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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8/03 09:06:52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일반] 독서담론의 불편함
https://ppt21.com/?b=8&n=52908



얼마 전에 피지알을 뜨겁게 달구었던 글로 독서 이야기가 있었지요. 콩콩지님이 한 신문기사를 인용하면서 많은 댓글이 달렸고, 또 추가로 여러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대략 30 년을 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로 시작하는 소위 독서담론을 오랫동안 들어오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생각은 "그래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 보다는 "왜 꼭?"과 같은 반감이었습니다. 문제의 신문기사에서는 독서량이 줄어서 의심하고 질문하는 능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였는데, 독서 잔소리를 듣고 고분고분 책을 읽는 대신 의심하고 질문했던 제 청춘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하는 저의 "왜 꼭?" 들입니다.





[1.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것: 무엇을 어떻게 왜]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 것도 몰라요. 책을 읽으라고 할 뿐 무슨 책을, 어떻게, 그리고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라요. 어른들이 원했던 것은 어쩌면 종이 위에 찍혀나온 활자들을 보는 행위(performance)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깜빡 잊고 사는 사실 중 하나가 곧 우리의 조부모, 아니 부모세대만 해도 활자를 읽는 행위자체가 행위자의 계급을 드러내주는 일종의 상징이었던 시절을 직접 살았거나 혹은 간접적으로 기억하는 이들이라는 겁니다.

독서는 여러모로 퍼포먼스였습니다. 본인과 가족의 위신, 성공, 명예, 부를 약속해주는 행위로서의 독서는 아이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많은 다른 행위들 사이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고, 이러한 특별한 지위는 과거시험이 공식적으로 폐지된 이후에도 계속되었지요. 해방 후에도 우리사회는 성공을 위해서 활자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사회였고, 그래서 종이와 활자는 엘리트들이 소위 [실패자]들과 자신들 사이에 쳐놓은 철의 장막이었습니다. 이 장막을 뚫고 올라가느냐 마느냐는 오직 활자에 달린바, 가문의 미래가 달린 새로운 세대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활자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은 늘 어른들의 가슴을 벅차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여기서 [무엇을]에 대한 간략한 해답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실 자주 나오지요. 바로 [좋은 책]입니다. 무엇이 좋은 것이냐면, 본인과 가족의 위신, 성공, 명예, 부를 약속해주는 사다리를 기어올라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드래곤 라자를 읽으면 핀잔을 듣는 거고 해리포터를 읽어도 핀잔을 듣는 겁니다. 해리포터를 원서로 읽어보세요. 핀잔 주던 말소리 대신 존경을 담은 시선을 누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매일 30분씩이라도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라와 같은 조언은 [어떻게]에 대한 대답일겁니다. 이 대답 속에는 독서는 그 자체로 유쾌한 즐길거리가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왜냐하면, 드래곤 라자 1권을 잡으면 사실 매일 30분이라는 명제가 불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서 못견디겠는데 누가 30분만 읽고 자러가겠습니까. 지금 이루릴이 살이 찢어져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잠이 옵니까. 전 드래곤 라자를 1박 2일간 한 숨도 쉬지 않고 정주행했었고, 영웅문을 잡았을 때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래서 다시, [무엇을]로 돌아갑니다. 습관과 노력을 곁들여야하는 책들은 우리 마음의 MP를 써가며 읽어야 하는, 그닥 흥미롭지 않은 책들입니다. (MP와 우리 마음의 여가 에너지를 비유한 것에 대해서는 https://ppt21.com/?b=8&n=52908&c=1947377 를 보시오.) 독서를 습관화함으로써 그것을 MP소모 액티브 스킬에서 패시브 스킬로 업그레이드하라는 것이지요.

이제 [왜]에 대해 알아봅시다. 콩콩지님의 본문에 달린 많은 댓글들은 지식의 습득과 사고력의 심화(와 확장)에 방점을 찍은 경우가 많더군요. 논쟁의 시발점이 된 신문기사가 그런 부분에 주목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실제로 수많은 독서담론들이 이러한 [효과]들을 목표로 하는 하나의 유효하고도 효율적인 수단으로서 [독서]를 권장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에요?





[2.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반감: 맛폰은 종이보다 열등한가]



중국에서 종이책이 발명된 이후로도 죽간은 한참 동안 종이보다 우월한 미디어로 대우받았습니다. 아주 나중에도 의례적 가치를 끝까지 잃지 않아서, 중요한 왕실 의례의 경우 늘 죽간이 사용되었지요. 예컨대 조선에서 세자를 책봉한다거나 할 때 결코 종이에다 써서 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열등한 물질에다 뭘 휘갈겨 주나요. 대나무에 써서 주어야지요.

송나라 때 폭발적인 인쇄 붐이 일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재밌는 건 세상의 반응이었는데요, 내용상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필사본을 더 우월한 것으로, 인쇄본을 더 열등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인쇄본만 보고 필사본을 안본다는 어르신들의 한탄들도 남아있습니다.

이제 맛폰으로 각종 영상물을 접하는 건 일도 아닌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원전 완역이라고 뻥을 쳐놓고 실은 일본어 중역이었던 엉망진창 전공서적을 본다고 무슨 말인지도 못알아 먹으면서 끙끙몇 달을 때려박아야 했었지만, 이제는 해당 분야의 대가들이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신세경도 이런 신세경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TED에서 얻은 것들이 활자에서 얻은 것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 훨씬 나은 점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인간의 의사소통은 여러 층위에서 이루어집니다. 눈빛, 몸짓, 목소리의 음높이, 강조, 라임, 청자의 리액션, 그 리액션에 대한 리액션, 화자와 청자 사이에 약속된 관례들 등등. 이 모든 것들이 혼합되어 내가 전달하고자하는 것에 대해 상대방이 오해할 가능성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줄여주지요. 글의 장점이 많이 있겠지만, 이런 면에서는 분명한 약점을 보입니다. 같은 내용도 야설보단 야동 아니겠습니까?

늘, 미디어가 내용을 좌우했습니다. 텍스트는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그 성질이 급격하게 바뀌었습니다. 구전시절에는 모두 운문의 형태를 했지만, 문자의 발명과 함께 기록이 가능해지면서 산문이라는 요상한 것들이 생겨났지요. 그 산문 역시 청동기와 거북이 껍질에 기록하던 시절에는 기껏해야 한자 200자를 넘기지 못하다가 죽간의 발명 이후에야 당시 기준으로 한 [권] 분량으로 늘어났지요. 그 후로도 소위 글의 긴 [호흡]이란 게 제지/제본기술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했습니다. 문체도 역시 이 변화에 발맞추어 변했습니다. 고상한 어휘를 규범에 맞게 사용하고 함축적인 표현과 화려한 도치로 전위예술과 같은 미학을 자랑하는 문체가 예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런 문체로 1,000 쪽 분량의 전공서적을 꼼꼼하게 채우면 그걸 누가 읽겠습니까.

맛폰의 발전은, 인터넷의 발전이 신문산업에 대해 그러했던 것과 같이, 인류의 텍스트 창작과 소비의 양태에 중대한 변화를 야기할 겁니다.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겠지요. 그리고 전 이 변화를 인도하는 새 미디어가, 영상이, 근본적으로 종이+활자에 비해 열등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 유흥과 향락으로서의 독서]


아주 잘 쓰여진 글은 글이라는 미디어의 제약을 뛰어넘어 독특한 글맛을 만들어냅니다. 읽는 내내 행복감을 느낄 정도로 훌륭한 필력을 지닌 글쟁이들이 우리 사회에 아직 많이 있고, 그들의 족적은 늘 지켜보는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 독서량 운운하는 독서 담론에서는 이런 글들은 논외의 대상으로 처리되지요. 담론의 주안점은 해야 하는데 하기 싫어서 미뤄두고 있던 것들에 대한 우리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데 있습니다. 마치 오래전에 사놓고 손질하기 귀찮아서 여태 냉동고에 쳐박아둔 식재료를 왜 아직도 쓰지 않냐고 잔소리하는 시어머니 같은 거랄까요.

정작 읽을 만한 글맛이 없는 글들을 만들어내는 무책임한 출판시장과,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정도 글 밖에 나오지 않은 저자들과 역자들, 그리고 그 저자들과 역자들을 길러낸 우리의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는 반성이 없습니다. 독서 담론의 칼 끝은 책을 읽지 않는 우리의 타성을 향해 있을 뿐이지요. 상품이 소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비자의 탓이 아니라 생산측의 탓입니다.



여담이지만, 생산측의 잘못으로, 즉 전반적인 한국 문어체의 글맛 하락의 주범으로 저는 한글 전용을 꼽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토인비의 [시련에 처한 문명]을 한글로 한 번, 70년대에 번역된 국한문 혼용체로 한 번 읽은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야 국한문 혼용체가 번거롭지 한 번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한글로 읽는 것과 속도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데, 글맛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납니다. 이건 겪어봐야 아는 문제라 그 차이가 어느정도인지 잘 형용이 안되는군요. 비흡연자에게 담배맛 설명하는 거랑 비슷할런가요.






