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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0/05 17:47:39
Name 요정 칼괴기
Subject [일반] 1차 대전사(10)- 1차 엔 강 전투
https://ppt21.com/pb/pb.php?id=freedom&ss=on&sc=on&keyword=1%EC%B0%A8+%EB%8C%80%EC%A0%84%EC%82%AC

(1) 몰트케의 퇴장
1차 마른강 전투까지 전쟁 양상은 우리가 아는 1차 대전과 많이 달랐습니다. 병사들은 거의 참호를 파지 않거나 그렇게 강력한 참호를
마련하지 않고 싸웠습니다. 물론 개전 초에 비하면 1차 마른강 전투 정도 되면 도착하자 마자 열심히 참호를 파기 시작하는 빈도가
증가했지만 우리가 알듯이 엄청나게 빡빡하고 공략이 힘든 참호를 구성한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임시적으로 파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정도 수준?]

그리고 병력들도 마치 나폴레옹이나 보불 전쟁 시대처럼 움직였습니다. 타국에 비해 선진적인  야포 기술과 포병전술을 독일의 경우
보병은 그렇게 선진적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상대 야포 공격나 기관총 공격에 무방비하게 밀집해서 이동하거나 진격해 왔으며 만약 프랑스 군이 충분한 야포나 기관총을
가지고 있었다면 전쟁 초기 프랑스가 아닌 독일도 상당히 큰 피해를 입었을 터였습니다. 물론 당시 프랑스군은 보유 야포 수량이나
기관총 수량에서 그렇게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밀집 진형 공격을 서로 한다고 해도 독일은 큰 피해가 없었던 반면 프랑스군은
일방적으로 학살 당하는 경우가 많았을 뿐입니다. 더 줄여서 이야기 하면 독일이 겨우 한 부분에서 선진적이었기에 프랑스 상대로
이렇게 대승을 해오며 내려올 수 있었지 솔직히 당시 전쟁에 대한 마인드는 프랑스나 독일이나 였다고 봅니다.

다행히도 서로 덤앤더머 짓을 하는 바람에 몇십 킬로 밖에서 사격이 가능한 야포, 그리고 수백발을 일분에 뿌릴 수 있는 기관총,
수백만을 겨우 몇달 동안 무장시킬 수 있는 대량생산 대량 소비 체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 때까지 나폴레옹 전쟁 흉내를 낼 수 있었
던 거죠.

하지만 계속 전쟁이 전개되면서 상대에 대응하는 방법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나온 수가 바로 참호를 발전시큰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수를 먼저 사용한 건 이젠 수세에 몰린 독일군이었습니다.

일단 많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이긴 프랑스군은 확실히 프랑스 영토에서 독일군을 몰아낼 생각으로 1914년 9월 달부터 공세로
전환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독일 1,2군이 후퇴한 엔강으로 병력을 집중시기 시작하죠.
특히 이들의 눈길을 끈 곳은 슈멩 데 담(귀부인의 길)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독일 1군과 2군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소수의 병력만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곳을 점령할 수 있었으면 연합군은 독일 1~2군 사이를 파고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슈맹 데 담으로 퇴각중인 독일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속성이 중요했지만 사실 연합군은 이 당시에는 여력이 없었습니다. 피곤에 지치기는 연합군도
마찬가지었고 그들은 거의 1달간 후퇴와 전투, 그리고 전투와 진격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진격은 아주 더딜 수 밖에
없었고 강변 고지대였던 이지역은 이 동안 요새화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가장 유럽에서 공병대를 잘 갖춘 독일의 힘이었는데
총 36개 대대를 가져 프랑스의 26개 대대를 넘어서는 수치였습니다. 그리고 축성능력에서 이미 교리적인 면에서도 프랑스군보다
잘 교육받고 연구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차이가 8월 내내 프랑스군이 독일의 맹공에 밀렸는대 반해 9월에 독일군이 연합군에
수적 열세였는데도 밀리 않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독일군의 1군과 2군 사이 병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는데 독불 국경 지역의 프랑스 돌출부인 모뵈쥬를 9월 8일 탈취 하면서
전선을 정리했고 남는 1개 군단과 소수의 병력으로 방어 가능한 알자스-로렌에서 병력들을 빼내 이지역에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1차 엔 전투 이후 완전 편성 되어 독일 7군으로 불리게 됩니다.

