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에는 85세의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는 이시카와 라는 사람의 단정한 글귀가 남았다.
그늘진 마루에 바람이 불었다. 몸에 찼던 6월의 열기는 노트를 읽는 동안 기분 좋게 식어갔다. 나는 그늘을 바라보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예찬』을 떠올렸다. '음예陰翳는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모습이다.' 인적커녕 풀벌레 소리조차 나지 않는 고요한 그늘에서 이끼마저 곱게 자란 마당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아취라는 단어가 조심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잠시 고요함을 즐기다가 방명록에 한국어로 '잘 보고 갑니다.'라고 썼다.
음식점도 있었다. 메밀국수와 우동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 듯했다. 안의 차림표를 줌렌즈로 들여다보니 우동치고는 비쌌다. 그러고보니 나는 우동이라는 음식을 맛있다고 느껴본 일이 없다. 이번 여정의 어딘가에서 맛있는 우동을 먹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우동가게의 외벽에는 낡은 전표책이 매달려 있었다. 일종의 장식품인 듯했다.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들춰봤더니 아마도 수십 년 전에 작성되었을 듯한 매출기록이 수많은 도장과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이시구로石黑라는 명패가 달린 저택에서는 지붕개보수가 한창이었다. 이곳은 담벼락에 '공개중'이라는 나무팻말과 더불어 일본어와 영어로 된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가쿠노다테에 현존하는 저택 중 가장 오래된 곳이며 당시 조정에서 공무를 역임하던 최상급의 무사가 살았으며, 고문서와 고서, 무기와 갑주, 지주의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어째 길에 거목이 많다 했더니, 이 지역의 나무는 천연기념물로 관리되는 모양이었다. 안내판에는 '국가 지정 천년기념물 - 가쿠노다테 수양 벚나무 162그루'라 되어 있었다. 1974년에 지정되었으니 이미 40년 가까이 관리되어 온 것이다. 이 정갈한 거리에 벚꽃이 한가득 흩날리는 모습은 꽤나 장관일 듯했다.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봄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택가가 끝났기에 나는 좌측으로 돌아서 걸었다. 아까 봤던 안내도대로라면 강이 나올 것이었다.
마을의 서쪽에는 히노키나이(檜木内)라는 강이 흘렀다. 이 강은 내가 아키타에서 타고 온 도로와 닮은 선을 그리며 수십 킬로미터를 흘러가 이윽고 아키타 시 남서쪽의 바다에 가닿을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강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하다. 언젠가부터 내게 강이라는 이미지는 복잡미묘하고 약간은 음험하면서 신비로우며 한편으로는 그리운 것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날씨가 좋은 탓에 사진은 쾌청한 톤으로 찍혔다.
언젠가 강물을 따르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금강이나 섬진강이 좋겠다.
마을 뒷편, 강에 가까운 쪽의 길로 걸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곳의 사람들도 각자의 번뇌를 끌어안고 사는지, 일본에서 스낵이라 부르는 종류의 술집들이 서너 건물에 모여 있었다. 그 중 신축 건물은 마을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은 듯 보였다. 복도로 걸어들어가 보았더니 한낮의 스낵 건물은 비어있는 것처럼 적막했다. 전기계량기 뒷쪽 그늘에 작은 거미가 집을 짓고 있었다.
馬라는 글자를 좌우로 뒤집어놓고 '호-스'라고 읽는 듯한 간판도 보았는데, 정확히 어떤 가게인지 알 수 없었다. 식당이거나 술집이거나, 어쩌면 작방이거나 할 것이다.
역으로 돌아왔다. 잠시 역 화장실에 들러 간단히 세수를 했다. 세면대 아래 콘센트에 '무단사용금지!! - 콘센트 무단사용은 범죄입니다.'라는 A4사이즈의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읽고보니 옳은 얘기인 듯 했다. 앞으로는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5번 도로에 올랐다. 가쿠노다테 마을을 벗어나자 곧 숲길이었다. 도로는 깨끗하게 잘 닦여있었고 차는 거의 없었다. 북쪽으로 10킬로미터 정도를 느긋하게 갔다. 날벌레도 없고 공기도 맑아서 헬멧의 바이저를 올린 채 달렸다. 어디선가 편백나무의 향기가 나는 듯했다.