[4. 그놈의 외국 타령좀]


사람들은 목표를 두고 일을 합니다. 중국인들에게 그 목표는 오랫동안 고대의 이상사회였고, 서유럽인들에게 그 목표는 미래 어느 시점의 역사의 종말이었고, 요즘 한국인들에겐 그 목표가 [외국]인 것 같습니다.

독서담론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역시 외국과의 비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은 정의상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어야 하겠으나, 실제로는 7할은 미국, 2할은 영프독 + 일부 북유럽 국가들, 1할은 일본 정도를 지시하는 기이한 명사이지요.

이른바 외국인들의 독서량과 우리의 독서량을 비교하며 우리의 게으름과 타성을 질책하는 목소리의 저변에는 우리보다 이른바 경제적-문화적으로 우월한 외국을 그렇게 만들어준 원동력은 멘탈의 차이임이 분명하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깔려있습니다. 걔들은 부지런히 책 많이 읽고 사고력을 쑥쑥 키워서 잘나가고 우리는 게임하고 만화 보느라 못나간다는, 일종의 자학사관이지요.

만약 서울대 도서관의 대출순위 상위권이 드래곤 라자와 묵향으로 채워져있다고 비판하는 논조가 타당하다면, 책 많이 읽는다는 [훌륭한(?)] 외국 친구들의 출판계를 강타한 해리포터 열풍에 대한 경외의 시선은 분명 모순일 겁니다.



[5. 대체 몇 권 읽는 게 왜 중요한데]

통계의 맹점이지요. 제가 영어로 해리포터 4 편을 읽으면 1 권을 읽은 것이지만, 우리말로 읽으면 4 권을 읽은 게 됩니다. 1 년간 끙끙 거리며 논어 한 권을 선배들과 같이 윤독한 적이 있는데, 통계로 보면 우리말 해리포터로 4 권 읽은 친구의 25% 밖에 읽지 못한 셈이 되지요. 넌센스에요.







[6. 결론]

비교하지 맙시다. 자책하지 말아요. 내키는대로 읽고 호기심이 이끄는대로 이것저것 찾아보고 즐기면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알고자하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되었을 때 기쁘고 즐겁습니다. 잣대를 외국의 독서량(量)에 놓고 고된 몸을 이끌어 즐기는 영역을 넘어가는 순간이 바로 마음 속의 작은 즐거움이 꺾이는 순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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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유산균
14/08/0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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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합니다.
14/08/03 09:28
수정 아이콘
1. 책 안읽는 사람들이 책 읽는 효용을 알기란 어려우니 당연히 왜 읽어야 되는지 모릅니다.
다만 읽는 사람들은 읽으면 좋으니까 읽으라고 하고요.
학문이란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툴인데 책 안읽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툴이라고 해봐야 매우 기초적인 것이어서
대화할 때 하는 말들이라곤 매우 뻔한 말들이라 제발 책 좀 읽고 공부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2. 책을 꼭 종이책으로 읽으라는게 아닙니다. 다른 형식으로도 자기가 이전까지 어떤 논의가 있었고 이 현상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관심이 있다면
책을 통해 보건 다른 형태로 그것을 접하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명서들 같은 경우에 해설해주는 영상도 많고 한데 책 안읽는 사람들이 그런 강의는 듣나요. 책만 안보는게 아니라 그냥 그런 내용에 관심이 없는 겁니다. 예컨대 맨날 삼권분립 외치지만 몽테스키외가 어떠한 논리를 근거로 삼권분립을 제시하였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실제 역사에서 그것이 어떤 형태로 받아들여졌는지 관심있는 사람은 없죠. 그런 사람들한테 삼권분립은 그냥 정적으로 보장되어야할 것에 지나지 않고 시대에 따라서 어떻게 변동이 생길 수 있고 왜곡될 경우 어떠한 대처가 가능한지 통찰력 있는 몇명을 제외하고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냥 보이지 않는 기득권 욕만 하고 끝나겠죠. 스마트폰으로 이러한 고민을 대신할 수 있다면 책 읽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대체할 수 없다면 그건 다른영역으로서 존중받아야겠죠.

3. 좋은 책 없다는 말은 하지 맙시다. 죽을 때 까지 다 못 볼 정도로 많은 양의 양질의 책이 있어요. 이 사회가 어떠한 고민과 조정 끝에 만들어진 것인지, 1800년대 이후로만 잡아도 평생 읽어도 남을만큼 좋은 책들 많은데요.

* 책 안 읽는다고 뭐라고 하지 말고 강요하지 말아라. 다들 바쁘기도 하지 않느냐. 정도의 말은 인정할 수 있는데 앞서서 논의가 있었던 것도 그렇고 저도 느끼는 건 요즘은 책 읽으면서 시간 쓰고 공부하고 하는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 취급 받더군요. 칸트나 루소나 이런 책들 보고 있으면 심지어 그게 뭔가 이상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요. 안 읽는게 당당한 걸 넘어서 읽는 사람을 이상한 취급 할 정도의 사회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기아트윈스
14/08/0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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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글의 요지는 이른바 [독서담론]에 대한 반박이었고, "우리 책 읽지 맙시다"는 아니었습니다.

혹시 그렇게 읽혔다면 좀 민망하네요 ^^;

2. 꼭 종이책으로 좁혀서 주장하는 분들이 있지요. 제 요지는 "텍스트"는 "책"보다 더 넓은 개념이 아닌가, 그 정도입니다.

3. 좋은 책이 없다는 말은 하나의 발화 행위로 보아야 합니다. 죽을 때 까지 다 못 볼 정도로 많은 양의 양질의 동화책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동화책을 다 읽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양질의 원서가 산더미처럼 있어도 그걸 읽지 못하는 사람에겐 좋은 책이 없는 셈이지요. 번역서가 있다해도...... 순수이성비판과 정신현상학의 일부를 읽는 수업을 수강했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포기하고 영역본을 옆에 놓고 한 줄씩 대조해가며 읽었지요.

주변의 누군가가 좋은 책이 없다는 말을 한다면, 그 사람 나름의 이유를 찾아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를 찾아서 해소해주면 좋은 친구고, 많은데 니가 관심이 없어서 안보는 거지 라고 핀잔을 주면 안좋은 친구이겠지요.
14/08/0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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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얘기를 하시면서 야설, 야동얘기를 하셨는데 그건 목적에 있어서 야동이 더 큰 만족감을 주기 때문인 것이고, 독서담론에 대해서 반박하시면서 꼭 종이책일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려면 적어도 독서담론에서 얘기하고 있는 독서의 목적을 다른 매체로도 달성할 수 있다는 얘기는 해주셔야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시대에 따라 매체가 달라진다는 주장만으로는 , 그리고 그 미디어의 장점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만일 종이책의 기능을 아직 대체할 수있는 것이 없다면 종이책 읽으라는 말이 구시대적인 말은 아니지요. 종이책을 대체할 수 있는 매체가 나오면 그 때는 하신 말씀이 맞겠죠.

저는 모든 책을 읽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좋은 책이 없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좋은 책이 많다고 얘기할 수는 있겠죠. 독일철학의 경우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애초에 물흐르듯이 읽을 것을 포기하고 비슷한 류의 책을 여러번 보면 그 다음엔 어느정도 이해가 갑니다.번역가들이 번역을 어색하게 한 것이지 그렇다고 왜곡한 것들은 아니거든요.
아무튼 만일 출판업계에서 너네가 책을 안사읽어서 우리가 힘들다고 얘기한다면 읽고픈 책이 없다는 반박이 가능하겠지만
책이 좋은거니 읽으라는 충고에 대해서 책이 없다는 말은 유효한 반박이라고 보기 힘들죠.
하나의 발화행위라니 어떤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을 본질이 아니라 하나의 발화행위로 보기 때문에 그런 소리말고 책 읽으라는 얘기가 나오는거 아닌가요.
기아트윈스
14/08/0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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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 아니라 발화행위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책을 읽히고 싶거든 책 읽으라는 얘기는 삼가야 겠지요. 그 사람이 책을 안 읽는 데는 실제로는 좋은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 점을 고려하지 않고 [그런 소리말고 책 읽으라]고 이야기하고, 발화자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한채 읽어야 한다는 규범(norm)과 읽지 않게 되는 자신의 거부감 사이에서 자책감만 형성하게 될 테구요. 예컨대 자기가 멍청해서 힐쉬베르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포기하고 죄책감에 시달렸던 저처럼요...
14/08/0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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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이 다르시군요.
책읽으라고 잔소리하는 것 부터가 애정입니다.
관심없으면 그냥 가만히 있죠..
그런데 말씀하시는 게 정말 읽히고 싶으면 상대방의 죄책감을 자극시키말고 납득시키라는 얘긴데
언제부터 세상이 그렇게 따뜻했나요.

