였던 모양이다'라는 생각에 이르자 콘지키도의 빛깔이 아주 조금은 따스해 보이기도 했다. 시간을 들여서라도 그 따스한 인상을 사진에 담아보고 싶었으나 그곳은 촬영금지였다.








 콘지키도를 지나서도 길은 계속되었다. 동상이 하나 서 있었다. 말뚝에 써 있는 한자를 읽고나서야 그것이 유명한 하이쿠 시인 마츠오 바쇼(松尾 芭蕉, 1644~1694)임을 알았다. 동판에 양각된 안내문을 읽어보니 마츠오 바쇼의 가장 유명한 시작(詩作) 기행인 '오쿠노 호소미치(おくのほそ道, 오쿠로 가는 좁은 길)'의 최북단 반환점이 이곳 히라이즈미였던 모양이다.








 마츠오 바쇼는 46세였던 1689년, 에도(도쿄)를 출발한지 44일만인 5월 13일에 이곳 히라이즈미에 도달했다. 그는 500년 전 스러진 옛 영화의 빈 터를 보고 이러한 시를 남겼다.



  夏草や兵どもが夢の跡

  여름 나절 풀
  수많은 병사들이
  꿈꾸던 자취









 길은 묘한 건물이 있는 곳에서 끝났다. 좁은 면적에 비해 높이가 상당했고, 전면이 폐쇄되지도 않아서 그 용도가 짐작되지 않는 건물이었다. 마치 체육대회 천막처럼 열려 있어서, 한편으로는 무언가의 껍데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안내문을 읽어보니 본디 콘지키도를 감싸는 건물이었다고 한다.



 곤지키도 복당 (중요문화재)

 곤지키도를 풍우로부터 지키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1288년 가마쿠라 막부에 의해 곤지키도가 복구되었고 그 공사 내용을 적은 패에 의해 복당은 이때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 의해 곤지키도 건립(1124년) 약 오십 년 후 간소한 덮개 지붕이 만들어지고 증개축을 거쳐 무로마치 시대 중기(16세기)에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추측된다. 1963년(쇼와 38년)에 신복당(新覆堂)을 건축하면서 이 장소에 이축되었다.









 구 보호당 안의 나무기둥에는 강인한 필체로 범어 등이 적혀 있었다. 잡귀라든지 하는 것들이 실재한다면 기피할 듯 싶었다.








 이번에는 콘지키도 부근의 갈림길을 따라가보았다. 조금 걸어가니 붉은 도리이가 보였다. 햐쿠산진자(白山神社)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츄손지 안에 위치한 진자(신사)인 모양이다. 절 안의 신사라는 게 황당하게 느껴졌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일본인들은 누구도 기이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종교라는 게 꼭 배타적이고 오소독스해야 하는가, 하는 자문이 들었는데, 나는 식견이 부족해서인지 신험의 영역이라면 당연히 순수해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사실 진자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건 하얀 기둥에 검은 글씨로 새겨진 야외 노가쿠덴(能樂殿, 능악당)이라는 단어였다. 도리이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도리이에서 노가쿠덴까지는 대나무 숲이었다. 수많은 나무 뿌리들이 서로 얽혀서 길과 계단을 덮고 있었다.















 노가쿠도는 일본의 가면 가무극(歌舞劇)인 노(能)를 공연하는 무대다. 한국에는 만화 「꽃보다도 꽃처럼」을 통해서도 알려져 있다. 사실 나는 일본의 전통극을 특별히 좋아하진 않는지라 노의 음악적, 서사적,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신적 요소에도 대단한 흥미는 없다. 다만 무대 자체가 엄정히 규격화되어 전래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게 느낀다. 노가쿠도는 지면에서 1미터 정도 올라와있는 정사각의 주무대, 후방좌측의 꼭지점에서 뻗어있는 진출입로, 그리고 배경으로는 나무를 그려두고 되어 있으며, 그 규격이 어디서나 같다. 실내공연의 경우에도 규격대로의 노가쿠도를 실내에 지어서 공연한다. 노의 가면(能面, 노멘)은 눈구멍이 매우 작아서 시야가 극히 제한되기에, 배우들은 정형화된 무대의 공간을 몸으로 기억, 인지하며 긴 공연을 펼친다고 한다. 아름다움까지는 모르겠지만 독특하다. 현대공연예술을 볼 때마다 무대를 새롭게 쓰는 일에 대한 연출자의 강박을 느껴온 나로서는 이런 매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해서 언젠가 한 번은 노가쿠도를 살펴보고 싶었다.








