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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9/27 16:57:08
Name 요정 칼괴기
Subject [일반] 1차 대전사(8)- 1차 마른강 전투 전야
그전 이야기
https://ppt21.com/pb/pb.php?id=freedom&ss=on&sc=on&keyword=1%EC%B0%A8+%EB%8C%80%EC%A0%84%EC%82%AC

(1) 파리는 공격하지 않습니다.

클루크의 독일 1군 앞에서 풍전등화 같았던 파리. 그 파리를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당시 프랑스 정계의 현황이었습니다.
파리는 잘 요새화된 지역이었지만 이미 리에쥬 요새의 사례에 봤듯이 전적으로 요새에 의지하여 독일군을 막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스타 크래프트에 비견하면 광자포(포톤캐논)으로 도배해도 이는 전적으로 방어를 할 수 있는 게 아닌 타임 딜레이를 해주는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독일군이 공성전차와 같이 사거리가 긴 타격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군이 파리를 지키려면 모누리 장군이 이끄는 통칭 프랑스 6군이 파리 근교에서 독일 1군을 요격해야
했는데 프랑스 6군의 전력은 독일 1군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은 뻔한 것인지라, 정부 입장에서 파리를 전투로 파괴할 바에는
중립화 시키고 센느강 남쪽으로 정부를 옮겨 항전하자는 의견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파리 정계가 파리의 포기를 놓고 싸우고 있든 말든 독일군 수뇌부는 이미 파리 공격을 포기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슐리펜 계획으로 돌아가자면 원래 1군의 목표는 파리 서쪽을 스쳐 회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게
독일 1,2,3군 즉 벨기에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진격하는 우익병력이 프랑스-독일 국경을 방어하는 좌익병력에 비해
압도적인 수를 배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1군이 파리를 서쪽으로 우회하고 2군이 파리를 공격하며 3군이 파리 동쪽에서
프랑스-영국군을 쳐부실 정도의 병력이 확보 됩니다.

하지만 이 당시 독일의 서부전선 병력 특히 우익 병력은 이런 작전 실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줄어 들었습니다.
일단 몰트케 수정 때문에 좌익 병력이 1:2 정도로 기존 1:8~9수준보다 대폭 증가했습니다. 여기에 루프레히트가 프랑스 1,2군에게
대승해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프랑스 국경으로 역공하라고 몰트케는 명령했고 이 때문에 추가적인 증원 병력까지 부어주었습니다.

여기에 벨기에에 무려 1개 야전군 급 병력을 치안과 엔트워프 포위에 배치해 버렸고, 다시 추가 군단은 탄넨베르크 전투 때문에
동부전선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엄청 줄인 전선 폭에도 불구하고도 독일 1군과 2군의 간격은 너무 넓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선을 다시 줄일 필요가 있었고 이 때문에 파리의 프랑스 6군은 단지 1개 군단으로 견재하고 클루크의 1군은 상당히
동쪽으로 이동해서 진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동선에 파리는 빠져 있었습니다.




여기에 다시 프랑스 5군이 주도한 생캉탱-기즈 전투에서 뵐로브의 2군에 프랑스군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자 독일 1군과 2군 사이에
연합군이 침투하여 후방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판단 아래 더욱 독일군은 전선을 줄일 수 밖에 없었고 클루크는 더욱 자신의 군대를
남동쪽으로 이동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2) 두명의 참모총장

[1914년 프랑스 아프리카 식민병들]

프랑스의 조프르 참모총장은 이 당시 그게 맞든 틀리든 의욕적이고 명쾌하게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에게 찍힌 3군 사령관 루페이를 사라유로 갈았습니다. 루페이는 조프르를 통렬하게 비판하려 했지만 결국 물러났고
그후 사실상 그의 1차 대전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또한 5군 사령관 랑레자크 역시 1군단장 데스프레이를 갈아 버렸는데
이는 1군단장 시절 데스프레이가 보여준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리가 바뀌자 데스프레이는 고집불통의 공세지상
주의자가 되어 버렸고 이는 프랑스 군에게 안 좋은 일이었습니다.

이 와중 그가 한 판단 중 가장 뛰어난 판단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독불 국경에서 병력을 빼내 중요한 파리 인근으로 이동
시킨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적수 몰트케는 이런 판단을 전혀 하고 있지 못했다는 점에서 몰트게 보다 나은 판단이었습니다.
또한 파리 방어 작전을 무시한 것 역시 그의 판단력의 승리 였습니다. 그는 애초 파리를 작전 지역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중요한 지역은 파리와 독불 국경 사이의 지역이라고 판단했고 거기에 병력을 집중시켰으며 파리로 가는 병력을 최소한
시켰습니다. 이는 독일군의 판단을 꽤뚫었다기 보다는 현 상황에서 파리르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이지역을 확보하면 다시
한번 공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근심 중 가장 큰 건 유일하게 야전군 지휘관 중 자신의 부하가 아닌 인물과 그의 군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프렌치 경과 영국군이 그 대상이었는데 프렌치는 전편에서 말했듯이 이미 전쟁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비록 같은 육군원수이자
그의 진짜 상관 허버트 키치너 전쟁성 장관이 프랑스 군보다 일찍 후퇴하면 죽는다는 식으로 프랑스까지 쫓아 오는 바람에
덜 심해 졌지만 여전히 그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특히 클루크의 주 공격대상이 영국군이었기에 전투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던 그로써는 당시 죽을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군이 계속 후퇴한다면 당장 프랑스 6군과 5군 사이에 구멍이 생길 것이고 그럼 프랑스는 파멸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렌치는 결국 클루크의 공세에 마른 강을 건녔습니다.