책 읽는 사람들이 책 안 읽는 사람한테 일종의 우월감같은 걸 가지고 훈계한다고 느끼시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분들은 소수에다가 그런 감정은 그렇게 중요한 감정도 아니고
그냥 아쉬워서 권하는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부모나 선생이 아니고서야 그정도 애정을 가지고 사람을 향상시키려는 사람은 잘 없죠. 안 그런다고 해서 그가 얘기한 충고들이
진실되지 않은 것도 아니고요.
학부생
14/08/0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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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댓글에 상당히 동감합니다. 일단 제대로 된 학문을 시작하려면 현 시점에서는 독서가 필수입니다. 나아가 활자매체의 중요성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죠. 논리를 구축하기 위해선 영상으로 한계가 있거든요. 아무리 좋은 교수에 좋은 영상을 갖다놓아도 인간이 영상을 보면서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정리한다? 어느정도 똑똑한걸로는 안될겁니다. 특히 깊이가 깊은 학문일수록 더욱더 말로 설명하는건 어렵습니다. 오히려 잘 정리된 책 한 권이 이해를 쉽게하죠. 시간도 훨씬 단축할 수 있구요.

한국의 독서담론 대부분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건 공감이 가지만 그렇다고 영상과 미디어가 도서와 독서를 완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일단은 보완이죠. 더 발전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 상상하는 수준 이상으로 발전해도 안된다고봅니다.
14/08/0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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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인쇄물의 글은 스마트폰이 주지 못하는 어떤 깊이를 줍니다.

둘째. 국한문병용에 대해서는 https://ppt21.com/pb/pb.php?id=qna&no=38790&divpage=8&ss=on&sc=on&keyword=only
14/08/0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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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주지못하는 어떤 깊이' 라는게 감이 안잡힙니다. 혹시 설명부탁드려도될까요?
14/08/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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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가 나오는 기계는 오래 쳐다보면 눈이 아픕니다. 따라서, 인쇄물의 글은 스마트폰의 글-영상보다 호흡이 길지요. 그 결과 함축되어 있는 양질의 자료가 훨씬 많고요.
기아트윈스
14/08/0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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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드립니다. 영화 한 편은 책 한 권보다 호흡이 짧고 함축되어 있는 게 적은가요?
14/08/0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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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를 봐도 알 수 있죠. 해리포터 소설책의 상당부분이 영화 한 편에 못 들어갑니다. 단순화되거나 말이죠.
기아트윈스
14/08/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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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열등한가요?
jjohny=쿠마
14/08/0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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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질문이 이상하고, 기존의 논점을 왜곡하는군요
'열등하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책이 더 호흡이 길고 함축된 것도 많다고 하셨죠. 그건 '열등하다'와는 다릅니다.

본문 제목을 '독서담론의 불편함'이라고 쓰셨는데, 이런 식의 논점 왜곡이 더 불편하네요.
기아트윈스
14/08/0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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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님이 쓰신 술어들을 잘 보면 모두 부정적인 술어들이지요. 그렇게 오해할 만하지 않나요?

또 인쇄물의 글과 스마트폰을 두 항으로 놓고 비교했는데 이렇게 둘 경우 후자라는 미디어 자체가 전자에 비해 열등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구요.

아래쪽에서 죽신님이 flowers님과 오해를 잘 푼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14/08/0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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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텍스트는 추상화가 극도로 고도화된 작업물이고, 영화는 구체화가 극도로 고도화된 작업물이죠.
14/08/0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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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의 소설책과 스마트폰의 텍스트버전과 비교해야 올바른 비교일 듯 합니다.
위에 말씀하신 부분에서 인쇄물과 스마트폰의 차이는 그냥 눈의 피로도 차이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피로도로 인해 활자책을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점이 어째서 함축되있는 양질의 자료를 더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으로 연결되는지도 잘 모르겠구요. 애초에 내용물의 차이가 없는데 무슨 깊이가 더 있다는건지요.
14/08/03 10:17
수정 아이콘
일례로 인터넷의 글이 조금이라도 길면 (스압)이죠.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피로한데 양질의 글을 쓰기 어렵지 않을까요?
jjohny=쿠마
14/08/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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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님께서 하신 말씀은 스마트폰 화면 용으로 나오는 매체들이 책용으로 나오는 매체를 비교하시는 것입니다.
해리포터의 전자책(텍스트버전, 물론 한글판은 정식본이 없으니 죄다 불법판이지만)은
인쇄물로 나온 것을 전자 쪽으로 그대로 옮기기만 한 것이니 적절한 예시가 되지 못하는 것 같네요.
14/08/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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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죽신님이 e-Book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네요. 저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보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14/08/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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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매체와의 비교었군요. 그렇다면 인쇄물의 글이 영상매체가 주지 못하는 깊이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영상매체 또한 인쇄물의 글이 따라올 수 없는 다른 종류의 어떤 것(이걸 깊이라고 하기엔 뭐하군요)을 포함하고있습니다.
이건 어느 한 쪽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14/08/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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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만 인쇄물의 글이 영상이 주지 못하는 어떤 것을 함축하며, 또 영상은 인쇄물의 글이 주지 못하는 또 다른 어떤 것을 함축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14/08/0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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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 님// 그런데 처음 댓글의 첫문장이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파이어 되는 것 같네요.
[인쇄물의 글은 스마트폰이 주지 못하는 어떤 깊이를 줍니다]
유의해서 읽지 않으면 이게 [글>영상] 이런식으로 비칠 소지가 있어서..
14/08/0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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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신 님// 그렇군요. 한쪽 면만 주장하는 꼴이 되어버렸네요. 죽신님께서 잘 지적해주셨으니 따로 댓글 수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Judas Pain
14/08/03 10:39
수정 아이콘
링크를 읽어 보았지만 국한문병용에 대해선 괜찮은 논의가 나왔다고 보이진 않습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면
쓰여진 글의 가독성에서 한글전용과 한자병용에 대해 글자수는 같지만(?) 한자의 획이 한글보다 많아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사람은 하나하나의 획을 따라가서 하나의 문자를 인식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덩어리로서 전체 모양으로 구별하지요. 그러나 그 무리한 주장이 비판적으로 검토되지 않았더군요.
14/08/03 10:42
수정 아이콘
그러면 Judas Pain님은 국한문병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Judas Pain
14/08/03 10:47
수정 아이콘
고견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한국어와 한자의 문제에 대해선 따로 제 의견을 글을 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14/08/03 10:48
수정 아이콘
따로 글을 쓰실 생각이신가요? 응원하겠습니다^^
Judas Pain
14/08/03 10:54
수정 아이콘
이상은은 언제가는 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제 심정이 딱 그와 같네요. 시도해 보겠습니다 ㅠㅠ.
기아트윈스
14/08/03 20:28
수정 아이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흐흐
에네스티
14/08/0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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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차츰 엘리트층의 전유물이 될거라는 전망이 있지요. 책도 비슷할거라 봅니다.
문정동김씨
14/08/0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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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글 정말 잘쓰시네요. 제가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이렇게 잘 정리해 주시다니!! 댓글한방 날리고 갑니다!
14/08/03 09:38
수정 아이콘
거의 100% 동의합니다. 우리나라에의 독서담론은 거의 이런식이죠.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제가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좀 다릅니다.

사실 어느정도 인지 심리학적 측면인데요. 독서를 단순히 향락으로 즐기면서 인지적으로 분석적이고 복잡한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경우는 모르겠으나 그런 일을 하고 싶다면 독서는 어느정도 "스킬"의 측면에서 접근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난독증"이라는 말이 있죠. 이 말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애초에 글을 읽는 정확도와 스피드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건 수능 언어영역만 봐도 알 수 있죠. 언어영역 글들 보면 딱히 전공적 지식을 요하지 않는 평이한 지문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참 신기할 정도로 1등급 부터 9등급까지의 분포가 생기죠.

물론 반론으로 그건 문제 풀이 스킬 아니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읽기 능력이 거의 핵심이라고 보여지는 피셋 언어논리에서도 상위권과 하위권이 나뉘어 집니다. 솔직히 행시 도전할 정도면 고등학교 때 언어 1등급 아닌 애들이 찾기가 힘들고 문제 풀이에는 다들 정통한 애들인데도 누구는 시간이 20분 남고 누구는 몇 문제씩 못푸는 결과가 나오죠.