 무대 옆의 안내판에는 이 노가쿠도가 1853년에 지어졌으며,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지금도 봄과 가을의 축제 때마다 츄손지의 승려들이 공연을 하러 이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노가쿠도의 옆에는 진자(신사)가 있었다. 목요일 오후라 그런지 인적은 거의 없었는데, 에마나 부적 등을 파는 무녀는 지루함에 매우 익숙한 듯 보였다.

 진자와 노가쿠도 사이의 구석에 묘한 것이 있었다. 띠 별로 구분된 초미니 사당으로 보였는데, 밧줄과 종이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정말 참배를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일본에도 띠 개념이 있던가?'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자축인묘…' 어쩌고 했던 그 애니메이션도 일본의 것이었다. 과연 이 열두 사당이 일본의 민중, 혹은 신토 신자에게 영험해보일지 어떨지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내가 실감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어째선지 용띠의 아이콘으로는 해마가 그려져있었다.








 노가쿠도 한쪽에는 수많은 인명이 봉기진(奉寄進)이라는 목판이 쓰여 있었다. 요컨대 후원자 리스트인 모양이다.















 돌아가는 길에 벤자이텐도(辯財天堂)라는 지원을 보았다. 칠복신의 하나인 변재천도 일단은 불교계의 신이지만, 본격적인 절에서 변재천을 모시는 당을 따로 둔 것은 특이하게 느껴졌다.







 벤자이텐도 안에는 어째 도교적 코드가 엿보이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츠키미자카를 걸어내려온 시각은 16시 20분 경이었다. 주차장에서 나는 모쓰지(毛越寺)에 갈 것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츄손지와 더불어 세계문화유산 히라이즈미를 구성하는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곳을 여기까지 와서 안 가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17시 정도에 웬만한 곳은 문을 닫을테니 헛걸음일 듯도 싶었다. 슬슬 잠자리도 고려해야 하는 시각이었다. 인연 되면 또 오겠지, 하며 나는 히라이즈미를 떠나 남쪽으로 달렸다. 밥도 굶고 달렸다.







츄손지 공영주차장의 화장실에는 이처럼 헤이안 시대 풍의 그림으로 성별을 표시하고 있었다.
괜찮은 센스라 생각했다.









 굶어도 좋았다. 오늘 안에 태평양이 보이는 곳까지 가고 싶었다.








 18시 50분 경 마츠시마(松島) 역에 도착했다. 아침에는 아키타 현에 있었는데, 낮동안 이와테 현을 통과해 미야기 현까지 도달한 것이다. 빨리 이동한다고 좋을 것도 없건만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잠시 마츠시마 역의 안팎을 구경하며 숨을 돌렸다.







 역에는 적게나마 사람들이 계속 오갔다. 가끔 열차가 도착하면 퇴근길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나와 흩어졌다. 마츠시마에 도착한 것을 눈에 띄게 기뻐하는 사람, 즉 여행자로 보이는 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어째 일본삼경으로 불리는 곳치고는 역이 참 한산하다 싶었는데, 역내의 안내지도를 가만보니 마츠시마의 핵심이 되는 곳은 이곳 마츠시마 역이 아닌, 부근의 마츠시마카이간 역(松島海岸駅, 마츠시마 해안 역)인 듯했다. 나는 다시 이륜차를 몰아 이동했다.








 마츠시마카이간 역은 한눈에도 관광지다운 분위기로 보였다. 역에 바로 닿아있는 버스터미널, 곳곳에 위치한 관광안내도, 차도와 인도의 모호한 구분, 그리고 지역민으로는 보이지 않는 행인들, 그리고 관광화된 곳 특유의 가벼움까지…. 잠시 주변을 살폈으나 관광안내소는 모두 닫혀있었다.19시 30분은 일본의 관광지에서 충분히 늦은 시각인 것이다. 역사 안에서 잠시 생각을 하던 나는 일찌감치 노숙할 곳을 찾기로 했다. 밤이 빨리 오는 곳은 새벽도 빨리 올 것이다.








