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라는 표현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건 기억이 자세히 나지는 않지만 아마 90년대 말을 기점으로 여기저기서 충분히 언급되어져 왔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일 것입니다. 책의 신빙성 여부가 두고두고 논란이 되지만 어쨌건 많은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자리잡았던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에서 오타쿠에 대해 당시로써는 상당히 상세하게 접근하는 시도를 보여줌으로써 이로인해 대중적으로 오타쿠라는 표현이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는데 성공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오타쿠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오랜 시간을 거쳐서 과거 매니아가 차지하는 위치를 대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정확히는 오타쿠를 국내 음절에 맞게 로컬라이징 하면서 생성된 신조어인 오덕후라는 표현이 등장하게 되었죠. 그러한 상황에서 축덕이니 스덕이니 하는 표현들이 생성된걸 보면 기존에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코믹스,게임 등에 관한 미디어를 향유하는 서브컬쳐 들을 향유하는 계층을 지칭하는 한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에서 보다 포괄적인 개념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그 위상이 격상됬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다만 이것은 오타쿠라는 단어 자체의 용례가 변화한 것일뿐 실제 '오타쿠' 라고 과거에 불리웠던 계층이 향유했던 컨텐츠들이나 그 주요 소비층들의 위상 역시 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따가롭다는 것을 알기에 일코나 숨덕이라는 말이 여전히 버젓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씹덕후라는 표현이 이제 기존에 오타쿠라는 존재들을 상정하는 표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국민학교가 아닌 초등학교 세대부터 학창생활을 향유한 분들이라면 PMP나 핸드폰 혹은 기타 타블렛 기기등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보는 학생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의 태반은 일본 애니메이션. 그것도 특정 케이블에서 심야시간에 방영해주는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입니다.물론 골든타임대에 편성되어있는 작품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요.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은 대개 소위 미소녀와 판치라(팬티 노출이나 허벅지등을 강조)가 득실대는 작품들이죠.


그리고 이런 계층이 향유하는 컨텐츠는 애니메이션의 원작에 해당하는 코믹스나 라노베라 불리우는 소설, 그리고 관련 게임과 같은 미디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특히 PC 온라인 게임보다는 콘솔에 보다 더 친화적이죠. 아무래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주로 보다보니 자연스레 일본이 주도적인 시장점유를 점하고 있는 콘솔 게임 쪽에 보다 더 친근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콘솔 게임 특성 상 온라인에 비해 멀티 플레이적인 요소를 덜어내고 싱글 플레이에 강조하다보니 자연스레 폐쇄적인 속성이 강조됩니다. 물론 요새는 콘솔이 PC보다 더 멀티성을 강조합니다만 이건 이후의 논의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니까 이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 아무튼 그러한 식으로 일본 특유의 눈이 크고 뾰족하고 작은 코에 갸름하고 날카로운 턱선으로 데포르메된 케릭터 디자인을 내세운 만화나 애니메이션들이나 게임들을 향유하는 계층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오타쿠라고 불러왔고, 지금은 씹덕이라는 존재로 부르는 것을 알고 계실겁니다.


그러다보니 애니메이션 팬 = 오타쿠라는 의식이 어느 순간부터 팽배해져 있었죠. 사실 애니메이션 자체는 저러한 일본의 미소녀 애니메이션이 아닌 3D나 북미, 유럽, 남미 , 아시아 등 전역에 걸쳐 이미 다양한 장르로의 분화를 거듭하며 2D,3D나 클레이등 다양한 작품들이 생성되고 그에 맞는 팬덤 역시 분화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국내에서 애니 오타쿠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대개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죠. 물론 겨울왕국의 이례적인 성공과 더불어 이전의 디즈니 픽사 등의 작품들의 선전으로 인해 3D 애니메이션 = 전연령, 대중지향적이라는 영역을 공고히 했다는 점은 다소 인상적인 결과 입니다. 반대로 자연스럽게 일본 애니메이션과 그 관련 컨텐츠를 향유하는 이들은 코어하고 매니악한 취미를 향유하는 존재가 되었죠. 저렇게 애니메이션 팬덤 내에서도 대립과 갈등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뭐랄까요. 전자의 경우엔 '에휴 미소녀들만 줄창 나와서 룩딸이나 치는 변태들 ' VS '거 애들이나 보는 만화나 보고 있으면서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애니는 작품성이라능' 이라는 의견이 첨예하고 맞서고 있습니다. 물론 후자쪽이 쪽수나 물량이 후달릴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대놓고 어필을 하고 있지는 못하는 상황입니다만.