이런 능력의 차이는 사실 시험 결과로 합격 불합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결국 이후에는 그 사람의 능률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글을 자기 머리속에서 정리되는 과정(독해)을 처리하는 속도나 정확성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인데 그걸 더 뛰어나게 하는 사람이 확실히 많은 분야에서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게 활자가 아닌 말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일단 활자 형태로 저장 된 정보가 말 형태로 저장된 정보보다 훨씬 많다는 점과 석박사 수준의 고급 학술정보로 갈수록 활자의 비율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며, 애초에 듣는 것보다 읽는 것이 정보 습득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낭독해서 읽는 것보다 눈으로 읽는게 넘사벽으로 빠르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의 독서담론이 약간 꼬여있다고 생각하지만 독서에 향락 이외에도 자기계발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면 독해라는 인지적 능력을 기르는데는 독서가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기아트윈스
14/08/0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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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동의합니다.

하지만 논지의 시계가 수능 응시자, 행시 응시자, 석박사 수준의 학술정보를 다루는 이들로 제한되어 있다는 건 불만이네요.

TED의 인기스타 교육학자 켄 로빈슨이 그랬었지요. "생각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there are people who move to think)."

전설적인 무용가 이야기입니다. 어려서 수업을 못따라가서 정신병원에 상담하러 갔었는데, 다행히도 의사가 그녀의 재능을 발견해서 무용학교로 옮기게 되었다고 해요.

우리 교육 시스템 상 독해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커리어를 밟아가지 않으면 사회 상층부에 도달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요. 꼭 건강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노리노
14/08/03 09:3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인쇄본만 보고 필사본은 안 본다는 당시 어른들의 한탄이 참 신기하네요.
글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쓰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며, 또한 미래의 과거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활자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갈 지 보는 것도 즐거운 삶의 한 요소가 되겠어요.
엘에스디
14/08/03 09:40
수정 아이콘
2번과 3번을 조합해보면... 책이라는 미디어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 예약된 상황인데, 그 시대에 뒤떨어진 매체의 제작자 측이 경각심 없이 자기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모르고 남탓만 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그렇지 않다면 실제 자본주의 시장에서, 경쟁에 뒤처지지 않고 잘 팔리는 책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이고요. 물론 2번에서 언급하신 매체의 장벽을 컨텐츠만으로 어떻게 극복하라는 것인지는 저로서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경쟁력 부족의 원인 중 하나는 국한문 혼용 폐지로군요. 흠.

저와 크게 의견이 다르신 것 같은데, 딱히 토론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가 않는 묘한 글입니다. 뭐, 출판계 최말단에 있는 사람보다야 더 많은 것을 아시는 분일 테니, 얌전히 물러나지요.
윤주한
14/08/03 09:51
수정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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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트윈스
14/08/0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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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담론에 대한 불만 중 하나는 본문에서도 언급했듯 연사의 강연을 듣는 것과 문자를 읽는 행위를 전혀 다른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이지요.

윤주한님 말씀처럼 지식에 접근한다는 측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고, 오히려 더 효율적인 방식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반발이 많습니다.
윤주한
14/08/03 10:35
수정 아이콘
{}
기아트윈스
14/08/03 10:40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합니다^^
미메시스
14/08/03 10:01
수정 아이콘
TED 같은 동영상과 독서가 "지식의 습득"이라는 면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오히려 동영상이 나은면도 있지요. 말씀하신 것 처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데는 책이 낫다고 봅니다.

언급하신대로 "인간의 의사소통 층위"가 동영상의 경우 월등히 많은데
이것을 해석하며 정보를 받아야 한다는것은 그만큼 뇌가 많은 자극을 처리하기에 바쁘다는 뜻이고
그만큼 생각할 시간은 줄어들겠죠.

게다가 동영상은 책과 달리 속도조절이 힘드니 그 시간은 더욱 줄어듭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끊거나 반복 플레이해가며 볼수는 있겠지만
이는 즐거워야 할 시간을 노동과 비슷한 것으로 바꾸는 행동이죠.

위와같은 이유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데 있어서는
글이 영상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구밀복검
14/08/03 10:05
수정 아이콘
사실 독서가 중요하면 그냥 하면 됩니다. 근데 독서의 중요함을 설교하는 사람 중 적지 않은 수가 정작 자신은 독서에 취미 없는 경우가 적잖죠. 이쯤되면 그냥 독서, 혹은 인문 교양에 대한 막연한 웰빙의식, 변형된 형태의 국개론 등이라고 봐야...
https://ppt21.com/?b=8&n=48142 이 글에서의 논의가 생각나네요.
기아트윈스
14/08/03 10:31
수정 아이콘
웰빙의식과 국개론 두 단어로 모든 것들이 요약되네요.

링크 잘 읽었습니다.
라라 안티포바
14/08/03 10:06
수정 아이콘
독서 옹호론자들도 몇권이라는 계량적인 부분에 크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다만 중간 퀘스트 설정하듯 목표로 잡는 경우는 있습니다.
'독서백편의자현'이란 말이 있지만, 이게 책 100권 읽으란 뜻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고, 좋은 글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자연히 깨달음이 따라온다는 문맥적 의미일 따름이죠.

한국 교육이 어릴적부터 답이 딱 떨어지고, 수치로 계량화된 방식에 익숙하게 만드는 방식이다보니, 본문처럼 '대체 몇권 읽는게 왜 중요한데?' 처럼 계량화에 집착하는 의문이 뒤따라올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문맥상에서 파악해야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또한 독서 옹호론자들을 수단의 형식에 목매는 사람처럼 묘사해놓으셨는데,
플라톤의 국가론을 책으로 읽으나, 스마트폰 액정으로 보나 LCD 모니터로 보나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여튼 본문 보고 느낀건...독서담론의 본질적 부분이 아니라, 외형적인 부분에 너무 집중하는 느낌입니다.
Arya Stark
14/08/03 11:00
수정 아이콘
공감하는 내용 입니다.

저의 생각을 더하자면 독서는 글로 구성된 전달 매체에 집중하는것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타인이 정보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접할 수 있고

그것을 무슨 방식로 전달 받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닌 어떤 매개체로 전달 받았느냐를 따져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보를 전달 받는 매개체로는 크게 글, 영상, 음성등이 중에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영상을 손 쉽게 전달 하게 되었고

이러한 방식의 매개체는 정보를 더 직관적이고 직접적으로 전달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영상을 통해 전달 받은 정보는 포함하고 있는 정보의 해석은 일정부분 틀에 밖힐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글을 통해 정보를 전달 받는 독서의 경우에는 제한적이고 간접적 전달 방식으로 정보 해석의 부분은 더 자유로워 질 수 있죠.

이것 때문에 독서가 영상을 통한 방식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전달 방식인 영상물 보다 독서는 접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정보 전달의 방식의 편중을 주고 있고

독서를 중요하다 여기는 사람들은 이러한 부분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4/08/03 10:10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대부분의 내용에 동의합니다.
다만 한가지, 글은 글 자체로서 매체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있고
미디어의 발전에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함께 언급해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가끔은 야동보다 야설일 때도 있더라고요. 내가 생각치 못하는 부분을 짚어주는 것 같아서요.
기아트윈스
14/08/03 10:45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이론이 없습니다. 글은 설령 바뀔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고 인류와 함께 무덤까지 들어가겠지요.
jjohny=쿠마
14/08/03 10:11
수정 아이콘
국한문 혼용... 부분 때문에 글 전체의 호흡이 좀 이상해지는군요. (일단 그 부분도 동의가 잘 안될 뿐더러...)
글에서 제기하신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해서, 비슷한 논리에서 똑같은 대답을 돌려드릴 수 있겠네요.

"이건 겪어봐야 아는 문제라서요."
14/08/0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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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로 치환하면 번역본 대신 영어 원서를 보는 게 글맛에 좋습니다 정도가 아닌가..
물론 저는 원서를 볼 능력이 없어서 잘 모릅니다..
아이유라
14/08/03 12:34
수정 아이콘
과학 분야 전공서적 번역본에 한정해 얘기하자면,
글맛의 문제라기 보다는
퀄리티 자체가....ㅠㅠㅠ
소독용 에탄올
14/08/03 19:29
수정 아이콘
과학분야가 아니더라도, 도서시장이 작고, 번역서는 '과업'인정에서 평가로 잘 안쳐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분야에서 전공서적 번역이 없거나, 번역항목에 이름올린 양반이 한것으로 보기 힘든 경우가 상당하지요 ㅠㅠ
아이유라
14/08/04 00:05
수정 아이콘
역시 그랬군요 ㅠㅠㅠ 하긴 과학만 그럴리가 없죠....
14/08/0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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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지가 오래 돼서 기억은 희미합니다만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 생각나네요. 이 소설에서는 선생, 그리고 부모와 연결된 나에 대해서 써 내려가고 있는데, 아마도 보통의 해석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계층, 세대의 차이가 주인공의 마음에 반영되어 형성되는 갈등을 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선생을 독서로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 주인공을 바라 보는 시점을 비독서 계층과 현실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소설에서 주인공을 바라 보는 시각은 이기주의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본문에서는 [우리가 깜빡 잊고 사는 사실 중 하나가 곧 우리의 조부모, 아니 부모세대만 해도 활자를 읽는 행위자체가 행위자의 계급을 드러내주는 일종의 상징이었던 시절을 직접 살았거나 혹은 간접적으로 기억하는 이들이라는 겁니다. (중략) 가문의 미래가 달린 새로운 세대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활자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은 늘 어른들의 가슴을 벅차게 해주는 것이었어요.]라고 서술하셨지만, 이것은 한 단면이자 결과를 해석한 것이지 실제로 과거에 독서를 바라 보는 시각이 모두 그렇게 긍정적이었나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지식인들의 대담을 다룬 책에서 과거의 경험을 서술한 대목에서는 부모님이 독서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차라리 밖에서 뛰어 노는 것을 바랬으며 그래서 몰래 숨어서 책을 봤다고 하더군요. 이로 미루어볼 때 독서를 부정적으로 바라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하지 않았나 합니다.
기아트윈스
14/08/03 11:00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헌데 일본의 경험과 우리의 경험을 조금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컨대, 일본은 역사상 과거시험이 없었지요. 반면에 문해율은 기이할 정도로 높았구요. 어떻게 보면 우리와는 반대 상황입니다. 문해율이 낮은 대신 과거시험이 존재했었으니까요.

