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상상만해도 끔찍한 닉네임을 가진 ......입니다.
본캐(?)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을 겪었고, 나중에 아는 사람들이 닉으로 검색해도 남을 것 같아서 고민했는데 마침 세종대왕님이 글을 쓰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__)
아래로 사진 따위는 없지만, 제 글 특성상 글만으로도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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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들보다 고통에 좀 강한 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고통을 안 느끼는 건 아닌데, 남들보다 둔감해서 더 잘 참는다고나 할까요?
아래는 그 이야기들, 그리고 맨 아래는 지난 월요일에 한 치질 수술 이야기입니다. 급하신 분은 아래로!!
#1.
고등학교 때 일입니다.
고2 9월?10월? 모의고사 때 '평균 점수 100점 이상 안 오르게 나왔으면 앞으로 공부만 하겠음' 하고 아무 생각없이 생각했다가
당연히 안 나왔는데 그날부로 모든 걸 접고 공부만 했습니다. 세상과 인연을 끊었죠.
중간에 폰이 고장나서 초콜릿폰을 쓰게 됐습니다.
"어? 그거 김태희가 광고하는 거잖아!"
"....김태희가 누구야?"
이정도로요...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아무리 일찍 등교를 해도 우리 반 교실만 불이 켜져있다고... 졸지에 괴담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고3 5월. 조금 있으면 중요한 모의고사가 있었을 겁니다.
일요일 저녁 앉아서 공부하던 저는 내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변을 보지 못해서, 저는 변비가 심하게 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변비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리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3교시 체육시간에 축구를 하고 돌아온 저는, 그 길로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저 점심시간에 병원 좀 다녀올게요. 몸이 이상해요."
"왜? 멀쩡해 보이는데. 크크"
"크크크 며칠째 속이 안좋아서요. 다녀올게요~"
"다녀와~"
그리고 저는 당일 수술하고 2주간 병원에 있었습니다.
병명은 게실염. 맹장이겠거니 하고 열었다가 이거라고 맹장 떼고 게실 떼고 뭐 그랬답니다.ㅠㅠ
문병 온 선생님을 놀렸습니다. "선생님 그때 멀쩡해보인다면서요? 크크크"
"진짜 멀쩡해보였는데...."
#2.
군대 이야기입니다.
저도 물집의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발에 땀이 많이 나서 끔찍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ㅠㅠ
육군 전투화는 지금까지 몇 가지 발전이 있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건 총 4가지입니다.
1번 : 뒷굽에 못을 때려박아 완전 딴딴한 전투화입니다. 이걸로 조인트 까인 옛날 군인분들께 묵념.
2번 : 저거보다 살짝 말랑말랑한, 일반적으로 우리가 전투화 하면 생각하는 그런 전투화입니다.
3번 : 트랙스타에서 첨 나온 국방무늬 전투화. 하지만 앞코가 제일 먼저 젖어서 겨울에 발가락부터
동상위험이.. 마지막으로 신어 본 겁니다ㅠㅠ
4번 : 3번의 문제를 개선한 새로 나온 전투화. 모양은 3번이 더 이쁘지만, 그래도 발가락은 살려야죠.
여기서 동기들은 훈련 때 2번을 받았는데, 저는 발이 작아 사이즈가 없어서 1번을 받게 되었습니다.
rotc과정을 하고 있던 저는 두 번의 훈련을 받고, 세 번째 방학에 훈련을 하러 갔습니다.
간부 교육에서는 조교 대신 훈육관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대위 아니면 소령이죠.
제가 간 교육대에서는 특전사 출신 소령 훈육관님이 계셨습니다...
"야 오늘 훈련에서 다친 사람, 환자 있나??"
"....."
"나한테 환자는 세 가지야. 피 1리터 이상 흘렸거나, 뼈가 부러졌거나, 장이 5센치 이상 튀어나왔거나. 나머진 환자 아냐."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 아침마다 완전군장 산행을 하는데 발 뒤꿈치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엄청 아팠습니다.
첫날 행군을 마치고 보니 발 뒤꿈치에 피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야 환자 나와~! 뭔데, 환자냐??"
"발 뒤꿈치가 이상합니다."
"전투화 가져와봐."
1번 전투화는 오래 신으면 뒷굽이 닳으면서 뒷굽에 때려박은 못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제 전투화는 그런 상태였고, 저는 그 상태로 행군을 했고(...)