[마른강 전투 이후 1차 엔 전투까지의 전선 변화]

이런 독일군의 방어전을 지휘했던 사람은 참모총장 몰트케가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몰트케는 1차 마른강 전투 패배 후 정신적인 문제로
경질이 결정되었고 다른 사내가 몰트케를 대신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에리히 폰 팔켄하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는데, 그는 전형적인 프로이센 융커 출신의 전형적인 독일 참모 시스템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춘 사내였습니다. 물론 우수하긴 했지만 명확한 전략적 목표를 전술적 성공에 취해 변경시켜 버리거나 베르덩 전투 같이 엄청 애매하기
이를 데 없는 전략적 목표를 부하들에게 제시하여 쓸데 없이 인명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한편 연합군은 사태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영국의 참모차장이자 프랑스 연락관 헨리 윌슨과 프랑스의 참모차장 베르틀로는
프랑스 북부에서 독일군을 몰아내는데 며칠이 걸릴지 내기 했는데 각각 3주와 1달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이 둘은 1군과 2군 사이에 충분한 틈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고 지금 연합군은 공격템포는 느리지 않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2) 1차 엔 강 전투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엔 강. 하지만 배가 다닐 정도로 유량이 안정된 어느 정도의 넓이를 가진 강이고, 건너편에 기관총 진지와
다수의 야포가 진치고 있는 상태에서는 꽤 넓은 강이 됩니다.]


9월 13일 연합군은 엔강을 건너 강변의 고지대 슈맹데담 고지를 공격합니다. 주축은 영국 대륙파견군 2개 군단과 프랑스 5군 그리고
프랑스 6군 일부가 참가 했습니다.



낙관적이었던 연합군의 공세는 하루만에서 모두 실패에 가깝게 끝났습니다. 좌측에서 슈맹 데 담을 공격하려 했던 프랑스 군도 정면에서
공격해 들어 갔던 영국 대륙파견군도 독일군의 격렬한 저항에 공세 의지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실패한 건 아니었습니다. 당일
유일하게 영국 1군단 병력들은 엔강을 독일군이 파괴하지 못한 다리를 통해 엔강을 도강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독일군이
커버하지 못한 1,2군 사이의 최후의 틈을 찌를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3일 늦게 급히 폰 츠벨 장군의 독일 7예비군 군단이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독불 국경에서 강행군 해온 상태로 1/4로 숫자가 줄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영국 1군단을 막지 못했지만 귀중한 시간을 얻었습니다. 영국군 대대들이 전선을 경우 돌파하는 순간에 이미 독일군은 역습
을 위한 충분한 병력을 갖추고 있었고 그대로 영국군을 덮쳤습니다.



영국군은 이 독일군의 역습을 힘겹게 막아 내고 결국 엔강 북쪽에 유일한 연합군 교두보를 지켜 냈지만 더 이상 재공격의 여력은 없었습니다.

이로써 독일 1군과 2군의 틈은 완전히 닫혔고 더 이상 여기를 노린다는 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독일군 역시 역습에 나서는 건 불가능해
졌고 결국 알프스부터 프랑스 중부까지 전선은 교착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한편 덧붙이면 14일 몰트케가 정식적으로 해임 당하고 팔켄하인이 새로운 독일 제국군 참모총장이 됩니다.

1차 엔강 전투는 14일 이후로도 계속됩니다. 이미 양군 장군들은 새로운 적의 빈틈을 찌려고 서로 상대방 서쪽 끝에서 여러번 우회 기동 승부를
한 소위[바다로의 경주] 하는 도중인데도 이 전투 자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투 자체의 양상은 서로 엔강 강변에 참호를 판 양군이
포병을 통해 포격전을 하거나 유일하게 엔강 북쪽에 위치한 영국군 진지를 확실히 강 북안에서 밀어내려는 독일군의 소규모 공격으로
이루어졌지만 전투 자체는 사상자만 늘렸을 뿐 효과는 없었습니다.

결국 28일 전투 종결 때까지 무익한 싸움은 계속되었고 앞으로 이 유역에서도 총 3차례의 전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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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고나
14/10/05 19:49
수정 아이콘
화려하면서도 바보같은 1차대전 초반기입니다.

슈맹 데 담으로 퇴각중인 독일군 사진은 전쟁 후반기 때 사진 아닌지요.
요정 칼괴기
14/10/05 21:23
수정 아이콘
악.... 생각해보면 이 때 독일군은 철모가 없었죠. 피켈 하우베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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