지역적인 차이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예컨대 평양이나 개성에서는 논어맹자 대신 복식부기부터 가르쳐서 어려서부터 빡세게 상인수업을 시켰다고 하니까요.
Windermere
14/08/03 10:36
수정 아이콘
오락성 가득한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자신의 전공/전문 분야에서 필요한 책을 구비하지 아니하거나 안 읽는 사람이야 없겠지요.
'책을 읽자'라는 의미는 결국 '인문학적 지식과 교양을 쌓고 전반적인 사고력을 높이자'는 것일텐데요.

책 이외에 어떤 매체가 있을까요..
같은 활자매체로서 책과 같이 묶여다니는 신문조차도 저런 의미의 책을 대신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대충 스포츠/연예 항목에서 눈에 띄는 기사제목만 읽고 넘어가는 식이라서요.
내셔널지오그래픽 류의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식과 교양은 똑같이 쌓을 수 있다 할지라도
활자매체에 비해 수동적인 영상매체의 특성상 사고력을 높이는 데는 책만 못하다고 봅니다.

다만, 책장을 넘기는 그 아날로그적 손맛을 인터넷이나 영상 따위는 대체할 수 없다고 하는 막연한 우월의식 내지 고정관념,
단순 통계적으로 우리보다 급이 높은 국가들의 연간독서량과 비교해서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는 식의 독서담론은
저 역시 보기 싫으며 개인적으로 무의미한 담론 혹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의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아트윈스
14/08/03 10:49
수정 아이콘
https://ppt21.com/pb/pb.php?id=freedom&no=48142

위에서 구밀복검님이 거신 링크인데, 한 번 읽어볼 만합니다.
내려올
14/08/03 10:57
수정 아이콘
제목 때문인지 '책 읽자는 말 하지 말자 혹은 책 읽을 필요 없다' 로 들리는 군요. 본문은 꼭 그런 뉘앙스는 아닌 것 같지만요.
마일스데이비스
14/08/03 11:07
수정 아이콘
요샌 아무도 디스켓을 쓰지 않지만 아직도 저장 아이콘을 디스켓으로 쓰듯이, 조만간 '책을 읽는다'는 말 자체가 종이다발에 찍힌 글자를 읽는것에만 한정되게 쓰일 것 같진 않습니다. 이후에는 타블렛PC등으로 문학을 읽어도 독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니발
14/08/03 11:1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있어 질문을 남깁니다.

첫번째 파트에서 독서가 어떤 계급문화의 퍼포먼스로 활용되었음을 지적하시고 계십니다. 두번째 파트에서는 이제 분야의 대가들이 원전을 해설해주는 강의를 동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서의 한계를 극복한 일면을 말하고 계시고요. 그리고 글 전반의 주제를 '담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정하셨습니다.

분야의 대가들이 우리에게 어떤 해설을 하기 위해서는, 어찌됐건 최소한 그들은 독서를 해야 할 겁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제 1차 해석자이고, 자신들의 해석을 우리에게 다시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러한 1차 해석자들이 존재함으로써 더 이상 우리가 독서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특정 그룹에게 독서할 의무를, 원전의 지식을 해석할 권리를 맡기고, 나머지 사람들은 손을 놓아버린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요. 그것은 결국 또 하나의 계급문화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궁금합니다.
기아트윈스
14/08/03 18:20
수정 아이콘
제가 글을 더 잘 쓸 걸 그랬어요. 본문에서 주장하고자하는 바는 책에서 손을 놓아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책 읽기를 강요하는 담론에 대해 반발한 것 뿐인데 꼭 독서행위 자체에 대한 찬반논쟁의 헬게이트를 연 것 같아 민망하군요.

독서가 계급문화이었던 것은 정보의 절대다수가 책에 있는 상황에서 책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게 잡았던 시대적 상황에서 귀인합니다.

이미 그러한 조건이 사멸한 이상 독서의 계급성이 앞으로 더 강화될 것 같지 않은데, 여전히 독서를 강조하는 담론 안에는 그 계급성이 느껴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도뿔이
14/08/03 11:47
수정 아이콘
사실 이 담론이 한번 크게 파이아됐던게 이외수씨의 요즘 사람들은 책을 안 읽고 어쩌구 하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올 때였던거 같은데 그 때부터 제 시각은 크게 변하진 않았습니다.
일단 대한민국 국민들이 읽는 평균 활자의 양은 늘면 늘었지 절대 줄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학업 과정에서 읽어야 되는 활자양이 늘었습니다.
대학교 교육 과정이 점점 팍팍해지고 있거든요
80년대만 해도 그 당시 선배님들의 무용담을 듣고 있자면
조금 과장해서 전공 서적 하나 안보고 대학을 졸업(?)하는 이야기들도 많죠
요즘은 그렇게는 못됩니다. 거기다 자기계발서들도 널리 읽히죠.
이건 비단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 말고도 일찍 사회에 뛰어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오락이라면 음주가무, 체육활동, 담배피며 노가리(?)등이 있었지만
이젠 웹서핑이 아마 대부분 사람들의 가장 큰 취미가 되었을겁니다.
과거엔 신문 정도를 제외하면 활자를 거의 안읽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지금은 최소한 네이버 1면 기사들은 읽게 되었죠.

결국 전 이 담론은 두가지로 봅니다.
1. 출판서적을 읽는 양이 줄어들었다.
이건 출판서적 vs Ted(뭐의 약자죠?)의 구조인데 출판서적 자체의 장점은 있습니다.
수많은 활자들중 가치(팔릴만한..)가 있는 녀석들만 출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좀더 정제된 활자라고 인식하면 거의 맞죠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평균적으로 활자를 읽는 양은 늘었습니다.
결국 출판서적이 Ted에 져버린 모양새가 되었죠.
공짜(이건 좀 문제지만요..), 휴대의 간편함에서 출판서적은 Ted에 불리한 점이 많습니다.

두번째는 인문서적을 안 읽는다는 겁니다. 책을 마음의 양식이라고 할때 이 책이 '자료구조의 이해'는 아니겠지죠
소설(without 양판소), 철학서(without 자기계발서)를 사람들이 너무 안 읽는다 라고 한느 것이죠.
이것은 꽤나 오래된 얘기로 영상매체에 유흥의 자리를 상당히 뺏긴 상태에서
장르물의 성행, 책대여점으로 인한 책구입의 저하
거기다가 양식말고도 읽어야할 활자양의 증가(a.k.a 이과계 전공서적, 자기계발서..)등의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고 봅니다.
뭐 근본적을 찾아보자면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 덕택에 여가시간이 적은 관계로
이쪽 여가산업(?)이 경쟁이 매우 팍팍하죠..
이 결과로 인문서적은 돈이 안됩니다.
돈이 안되면요?
인재 유입이 적습니다.
당연히 질이 떨어집니다.
박민규씨가 일본에서 태어났으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그 박민규씨를 보고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르죠.
결국 tv도 봐야되고 게임도 해야되고 술도 먹어야되는데 이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을텐데
우린 그렇지 못합니다. 독서 선진국(?)들은 이게 됩니다.
14/08/03 12:31
수정 아이콘
무라카미 하루키가 나오지 않은 대신 박찬욱이 나온거라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하루키가 나왔다면 박찬욱이 안나왔겠죠. 우리 시장의 크기는 겨우 오천만이고 문학과 영화의 재능은 상당히 곂치니까요.
도뿔이
14/08/10 18:49
수정 아이콘
좋은 지적이십니다. 돈이 안되는 분야에서 돈이 되는 분야로 인재가 이동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만화스토리 작가를 꿈꾸는 사촌동생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자기같은 친구들이 결국 현실을 인식하고 영화나 드라마 작가로 많이 간다구요
기아트윈스
14/08/03 18:21
수정 아이콘
좋은 지적이십니다.
Abrasax_ :D
14/08/03 11:55
수정 아이콘
글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책읽기 문제의 논점을 잘못 파악하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국한문 혼용체 부분은 공감이 되지 않는데요. 저는 또래들에 비해 어릴 때부터 한자/문을 배워왔고, 국어 능력을 위해서 어느 정도 한자를 배우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도 그렇습니다. 거칠게 말해서 책도 별로 안 읽는 요즘 세대가 한자 해독이 가능할 리가 있겠습니까. 사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또한 책읽기에서 계급적인 요소를 지적하는 부분과는 크게 충돌합니다.