우측으로 타자와 호(田沢湖) 방면이라는 갈림길이 보여서 따라갔다. 105번 도로보다는 조금 낡은 길이 지금까지보다 더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졌다. 슬슬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을 무렵 갑작스럽게 눈앞이 트이면서 호수가 나타났다.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 따르면 타자와 호는 지질상 칼데라 호수로 추측되며, 둘레는 약 20킬로미터고 면적은 약 25 제곱킬로미터이며 수면의 표고는 249미터다. 최대 깊이는 약 423미터로 일본에서 가장 깊고 세계에서는 열일곱째로 깊다. 전체가 현립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과거에는 홋카이도의 마슈 호(摩周湖 - 바이칼 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투명도가 높은 호수)를 능가하는 31미터의 투명도를 보였으나 발전소의 건설과 농업목적의 수량통제 등으로 인해 물이 산성화된 바람에 현재의 투명도는 4미터에 불과하다. 1972년부터 석회석을 사용한 중성화 작업이 진행되었고 1991년에부터는 산성수 중화처리 시설을 가동하고 있으나 효과는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금빛의
동상이 보이는 도로변에는 타츠코(辰子)
동상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일본어, 영어, 한국어, 간체중국어, 번체중국어 순으로 간략한 안내문이 나와 있었다. '다츠코 상 : 다자와코 호수의 상징인 전설 속의 미소녀 다츠코가 샤워를 마친 모습으로 살짝 수줍음을 머금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그런 소녀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작가 - 후나코시 야스타케 / 재질 - 청동 금박 옻칠 / 대좌 - 아프리카산 블랙스톤 / 완성 - 1968년 5월 12일'
"이
동상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 "난 전설같은 건 믿지 않아."
허나 이
동상에 얽힌 전설, 정확히는
동상이 아니라 이곳 타자와 호를 포함한 세 호수의 전설(三湖伝説)이 슬픈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치로 타로라는 젊은이가 남의 곤들매기를 먹고 33일간 심각한 갈증을 느끼며 앓아누웠다가 용이 되었다. 그는 토와다 산 정상에 호수를 만들어 거주지로 삼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호수가 토와다 호(十和田湖)다.
이후 어느 승려가 신탁을 받고 하치로 타로를 퇴치하기 위해 싸웠다. 7박 7일간 이어진 싸움은 승려의 승리로 끝났고, 패배한 하치로 타로는 강을 타고 다른 산으로 도망간다. 새로 거주할 호수를 만들러 헤매던 하치로타로는 지금의 아키타 현 아마세 강(天瀬川) 부근에서 겨우 호수로 만들만한 땅을 찾아내 큰 비를 내려 호수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곳이 하치로가타(八郎潟)이다.
한편 어느 마을에 타츠코라는 절세의 미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 날부터 언젠가 자신의 아름다움이 노쇠할 일을 마음 깊이 근심하게 되었다. 밤낮으로 고민하던 그녀에게 꿈에서 관음보살이 찾아와 영험한 샘물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샘물을 마신 타츠코는 지독한 갈증을 느꼈다. 계속해서 샘물을 마신 그녀는 이윽고 용이 되었고,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깨달은 그녀는 그 자리에 호수를 만들어 거주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타자와 호다.
이후 타츠코에게 이끌린 하치로 타로는 매년 겨울마다 타자와 호에 찾아왔고, 둘의 관계는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겨울, 과거 하치로 타로에게 싸움을 걸었던 승려가 타자와 호를 찾아왔다. 타츠코를 건 승려와의 싸움은 하치로 타로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매년 겨울마다 하치로 타로는 타자와 호에서 살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하치로가타는 점점 물이 메마르게 되었고 또한 타자와 호는 겨울이 되어도 얼지 않았다.
하치로가타의 대부분이 간척된 현대에는 하치로 타로가 일년 내내 타자와 호에 살고 있다는 전설이 덧붙었다.
이 이야기의 어디가 어떻게 슬픈 것인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호수가 얼지도 않을 정도로 뜨끈뜨끈하게 잘 산다는 이야기 아닌가. 뭐, 딱히 실제 촬영장소와는 상관없는 극중 설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결국, 이
동상에는 슬픈 전설이 없다.
타츠코 상 부근에는 자그마한 수상 사당이 있었다.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으나 분위기로 보아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근처 진자神社의 출장판매소 정도의 역할인 듯 보였다.
호수는 물결쳤다. 크고 맑은 담수가 출렁이는 풍경은 꽤 관능적이었다. 지금의 투명도만으로도 이런 느낌인데, 30미터 아래가 들여다보였다는 과거에는 제법 신비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 거칠고 투명한 관능이 이곳의 옛 사람들로 하여금 '두 용이 함께 산다'라는 상상을 하게했던 건지도 모른다.