 도중에 훼미리마트가 있기에 삼각김밥으로 대충 배를 채웠다. 노숙할 곳을 찾는 일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사실 관광지일수록 으슥한 곳이 많지 않은 편인데, 특히 이 동네는 관광적인 공간과 지역민의 주거지 사이의 구분이 희미한 듯했다. 두리번거리며 해안선을 달려보았지만 경찰이 지나가다 툭툭 건드려볼 것 같은 곳 밖에 없었다. 차라리 주택가 구석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며 저층 아파트 단지 주변을 배회하던 도중, 기묘한 건물이 보였다. 외장은 모텔 같기도 하고 레스토랑 같기도 하고 무도회장 같기도 하고 관광호텔 같기도 했지만, 불이 하나도 켜져 있지 않은데다 묘하게 폐가 같은 으스스함을 풍겼다. 부지의 출입을 막는 끈 같은 것은 없었고, 몇 대인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지만 오가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라면 하룻밤 정도는 지낼 수 있겠다 싶어서 나는, 주차장 한 쪽 구석에 텐트를 설치했다. 그리고 텐트를 가릴 수 있도록 나란하게 이륜차를 대고 커버를 씌웠다. 이만하면 순찰차가 지나가도 자재를 쌓아둔 정도로 보일 듯 싶었다. 씻을 방법도 없고 하여 물티슈로 대충 얼굴과 손발을 훔친 후 텐트에 드러누웠다. 경찰이든 지역주민이든 누군가 나타날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그때는 그때다.

 휴대전화를 열고 알람 설정창에 들어갔다. 일본삼경(日本三景)이라는 마츠시마까지 왔으니, 태평양에서 떠오르는 멋진 일출을 감상하고 싶었다. 좋은 자리를 찾으려면 최소 1시간 정도의 여유는 필요할 듯해서 오전 3시로 알람을 맞췄다. 휴대전화가 접히며 꼬르륵 하는 전자음을 냈고 나는 눈을 감았다.

(계속)








※ 지난 회차의 댓글을 통해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연재의 진척이 대단히 느려서 죄송합니다. 10월 한 달간은 피치못할 일신상의 사정이 있었으며, 아마 11월에도 경력면에서 중요한 일이 예정되어 있어서 연재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허나 늦더라도 연재는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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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01 00:57
수정 아이콘
으익. 에마에 큐어 해피라니 크크크.
프리큐어 시리즈에서 가장 포지티브한 캐릭터라서 에마에도 잘 어울립니다. 말그대로 해피니까요.

오슈 후지와라의 흥망성쇠를 다 보고 오셨군요.. 저도 어차피 겐페이 시대의 기록물로 알고 있었던 거지만.
다테가에서 심은 삼나무가 참 인상 깊군요. 역시 그시대에 목재는 군수물자....
14/11/02 03:29
수정 아이콘
아아, 저게 프리큐어군요. 한창 때의 세일러문과 맞먹는 인지도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저는 몰라봤지만 말씀 들어보니 적절한 캐릭터 선정이었군요.

일본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지라 히라이즈미에서 본 것이 헤이안에 대한 저의 첫 감촉이었는데요, 지금도 헤이안에 대한 저의 이미지는 아베노 세이메이, 후지와라노 사이, 그리고 콘지키도 정도네요.
14/11/01 01:59
수정 아이콘
항상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흐린 날씨가 빈터의 고즈넉함과 잘 어울리네요.
14/11/02 03:32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왜 저 평화로웠던 빈 터가 심란하게만 보였는지, 궁설거리며 써보긴 했습니다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산뜻하게 납득이 안되네요.
14/11/01 01:59
수정 아이콘
와 숲이 이쁘네요
14/11/02 03:41
수정 아이콘
깊으면서도 느슨한 것이 저도 참 좋았습니다.
웅청년
14/11/01 12:01
수정 아이콘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14/11/02 03:42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늦더라도 끝까지 쓰겠습니다.
연필깎이
14/12/20 14:10
수정 아이콘
긴 여행을 끝마치고 와서 이제야 읽네요.
잘 읽었습니다. 다시 여행하는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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