변화하는 매체에 대해서는 더 논쟁이 필요할듯 한데요. 제 얄팍한 지식으로는 문자 문화와 구술 문화의 틀에서 봐야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TED가 아니라 전자책을 다루는 것이 더 맞는 흐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4/08/03 12:49
수정 아이콘
저도 이부분은 좀 이해가 안가네요. 문자와 활자문화가 계급을 분화하는 계층적 장벽으로 존재했는데, 그 계층적 장벽으로 존재했던 국한문 혼용체를 다시 쓰자는게요. 당장 동사무소 서류만 작성해도 도대체 왜 쓰는 지 알 수없는 서류상에서만 존재하는 한자단어들이 있는데 이걸 더 쉬운 말로 바꾸고 한자어를 지양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가 맞지 않을까요. 중고등학교때 배우는 교과서 용어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배우는 수많은 학술 용어들 또한 한자어 투성이로 그냥 한눈에 보고는 이게 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적란운. 소나기 구름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걸 적란운이라고 하죠. 무려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심지어 속력 속도는 한자어의 뜻에 따르면 틀린 용어인데도 가장 과학교과서에 중요한 부분으로 강조 또 강조되는 부분이죠 -0- . 읽는 맛이 있으니 국한문 혼용체를 써야 한다는 것은 해석력을 악화시키고 위에 나오는 계급적 장벽을 다시 세우자는 이야기 같은데 말이죠. 뭐 아마 이런 학술 용어들은 얼마 안 가서 전부 영어 단어로 대체되겠지만 말입니다. 뭐 오늘 방금 고속도로를 지나오면서 하이패스를 지났는데 몇십년 전에 하이패스가 생겼다면 이름이 하이패스가 아니고 고로? 속로? ㅡㅡ? 등으로 쓰였겠죠
jjohny=쿠마
14/08/0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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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도 썼는데, 저는 그 부분 때문에 이 글 전체가 좀 다르게(안 좋은 의미에서) 와닿습니다.
기아트윈스
14/08/0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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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성에 관해서라면...

독서가 계급문화이었던 것은 정보의 절대다수가 책에 있는 상황에서 책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게 잡았던 시대적 상황에서 귀인합니다.

이미 그러한 조건이 사멸한 이상 독서의 계급성이 앞으로 더 강화될 것 같지 않은데, 여전히 독서를 강조하는 담론 안에는 여전히 그 계급성이 느껴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국한문 부분은 말 그대로 여담이었는데 의외로 그부분에서 파이어가 되네요.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글이 열려야 할 것 같습니다. Judas Pain님의 발제가 기다려집니다.

매체 부분에 대해서는 말 vs 글, 글(종이) vs 글(스크린)의 두 가지 이야기가 모두 필요합니다. 전자책 부분은 사실 논쟁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큰 언급 없이 넘어갔는데 의외로 언급이 많이 되어서 놀랐습니다.
탐이푸르다
14/08/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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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는 지식 요약본입니다.
어떤 사람의 학문적 성취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1~2시간을 할애해도 모자란데 18분에 그것을 모두 담을수 있을까요.
지식의 인스턴트화죠. TED를 통한 깊은 사고로의 전환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접할수 있는 양질의 매체가 있는지 의문이네요.
공중파 예능, 드라마를 예시로 드는건 아닐테고 다큐는 스마트폰으로 보든 티비로 보든 질색하는 사람 많죠.
스마트폰으로 단문의 글, 피상적인 정보를 향유할 수 밖에 없죠.

책을 뛰어넘는 새로운 미디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2번 문단은 여러모로 이해가 안되는 글이네요.
기아트윈스
14/08/0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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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할애하는 시간과 사고의 [깊이]가 비례하는지 의문입니다.

종이책으로 볼 때 투입되는 시간의 적지 않은 부분은 (전공서적으로 한정하자면) 여기 풋노트에 달린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저 책을 찾아서 해당 페이지를 열어보는 시간, 인덱스 보고 종이뭉치를 뒤적거리는 시간 등등이 다 포함되지요. 대중서라면 이런 시간이 총 독서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적겠습니다만, 전공서라면 생각보다 적지 않습니다. 웹은 이런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주구요. 대량의 메타데이터 (예컨대 어떤 책에서 어떤 단어가 몇 번 언급되었는지)가 목적이라면 그 차이는 현격하게 벌어지지요.

또, 전공서를 많이 읽다보니 예전에는 쳐다도 보지 않던 북 리뷰가 얼마나 유용한지도 알게 되더군요. 그냥 본서부터 보기 시작해서 3일 꼬박 투자하는 것보다는 먼저 본서에 대한 리뷰를 쭉 찾아서 독파한 후 하루만에 본서를 돌파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더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위에서도 몇 번 언급했지만 책을 읽지 말자는 취지로 쓴 글이 아니라, 꼭 책이어야할 필요도 없고, 책을 보완할 매체들도 많다... 뭐 이런 생각입니다.
14/08/0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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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아트앤스터디등 인문학인강이 대체할 수 있겠죠. 프로이트니 라깡이니 책들은 결국 교수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건데 직접 강의를 들을수 있다면? 책은 더이상 필요없죠. 과도기적단계에서 상업화에 성공한게 ted라고 보구요. 덧붙여서 소설도 그 자체의 재미가 아니라 어떤 효용때문에 읽는걸 추천한다면, 그 효용은 영화에서 충분히 얻을수 있는거라고 봅니다.
기아트윈스
14/08/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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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합니다.

다만 여러 분들이 지적해주셨 듯이 그래도 책이 가지는 고유의 장점이 있고, 따라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alchemist*
14/08/0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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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2번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개인적으로는 맛폰은 책보다 일정부분에 대해서는 열등하더라구요
특히 "기억"에 남고 "정리"가 되는 부분에서는 특히요..

이건 맛폰뿐 아니라 컴퓨터에도 해당되는 부분인데
보고서든 잡지든 뭐든간에 맛폰이나 태블릿 등으로 보면 기억에 크게 남지 않습니다. 확 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구요.
그런데 이게 종이로 해서 보면 이게 한눈에 쑥 들어오면서 앞뒤 전후관계도 정리되도 틀린 것도 보이고 그러는데 이게 화면이란 걸로 보게 되면 절대 안 보이더라구요..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제가 손을 써서 공부하고 필기하고 그런 세대라서 그런건지(이건 요새도 뭐 변함이야 없겠습니다만)
아니면 진짜로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맛폰이나 화면으로 나타나는게 열등한 것인지.. 조금은 헷갈리기는 합니다.

이건 레티나 쓰는 아이폰이랑 아이패드도 마찬가지더라구요.. ㅠㅠ 기억이 확 남는게 없어요..
그냥 가지고 놀던 거 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러는건지.. ㅠㅠ
기아트윈스
14/08/0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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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개인차가 있을 겁니다. 김태호 pd 인터뷰 하나를 꽤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그 중 백미는 역시 이 부분이었지요.

"김태호: 제가 활자 습득력이 떨어지거든요.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예를 들어 <한겨레>를 완독하려면 6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기억은 보통 이미지나 화면으로 해요. "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9JUD&fldid=O1aV&datanum=97&openArticle=true&docid=19JUDO1aV9720100319093806

인터뷰 자체가 재미지니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콩먹는군락
14/08/0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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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터넷으로 볼경우 책으로 읽는경우보다 불편한점도 있는건 사실이라..
기아트윈스
14/08/0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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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죠 -_-;

두 매체가 자웅을 겨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 텍스트 시장을 나눠먹는 선에서 끝날 테구요. CD에 대한 MP3의 압승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지나가다...
14/08/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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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는 책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한문 혼용은 글쎄요.. 국한문 혼용 세상에서 살아 봤지만 읽는 맛 이전에 좌절감만 느꼈습니다. 이거야 말로 퍼포먼스죠.
기아트윈스
14/08/0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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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와 책의 관계에 대해서 100% 동의합니다.