부근에는 타자와 호 안내도가 세워져 있었다. 타츠코 상은 호수의 남서쪽에 있었고, 북쪽에는 신사가 있었으며, 북동쪽과 동쪽에는 각각 캠프장이 한 곳씩 있었다. 시계를 보니 16시 30분이었다. 오늘은 호수 주변을 돌다가 이곳의 캠프장에서 밤을 지내기로 했다. 나는 이륜차를 몰고 호수의 북쪽을 향해 갔다.
10분 정도 느긋하게 달려가니 수상 도리이가 보였다. 아마 신사 부근이었던 모양이다.
호수를 반주半周하다가 호수 동쪽의 35번 국도를 타고 잠시 호수에서 멀어졌다. 캠프장에 가기 전에 저녁거리를 사가는 편이 좋을 듯 싶었다.
이륜차의 연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신경쓰였다. e모바일 사의 포켓와이파이(한국의 '에그' 같은 통신장비)는 가쿠노다테를 조금 벗어났을 무렵 이미 권외 표시를 띄웠다. 전국토가 곧 무선통신망의 커버리지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여전히 업체마다 제각각 다른 커버리지를 갖고 있다. 후발주자인 e모바일의 경우 중소도시까지는 겨우 커버하지만 도시라 부를 수 없는 지역으로 가면 곧잘 끊어진다. 어차피 멋대로 흘러가는 여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 정보가 절실한 순간에는 불편하다.
인터넷으로 주유소를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인만큼 과연 내일 모리오카 시에 도달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데, 의외로 곧 나타난 작은 마을의 입구에 주유소가 있었다. 샤코탄 반도의 촌락에서 그랬듯이 이곳의 기름값도 터무니없이 비싼 건 아닌가 싶었는데, 의외로 대도시만큼 저렴했다. 언제나처럼 1천엔어치를 주유한 후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직원에게 편의점의 위치를 물었다. 의외로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5분 정도 동네를 달리다가 데일리 야마자키를 발견했다. 홋카이도에서는 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도쿄에서는 본 적 있는 편의점 체인이다. 들어가보니 20대 남성 직원과 40대 여성 직원이 일하고 있었다. 편의점을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딱히 데일리 야마자키만의 특성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비치된 성인잡지의 수위가 다른 편의점에 비해 소프트하다는 점이 눈에 띄었지만 그건 업체의 특성이라기보다 지역적인 문제로 보였다. 나는 키린 맥주 두 캔과 연어알 삼각김밥, 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 그리고 마늘빵 과자를 한 봉지 사서 나왔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호수로 돌아왔다. 안내도에 따르면 이곳의 캠프장은 '타자와코 오토캠프장'과 '촌영 타자와코 캠프장'의 두 곳이 있었다. 좀 더 가까운 타자와코 오토캠프장을 향해 반시계방향으로 달렸다.
타자와코 오토캠프장은 넓고 단정했다. 잔디도 잘 관리되어 있었고 사무실 건물 또한 신축한 듯 깨끗했고, 여러모로 정성스럽게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주차된 차는 두 대 뿐이었다. 그 중 한 대는 승합차였는데 차주인 듯한 장년의 남성이 캠핑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나를 잠시 돌아보았다가 이내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무실로 들어갔다.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직원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덩치는 작았으며, 표정과 인상이 선하고 친절했다. 1박이 가능하긴 했는데 요금이 2,500엔 정도였다. 이곳은 차종에 관계없이 1구획당 요금과 1인당 요금을 합산해 받는 식인지라 이륜차 여행자 입장에서는 다른 캠핑장에 비해 비쌌다.
- 제가 사장이면 깎아주겠는데, 나도 고용된 사람이라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깎아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나름의 친절인 모양이다.
- 여기 말고 저쪽 도로를 따라가면 촌영 캠프장이 있거든요. 그쪽은 요금이 저렴할 거예요.
여직원은 촌영 캠프장을 권해주면서도, 일단 거기에 체크인을 하고 이쪽에 와서 저녁시간을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아까 승합차 옆에서 책 읽던 손님은 닷새째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데, 오가는 손님과 말벗하기를 즐겼으나 오늘은 손님이 없어서 적적하게 보내는 중이라는 이야기였다. 흥미로운 제안이었으나 남의 영업장에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친절한 설명에 감사드린다고, 일단 촌영 캠프장으로 가보겠다고 이야기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다시 시계방향으로 남쪽을 향해 달려가는데, 어째선지 직원이 했던 '제가 사장이면 깎아주겠는데'라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그리고 그 말이 정말인지에 대해 여러모로 의문이 들었지만, 어차피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 친절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촌영 타자와코 캠프장은 러프한 곳이었다. 입구에 나무로 외장을 덮은 사무실 건물이 있었고, 캠프 장소는 숲의 땅을 평평하게 골라둔 정도였다. 그러나 하룻밤 지내기에 나쁜 조건은 아니었기에 나는 선선히 안으로 들어섰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호리호리한 남성 직원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륜차 1박 요금은 500엔이었다.
