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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8/24 14:48:16
Name 요정 칼괴기
Subject [일반] 1차 대전사(1)- 왜 이 전쟁은 시작되었나?
아마 서부 전선 위주로 서술하게 될 거 같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있었던 하나의 행사에서 비롯됩니다.
프로이센의 군주 빌헬름 1세가 정식적으로 독일제국 황제위에 오르고 독일 제국이 선포된 행사였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독일은 4개 왕국, 6개 공국으로 구성된 하나의 통일 제국이 되었습니다.

인구는 통일 당시 4천만, (다음해 프랑스 인구는 3700만) 그리고 1차 대전 직전 1910년에 6천만이었습니다.
(그해 프랑스 인구는 4천만 수준)

이는 유럽에서 러시아를 제외하면 최대 인구수를 자랑하며 유럽 최대의 공업국이자 군사대국의 탄생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느 엄청난 파워 밸런스 변동이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세력 균형
패권국인 영국, 그에 비견될 열강 러시아, 프랑스, 그리고 중견 국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로이센으로 구성된
체제가 무너졌음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생 독일 제국은 단숨에 프랑스를 압도했고, 패권국 영국과 비견될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능한 재상 비스마르크 입장에서는 이 제국이 바로 타국의 주목을 받는다면 잘못하면 견재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를 가상적국으로 두고 주변 열강과 비밀동맹을 통해 독일의 안보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이 그림이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의 외교 정책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프랑스를 고립하고 독일은 여러국가와
친교와 비밀 동맹을 통해 안전을 보장 받는다.

이런 비스마르크의 정책은 독일인 치고 외교에 뛰어났던 그의 재능과 무식한 군국주의 융커 계급으로 구성된 군부의
간섭을 카이저 빌헤름 1세가 배제해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런 독일의 외교전술은 -비스마르크가 없거나 - 빌헬름 1세가 없으면 붕괴될 것이 자명했습니다.

1888년 비스마르크의 훌륭한 지지자인 카이저 빌헬름 1세가 서거했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후계자 프리드리히 3세
역시 비스마르크의 훌륭한 지지자였고 비스마르크도 이 새로운 황제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3세>

문제는 이 프리드리히 3세가 후두암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뒤를 따라 그해 6월 프리드리히 역시 승하하면서
다시 제위는 프리드리히의 29세 아들 빌헬름에게 돌아 갑니다.


<빌헬름 2세>

빌헬름 2세가 이 젊은 황제는 선천적인 팔 장애와 어렸을 때 삶 때문에 엄청난 컴플렉스 덩어리 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제국 독일을 통해 이를 해소하려 했고 신생제국을 점진적으로 내적으로 성장시키려는 비스마르크의 정책과 대비되는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결국 1890년 황제는 비스마르크를 해고해버리고 그의 열망 달성의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하나 그는 비스마르크 만큼 총명하지도 그렇다고 어떤 장기적 비전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는 게 독일 제국의 불운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비스마르크가 엄청난 공을 들여 만든 대러시아 외교부터 박살내기 시작했습니다.
비스마르크가 여기에 공을 들인 이유는 프랑스와 대결을 할경우 양면 전쟁을 피하면서 강한 후원자로 만들어 프랑스의
어떠한 행동도 무력화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럽 1,2위의 인구 대국이 힘을 합치는데 뭐가 두렵겠습니까?
빌헬름도 이걸 알고는 있었지만 양국간에 존재하면 여러 문제를 비스마르크는 잘 회피하면서 목적을 달성했다면
빌헬름은 이걸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니콜라이 2세>
그는 1894년 부왕의 암살로 갑작스럽게 제위에 오른 니콜라이 2세와 사촌이었고 이덕에 어렸을 때부터 꽤 친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특유의 거만함, 그리고 니콜라이에 대한 쓸데 없는 우월감 표출 등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니콜라이의
빌헬름에 대한 평가는 [믿지 못할 인간]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이걸 파고 든게 바로 비스마르크 시절 고립되어 있었던 프랑스였습니다. 프랑스는 러시아에 대한 적극적 투자와 선물
공세를 통해 러시아를 자기 편으로 만들었고, 결국 공수동맹을 맺게 됩니다.(엄밀히 말하면 동맹 자체는 1892년 니콜라이의
부왕 알렉산드르 3세 때 결성되었지만 강화한 건 니콜라이 2세 때 입니다. 알렉산드르 3세 역시 1890년부터 시작된 빌헬름
2세의 독일이 폭주하면서 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프랑스에 손을 낸 것이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빌헬름 2세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과 급격히 친해졌는데, 이는 사실 좋은 수는 아니었습니다.
- 일단 오스트리아 자체가 민족주의 열병으로 그 세력이 갈수록 쇠락하는 국가라는 점.
- 오스트리아의 적인 이탈리아가 독일을 배신할 수도 있다는 점.
- 발칸 정세 때문에 오스트리아에 반대해서 대 슬라브 주의를 내세우는 러시아와 관계를 더 박살 낼 수 있다는 점에서죠.