국한문 혼용의 경우는 결국 사회적 훈련과 합의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 운운하는 건 정말 싫지만 그래도 가장 유사한 사례가 일본이라 자꾸 언급하게 되는데, 만화책은 물론 AV 커버까지도 한자 범벅이지만 문자문화와 가장 먼 사람들조차도 그거 읽는데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지요.
소독용 에탄올
14/08/0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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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한문혼용하고 다른 맥락이지만,
한문을 상당기간 배웠고, 국한문 혼용이 '당연했던'시기의 논문을 읽는데 아무 문제를 못느낄정도로 익숙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딱히 '국한문 혼용'과 '한글 전용'사이에 뭔가 차이가 있단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특히 텍스트로 밥벌어먹고 사는입장이긴 하지만, '글맛'같은걸 단 한번도 느껴보지도 못했고요 ㅡㅡ;

저에게 텍스트는 '정보를 표시하는 기호'일 뿐이라서
'화면위에 전기신호로 만든 얼룩'상태건, 종이위에 '화학물질로 만든 얼룩'상태건 딱히 차이를 못느끼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칼라미티
14/08/0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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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이 야동보다 열등하다니 이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아트윈스
14/08/0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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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만의 장점이 있지만, 그래도 후자의 위용이...
부기나이트
14/08/0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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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창천항로에서 조조가 진림의 격문(조조집안을 까는)을 받아들고
'이 아름다운 문언. 이 아름다운 배열, 음조, 음률. 가혹한 행간에 깃든 사조, 쇄탈, 품격. 언어라는 건 배우려 않는 자는 영원히 익힐 수 없는 것이다'
라며 실로 기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언어의 맛을 꼭 알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안타까운 것도 사실.
연애의 맛을 모르고 살아가는 모쏠분을 보는 느낌이죠.

그리고 언어를 구사하거나 이해하는 기량을 얻는 데는 이른바 종이책을 따라올게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알렉산드라 리플리의 스칼렛 하나만 독파하고 있어도 어디가서 말빨로 지는 일은 없어집니다.
(남자가 말로 여자를 이기게 해줍니다.)
안 읽어보신 분들은 이해가 안가실텐데 읽어보시면 알게됩니다. 시중에 널린 화술책 100권을 모아도 이 책 하나만 못합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탁월한 효과인지요?

속칭 요즘의 인터넷세대분들은 이 기량이 솔직히 말하면 바닥수준입니다. 계속 떨어지고 있고.
조금만 비유하거나 비틀어도 행간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인터넷게시판만 봐도 행간을 잘못 파악하여 타겟도 아닌 엉뚱한 사람이 발끈하는 일은 너무도 흔하지요.

당연히 그들 본인의 책임이다. 그들이 한심하게도 독서를 게을리한다. 이런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인 문제죠.
작금 발간되는 도서들이라곤 라면받침으로도 쓸 가치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위에 언급한 스칼렛을 네이버에 소설 스칼렛으로 검색하니 왠 잡서들만 잔뜩 나오는군요.
90년대초중반 책이라곤 하지만...이러니 책을 안(못) 읽지.....
소독용 에탄올
14/08/0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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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인터넷세대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지칭하는지도 사실 상당히 모호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인터넷 이전세대'가 말씀하신 기량을 '공유'하느냐도 의심스럽고요.
마지막으로 '언어의 맛'이라는 물건이 '문화지위'를 넘어선 형태로 '공유'가능한 것인지도 불분명합니다.
에이멜
14/08/0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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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책을 읽으라는 독서담론이 마뜩잖긴 하나 웹페이지나 이북, 강연이 대체할 수 없는 책의 고유한 가치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예로 제시된 드래곤 라자 같은 소설을 하나 고르기 위해서 웹페이지나 이북을 뒤적거리는건 상당히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도서관에서는 해당 코너에서 책 몇권 훑어보면 문체, 주제, 분량까지 마음에 드는 책을 쉽게 고를 수 있는데 말이죠. 재테크처럼 논쟁적인 분야라면 이런 문제는 더 커집니다. 어느 책이 좋은지 직접 판단하려면 책을 훑어봐야 하는데 이북 샘플페이지로는 불가능한 일들이죠.

소설의 경우라면 재미가 좀 덜한 책을 고르는데서 문제가 끝나겠지만 학부수준의 지식이라면 웹페이지의 정보는 상당히 신뢰성이 떨어집니다. 강연? 수십분 강연으로 학부수준의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면 대학이라는게 남아있질 않겠죠. 깊이에 있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장기간의 음미가 필요한 주제라면 종이책 이외의 매체가 갖는 한계는 뚜렷합니다.

독서량에 집착할 필요는 없겠지만 지식전달에 있어 책은 여전히 핵심적인 매체입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라'는 외침이 공허한 이유는 좋은 책에 대한 합의가 좀체 이루어지지 않는,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독서장려로 위장된 비난이 쏟아지기 때문일겁니다. 내일 굶어죽을 사람에게 '이기적 유전자'가 좋은 책이 될 수는 없는데 말이죠.
김성수
14/08/0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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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로 웹을 통해서 공부하는 입장이라 조금 견해가 다릅니다.

에이멜님께서 도서관을 이용해 마음에 드는 책을 쉽게 고를 수 있는 만큼, 저는 웹페이지를 통해 제가 읽어보면 좋을만한 책들을 꽤나 명확하게 골라냅니다. 여러 사람의 독서 경험이 웹페이지에는 존재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제가 처한 상황에 필요한 책을 골라낼 수 있죠. 저는 그러한 프로세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책이 좋은지 직접 판단하려면 꼭 책을 훑어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웹 정보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웹페이지의 특성으로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한 문제입니다. 이미 책을 읽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견해가 웹 페이지에는 존재하며, 책에 있는 정보의 파편들 또한 웹 페이지에 존재합니다. 심지어 그 저자 또한 웹을 통해 또 다른 의견들을 피력하는 경우도 있고요. 대게 최신의 지식에 있어서는 웹 페이지가 더 강력합니다. 따라서 과거의 사장되버린 지식을 배우던 경험을 효율적으로 피할 수 있게 되었죠. 근본적으로 웹 페이지는 질보다는 양에 앞서는 매체입니다. 개개의 신뢰도는 떨어질 지언정 더욱 다양한 생각들을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이점이 있죠. 따라서 신뢰도를 유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매체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책이 지식 전달에 핵심적인 매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만, 웹 또한 절대로 뒤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자 기호에 맞게 선택하면 될 문제 아닐까 합니다.
에이멜
14/08/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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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에서 취하려는 정보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많은 자본이 투입된 재화에 대한 정보들은 웹상에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맛집, 스마트폰, 자동차, 영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왜곡이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고 주식, 보험, 금융상품 처럼 직접적인 재화를 다루는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비단 이런 분야뿐 아니라 창조론, 환단고기 옹호, 광주 민주화운동 폭동론 처럼 현실에서는 웃음거리도 안되는 글들이 거대 포털들에서 상위에 올라있는게 현재의 인터넷입니다.

일반적인 인터넷 사용자가 교차검증등의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웹페이지에서 책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는 회의적입니다.
김성수
14/08/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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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되어있다는 점은 저도 공감합니다만, 오염되어있지 않은 정보들도 많습니다. 강력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저는 반대로 왜곡을 줄일 수 있는 장치도 웹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창조론, 환단고기 옹호, 광주 민주화운동 폭동론처럼 웃음거리에 불과한 글들이 존재하지만 에이멜님 처럼 그것을 경멸하는 시선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시선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이 더욱 뚜렷하게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고요. 어디까지나 저는 인터넷만능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인터넷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오명을 씻고자 하는 정도일 뿐이지요.
에이멜
14/08/0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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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달된 유저라면 원하는 분야의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얻을 수 있는 인터넷 루트를 충분히 확보해 둘 수 있고 이런 경우 도서로는 절대 제공받을 수 없는 양질의 정보를 신속하게 얻을 수 있다는데는 십분 동의합니다.

pgr에서 갑론을박을 펼치는 유저라면 웹의 효용에 대해 공감대가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그럼에도 왜 책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pgr유게가 최불암시리즈보다 낫다는거야 당연한 이야기니까요.
김성수
14/08/0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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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PGR21이라는 것을 간과하긴 했습니다. 에이멜님께서도 분명 어느 정도는 웹에 친숙한 세대일 확률이 높을 턴데 말이죠. 제가 웹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이런 전개가 나온 것 같네요. 좋은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지속적으로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에이멜
14/08/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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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토론 감사드립니다. :D
마스터충달
14/08/0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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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페이지나 이북을 뒤적거리는게 도서관까지 찾아가야 하는 것 보다 노력을 들이는 일일까요?