[1개 포대가 1개 사단을 4시간동안 상대한 네리 전투, 이 전투 때문에 영국군은 무사히 마른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이포대 3명은
빅토리아 십자 훈장을 수여 받게 됩니다. ]


한편 조프르의 적수 몰트케는 이시기 약간 맛이 간 상태였습니다. 모든 전투에서 이기고 있었고 독일군은 승리 직전까지
가 있었지만 그 스스로는 슐리펜의 망령에 씌여 있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슐리펜 장군님
계획대로 안 하고 있는데 이러다가 실패하는 거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애초 현대를 사는 3자가 보았을 때 달성
가능성 0인 이 슐리펜 계획을 거의 성공직전까지 끌고 왔다는데에서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 마땅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과소평가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생캉탱-기즈 전투 같이 일단 패배하여 전멸당한 것으로 생각된
프랑스 군이 다시 반격해오는 사례가 계속 나오자 이런 두려움은 커져 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슐리펜의 지침은 다 무시하고 있었다는 건 또한 아이러니었습니다.

또한 그의 고민 중 하나는 앞서 말했던 독일 1,2군 간의 간격이었습니다. 전선을 줄이고 줄이는데도 계속해서 간격을
늘어 가고 있었는데 이는 계속된 강행군 때문에 독일군이 탈진 직전까지 가고 있었기 때문에 병력들이 계속 뒤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어나느 보급선 때문에 이런 강행군 속에 약탈 빼면 먹을게 없었습니다.

[한달 동안 거의 몇백킬로를 전투와 병행하며 적은 식량에도 걸어갔던 이 당시 독일군]

이는 영국, 프랑스군도 마찬가지었지만 그들은 최소 먹을 거라도 먹을 수 있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클루크나 뵐로브의 독일군은 계속 강행군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고민에도 몰트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클루크의 1군 진격 방향 역시 몰트케와 무관하게 클루크가
정한 것이었고 루프레히트는 독불 국경에서 몰트케와 무관하게 계속 전투를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승리가 가까이 온 상황에서
완전히 손을 놓아 버렸습니다.

(3) 마른강이냐 세느강이냐?

독일군이 계속 남하하면서 점차 파리에 주둔하고 있었던 6군은 독일군 좌측 측면을 공격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갔습니다.
이걸 눈치 챈 프랑스 파리 민정사령관 갈리아니 장군은 조프르에게 공격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 때 조프르 역시
반격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음을 느꼈지만 지금 현재 마른강에서 싸울 것인지 좀더 후퇴한 후 세느 강에서 반격하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천하의 조프르도 이시기 계속 고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반격에서 실패하면 프랑스는 패배 확정이었기 때문에 보다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선 그는 신임 5군 사령관 데스프레이를 불러 의향을 물었고 그는 공격 전환이 좋겠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다시 포슈에게
물었는데 포슈도 긍정적이었습니다.

[국경전투 당시 프랑스 1군단으로 큰 공을 세운 조프르가 가장 신임하던 데스프레이 장군, 하나 1918년 대반격에서 참패해버리는 바람에
결국 좌천, 그리스로 보내지고 거기에서 전쟁을 마칩니다.]


결국 마음을 굳힌 조프르는 프렌치 경을 호출합니다. 그에게 설명과 간청, 협박 까지 두루 사용하여 설득을 시도한 조프르는 프렌치에게
최후의 한마디를 날립니다.
[원수 각하, 영국의 명예가 걸려 있습니다!]
여기에 설득된 프렌치는 울면서 결국 영국군은 작전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다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결국 작전 시행은 이렇게
결정됩니다.

독일군 측면일 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의 파리의 모누리 장군이 지휘하는 프랑스 6군, 그리고 후퇴에도 전력이 계속 증강된 영국 대륙
파견군(BEF), 소심한 랑레자크에서 (고집쎄고 부하말은 개무시하지만) 용감한 지휘관으로 바뀐 5군, 그리고 포슈의 지휘력으로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는데 포슈 분견대(전투 후 9군)까지 총 4개 야전군이 독일 1,2 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전력적 우위를 바탕으로
하여 프랑스의 대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무모한 클루크도 약간 소심한 뵐로브도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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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현.
14/09/28 00:22
수정 아이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요새 2차대전사 다큐 보는데 리에쥬가 나오더군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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