"야.... 넌 이제 군장 빼고 걸어!"
뒤꿈치 깊숙하게 있던 피멍은, 훈련을 마치고 집에서 손톱깎기로 파내니까 피멍층(?)이 빠져나왔습니다.
지금 30분 서 있는데 거기가 아파요 ㅠ_ㅠ
#3
치아교정을 했습니다. 투명교정이라고, 플라스틱 장치를 끼는 겁니다.
처음에는 정말 아팠습니다. 이가 다 빠질 듯이 아파서 떡도 못 씹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장치를 착용하고....(도중에 #2 훈련을 했는데, 칫솔을 안 가져가서 2주 내내....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열 달 후.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네요. 몇 달만 더 착용하시면 되겠어요."
"응? 2년 걸린다면서요?"
간호사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그게 보통은 2년 걸림. 아프니까 착용을 잘 안 하고, 그래서 더 약하게 움직이고, 더 오래 걸림.
남자들은 귀찮아서 더 안하려는 경우도 많음.
하지만 너님은 엄청 치열하게 장치를 껴서 2년치 진도를 다 뽑았음. 남자 중 이런 경우는 너님이 처음.
그래서 입대 전에 깔끔하게 장치를 마무리하고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4
이번엔.. 고통에 대한 기억이긴 한데 부끄러운 기억입니다ㅠㅠ
이후로 정식 입대. 저는 여전히 몸을 사리지 않...긴 했으나 체력이 약한 관계로 중간만 했습니다ㅠㅠ
그리고 보병학교 교육 중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유격이 있었습니다.
동복유격장에는 '유격왕'이라 불리는 말년 중령님이 있었습니다.
동기들은 사단장 이상을 달고 있으나, 유격장이 좋아선지 뭔지 평생 유격장에 계신 것 같습니다.
유격 첫날. 누구나 하는 유격 체조. 죽을 것 같았지만 끝나고 제일 먼저 웃어서 동기들이 경악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밤..
"어? 소변 색깔이 왜 이래?"
피도 아니고 갈색의 소변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뭔가 머리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날 유격.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아마 유격체조를 하다 장애물 코스로 간 것 같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뭔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마구 들었습니다.
유격장 식당 입구에는 이순신 장군님이 인용해서 유명해진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평소에 정말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나는 죽는 쪽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의무대로 갔습니다. 하지만 의무대에서는 링거액을 꽂아 주고 다시 훈련장으로 투입시켰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유격 훈련. 안 가본 사람들이 유격이라 하면 떠올리는 바로 그 훈련들.
높은 곳에서 물에 떨어지기, 도하 등등..
환자들은 나오라고 해서 저는 가서 줄을 섰습니다. 창피했습니다.
그런데 유격왕이 등장했습니다.
"야, 저것들은 뭐야."
"예, 환자입니다."
"뭐???? 환자???? 야!!!! 저것들부터 물에 집어쳐넣어!!!"
깁스 한 친구가 외팔로 수상 11미터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희망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야, 거기 환자 중 하나는 여기 막타워 고리 좀 나눠줘."
졸지에 거기로 끌려갔고, 저는 끝날때까지 장애물 코스 지원조로 편성됐습니다.
아마 그 유격장에서 물에 안 들어간 사람은 근래 5년 중 저뿐일겁니다.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유격 2주차 (저희때부터 보병학교 유격이 2주가 ㅠㅠ)
도피 및 탈출이라고 쓰고 행군이라고 읽는 코스였습니다. 일주일 내내 조교들에게 쫓기며 걷지요.
몸이 조금 괜찮아졌고, 쪽팔림에 얼굴을 못 들던 저는 행군은 일단 가기로 했습니다. 가다 죽지 뭐 하는 생각으로요.
중간에 밤실산이라고 하는 무지막지한 산이 있습니다.
유격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 산만 넘으면 거의 다 한 거라는 말이 있어서,
꼭 넘고 싶긴 했지만.. 넘다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고민이 됐습니다.
하지만 밤실산 입구에서 고민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자 여기는 밤실산이다. 앰뷸런스는 산 너머에 있으니까 아프면 거기서 말해"
ㅠㅠ
어찌어찌 힘을 내서 잘 올라갔습니다. 오히려 잘 올라가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1, #2, #3을 경험한 제 뇌는 계속해서 저에게 위험 신호를 보냈습니다.