그리고 전공지식에 관해선 학부 이상이 되버리면 오히려 책보다 pdf를 더 많이 봅니다. 웹페이지를 더 많이 찾기도 하구요.
공대다 보니 종이로 된 자료도 중요하지만, 그래픽, 특히 움직이는 그래픽이 주는 이해도는 굉장히 큽니다.
전공지식이라서 전공책보다 IT 미디어가 약하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네요.
전공책도 보긴 했습니다만, 전공책으로 2~3시간 끙끙대고 이해 못하던걸, 동영상 한방에 이해해버리게 되면
그 허탈함이랄까 ㅠ,ㅠ 절대 종이책 이외의 미디어가 깊이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부기나이트
14/08/0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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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측면에서는 웹이 종이책을 이미 추월했다고 봅니다.
단지, 종이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아닌 사람은 그 웹의 정보를 습득함에 있어 차이가 나겠지요.
더구나 그 웹의 정보가 공학류가 아닌 인문류라면 그 차이는 매우 클겁니다.
마스터충달
14/08/03 16:18
수정 아이콘
결국 어느쪽이 비교 우위에 있다거나
한 쪽이 한계에 있다는 말은 부당한 것이죠.
에이멜
14/08/03 17:30
수정 아이콘
이북에서 제공하는 샘플페이지는 상당히 제한적이니까요. 이북으로 제공되지 않는 책들도 많구요.

학부를 넘어서면 주로 논문을 보게 되는데 여전히 많은 교수님들께서 학회지를 구독하고 계십니다. 특정 주제를 찾아볼때는 논문집이라는게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반대로 주제를 정하지 않고 보거나 비교적 넓은 범위를 볼 때는 논문집을 보는게 더 편하죠.

서로 전공이 다를테니 분야마다 어느정도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물리학이나 경제학을 학사 수준으로 공부해야 한다면 이런저런 웹페이지를 탐색하는것보다 도서관에 틀어박히는게 훨씬 일반적인 선택일겁니다. 단적으로 대학교 시험기간에 학생들이 몰리는 곳은 컴퓨터실이 아니라 도서관입니다.

상호작용은 책이 가지지 못한 강력한 장점이고 이러한 장점 외에도 새로운 매체가 가지는 고유한 장점은 매우 많습니다. 저도 책이 웹페이지를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웹페이지가 책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겁니다.
구밀복검
14/08/0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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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도 오히려 웹에서 검색하는 게 편하지 않나요. 구글링으로 영어 키워드 때려넣으면 바로바로 나오니까요. 심지어 인용회수까지 보여주며 정렬해줄 정도니. 한국 논문들도 Riss 가면 어지간하면 다 볼 수 있고...
에이멜
14/08/0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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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주제를 찾아볼때는 검색을 하는게 훨씬 편리하지만 연구동향을 살필때는 종이책이 더 편리하지 않나요?

저도 대부분의 논문을 검색으로 찾아서 보긴 합니다.
마스터충달
14/08/0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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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도서관이란 장소는 이북하고는 좀 성격이 다르다고 봅니다. 비교하자면 서점하고 비교해야겠죠.
종이책도 온라인 판매가 대세가 됐으니 샘플페이지의 한계는 종이나 e북이나 양쪽 모두 해당한다고 봐야 할것이고
그리고 e북으로 제공되지 않는 책이 많은 점은 사실이나
이는 당연하게 개선되고 있는 영역이니 미디어의 특성으로 논할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장기간의 음미에 한계가 있다고 말씀하셨기에 드린 반론입니다.
그런 것은 컨텐츠에 따른 차이이지 미디어에 따른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웹페이지가 책을 완전히 대체한다고 말씀드리진 않았습니다.
책 이외의 매체가 한계를 가진 다는 평가가 부당하다는 말씀이죠.
웹페이지나 pdf나 심지어 동영상을 봐도 깊이있는 음미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험기간에 학생들이 찾는 것은 독서실이지 도서관은 아닌것 같습니다.
시험기간에도 열람실은 한산합니다. 그 기간에 대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아니구요.

이건 여담인데 종이라는 재료에 대해서는 바뀔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디스플레이의 발달로 타블렛이 책의 편안함 수준까지 발달할 수 있다면 말이죠. (무게, 휴대성 등)
뭐 아무리 발달해봤자 소모성을 따라가진 못하겠지만요.
기아트윈스
14/08/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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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14/08/0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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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을 읽는 건... 돈주고 헬스 끊어놓고 억지로 운동하는거랑 비슷한 겁니다. 크크
집에서 덤벨들고 집 근처에서 뛰는게 싸고 좋은거 누구나 다 알지만 결국 살빼려면 돈주고 헬스 클럽가는 거만큼 효율적인게 없죠.
PGR 같은 사이트가 수십개가 넘는데 웹질하면서 집중해서 지식을 습득하기는 힘들거든요...
미오X히타기X하치만
14/08/0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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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야하는가?'라는 물음이라면 답은 '예', '꼭 책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는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다'라고 하고 싶습니다.

저는 맞춤법, 띄어쓰기 등에 조심하는 편입니다. 제가 그 방면의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쪽 계통의 공부를 한 것도 아니지만요.
pgr에도, 기본적인 맞춤법이나 어휘에서 잘못된 글 혹은 댓글이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키보드 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타가 아니라요.)
지적을 하자니 '내가 그러할 깜냥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만두자'라고 생각하고 넘깁니다만.
지금 이 댓글을 다는 저도 여기 어디에선가 오타나 잘못된 부분이 있을거라 생각하기도 하고요.

미팅에서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확 떨어질 때 중 하나가 '기본적인 맞춤법을 틀릴 때'라고 하니, 틀리는 일이 없어서 나쁠 건 없어보이기도 합니다만.

활자를 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 중 알게모르게 놓치는 게 어휘와 표현력이라 생각합니다.
사전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같은 뜻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의 어휘가 늘어나고 이로인해 표현력도 좋아지는 점도 있다고 보는데, 이는 활자가 아닌 다른 미디어로는 얻기가 불가능하지요.

마치 영화를 많이 보고 분석한 '무비 키드'들이 좀더 다양한 각도의 화면 혹은 다양한 기법의 연출을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거라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이는 '온고지신'과도 연결이 될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을 찾는 또다른 이유가 되기도 하고요.

저는 논술고사라는 걸 볼 일이 없었습니다만.. 논술 준비니, 논술학원이니 그런 걸 볼 때마다 '왜 저러지?' 하고 생각했어요.
단기간에 효과를 볼수야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벼락치기, 수험용일텐데, 평소에 '굳이 논술준비랍시고 신경쓸 필요도 없이' 활자를 접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정도만 해왔어도 논술이라는 거에 저렇게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었을텐데요.
그냥 논술이라는 걸,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답을 써내는 법' 정도로 여기고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여기다가 담론이랍시고 '책읽으라'며 들이민 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식의 창의력, 사고력..(결국 목적은 도구적 수단으로서의 독서)

담론이란게 제대로 이루어질리 없지요..

스마트폰으로 작성을 하다보니 너무 두서가 없네요;;
소독용 에탄올
14/08/0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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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논술'시험은 목적 자체가 수능시대판 '본고사'라서 '활자를 접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역량을 가지고는 '못'푸는 문제가 나옵니다.
학부과정 혹은 그 이상의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문제나, '논술'의 탈을 쓴 '계산'문제가 나오니까요.......

애당초 목표자체가 '논술'시험이 아니라, 논술'시험'이었던지라 '그렇게 되버린 것'이라기 보다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한 현실에대한 기술일 것으로 보입니다. ㅠㅠ
14/08/0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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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게 좋죠. 안 읽어도 큰 문제없다. 다른 것들이 책보다 열등하다고 볼 수 없다는 건 논점을 약간 이탈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테드든 pgr의 양질의 글이든 그것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있는데 책은 그것과는 다른 컨텐츠를 담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라는 건 책이 아니면 담을 수 없는 컨텐츠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도 섭취하라는 얘기죠.
요약, 지식, 실천적 결론을 섭취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들만 섭취하는 건 나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14/08/0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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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는 책을 "다루는" 일을 해보았고 배운 사람이라는 점을 전제로 두고 몇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2. 학문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도서"의 범위를 인쇄매체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인쇄매체로 한정했다면 문과 출신으로 배우기 어려운 정보검색론도, DB도, XML도, JSP도, 디지털 도서관도, 학술정보 네트워크도 배울 이유가 없었습니다. 단지 가독성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면에서 인쇄매체 쪽이 좋긴 합니다. 그렇다고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리진 않습니다.

3. 저는 기본적으로 어떤 형태든, 어느 시기든 도서를 접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본문에도, 여담에도 아무런 공감을 못 합니다. 국한문 혼용책을 읽을때는 불편함만 있었을뿐, 국한문혼용체로서만 느낄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은 느끼지 못 했습니다. 일본어로 된 도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이건 단지 제가 한글세대여서 일수도 있습니다.

5. 계량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1년에 300권 이상의 책을 읽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건 순전히 개인적으로 그게 재미를 주었을 뿐이지 남들보다 월등하다는 의식은 없습니다. 1권 읽고 저보다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걸로 충분히 저 이상의 통찰을 얻는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의 통찰을 얻지 못 하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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