저 같은 경우에는 영상을 업으로 삼았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은 아니었습니다. 몇번 시도를 해보기는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순수한 팬덤의 입장에서라기 보다는 제작자의 시각을 견지하고자 하는 시도를 취하기 때문에 다소 현재 팬덤 내의 평가와는 엇갈릴 수 있겠습니다만 어쨌건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소위 '덕질'을 하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조명해보자면 기본적으로 한국의 오타쿠 팬덤이라는 것이 폐쇄적인 속성을 띌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보여집니다. 과거를 언급해보자면 제 유년기때는 공중파에서 방영해주는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VHS를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유년기 시절 집에서 에반게리온 비디오를 빌려와서 친구들끼리 같이 모여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케이블 TV와 인터넷이 가구마다 보급되던 시점이었고 만화 전문 방송이라는 투니버스라는 채널이 개국하던 때도 이때와 비슷하게 맞물렸기에 애니메이션을 접근하는 것은 이전보다 더욱 쉬워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플스나 엑박 같은 콘솔 게임에 대한 관심도 커졌고 그 결과 제가 학창시절에 향유했던 게임은 스타나 디아블로, 워3 보다는 테일즈 시리즈나 파판,드퀘, 슈로대 같은 일본 RPG 게임들이 그 시간을 대신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스타만큼은 놓을 수 없었습니다만 -_-;


그러한 컨텐츠들을 향유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폐쇄적일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봐야할까요,.....더군다나 국내 팬덤들이 컨텐츠를 향유하는 방법이 정식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보는 것이 아닌 대부분 불법 파일 공유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보니 (물론 요즘은 애니플러스와 같은 공식 제휴 서비스 등이 증가하는 추세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시도 차원 수준이죠) 아무래도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기 껄끄러운 면이 있죠. 그 결과 오타쿠들은 음지에서 상당수가 서식하고 있지만 그것이 곧 수익성과 연결되지는 않으니 국내 애니메이션은 시장성을 잃고 결국 그 규모가 축소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의 헤비메탈씬이 상당히 많은 매니아들이 확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방구석 리스너로 끝나버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장되어 버렸던 양상과 놀랍도록 흡사합니다.그 결과 완구류와 같은 관련 굿즈나 미디어 사업등으로 수익성이 보장되는 아동 애니메이션이나 3D 전연령, 혹은 교육용 애니메이션에 초점을 맞춰서 발전해 왔죠. 거기에 일본 애니를 향유하는 팬덤은 '유치해서 못보겠다. 내 취향이 아니다.' 라는 입장을 일관하며 지갑을 닫았구요.이러한 점은 분명히 국내 팬덤이 문제삼아야 할 양상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자신의 취미를 대놓고 어필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관련 커뮤니티에 모여서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죠. 취존을 허용하지 못하는 더러운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지탄부터 결과적으로 최종화살은 거의 마지막으로 여가부에게 쏟아집니다.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발전과 여가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말이죠. 셧다운제도와 웹툰 검열제도라는 칼날을 들이댄 게임이나 만화라면 얘기가 다르겠습니다만. 어쨌건 한국은 이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살기 나쁜 나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정체성은 일본에 더 가까울까요? 물론 일반적으로 저러한 계층 가운데에서 일본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고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지만 시도때도 없이 팬덤 내에서 우익 논란이나 욱일기 등장 때마다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자면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한국인으로써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긴 외국 문물을 주로 향유한다고 곧 그게 문화 사대주의나 자국민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직결 될 수는 없는 법이죠. EPL 등 유럽축구를 즐겨보고 K리그나 한국 국가대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고 해서 니가 축구팬이라고 불리울 수 있냐 혹은 쌍팔년대 미국의 헤비메탈과 북미의 고딕,블랙 메탈을 듣고 한국의 언더씬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는 이한테 그러고도 메탈헤드냐고 성토할 수 없는것 처럼.


물론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팬덤을 보는 시각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결코 부인할 수는 없겠죠. 소개팅같은 자리에서 제 취미는 애니메이션 보는 겁니다라거나 혹은 대학교 MT 자리 같은데서 소위 덕밍아웃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을 테지요. 적어도 미소녀들이 줄창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주로 보는 것이 취미인 남성이 매력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취미가 완전히 동일한 이성간의 만남이 아니고서야 제가 살아오면서 본적이 없습니다. 사실 이쯤되면 슬슬 고민해봐야 될 시점이 한참 지난거 같기도 합니다. 문제의 주체가 서브컬쳐 본연인지 아니면 그것을 향유하고 있는 나 자신인지에 관해서 말이죠. 내가 내 돈 내고 덕질하겠다는데 왜 남이 참견이냐랑은 좀 다른 문제로 접근해야 되지 싶네요. 앞서 언급한 일본식으로 데포르메된 화풍의 컨텐츠들이 국내에서 코어한 계층 이외에는 수요가 없냐 그러면 그건 전혀 아니니까요. 당장 네이버나 다음에서 연재되고 있는 수많은 웹툰들 중 다분히 독자적인 화풍과 케릭터 디자인을 고수하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겁니다. 이쯤되면 비율의 문제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요새들어 키덜트와 오타쿠를 가르는 차이는 종이 한장 차이다라는 말이 요즘 계속 머리에 와닿더군요. 어차피 그냥 개인의 취미를 즐기는 거라면 저렇게 복잡한거 신경쓸 필요 없이 그냥 내 취미생활만 향유하면 그만인 것을 괜히 혼자 머리 썩히고 있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취향은 존중받아야죠. 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