산을 걸으며 다시 한 번 이순신 장군님 생각이 났고, 산을 내려올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고자 해서 죽은 사람은 말을 못 하잖아... 살고자 해서 산 사람은 닥치고 있을 거고.'
뺑끼란 걸 모르고 시키는 대로 훈련 받던 저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번만큼은 장군님이 틀렸습니다!ㅠㅠ'
명예도 명예지만, 일단 살아야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려와서 군의관을 찾아갔습니다.
유격왕이 또 등장했습니다.
"쟤는 뭐야??"
"환자입니다."
"뭐 환자?? 여기 또랑에 집어넣어!!!"
"....어? 이 교육생 열이 39도입니다."
"...뭐? 야, 너 저기 가서 앉아있어."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죽을래? 앉아있어."
"예 알겠습니다!"
"야, 각 풀고 편하게 앉아 있어."
그렇게 제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격은 굴욕적으로 끝났습니다ㅠㅠ
그리고 자대를 신병교육대대로 갔습니다.
그리고 중대 게시판을 보니, 이런 공문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횡문근융해증 : 신병교육시 특히 주의할 것. 사망자 발생.]
자세한 건 여기를 참고하세요.
http://www.dongascience.com/sctech/view/633/st
제가 앓았던 증상과 100% 일치하는 것을 보고, 그 때 유격을 다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비슷한 증상이어도 멀쩡한 사람도 많고,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한번쯤 겪을 증상일 수도 있습니다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자대에 갈 무렵의 저는 엄청나게 겸손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덕분에 훈련병들의 고충을 잘 공감했었고, 못해도 격려를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하급에 가까운 보병학교 성적을 받고도, 오히려 인정받으며 전역할 수 있었나 봅니다.
대대 전체에서 대대장님부터 훈련병까지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전역했습니다.
(아 그 후임 4명 빼고요. 걔네들도 사실 제가 일방적으로 싫어했겠지만 흐흐)
그리고 자소서에 항상 이 내용을 쓰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 그런지 매번 광탈 ㅠㅠ
그래도 공무원연금공단 스펙초월소셜리쿠르팅에서 서류합격한 덕분에 자소서에 대한 자신감은 잃지 않고 있습니다 흐흐
#5. 치질 이야기.
아 드디어 본론입니다. 이놈의 스압...
올 초부터 변을 볼 때 엄청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같이 일하던 친구가 치질로 고생하고 또 수술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난 치질이 아닐거야.'라는 희망으로 버텼습니다.
그리고... 점점 항문이 막혀간다는 느낌과 함께 뭔가가 만져지고 있어서 결국 지난 주 토요일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어머니가 저번에 '수술하려고요.' 하고 찾아왔다가 '누구 맘대로요? 이건 수술 안 해도 되니까 약을 잘 바르세요.' 라고 한 곳이라고 해서
믿고 갔습니다. 그리고 검사를 받기 위해 누웠습니다.
쑤욱
"어엏!!!"
"자 괜찮아요 괜찮아~~"
처음엔 무슨 기구인가 했는데, 장 벽을 360도 훑는 손가락의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그 뒤로 멍...
"보호자 분은 그때 여기 와서 수술 안 해도 된다고 하셨죠?"
"네. 저는 그랬어요."
"그런데 아드님은 좀 달라요. 이런 경우에는 길게 볼 거 없고 수술을 해야 합니다."
"(멍......)"
"환자분? 괜찮아요?"
"(멍......)"
"어지러워요? 괜찮아요?"
"(멍....)아, 네 괜찮아요..."
생각보다 강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수술.
저는 치열 + 치핵이 있어서, 항문을 넓히고 치핵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답니다.
엎드려 누운 상태에서, 항문에 시계방향으로 마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따갑, 따갑, 따가우워ㅠ요 ㅠㅠ
곧 통증은 가라앉고, 싹둑, 서걱, 치지익...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뭐 타는 냄새가... 아 이게 그거 타는 냄새구나ㅠㅠ
그리고 회복실.
누워서 무통주사를 단 채 회복을 기다렸습니다.
무통주사가 혈액을 모두 돌기까지 1~2시간이 걸리는데, 그 동안에는 좀 아플 거랍니다.
많이 아프면 불러달라고 하고 간호사는 떠났습니다.
항문에 반시계방향으로 감촉이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엄청 민감한 상태네요.