주차장 한쪽 구석에 차를 세우고 캠프장 안을 걸었다. 시설은 별 거 없었고, 수돗가와 화장실은 사용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갖춰져 있었다. 조명도 충분하지 않은 듯 보여서 나는 우선 적당한 자리를 골라 텐트를 설치했다. 차에서 떨어져 자야하는데 그렇다고 짐을 다 끌어안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고가품 몇 개만 챙겨 텐트 안에 집어넣었다.
밤새 차에 올려둘 짐을 반듯하게 쌓아서 이륜차 커버를 씌우고 있는데, 어디선가 특징적인 이륜차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았더니 캠프장 입구 쪽으로 니이가타(新潟) 넘버의 노란색 BMW 이륜차가 한 대 올라오고 있었다. 운전자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눈 주위를 제외한 전신을 기능성 의류들―고어텍스 바지라든지, 가죽장갑이라든지, 코 아래부터 목까지를 모두 가려주는 기능성 마스크라든지―로 감싸고 있어서 한눈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좁고 둥근 어깨와 비교적 작은 체격을 보아 여성이 아닌가 싶었다. 주차장에 BMW가 서고 운전자가 헬멧을 벗는데, 역시 여성이었다. 리어백과 사이드백을 달고 프론트백의 투명 주머니에는 지도를 넣고, 탠덤시트까지 그물로 짐을 꾸려놓은 모습이 틀림없는 이륜차 여행자였다. 잠깐 눈이 마주쳐서 우리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간단히 세안을 하고 잠자기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슬슬 노을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나는 아까 산 먹거리와 사진기, 삼각대를 챙겨들고 도로를 건너 호숫가로 걸어내려갔다.
삼각대에 사진기를 걸고 시험삼아 몇 장 찍어보았다. 저물어가는 태양과의 방향은 좋았으나 타자와 호수의 아름다움은 잘 드러나지 않는 자리였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이륜차를 타고 좋은 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나마 좋은 구도가 될지 궁리하며 맥주와 삼각김밥을 먹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사무실 직원이었다. 그는 말없이 걸어와 올림푸스의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로 노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잠시 후 또 누군가가 걸어왔다. 아까의 BMW 운전자였다. 아까에 비해 복장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그녀 또한 캐논의 컴팩트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말없이 사진을 찍었다.
여남은 번쯤 사진 찍는 소리를 낸 후 사무실 직원이 돌아갔다. 정말 멋진 풍경은 해가 저무는 순간에 잠깐 나타나는 건데, 그는 너무 일찍 왔다 일찍 가버렸다. BMW 운전자는 조금 더 오래 시간을 들여 사진을 찍었다. 방향을 보아 노을지는 호수를 찍고 싶어하는 듯 보였는데, 표정으로 보아 사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맥주 한 캔을 비웠을 무렵 그녀도 돌아갔다. 나는 '이봐요, 노을도 야경도 지금부터입니다.'라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친절이라기보다 잘난 척이 될 듯 싶어 그만두었다.
18시 40분부터 20시까지 약 1시간 20분간 호숫가에 서서, 조리개도 조였다가 노출시간도 늘렸다가 삼각대도 옮겼다가 하며 여든 다섯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마음에 드는 건 단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까 말을 삼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잘나지도 못한 사람이 잘난 척을 하면 아무래도 꼴사납다.
주차장에는 차가 몇 대 늘어나있었다. 양치를 하고 텐트로 돌아갔다. 내 텐트에서 20m 쯤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텐트를 조립하고 있었다. 좀 더 떨어진 곳으로 텐트를 옮길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텐트로 들어가 누웠다. 잠은 곧 올듯 싶었다. 슬슬 도호쿠 지방을 벗어나야 앞으로의 일정에 여유가 생길 듯했다. 후쿠시마 지역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아주 외면하고 다른 길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접근할 수 있는만큼은 접근해 볼 것인지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았으나 판단을 하기엔 정보가 너무 없었다. 센다이쯤 가면 정보가 생기지 않으려나 싶었다. 맥주를 좀 더 사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