한편 빌헬름 2세는 대 영국 외교에서도 개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바로 건함 경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알프레드 폰 티르피츠를 등용하여 통칭 티르피츠 플랜이라는 함대 증강 계획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부를 이
함대에 쏟기 시작하는데 이런 독일의 바다에서 세력 증강이 바다가 안보 그자체인 영국에 경계를 사게 된 것이죠.

<폰 티르피츠>

이미 러시아의 남진에 대한 스스로의 능력 부족을 겪은 영국 정부는 이미 이에 대해 영국-일본- 미국 간의 공조를 통해
극복한 상황에서 독일의 바다에서 위협까지 직면하자 동맹을 절실히 요하게 되었고 이는 프랑스와 친교 강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합니다.

여기에 대해 다시 영-불간의 관계를 훼손하고자 벨헬름 2세가 시도한 군사적 행동. 즉 프랑스 식민지 모로코의 독립을
주장하며 독일 군함을 보낸 이 사건은 역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를 더 친밀하게 만드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1905년 1912년 두차례 모로코 위기 때문에 빌헬름 2세의 노림수는 대 실패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동맹만 맺지 않았을 뿐, 영국
정계에 친 프랑스 세력이 엄청 늘게 되죠.

여기에 더해 보어 전쟁 당시 영국의 적인 보어계 두개 국가에 대한 지원 역시 대영관계 악화에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 사실 우리 한국사에서 잘 언급되지 않긴 하지만 제1차 영일동맹을 맺은 큰 이유는 러시아의 남하도 있지만
이 빌헬름이 한 해군 증강 때문입니다. 독일 상대로 더 이상 태평양 같은 곳에 함대를 파견할 여력이 없었던 영국
입장에서는 태평양 서쪽을 일본에게 넘기고 남은 해군력을 본토 방위에 돌리고자 했기 때문이죠.-

독일 입장에서 외교전에서는 외통수가 걸렸습니다. 비록 3국 동맹이라고 독일-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간의 동맹을 결성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와 적국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경제적 영향권에 있었던 국가 였습니다.
단지 우리 편은 망해가는 오스트리아 하나 뿐.... 나머지 대국은 독일을 포위하며 위협하고 있습니다.

육지에서 양쪽(프랑스- 러시아)가 바다에서는 영국이. 이 외통수를 군사적으로 해결하자는 생각이 빌헬름 2세와 독일
군부에서 대두 되기 시작했고, 강한 국력을 동원하면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주 좋은 껀수가 1914년 빌헬름 2세와 독일 군부에게 들어옵니다.
그게 바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이었습니다. (6월 28일)



사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즈 요제프 1세는 별로 사랑하지 않은 조카의 복수에 대해서는 약간 주저했습니다.
일단 위세 때문에 세르비아에게 본때를 보여줄 필요는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세르비아의 동맹국 러시아가 두려웠습니다.
이러던 차에 빌헬름 2세는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세르비아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하면 독일 역시 전쟁에 참가하여
러시아와 싸워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되죠.

결국 이 제안에 자신감을 얻은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세르비아에 대한 최종 통첩과 전군 동원령을 내리게 됩니다.(7월 23일)
이에 화답하듯 세르비아는 7월 25일 전군 동원령을 그리고 세르비아의 동맹국 러시아 역시 7월 26일 동원령을 내리게 됩니다.
독일 믿는 오스트리아 제국은 7월 28일 대 세르비아 선전포고를 합니다.

바로 세계 1차 대전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황태자 살해범이 과연 세계대전의 원인일까요? 원인 맞아도 아마 큰 원인은 아닐 겁니다. 외교전에서 외통수가 걸린 독일의
불안은 언제고 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고, 단지 그의 범죄는 전쟁의 명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가장 큰 전쟁 원인은 바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어리석은 외교정책에서 기인한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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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모여재
14/08/24 15:20
수정 아이콘
음... 프랑스 인구는 40여년간 300만밖에 증가하지 않았었나보네요. 뭔가 이유가 있었을까요...?
14/08/24 15:32
수정 아이콘
프랑스 혁명 이후로 출산율이 꾸준이 감소했다고 하는군요. 1871년 보불전쟁에서도 프랑스의 이런 출산율감소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보다 40년 보면 더 문제가 심각하겠죠
바스테트
14/08/24 16:02
수정 아이콘
나폴레옹전쟁때만 해도 유럽의 짱개라는 별명답게 유럽내에 러시아를 제외하곤 인구수면에서 프랑스를 이길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나폴레옹이 잘나갔던 건 그의 천재성과 이런 인구수를 통해 언제든 상비군을 운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 컸었습니다. (거기다 그 당시엔 모병제를 운용하던 다른 나라와는 달리 국민병제도라 불리우는 징병제를 실시했기때문에 질적 차이는 어느정도 있어도 순간적으로 엄청난 군사수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진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폴레옹 전쟁이 결국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이어진 후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이미 그 전 그러니깐 프랑스 혁명시기부터 감소하고 있던 출산율이 나폴레옹전쟁을 통해 줄어든 인구수와 함께 문제시되기 시작합니다. 이미 19세기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쩌는 위엄(..)을 보여줍니다. 21세기인 지금 한국과 일본이 고령화사회때문에 골치아파하죠?이걸 프랑스는 19세기에 이러고 있었습니다(..)
왜 갑자기 줄기 시작했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찾아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에 대해 연구도 많이 한다는 데...