아프긴 아픈데, 처음 아파보는 곳이어서 그런지 얼마나 아픈지 평가를 하기 애매한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참으라면 참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X 마려운 거랑 비슷한 딜레마가 고통으로 승화한 거라 할까요?
간호사 부르기도 안 부르기도 애매한 느낌. 그래서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왜 맞을 땐 시계방향인데 돌아오는 건 반시계방향이지?'
한참을 고민하다. 답을 찾았습니다.
맞을 때는 엎드려 있었고 지금은 누워 있으니까... 이 바보야.
이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응? 아픈건?)
그리고 당일 퇴원..
무통주사의 효능이 다 하기 전에 변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화장실을 갔습니다.
무서워서 움찔움찔 하긴 하는데 못 보겠음ㅠㅠ 좌욕만 하고 나왔습니다.
둘째날, 무통주사를 믿고 대변을 봤습니다.
힘을 줬습니다.
아프지 않습니다.
'후기들 읽어보니까 아직은 아플 때가 아닌가봐. 이제 나오면 아플거야.'
변이 빠져나옵니다.
아프지 않습니다.
'후기들 읽어보니까 싸고 난 뒤로 고통이 몰려온대. 이제 아플거야.'
화장실을 나왔습니다.
아프지 않습니다.
'뭐지?'
무통주사 짱짱맨!!을 외치고 둘째 날이 지났습니다.
셋째날, 무통주사를 뗐습니다.
두 시간 후 화장실에 갔습니다.
아프지 않습니다.
'무통주사 떼고도 한동안 아프지 않댔어. 이제 아플거야.'
열 시간 후 화장실에 갔습니다.
아프지 않습니다.
'뭐지?'
그리고 오늘 아침. 2시간 전.
병원에 갔습니다.
"예~쁘게 아물었네요~ 오늘은 연고 안 발라도 되겠다. 소독약만 발라 줄게~"
"저... 선생님? 제가 한 수술이 정확히 뭔가요?"
"치열하고 치핵이에요. 요 부분에 살이 다시 차올라야 낫는 겁니다~ 왜요?"
"아... 생각보다 안 아파서요. 치열만 수술한 줄 알았어요."
계산을 위해 카운터로 왔습니다.
"오늘부터는 약을 처방해 드리는데요. 약에 진통제도 있어요."
"진통제요?"
"네... 안 아파요?"
"음.. 생각보단 괜찮아요. 그래도 먹을게요~"
이렇게 수술한 지 72시간이 지났습니다.
찝찝하기도 하고 애매한 통증이 있긴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진 않네요. 변도 잘 보고 있습니다.
신기한 건, 예전보다 ....의 굵기가 엄청 얇아졌다는 겁니다.
항문을 넓혔다는데 왜 이럴까요?
아마 이전에는 아랫배에 힘을 주면 장 안에서는 응아가 압축되고 입구가 열리지 않다가 열리는 순간 한꺼번에 튀어나왔는데(이제동맥경화?)
이제는 압축되지 않고 원래대로 줄줄줄 나와서 그런가 봅니다(...)
그래도 앉아 있으면 불편하긴 합니다. 그래서 책상 위에 책상을 하나 더 얹고 서서 컴퓨터를 하고 있습니다. 흐흐
아무튼... 닉을 잠시 바꾸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꺼내 봤습니다.
어차피 개인정보 보면 다 나오지만, 적어도 제가 피지알을 소개해 준 지인들이 제 닉으로 검색해서 알아볼 순 없겠죠(...)
벌써 40분째 글을 쓰고 있네요;;
결론은, '치질 수술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 입니다.
대신 감안해야 할 건...
1. 열 달을 참기는 했지만 그래도 심각한 치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2. 앞에 소개드린 대로, 저는 통증에 대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는 편입니다.
편차는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인터넷에 있는 무시무시한 치질수술 후기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 글을 쓰고 오늘 밤부터 엉엉 울지도 모릅니다만.. 아무튼 약기운 없이 있는 지금은 생각보다 견딜 만 합니다!
변을 볼 때 피가 뚝뚝 떨어지시는 분들.
휴지로 닦아 보니 변은 없고 피만 묻어나오는 분들.
항문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으며 굵고 아름다운 변을 배출하시는 분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병원에 가 보셔요~!!
p.s.
아 닉은...
회복실을 나와 입원실에 잠시 누워있을 때,
차라리 치열일 때 알보칠을 바르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잡생각이 들어서 정했습니다.
절대 제 닉네임대로 따라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