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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5/18 12:39:48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그건 다 불장난이었어요...불장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요? 뭐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 우선 바로 떠오르는 것이 인간은 음성으로 된 [언어]라는 고차원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도 여러 의사소통 수단들을 가지고 있다지만 인간의 언어만큼 체계적이고 복잡하고 추상적이고 유연한 의사소통 체계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들끼리 만났다고 했을 때 "꺼져!" "놀자!" "반가워!"같은 일차원적인 감정 전달은 야옹 거리거나 몸짓을 가지고 가능하다고 하겠지만 예를 들어 "야, 어제 우리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냐? 아, 글쎄 우리 집 집사놈이 엄청 맛 없는 사료를 주는 거야...내가 완전 싫어하는 사료...완전 빡치더라고...그래서 내가 어떡해 복수 했는지 아냐? 크크크...그 놈 아끼는 노트북 위에다가 먹은 걸 토해버렸지...크크크"와 같은 의사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인간만의 고유 영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불]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일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저에게 해주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불장난 하면 나중에 밤에 잘 때 오줌 싼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아이들이 불장난 하다가 큰 사고라도 치게 될까 봐 미리 경계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 말 속에 이미 아이들도 [불]을 가지고 [장난]을 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은 거의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입니다.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영장류인 침팬지도 불을 다루지 못합니다. 단지 불을 다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디 침팬지뿐이겠습니까?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도, 밀림의 제왕이라는 호랑이도, 사냥의 명수 표범도, 강한 턱을 가진 청소부 하이에나도, 숲의 지배자 늑대도 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기만 합니다. 이러한 점은 충분이 이해가 가는 게 만일 이들이 괜히 불 가까이에서 얼쩡거리기라도 하다가 작은 불똥이라도 몸에 튀는 날에는 차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재앙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불은 보이는 즉시 멀리 달아나야만 하는 두려운 존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전 70-80년대에 강촌이나 대성리로 엠티를 가면 가장 많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저녁 때 모닥불 피워놓고 통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거나 술을 마시는 일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철 공사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바로 드럼통 안에다 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녹이는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공사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군이 있는데 어느 추운 날 동료 아저씨가 "어이, 김군 거기서 뭐해? 날도 추운데 여기 와서 불 좀 쬐..." 라고 했을 때 김군이 "아니, 저기 제가 좀 불 공포증이 있어서요...--;;; 그냥 여기에 있겠습니다..." 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오히려 불에 끌린다면 모를까...

이렇게 인류의 조상들이 불과 친숙하고 불을 다룰 줄 알았다는 점은 그들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우선 고기를 불에 익혀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육류의 소화에 대한 부담감이 훨씬 줄어들었을 테고 이것은 앞에서 한 번 얘기했던 것처럼 뇌가 커지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또 불을 사용해서 무기나 도구 같은 것들을 더 정교하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불은 포식자들로부터 우리의 조상들을 지켜주었을 것입니다. 무서운 포식자들에 비해서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엄청난 근육도 없는 인간들이 생존하는데 있어서 불은 정말로 필요한 것이었을 겁니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에 동굴 입구에 피워놓은 모닥불은 호시탐탐 인간의 조상들을 노리는 포식자들을 막아주는 방패막이가 되었을 테지요. 포식자 입장에서는 정말 안타까웠을 겁니다. 저기 산해진미가 널브러져서 자고 있는데 불 때문에 접근을 못하고 입맛만 다셔야 했을테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니 전설이니 하는 것도 모두 인간의 조상들이 모닥불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는 가운데 장차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헤밍웨이와 같은 후손들에게 DNA를 물려주게 될 어떤 한 조상이 이글거리는 몽환적인 모닥불을 쳐다보면서 동료들에게 구라(!)를 치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 인류가 처음부터 불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오스트랄로페테쿠스속이었을 때는 불을 전혀 다루지 못했었던 것 같고 호모 속으로 넘어오고 나서야 불을 다루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불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인간의 조상들이 불을 다룰 수 있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음은 아무리 해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인류로서는 정말 다행한 일이었지요.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여! - 너의 이름은 인간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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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18 12:53
수정 아이콘
글 내용에 반대합니다. 요새 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저 역시 불도 없는 놈이 되어서…
달무리
14/05/18 13:00
수정 아이콘
불필요한 사람이시군요...
구라리오
14/05/18 14:21
수정 아이콘
더 무서운건 불만있는 사람입니다.
14/05/18 14:26
수정 아이콘
아뇨 이제 불필요하지 않은 사람입...
14/05/18 12:58
수정 아이콘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불을 무서워하지 않는게 원래 태어나면서 그런건지 부모가 불을 다루는걸 보고 학습하게 된건지 궁금하네요...
쿨 그레이
14/05/18 12:58
수정 아이콘
디즈니의 정글북이 생각나는군요. 원숭이였나 침팬지였나 하여간 모글리에게서 퐈이야하는 법을 배우려고 사원으로 납치하죠.
왜사냐건웃지요
14/05/18 12:59
수정 아이콘
불을 발견한 사람들 꽤 되지 않나요? 갓영규씨라든가.. 연정훈이라던가... 부들부들;
王天君
14/05/18 15:28
수정 아이콘
프로메테우스!!!!
눈물고기
14/05/18 17:55
수정 아이콘
14/05/18 17:59
수정 아이콘
불도 사용할 수 있고 알도 사용할 수 있고
계란같은 경우에도 불을 이용해 먹지 않으면 살모넬라균에 감염될 수가 있는데 불로 알을 삶아먹거나 후라이를 해먹으니 생존에도 굉장히 도움이 되죠
물론 불로 소독한다는 개념은 한참 후에야 생겨났지만 알게 모르게 불로 조리해서 세균 기생충 감염을 막은 것도 불의 이로움이라 할만합니다
14/05/18 20:08
수정 아이콘
불도 사용할 수 있고 알도 사용할 수 있고...
14/05/18 19:54
수정 아이콘
제가 음란마귀가 씌웠나봅니다.
다른 불장난인 줄 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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