하여튼 이 고령화사회 + 출산율 감소는 2차세계대전까지 쭈욱 프랑스의 문젯거리였습니다..(독일에게 밀린건 물론이고 영국에게까지 인구수에서 밀렸던 적이 있었으니깐요 그래도 그 이후로 조금씩 출산율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탱구와레오
14/08/24 15:3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인간실격
14/08/24 16:11
수정 아이콘
제목 자체가 아마 어지간만 논문 주제가 아닐까 싶은데... 그냥 비스마르크 사후 언젠가는 한번 크게 터질 전쟁이긴 한 것 같습니다. 당시 외교관계 자체가 비스마르크가 아니면 설계는커녕 유지할 수도 없었을 정도로 복잡하게 짜여져 있었어서...
나이트해머
14/08/24 16:46
수정 아이콘
그게,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벨 에포크 시대만 하더라도 '지금 유럽 각국은 서로 너무나도 많이 얽혀 있어서 나폴레옹 전쟁처럼 전유럽이 맞붙는 전쟁은 불가능하다! 설령 전쟁이 일어나도 이는 서로 얽혀있는 것 때문에 양측 모두 피해만 볼 것이며, 따라서 합리적인 판단 하에 금방 멈출 것이다! 대신 상호 협력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는 주장이 대세였습니다.
카서스
14/08/24 22:48
수정 아이콘
당시에는 그런 주장이 대세였지만 지금와서 보면 1차세계대전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였죠..
나이트해머
14/08/25 02:12
수정 아이콘
합리성만 따지면 1차대전도 저렇게 길고 큰 전쟁은 안됐을 겁니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신뢰를 박살낸 전쟁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괜한게 아니죠. 차라리 2차대전은 히틀러라는 제대로 미친놈이 딱 맨앞에 있기라도 하지...
카서스
14/08/25 03:11
수정 아이콘
덕분에 이성만세 모더니즘이 박살나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고 공부하려면 머리는 아프고.. 뭐 그렇습...
근데 사실 이 계기는 2차세계대전이 더 크긴하죠. 1차세계대전을 겪고 안전장치에 전쟁 피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도 비교도 안될 스케일의 전쟁이 똻....
14/08/24 16:53
수정 아이콘
마지막에 나온 사건이 사라예보의 총성이라고 불리는 그 사건이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14/08/24 18:38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첫부분에 이해가 안되는게 있어요. 독일 황제 즉위식을 왜 베르사유 궁전에서 했을까요? 남의 나라 수도 궁전에서 말이죠
요정 칼괴기
14/08/24 18:40
수정 아이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이기고 상대방 수도를 점령한 상태에서 한 행사라서요.
정말 프랑스의 자존심에 금간 날이죠.
인간실격
14/08/24 18:43
수정 아이콘
프랑스 털은 게 거의 독일 통일의 피날레 같은 거라서... 프랑스가 아마 저 전까지 수도가 저렇게 털린 적이 아예 없었을걸요. 프로이센 -> 독일 제2제국로 이어지는 통일 성립 후 만세삼창을 둘도 없는 적국의 궁전에서 한다는 게 엄청나게 상징적이지 않나요 크
14/08/24 18:50
수정 아이콘
답변감사합니다
카서스
14/08/24 23:02
수정 아이콘
위에 설명해주신 분들이 계시지만 좀더 자세히 설명해봅니다.

당시 프로이센, 그러니까 독일제국 성립 전의 독일인들은 프랑스에 대해 열등감과 악감정이 강했습니다.
왜냐하면 나폴레옹이 천년가까이 내려오던 신성로마제국을 강제로 해체시켰고 틸지트 조약 등으로 내정간섭을 아주 심하게 해버리죠. 몽골이 고려에게 한것처럼요
유명무실 하긴 했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후예란 역사적 사실에서 근대 독일의 민족주의가 탄생됬기 때문에 이는 당연히 프랑스에 대한 적개심이 생기죠. 게다가 인접한, 불과 반세기전만 해도 전 유럽을 휩쓸던 나라죠
따라서 철혈정책의 주목적과 희생양은 프랑스가 됩니다. 그 이후에 경과는 본문서술에 나와있고 제국을 부활히키는데에 있어서 그 제국을 망하게 한 국가의 궁전에서 한다... 엄청난 카타르시스였겠죠 상징성도 어마어마하구요
폰으로 작성하다보니 글이 조금 두서없네요.
14/08/24 23:34
수정 아이콘
답변감사합니다
껀후이
14/08/25 10:44
수정 아이콘
와...프랑스에겐 진짜 엄청난 굴욕이겠네요...
우리나라도 다를거 없지만...ㅜ
14/08/25 10:16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1차대전과 베트남전쟁의 원인이 항상 궁금했던터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도 기대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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